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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총(회장 안양옥)과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29일 ‘올바른 국가관 확립과 나라사랑교육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갖고, 초·중·고 학생들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와 국가 안보 중요성을 함양시키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박 처장은 인사말을 통해 “올해는 6·25 정전 60주년의 해 다.양 기관이 노력해 교육현장에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안 회장은 “교사연수 프로그램들을 개발 해 교사들도 다시금 나라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국가보훈처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 및 보훈가족들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계승·지원 하는 등 법령이 정한 보훈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지난 1월 29일 그동안 일선 학교 교원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단위학교와 교육청에 각각 교권보호위원회를 설치하고, 교육감에게 교육활동 보호 시책을 수립‧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개정안은 지난 해 8월 발표된 ‘교권보호 종합대책’의 후속 조치로 2월초 공포돼 3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금년 5월초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특히 이 개정안은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 개정으로 기존에 유명무실했던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가 ‘학교교권보호위원회’로 개편되고 ‘시도교권보호위원회’ 설치 근거도 마련함으로써 ‘교권보호 종합대책’의 실효성을 1차적으로 확보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사실 그동안초.중.고교 각급학교에 설치돼 있는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는 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대한 최소 기준이 미흡해 대다수 학교에서 위원이 교원으로만 구성돼 있어 학생‧학부모와의 실질적인 분쟁 조정이 어려웠다. 또 교원의 교육활동과 관련한 분쟁 조정만을 담당하는 한계가 있고, 일부 역할은 학운위 등 타 위원회와 중복되는 면도 존재했다. 이 때문에 대다수 학교가 5년 동안 단 한번도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한 적이 없을 정도로 유명무실한 상황이었다. 이번에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으로써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가 ‘학교교권보호위원회’로 개편돼 교원의 교육활동 관련 분쟁 조정뿐만 아니라 교육활동 침해 예방 대책 수립, 교육활동 침해 학생에 대한 선도 조치 등에 관한 사항도 심의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학교교권보호위원회 위원은 교원 외에도 학부모 및 지역사회 인사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고, 위원 정수, 위원장 선출 및 회의 소집 등의 기준도 구체적으로 마련해 학교현장에서 실질적으로 교권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교원들이 교권을 실질적으로 보호․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사실 그 동안 단위학교 차원의 분쟁 조정이 곤란한 경우, 교육청이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상대적으로 미약해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도 보완됐다. 규정 개정안에 따르면 ‘학교교권보호위원회’에서 조정되지 않거나 ‘학교교권보호위원회’가 없는 학교에서 발생한 분쟁은 시‧도교육청에 신설하는 ‘시‧도교권보호위원회’에서 변호사․법학 교수 등 전문가 논의로 조정하도록 하고, 교육감이 수립하는 교육활동 보호에 대한 시책을 심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교육감에게 교육활동 보호시책을 수립․시행하도록 의무를 부과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교육감은 교육활동 보호 전담기관 및 조직 구성․운영, 교육활동 침해 교원에 대한 치료․전보 등 보호조치,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조사 등의 시책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그동안 교원들은 욕설, 폭행, 명예 훼손 등 교권 침해에 대해 신분적 특성상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일반 형사법적 대응 자체가 어려웠다. 윤리적 통제는 교육 관련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부여되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교원들에게는 더욱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 우리 사회의 요구를 교원들은 묵묵히 감수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의 개정은 저하된 교원의 사기를 높이고 교원의 교육활동을 보호함으로써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을 동시에 보호하는 바람직한 장치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사료된다. 현재 세계적으로 공교육 정상화와 함께 교권 보호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교권침해에 대한 적극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 개정에 즈음하여 ‘교권보호 종합대책’이 학교와 교육 현장에 정착되도록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교권보호법 및 교육기본법 개정안 등 관련 법률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번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 개정에 즈음하여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제아무리 좋은 규정이라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준수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처럼 교권이 땅에 떨어진 것은 제도와 행정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이 제도와 행정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결국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 개정 내용은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지키려는 교육관계자들의 인식과 행동이다. 그러므로 교권보호와 교권회복을 위해서는 교원, 학생, 학부모, 학교운영위원, 지역사회 인사, 교육전문직 등 교육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교권보호에 대한 인식과 의식 전환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1951년9월 1일에 전남 보성군 율어국민학교에 1학년에 입학을 하였다. 왜 9월 입학이었느냐고 묻겠지만, 1951년에 우리나라에는 9월 학기제가 시행되었던 같다. 그것도 1951년만이고 1962년에는 4월 학기제로 바뀌었다는 것을 내가 다니던 모교의 연혁을 보면 알 수 있다. 1951년 7월 18일에 모교의 제4회 졸업식이 있었고, 1952년3월 22일에는 제6회 졸업식이 있었으니 이 사이에 학기가 4월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되어서 9월에 입학을 한 나는 교실도 없는 학교에 가서 운동장에서 모래밭에다가 막대기로 ㄱ, ㄴ, ㄷ...을 쓰고, 1,2,3...을 쓰고 다니다가 공비토벌이 시작되어서 온통 전쟁터가 되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 놀고 있었다. 지리산의 공비를 토벌하기 위해 국군과 경찰력이 동원되어서 지리산의 자락인 벌교의 존재산태백산맥의 초기 무대가 되었던 산으로 부터 조계산으로 몰아서 지리산으로 작전 구역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내가 살던 율어면은 존재산의 전투 현장이 되었었기 때문에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집에서 쉬고 있던 동안에 우리 집은 동네의 가장 뒤편에 위치하여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가장 큰 5칸 접집10칸짜리 집이라는 이유로 낮에는 경찰들이 주둔하는 경찰 본부가 되었다가, 저녁이 되면 경찰은 철수하고 공산당의 공비들이 들이 닥쳐서 공비들의 주둔지가 되고는 하는 낮과 밤에 국기가 바뀌어 달리는 집이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보는 군인이나 경찰들과 공비들의 전쟁놀이나 무기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시달리는 지긋지긋한 전쟁을 피하여 12월 하순쯤에 우리는 이웃면인 득량면 마천리 섬동마을로 이사를 하였다. 그리하여 아마도 12월 말인지 아니면 1월초인지에 전학을 하였다. 어찌 되었든 몹시도 추운 날에 학교에 전학 신고를 하고 나서 교실로 가니, 교실로 들어가는 현관을 막아서 교실로 쓰고 있는데, 처음 들어서니 어찌나 깜깜한지 아이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차차 눈에 익숙해져서 보니 책상으로 가득 찬 교실에는 60여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빼곡하게 들어 앉아 있었다. “떴다, 떴다, 비행기......” 하고 아이들은 열심히 따라 읽고 있었는데, 나는 겨우 ㄱ, ㄴ, ㄷ을 읽고 쓰는 것 밖에 모르는데 따라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3월까지 석 달 동안 날마다 공부가 끝난 교실에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하여야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1월 달에 17일 2월 달에 25일 중에 23일2일 결석, 그리고 3월 달에 25일 이렇게 출석일수 67일 중에 65일 동안 출석을 하였다고 2학년이 되었다. 그래도 2학년에 되어서는 꽤나 열심히 공부를 하였든지, 2학년 말에는 우등상을 받았으니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고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못 배운 탓이었던가 보다. 이렇게 9월에 입학을 한 우리는 이듬해 3월 31일에 1학년을 수료하고 2학년으로 진급을 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짧은 1학년을 보낸 셈이다. 이렇게 1952년에 4월 학기제가 되었다가 10년이 지난 1962년에 다시 지금까지 시행해온 3월로 학기가 바뀌었으니, 나는 초중고 12년 동안에 학기 변동으로 인하여 총 7개월을 공부하지 않고 그냥 공짜로 진급을 하게 된 셈이다. 이렇게 혼란한 시기에 어렵게 살아온 나의 일생을 우리 부모님께서 얼마나 열심히 챙겨 주셨던지, 만 70이 되는 지금도 나의 성장 기록철에는 국민학교 1,3,4학년 [통신표]와 5,6학년 [아동발달상황표]가 잘 보존 되어 있고, 2학년에 받았던 우등상장도 보존이 되어 있을 정도이니 어쩜 무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할 때마다 목욕하는 습관이 생겼다. ‘목욕이 보약보다 낫다’는 말이 있듯 목욕을 하고 나면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고 몸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더군다나 동네 가까이에 목욕탕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가 있다. 금요일 오후, 며칠째 계속되는 감기로 몸이 좋지 않아 목욕하면 조금 나아질까 하는 생각으로 목욕탕으로 갔다. 평일이기에 부담 없이 목욕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목욕탕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보호자와 함께 온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친구들과 함께 온 초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연일 이어지는 맹추위로 밖에 나가 놀지 못한 아이들이 추위를 피하려는 곳 중의 하나로 목욕탕을 선택한 것 같았다. 그리고 방학 중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목욕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조용히 앉아 목욕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함께 온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목욕탕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말 그대로 목욕탕은 아이들의 무법천지였다. 수영금지라는 경고문에도 일부 아이들은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냉탕에서 물장구를 치며 수영까지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샤워기로 물싸움을 하여 주위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온탕은 많은 아이의 왕래가 잦은 탓인지 물이 식어 있었으며 온갖 부유물이 떠다녀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순간,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 자신이 목욕탕이 아니라 동네 놀이터에 왔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누구 하나 아이들의 이런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물론 목욕탕에는 아이들을 나무랄 연령의 어른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참다못해 장난이 심한 몇 명의 아이들에게 잠깐 주의를 주었으나 그때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람이 없는 데도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 샤워기에서 물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으며, 목욕 중에도 물을 잠그지 않아 뜨거운 물이 대야 위로 넘쳐 하수구로 흘러갔다. 아까운 물이 하수구로 흘러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물 씀씀이가 전국에 있는 모든 목욕탕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고 물을 물 쓰듯이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교사로서 왠지 모르게 조금은 책임감이 느껴졌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그나마 잘 실천하고 있는 물 절약 운동이 물을 제일 많이 사용하는 목욕탕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이 계속해서 나오는 샤워기를 찾아다니며 수도꼭지를 잠그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한 아이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는 주위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사용하지 않는 샤워기의 수도꼭지 모두를 잠그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세신을 하고 있던 또래 아이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이었다. 내심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행동이라 생각하여 그 아이의 부모가 누구인지 궁금해 졌다. 그래서 목욕탕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아이의 선행이 궁금하여 다가가 물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그 아이는 수업시간 물의 소중함을 배웠다며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라며 겸손하게 대답을 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찾아간 목욕탕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일로 하마터면 기분을 망칠 뻔했으나 한 아이의 행동으로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하루였다. 비록 목욕은 못했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울 수 있습니다'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수용이 가능한 명제이다. 그러나 언어교육에서도 이같은 정의는 통할 것인가 의문을 가진 나에게 이런 사례 발표는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국 브루스 발라드(59) 교사는 침묵교수법으로 언어교육, 협동학습을 하고 동기부여까지 실천한 사례를 들려 주었다. 그는 “한국어를 배울 때 선생님께서 거의 말씀을 안 하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게 하는 모습에 그동안 제가 받았던 언어교육의 틀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라고 새로운 배움의 창을 연 이야기로 시작하였다. 눈높이 교육상 글로벌 교육부문 수상자인 브루스 발라드 뉴욕 브롱크스 차터스쿨 교사는 지난 해 11월 22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대교문화재단 주최와 교총, 교과부의 후원으로 열린 ‘눈높이 글로벌 교육포럼 2012’에서 자신이 실천해 온 침묵 교수법을 발견하게 된 계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평화봉사단원으로 1975년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 교사가 수업 시간에 막대기를 하나씩 꺼내 ‘막대기’라고 알려준 뒤 다시 막대기를 꺼내들면서 침묵하자 학생들이 다같이 ‘막대기’라고 말하고 이어 서로 다른 막대기의 길이, 색깔 등을 표현하는 단어를 찾아갔다. 그는 이 경험을 계기로 교사가 직접 가르쳐주는 언어 수업에서 학생 스스로 찾아가는 수업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새로운 언어를 가르칠 때도 암기할 내용을 알려주기보다는 학생들이 도전할 과제를 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칼렙 가테뇨의 이론을 적용한 교수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교사가 할 일은 학생들 스스로 자신이 가진 경험과 능력을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발라드 교사는 한국어를 가르칠 때 한국어를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같은 발음이 나는 글자를 같은 색으로 칠한 영어 단어와 한국어 단어를 제시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학생들이 직접 각 글자의 음가를 찾아 글자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방식으로 자음동화와 같은 음운의 변동에 대한 기준도 스스로 개발하게 된다. 발라드 교사가 보여준 자신의 수업 동영상은 그의 교수법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유치원생들이 4자리 숫자의 한국어 읽기를 배우는 수업 동안 그는 학생들이 틀렸을 때도 고쳐주지 않았다. 그러자 학생들끼리 서로 고쳐주며 규칙을 만들었다. 심지어 잘했다는 칭찬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스스로 더 높은 수준의 과제를 요구하며 수업의 방향을 이끌었다. 나중에는 학생들끼리 돌아가면서 나와 교사의 자리에서 다른 아이들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침묵하는 문자 교육을 넘어 협동학습과 동기부여까지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다. 교수법의 핵심이 단순히 침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 스스로 학습하는 힘에 있기 때문이다. 이 학습자 중심 교수법은 수학, 사회, 외국어 등 다양한 교과에 모두 적용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발라드 교사는 “모든 학생은 자신의 경험, 직관, 상상력, 판단력, 지적 능력 등을 갖고 교실로 들어온다”며, “학생들은 교사가 넣어주는 정보를 머리에 집어넣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해낼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날 행사에서 발라드 교사의 사례 발표 외에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창의인재 양성’을 주제로 한 조벽 동국대 교수의 기조 강연과 그 실제 현장 사례를 소개한 피터 데일리 NLCS 제주 교장과 심옥령 청라 달튼스쿨 교장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역시 배움은 끝이 없는 바다를 항해하면서 발견하는 호기심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갈수록 가관이다. 충남교육청의 교육전문직 장학사 선발시험에 부정의혹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만해도 ‘설마 그럴 리가’생각했다. 기우이기를 바랐다. 차라리 불합격한 사람들의 질투에 사로잡힌 투서나 경찰의 실적내기 경쟁이 부른 헛발질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하나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관련자들이 줄 소환되면서 일부가 구속되었고, 소환 대상자 한 명이 목숨을 끊자희망은 이제 절망으로 바뀌었다. 내가 소속된 교육청이 아니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시민과 학생들은 그러한 전문직 시험 비리를 어느 한 교육청으로 국한해서 생각하지 않고 다른 모든 곳들도 그러려니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필기시험 문제를 출제한 후에 밖으로 몰래 가져나와서 사전에 유출한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최근 언론지상에 나오는 것을 보면 출제 전부터 미리 문제를 알려주고서 알려준 문제를 그대로 출제한 것으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어느 부도덕한 한 개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고위층 연루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매관매직을 한 것이다. 합격한 대다수 전문직 예비합격자들이 이런 식으로 합격한 것이라면 들러리를 선 탈락한 다른 사람들은 억울함을 넘어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벌인 것에 대하여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제일 문제인 것은 이러한 사태 때문에 평소 결과 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부정한 100점보다 정직한 50점이 낫다고 가르쳐온 교육자의 가르침을 학생들이 헛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기야 얼마 전 한국투명성기구에서 청소년과 성인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청렴성 조사를 한 결과 ‘부정한 입학이나 취업 제안을 거절할 것’이라고 응답한 청소년은 40.1%로 성인의 31%에 비해 높았다고 한다. 한편 청소년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 중 큰 것은 학교, 가정, 언론매체, 또래집단 등이었다고 한다. 청소년이 생애주기에서 학교에서 생활하는 비중이 가장 큰 만큼 배우는 것 또한 많을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가르치는 사람의 행동이 일치해야만 받아들이는 학생이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소용없다는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사례의 경우는 외양간을 지금이라도 고쳐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대책이 있겠지만 우선 교육전문직 1차 시험을 지금 같은 시험이 아닌 교원 재직 시 인성과 근무 성적, 다면 평가 등을 고려해 여러 가지 잣대로 다양화해서 적격 인원을 선발하는 것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시험의 공정성을 제고하고 유출 방지를 위해 외부인원을 과반이상 늘려야 한다. 그리고 자체적인 문제출제 보다는 오히려 제3의 전문기관에 위탁해서 객관성을 담보하는 방법도 있다. 이를테면 교육전문대학원에 선발을 의뢰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 현재의 신규교사 채용 문제 출제처럼 시․도교육청 공동출제로 하되 순번을 매겨가면서 주관 교육청을 정해서 시행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기회에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교육전문직으로 임용된 교원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위해서 교원으로의 전직을 제한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왜냐면 이 모든 사태의 근저에는 전문직 합격이 곧 교감, 교장 승진에 있어서 지름길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교육전문직 선발 부정사태, 단순한 어느 한 교육청의 문제로 치부하기 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해서 개선책을 도모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왜냐면 인사는 만사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교육을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바로 사람이 한다. 올바른 사람을 가려 뽑는 것, 그것이 바로 서야 교육이 바로 선다.
억대의 국고보조금과 교비를 횡령한 전문대학 총장 등이 구속되고 학생들을 입학시킨 대가로 이 대학으로부터 돈을 받은 고교 교사들이 무더기로 붙잡혔다는 소식이다. 검찰이 밝힌 내용을 보면, 정말 놀랄 정도다. 이 대학에서 학생 모집 대가로 1000만원 이상을 받은 고등학교 교사 7명을 뇌물수수 등 혐의, 1000만원 미만을 받은 교사 41명에 대해서는 도교육청에 비위 사실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가히 생각하지도 못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고등학교 교사들이 제자들의 대학 입학을 위해 대학에 찾아가서 좋은 정보를 수집하여 제공하던 것과는 달리, 대학에 사례금을 받고 제자를 특정 대학에 지원하도록 했다는 얘기다.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 모집 대가로 대학으로부터 사례금을 받아 사법처리되는 초유의사건이다. 물론 이런 일들은 이 지역만의 사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워낙 대학 숫자가 많고 대학진학률도 과거보다는 차츰 줄어들고 있는 이유도 이번 사건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일거다. 특히 MB 정부 들어 공기업을 중심으로 고졸 취업자가 늘고 있는 상황으로 볼 때 이번 일을 시작에 불과하다는 두려운 생각도 없지 않다. 그 이유야 어떻든 교사들이 저지른 교육자적 품위와 양심에 대해서는 관용이 어렵다는 생각이다. 학생들에게 대학의 선택은 우리 사회에선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마디로 학생들의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이다. 그래서 모든 학생이나 부모들이 대학입시에 목을 메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행복한 삶을 생각치 못하고 단순히 몇 푼의 돈을 받고 거래를 했다는 변명은 어떤 이유에서든 요서가 안 된다. 교사의 사명은 학생들에게 보다 좋은 교육을 통해 희망과 꿈을 주고 미래에행복한 삶을도와주는 일이다. 자신보다는 제자의 행복에 더 기뻐하며 보람을 느끼는 것이 교사의 바른 자세와 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안되는 금전에 잠사 눈이 멀어 제자의 삶을 파는 이번 일은 우리 모두가 깊이 사죄하고 반성해야 하는 일이다. 정말 부끄러운 사건이다. 또한 이런 일을 일으킨 대학이나 교수들도 문제다. 교수는 우리사회의 최고의 지성인이며 존경받는 사람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들이 최고의 지성인이라는말이 차마 나오지 않는다. 물론 대학의 최고 책임자인 총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지만 같은 교육자로서부끄럽기 그지 없다. 아무리 학교가 위기에 처하고 당장 존립의 문제라하더라도 학생들을속이는 거짓행위는 더 이상 대학의 진리탐구가 될 수 없다.새로운 대안이나 혁신으로 당당히 개혁해야 하는 것이다.돈을 주고 학생을 사오는 대학은 분명히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다. 더 이상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한다. 교육자로서 부끄러운 일이 재발 마지막이 되길 바랄뿐이다.
표를 산 다음 매표소를 지나 절 입구에 들어섰다. 제일먼저 청아한 스님의 독경소리와 목탁소리가 길옆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독경소리를 귀담아 들으며 길을 걷는다. 특이하게도 사찰로 들어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구 전연 가파르지가 않다. 대로처럼 넓게 펼쳐진 길 양옆으로는 전나무 숲길이 인상적이다. 마치 오대산 월정사의 키다리 전나무숲길을 걷는 느낌이 든다. 하늘 찌를 듯이 늘어선 전나무들은 수령이 110년이 훌쩍 넘은 것들이라고 한다. 전나무들은 마치 방문객을 환영하듯 양손을 활짝 벌여 웅장한 터널을 만들어준다. 나무들이 만들어준 1km에 이르는 전나무터널을 걷다보니 속세의 미움도 애증도 봄눈 녹듯 사라지며 불국의 세계에 성큼 다가선 느낌이 든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나는 속으로 반야심경의 한 구절을 읊조리며 150년 전 후손들을 위해 친히 이 나무들을 심은 스님들께 감사함을 표시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곳 공기는 속세와는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다. 한참을 걷다보니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큼지막하게 지어진 일주문이 길을 막는다. 능가산 일주문(一柱門)이다. 이 문을 들어선 순간부터 오직 一心으로 부처님께 귀의하라는 뜻으로 기둥을 양쪽에 하나씩만 세우고 문을 지은 것이 일주문이다. 이제부터 이 문을 경계로 밖은 욕망의 속계이며 안은 부처님이 사시는 불국의 세계인 셈이다. 마치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건물처럼 일주문은 아름답고 신비롭게 기립해 있다. 전나무숲길이 끝나는 지점, 우리를 제일먼저 맞이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고목이다. 수령이 무려 950년! 찰나와 같은 사람의 일생에 비하면 그 얼마나 위대한 생명력의 소산인가. 내소사 안마당에 자리 잡은 할매당산나무는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거기에 그렇게 우뚝 솟아 있었다. 우리나라 가람에서는 느티나무를 무당나무라 해서 좀처럼 심지 않는 법인데, 이곳 내소사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느티나무를 절 안마당에 심었다. 그것도 절 입구에 한 그루, 절 안마당에 한 그루 해서 두 그루나 심었다. 사람들은 이 나무들을 일컬어 절 입구에 있는 것을 ‘할배나무’, 절 안쪽에 있는 것을 ‘할매나무’라 칭하며 매년 당산제를 올린다고 한다.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나는 서둘러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으로 향했다. 아쉽게도 대웅보전은 수리가 한창이었다. 얼기설기 설치된 비계가 대웅보전을 어지럽게 감싸고 있어 안타까움이 컸다. 마치 대수술을 받는 중환자처럼 대웅보전은 온몸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조심스레 대웅보전 안쪽을 살펴보았다. 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아미타여래가 한가운데에 계시고 그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이 인자한 미소를 흘리며 앉아 계시다. 때마침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 맞춘 지붕에서는 희미한 후광이 비치는 듯하다. 비록 잠깐 동안이었지만 부처님의 가호가 온몸에 스며드는 느낌이다. 대웅전을 나와 그 유명하다는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창 문양을 구경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나무를 천연 나뭇결 그대로 살려 깎아 만든 것으로 꽃잎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여섯 개의 잎사귀를 기묘하게 맞춰나간 장신의 솜씨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대웅보전 안쪽에서 밖을 바라보니 꽃무늬는 보이지 않고 단정한 마름모꼴의 실루엣 문양만이 정갈하게 비쳐든다. 꽃살창에 넋을 놓고 있을 때, 나선형으로 떨어지는 석양과 보조를 맞추어 산사의 고요한 정적을 깨고 범종루에서 두두 둥! 법고가 울린다. 때맞춰 진행되는 예불시간이다. 도량의 댓돌 위에는 어느 스님이 벗어 놓은 것인지 흰 고무신이 자로 잰 듯,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가지런하다. 고무신의 빛깔은 새벽이슬처럼 신선하고도 정갈하다. 너무 희어서 갓 삭발한 스님의 머리처럼 푸르스름한 빛까지 발광한다. 그런데 고무신 빛깔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곳 내소사의 역사이다.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 때 지어진 것이라니 어림잡아도 1300년은 훌쩍 넘은 가람이다. 물론 그동안 수많은 증개축이 있어 왔지만 대부분의 재료들은 아직도 천년의 세월을 품고 있다하니 정말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역사가 유구한 가람이다. 이러한 역사를 증명하듯 내소사에는 전설이 참 많다. 대웅보전을 지은 청민선사의 이야기부터 관음조가 그린 단청까지 기이하고 의미심장한 전설들인데 인간의 의심과 이해타산을 경계하고 진리에 대한 참구야말로 지극한 불교의 길임을 깨우쳐주고 있다. 내소사 삼층석탑. 이 탑은 고려시대에 만든 것이나 신라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높이는 3.46m이다. 면 아래의 받침대는 하나의 돌을 이용한 것이다. 몸체도 층마다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으며 각 면마다 기둥을 새겼다. 몸체와 지붕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크기와 높이가 급격하게 줄었으며, 지붕들의 경사도 심한 편으로 날렵한 느낌을 주는 탑이다.다음은 청민선사와 대웅보전 증축에 관한 이야기다. 대웅전을 중수할 때 대목이 3년 동안 기둥, 서까래와 목침만한 나무토막만 깎아놓아 사미승이 장난삼아 나무토막 하나를 슬쩍 감추어 놓았다. 마침내 나무 깎기를 멈추고 대웅전을 짜 맞추는 날, 나무 한 조각이 부족한 사실을 안 대목수가 당황해 하며 주지스님에게 자신은 대웅전을 지을 자격이 못된다고 하며 포기하겠다고 고집한다. 이때 사미승이 감춰둔 나무조각을 내어놓지만 이미 부정탄 나무라하며 한 조각이 부족한 채로 대웅전을 지었다. 그래서 지금도 대웅전 천장 우측에 나무 한 토막이 빠져있다고 한다. 대웅전 단청에 관한 또다른 전설도 있다. 대웅전이 완공된 후 한 단청장이가 찾아와 자신에게 단청을 맡겨주기를 간청한다. 단, 백일동안 아무도 들여다보아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약속한 백일이 다 되도록 인기척이 없고 단청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지막 백 일째 되는 날 사미승이 문틈으로 몰래 엿보았더니, 새 한 마리가 부리에 붓을 물고 제 몸에 물감을 묻혀 단청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기척에 놀란 새가 마지막 한 부분을 칠하지 못하고 그만 날아가 버려 지금도 법당 한곳에는 단청이 빠져 있다. 전설의 내용을 되새기며 주위를 둘러보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백팔 배를 드리는 신도가 여러 명 보인다. 백팔 배를 드리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성취시켜준다는 믿음 때문인지 많은 신도들이 각자의 소원 수대로 좌복(坐服)을 펼쳐놓고 예불 삼매경에 빠져 있다. 나는 따스한 겨울 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한참동안이나 좌복 위에서 정성스럽게 오체투지를 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불전에 나아가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절을 하는 저네들의 소원은 과연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저 아프지 않고 걱정 없이 하루 세 끼 맛있는 밥을 먹게 해주소서.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누어 가질 수 있고, 부드럽고 편안한 미소와 눈빛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고,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을 대할 수 있으며, 예의바르고 친절한 몸가짐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게 하소서.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사바하…. 둥, 둥, 둥! 다시 저녁 예불을 알리는 북소리다. 나도 이젠 그만 하산을 서둘러야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알싸한 피톤치드가 가득 섞인 내소사 경내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켜 본다. 가슴속에 켜켜이 쌓였던 속세의 때가 부처님의 인자한 미소와 함께 한순간에 녹아나는 느낌이다. 아, 바로 이것이다. 이 기분 때문에 나는 오늘도 고단한 몸을 이끌고 깊은 산사를 찾아 이리 헤매는 지도 모른다. 문득 하산을 서두르는 사람들 등 뒤로 청민선사의 인자한 가르침이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다. “선남선녀여, 하루 세 때 나를 돌아보고 남을 미워하기 보다는 내가 참회는 마음으로 살지어다.”
지란지교(芝蘭之交)란 한자 성어가 있다. 이 말은 명심보감의 교우 편에 나오는 것으로 공자는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향기를 맡지 못하니, 그 향기에 동화되기 때문이다.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생선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악취를 맡지 못하니, 또한 그 냄새에 동화되기 때문이다. 붉은 주사를 가지고 있으면 붉어지고, 검은 옻을 가지고 있으면 검어지게 되니, 군자는 반드시 함께 있는 자를 삼가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지란지교는 벗을 사귈 때는 지초와 난초처럼 향기롭고 맑은 사귐을 가지라는 뜻이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벗 사이의 변치 않는 사귐을 일컫는 한자 성어로는 관포지교(管鮑之交), 막역지우(莫逆之友), 수어지교(水魚之交), 죽마지우(竹馬之友) 등이 있는데 모두 벗 사이의 두터운 우정을 가리키는 성어들이다. 벗, 친구! 참 좋은 말이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사귐이다. 드라마 상도에서 ‘장사는 부를 남기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남기는 것이 진정한 장사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말은 신뢰를 동반한 사귐이 사람에게서 제일 중요 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새해가 시작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일월이었다. 둘째 녀석이 갑자기 5학년 말에 전학 간 친구 집에 가서 놀다가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지내고 가게 해달라고 한다. 내심 방학 동안 외출도 한 번 제대로 못했으니 오죽 갑갑했을까 싶어 허락을 하였지만 남의 집에 보내는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다. 둘째 녀석이 보고 싶어 하는 친구사이에는 거리라는 장애물이 있다. 그 거리가 둘 사이를 더 아쉬움으로 만들게 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평상시에는 서로 만나지 못한 채 문명의 이기인 전화로만 긴 사연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방학이라는 기회로 서로의 얼굴을 대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이틀을 친구네 집에 지내고서 그 친구와 같이 왔다. 대개 아이들은 자기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자는 것을 참 좋아한다. 아이들만의 세계에 있는 행복지수이다. 가만히 지켜본다. 두 아이는 새벽녘까지 도란거리며 이야기하다 늦게 잠을 이룬다.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다음날이 밝았다. 모처럼 단짝 친구가 사는 남해를 구경시켜 준다며 길을 나선다. 차가운 공기, 눈 덮인 논과 밭에 자라는 마늘,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길은 남해만이 주는 또 다른 겨울 풍경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재잘거리던 녀석들이 말이 없다. 사소한 일을 가지고 토라진 것일까? 왜 표정이 어둡지? 상황을 주시하며 늦은 점심을 해결하러 앵강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들린다. 차가 멈추기를 기다렸는지 문을 열고 뛰어나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바닷가에 서서 숨을 들이마신다. “음, 바다 냄새 너무 신선해.” 길이 좋지 않아 멀미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누가 약속이나 한 듯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돌팔매질을 한다.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남해 구경시켜 준답시고 나선 길이 아이들에게 오히려 큰 짐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른의 시각하고 아이의 시각은 큰 차이가 있는데 대부분 무시하고 지내지 않았나 하는 어른의 자화상도 보게 되었다. 티 묻지 않는 고소한 웃음소리가 겨울 바다 공기를 가르며 퍼져 나간다. 친구! 참 좋은 말이다. 형제는 서로 피를 나누었지만, 친구는 타인과 타인이 서로의 교감을 통하여 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어느 한 쪽이 자기입장만 내세워도 안 되고 그냥 있어도 안 된다. 아무리 단짝이라도 때로는 토라지고 서운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릴 때의 다툼은 그 순수로 다시 원상태를 회복하기 쉽지만, 성인이 된 이후 서로의 오해로 인한 서먹함을 회복 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순수성 보다는 생활의 만남으로 목적이 앞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둘째 녀석의 친구와의 만남이 끝난 늦은 저녁이었다. 나흘 동안의 친구와의 만남이 어땠냐고 물어보니 행복한 미소 반 석연치 않은 표정 반이었다. 행복한 것은 친구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심심하지 않아서이고 석연치 않은 것은 친구를 잘 안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 좋은 기억은 영원히 남도록 하고 석연치 않은 것은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며 그것 또한 친구의 장점임을 받아들이고 배려하는 마음이 좋은 친구로서 오래 남는 것이라고 다독였다. 친구가 떠난 늦은 밤 둘째 녀석이 일기장을 앞에 놓고 멍하게 앉아 있다. 다시 친구가 보고 싶다고 한다. 그럼 이번 만남을 글로서 남겨보렴. 네 마음이 그대로 살아 움직일 것이야. 그러면 그 속에서 친구의 모습을 다시 그릴 수 있다며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온다. 친구 참 좋은 말이다. 살아가면서 정말 나를 대신하고 서로의 분신처럼 여길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소중한 사귐의 연속은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친구와의 사귐을 통하여 배려와 존중을 알게 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모습도 배우게 된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해풍이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하는 가운데 앵강만을 향해 힘차게 돌팔매질을 하는 두 아이의 모습이! “얘들아! 언제나 지란지교를 꿈꾸며 살아라.”
노도에서 외쳐 부른 그리움의 노래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를 읽고- 그리움이 사무치면 바람이 되고 별이 되리라. 금산 아래 한 점 섬 노도는 자개처럼 반짝이는 앵강만을 뒤로 붙박이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열세가구 노도의 집들은 한양을 향한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호구산과 망운산을 바라보는 섬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섬의 동쪽 응달진 곳엔 파도소리에 애환을 싣고 보리암을 바라보는 세월을 간직한 김만중의 초옥이 있다. 그 초옥 주변엔 해마다 봄소식이 북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면 그리움을 물들인 동백꽃은 나무에서 땅에서 붉은 빛을 바래며 두 번씩 눈물을 흘린다. 남해에 살면서도 김만중의 일대기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단순히 한글소설인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쓴 조선 시대 유배객 정도로 알고 있었을 뿐 그의 사람됨과 남해에 유배 온 삼 년 동안의 행적에 대하여서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임종욱 작가의 소설은 이런 무관심에 불을 댕겨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책의 표지에 실린 바닷바람에 몸을 갉혀 먹히며 서안 앞에 대추처럼 마른 모습으로 붓을 든 사람이 바로 김만중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꾼다. 하지만 표현력에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은 제 삶의 행간에 소설가이며 주인공이다. 이 소설을 쓴 임종욱 작가는 한문학자이다. 남해와 전혀 인연이 없는 경북 예천 태생의 사람이 어떻게 김만중의 일생을 연구하고 그 중 3년간 남해의 유배생활을 실감 나는 이야기로 엮었는지 등장인물과 사건을 보며 고개를 숙인다. 이 책의 뒷부분을 보면 작가는 남해와 인연이 있었다. 촌은집, 자암집, 서포집 등 한문으로 된 서적을 번역하는 일을 하면서 남해에 온 유배객들의 생을 알게 되었고 그 중 유독 김만중이 말년에 이곳 남해에서 한 일과 왜 한글로 소설을 썼는지에 의문을 갖고 이 소설을 엮어낸 것이었다. 이 소설의 주된 공간적 배경은 남해이지만 작가의 고향이 경북이라서 그런지 장 선달댁 며느리의 친정인 경북과 인근의 하동, 진주도 언급되고 있다. 소설가들은 앉아서 시공간을 자주 넘나든다. 고(故) 박경리 선생도 하동 평사리를 지나치며 들은 이야기를 주축으로 구한말부터 해방 이후를 배경으로 대하소설 ‘토지’를 강원도 원주에서 완간하였으며 조정래는 벌교를 무대로 삼 년 가까이 해방 후 혼란스런 한국의 근 현대사를 들은 이야기와 현지답사를 근거로 ‘태백산맥’을 완성했다고 한다.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어떤 내용인가? 이 소설은 모두 열다섯 신으로 한양에 있는 김만중의 아내와 유배객 김만중 간의 주고받는 편지를 중심으로 각 신의 서두에 편지를 통하여 펼쳐질 이야기의 내용을 간략하게 말하여 읽는 이의 흥미를 불러일으켜 본문으로 흡입을 시키고, 신의 끝에 다시 아내의 편지를 통하여 갈무리한 후, 다음 신에 대한 예고와 궁금증을 파도처럼 일으키게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관심을 두고 살펴본 것은 남해 토박이가 아닌 작가가 엮어내는 남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한문학자인 김만중이 왜 한글소설을 썼을까? 에 대한 해석이었다. 남해는 보물섬이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시점에 남해는 바다와 산, 들이 어우러진 유자향과 마늘냄새, 시금치의 푸름이 넘실대는 곳이다. 작가는 ‘제2신 남해에서 만난 사람들’에서 ‘바람을 맞으며 흙을 밟고 풀밭에 누워 자는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풋풋함을 지니고 살고 있는 섬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흔히 남해 하면 억세고 거칠다는 말을 하지만 김만중의 입을 빌려 남해는 ‘인정 있고, 사람이 살만하며, 신선의 고장으로, 의자 모양으로 편안히 앉기 좋은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죽방렴과 금산, 대국산성, 각종 특산물도 글의 소재로 이입시키고 있다. 어쩌면 남해에 묻혀 무감각해진 남해사람보다 한층 더 남해의 독특한 풍광과 인심을 소설 속 인물들의 생활상을 통하여 그려내고 있다. 김만중은 왜 말년에 유배지에서 한글소설을 썼을까? 김만중의 어머니에 대한 효성은 지극했다. 김만중은 어머니의 삶을 ‘시간이 지나도 먹물을 빨아들이지도 증발시키지도 않는 계혈석으로 만든 벼루와 같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김만중이 쓴 몽환을 읽고서 ‘하룻밤을 새기기에는 글이 너무 짧으며 이웃집 아녀자들은 진서를 읽지 못하니 어찌하리오. 이야기를 좀 더 쉽고 진중하게 엮어보아라.’ 하신다. 또한 ‘주제는 생생하게 살리면서 내용은 알차게 다듬어야 하며 글은 만인의 것이니 누가 독차지해서는 안 된다.’며 언문 글씨의 숨은 진가를 깨우쳐 주고 있다. 그리고 ‘글은 화려한 꾸밈보다는 마음을 바로 담아내도록 깎아내야 하며, 내 마음을 글로 남기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내 마음을 반추하겠는가?’로 글쓰기의 진솔성을 당부하고 있다. 지극히 효성이 강한 김만중이 이런 어머니의 소원을 간과할 리 없었으며, 어머니의 임종도 못한 그의 한이 한글소설로 불타올랐던 것이라 생각한다. 어머니와 더불어 김만중의 집필 관을 바꾸어 준 사람은 유배 가서 죽은 그의 형 김만기이다. 김만기는 김만중에게 글을 너무 남발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었으며, ‘재주를 앞세운 글은 물과 같아 속히 훤히 들여다보여 저작할 맛이 사라진다.’고 글쓰기의 신중함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이 말은 작가의 집필 관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작가가 내세우는 김만중의 사람됨은 어떤 것일까? 그의 사람됨은 소설에 나오는 인물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박태수와 옥진의 도피를 돕는 장면, 정처 없이 떠도는 장 선달 댁 며느리의 누명을 벗기는 지혜, 유배 와서도 호사를 누리는 벼슬아치들의 비판을 통하여 옳다고 생각하면 꼭 행동하는 모습이다. 이는 유배의 섬 남해사람의 성향과 같다고 하겠다. 이 소설의 근간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유배지 남해에 첫 발을 내디딜 때의 옥가락지를 둘러싼 장 선달댁 이야기는 사씨남정기에서, 여성편력증과 낭만에 물든 양설규의 삶은 구운몽을 통해 창조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든 내용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문득 김만중이 쓴 어머니의 행장을 생각하며 십여 년 전에 여읜 나의 어머니를 떠올려 본다. 나의 어머니는 열여덟에 시집와서 평생을 길쌈과 농사일로 고된 몸을 건사하다 한 세상 못 보고 풍년초 연기에 한을 싣고 푸른 하늘 저편에 계신다. 어릴 적 길쌈을 하면서 내가 글을 알아 삶을 쓴다면 수십 권이 넘을 것이란 하소연이 귀에 아른거린다. 하지만 김만중은 어머니의 행장을 쓰고 구운몽도 지었지만, 정작 나는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에 고개를 숙일 뿐이다. 모든 이야기는 클라이맥스가 있다. 박태수와 옥진의 탈출, 여성편력과 낭만에 물든 양설규의 죽음, 장 선달댁 며느리 바로 세우기의 이야기가 반전에 반전을 더하여 읽은 이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김만중의 초옥이 있는 노도! 해풍이 살을 갉아 먹고 그리움의 사무침은 동백으로 피어 늦겨울과 봄을 붉게 물들이는 섬. 파도소리 바람 소리가 휘파람을 불고 동박새 지저귐에 그리움이 가슴을 난도질하는 곳. 바다 건너 삼남 제일인 금산과 보리암 전의 해수 관음상은 김만중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2012년 가을! 노도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읽어본 이 책은 김만중의 삶과 아픔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가을 노도는 그리움의 흔적이 남아있다. 겨울을 지나 봄을 예견하는 흔적은 한 점 섬 눈물에 아롱져 선홍빛 같은 그리움이 몽우리를 맺어 꽃을 피워낼 준비를 하고 있다. 유배객 김만중! ‘오늘도 초옥 아래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파도는 대궐도 초막도 그리운 사람일 얼굴일 때가 많았다.’ 그가 불러보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짧은 가을 낮 초옥 옆 샘가엔 세월의 흐느낌이 낙엽으로 앉아 물길만 가로막고, 잠시 몸을 뉘었던 유허엔 해풍만 빛바랜 풀잎을 흔들며 정지된 시간을 응시하게 한다. 남해는 항상 깨어 있다.
각 부서의 부장교사들이 둘러 앉았다. 그 사이에 행정실장이 뭔가를 배부해 주었다. 그 무엇인가는 바로 예산계획이다. 이미 12월에 각 부서별로 제출한 것을 돌려 받았다. 방학중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회의를 소집한 이유를 교장선생님이 설명을 했다. 각 부서에서 제출한 예산이 올해 실제 가용예산보다 더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각 부서의 부장들이 모여서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행정실의 이야기로는 실제로 가용예산이 지난해보다 6천만원정도 줄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강당임대와 각종 시험에사용되는 교실임대료를 지난해 수준으로 하더라도 6천만원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왜 예산이 줄었는지는 예측만 될 뿐 실제로 줄어든 이유를 설명하기 쉽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예산이 전년대비 6천만원정도 줄었고 줄어든 예산으로 학교살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요금도 인상되고 물가도 인상되었는데, 올해 1년이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각 부서에서 제출한 예산을 1차로 삭감했는데, 반드시 필요한지 검토후에 조금씩 줄여 놓은 상태다. 그렇게 줄이고 줄였음에도 더 줄여야 하는 예산액이 3천만원 가까이 되었다. 우선은 지난해 보다 증액해서 신청한 항목을 살피기로 했다. 가급적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동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나갔다. 이렇게 하다보니 새로운 사업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줄이는 작업도 여의치 않았다. 어쩔수 없이 부장교사들이 둘러앉아 아예 한 항목씩 점검을 해 나갔다. 점검이라기 보다는 각 항목에서 조금씩 예산을 깎아내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행사도 위축되고 학생활동에 들어가는 예산도 삭감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숨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아무리 해 나가도 그 많은 예산을 줄이는 것이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각 부서에서 최종적으로 삭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도 1천만원을 더 줄여야 했다. 다시한번 각 항목별 점검을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9백여만원을 줄이지 못한채 끝나고 말았다. 어떻게 하던지 9백만원을 더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최종예산액을 맞춰야 했기에 공과금예산에서 줄였다. 억지로 가용예산액에 편성된 예산을 맞춘 것이다. 지금도 학생들은 냉, 난방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공과금을 90만원도 아니고 9백만원을 삭감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는 유난히 덥고 추운 한해가 될 것 같다. 쾌적한 환경이 되어야 학습도 제대로 되고, 수업도 제대로 할 수 있을텐데...여러가지로 걱정이 앞선다. 추후에 예산을 추가로 편성해서 내려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에 다소나마 위안을 삼지만 불확실한 것에 기대를 하기에는 믿음이 덜 간다. 뭔가 조치가 있을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퇴근길에 올랐다. 왠지 내 자신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존댓말쓰기로 학교폭력예방, 고품격 우리말 모두 해결하자 -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표현한다. 요즘 학생,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도무지 이들이 지금 어느 나라 말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언어오염을 느끼게 된다. 거친 말, 욕설은 기본이고 아주 듣기 민망한 말들은 언제, 어디서 생긴 말들인지 도무지 그 말의 뜻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말의 본래의 뜻을 알고 저런 말들을 입에 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저렇게 거친 말을 듣고서도 성을 내지 않고 참는 그들이 용타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저렇게 거칠고, 험한 말들을 쓰는 저 젊은이의 마음이나 행동은 어떨까 걱정이 되고 그런 식의 말을 쓰는 그 사람의 인격이 의심스러워지는 경우도 많았었다. 한창 예쁘고 곱게 차린 여학생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거친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이 여학생이 지금 학생인가 아니면 조폭인가 싶을 만큼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심정이 들곤 한다. “아이 ‘씨바ㄹ’ ‘조ㄴ나’기분 나빠” “담태ㅇ이 우리꼰대에게 핸 때렸잖아, 조ㄴ나 혼났다.” 차마 그대로 적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흐트러놓았다. 이게 여학생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이었다. 아예 그 말을 들은 학생의 입에서는 더 이상하고 험한 말이 쏟아져 나오고 말았으니 어이없을 뿐이었다. 이런 험한 말을 쓰는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우선 존댓말을 쓰게 하자.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온 나라에서 온 국민이 언제 어디에서나 존댓말을 쓰면 우리말은 품격이 높아지고 더 아름다워지게 될 것이다. 우리말의 가장 장점은 존댓말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긴 그것 때문에 외국 사람들이 우리말을 배우기가 제일 힘들다는 말을 한다고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렵게 여긴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그런 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말은 이렇게 존댓말이라는 상대를 높여주고 존경 해주는 말이 따로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단계적으로 나누어서 따로 쓰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우리말은 상대에 따라 쓰는 다섯 단계의 말이 있다. 아주 낮춤말, 조금 낮춤말, 보통 말, 약간 높임말, 아주 높임말 식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의 말은 대부분이 아주 낮춤말에서 조금 낮춤말 정도를 평상시 하는 말로 쓰므로 해서 우리 국민의 격을 낮은 국민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국민의 격을 높이려면 높임말을 써서 스스로 격을 높이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격을 높여야 한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상대방에게 존경하고 높여주는 말을 쓰는데, 덤벼들고 서로 싸우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아마도 존댓말을 쓴다면 상대의 말 때문에도 폭력을 행사할 수 없어져서 서로 싸우고 다투는 일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학교폭력 예방의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은 바로 존댓말 쓰기 교육이다. “야! 이 자식아!” 하면 싸움이 되겠지만, “00님, 그러면 안 되지요?” 하는데 싸움을 걸고 폭력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확실하고 뚜렷한 효과를 보이고 있는 모범 사례가 바로 서울미동초등학교 4학년들이었다. 프랑스 말이 아름다운 말이고, 점잖은 사교계의 말이 된 것은 이렇게 상대를 깎듯이 존대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면, 이제 우리 모두가 존댓말을 살려 써서 우리말이 프랑스말보다 더 품위와 격이 있고, 아름다운 말이라는 것은 온 세계에 알려야 한다. 더구나 세계 어느 나라의 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상대의 격에 따라 존댓말이 달라지기까지 하는 우리말의 우수성을 좀 더 널리 알리려면, 우선 우리 국민들이 쓰는 말부터 존댓말을 써야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부터 상대를 진정으로 존중해주고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말로 대화를 할 때 우리말의 품위는 높아지고, 말하는 사람들의 인격도 돋보이게 되며, 상대와의 다툼의 원인이 되는 막말 같은 말들의 사용이 줄어 다툼도 줄고, 폭력도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한글단체에서 앞장을 서고, 교육부에서부터 모든 학교생활에서 존댓말을 쓰는 것을 교육과정화하여서, 학교생활을 명랑하고 상호존중하며 폭력 없는 학교, 아름다운 학교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등 서울 지역 주요 사립대 입학처장들이 올해부터 치러지는 선택형 수능을 유보해야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은 의견서를 통해 “선택형 수능이 실시되면 수험생, 일선 고교 교사 등에 혼란을 줄 것으로 우려 된다.”며 “일단 시험을 유보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대안을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주장의 근거는 2014학년도 수능이 기존 수능보다 쉬운 A형과 기존 수능과 유사한 수준인 B형으로 나뉘며 선택에 따라 대입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험생들은 진로에 따라 A형 혹은 B형을 선택하기보다는 수능과 대학입학이 유리한가 불리한가에 따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이미 2014학년도 수능 시행계획까지 발표돼 있어 수능을 유보하는 것은 큰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동안 수차례 의견수렴 단계를 거쳤는데 이제와 반대 의견을 내놓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9개 대학 입학처장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도 있다. 서울 지역 고교 진학지도 교사들의 모임인 서울진학지도협의회는 예정된 제도를 갑자기 없던 일로 되돌리면 부작용이 발생하겠지만 선택형 수능의 강행도 위험하다는 판단이다. 이들은 선택형은 학교와 수험생의 혼란이 더 클 것이라는 우려한다. 물론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일부 대학 처장단의 유보 의견이 전체 대학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도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선택형 수능에 따른 수험생과 학교의 어려움은 이해하나 수능을 10개월 앞두고 계획된 제도를 유보하라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사실 입시 정책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제기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으로 우려가 제기된 사례는 없다. 특히 시행을 앞두고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대학들이 반대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리고 수험생과 학부모, 학교는 입장 표명을 못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교과부는 이 문제에 대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선 새 제도는 학교 현장에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새 학기부터 교육 현장에서는 국어와 영어 수업을 어떻게 운영할지 고민이 많다. 국어 A형은 문학1, 독서와 문법1, 화법과 작문1을 출제범위로 하지만, B형은 문학2, 독서와 문법2, 화법과 작문2를 범위로 한다. 이렇게 선택형 수능 국어 A형과 B형의 교과 범위가 다른데 한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 이동식 수업을 해야 할 판이다. 영어도 쉬운 A형을 치르는 학생과 어려운 B형을 치르는 학생을 같은 반에 두고 수업을 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이는 자연스럽게 사교육 시장의 수요로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선택형 수능은 수험생의 입장보다는 대학 위주의 정책이다. 소위 중상위권 대학이라는 곳은 모두 어려운 수능 B형을 택하고 있다. 이들 대학은 이미 논술고사 및 적성고사, 심층면접 등 자기들만의 고유한 전형 방법을 두고 있다. 여기에 수능 B형을 택하는 권리를 주면 다시 고유한 전형 방식을 또 부여 하는 꼴이다. 수능만이라도 학생들 입장에서 선택하도록 과거처럼 단일 방법으로 가야 한다. 선택형 수능이 대학 입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학교와 학생들이 힘겹더라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선택형 수능은 대학 입시에 큰 영향력을 주지 않는다. 단순히 어려운 시험을 보았다고 그들이 인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수능 시험도 표준점수, 원점수, 백분위 등을 활용하거나 영역별 가산점 제도를 이용하면 선택형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학생들도 A형과 B형의 선택을 할 때 어려움이 따른다. 학생들은 진로 희망과 상관없이 가고자 하는 대학을 선택해야 하는 사례가 많다. 만약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을 경우에는 선택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선택형 수능은 대입 전형 경우의 수가 또 늘어나는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입 전형수를 축소를 언급한 사례가 있는데, 수능 선택형을 단일화 하는 것도 전형수를 축소하는 방법이 된다. 입학 제도는 공정한 전형이 우선이지만, 공교육 정상화에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선택형 수능은 교실에서 정상 수업조차도 어렵게 해 공교육을 위태롭게 한다. 교과부 이미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이 주장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이미 계획되어 있더라도 제도 자체가 문제가 있다면 빨리 수정을 하는 것이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최근 급진적으로 진보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덕분에 전 세계의 지식이 인터넷 상의 거대한 가상 광장에 집결하게 되었다. 왠만한호기심이있는 사람이라면스마트폰 등 스마트한 기기들을 이용하면 그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정보를 많이 끌어모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가 돈이었기에 과거에는 정보를 얻으러 사람을 만나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공부 많이 한 사람은 정보를 많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과거는 특정 유리한 계층만이 지식을 소유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이제는 지식을 공유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 변천에 따라 교사의 역할과 바람직한 교사상 역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식의 홍수시대를 맞아 교육의 패러다임은 교육자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으며, 교사와 학생간의 심리적 관계, 인성교육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있다. 그래서 현대의 교사는 학생들이 어디로 갈지 갈 길을 모르고 헤매는 것을 알려 주는 안내자,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는 교수, 학생들이 닮고 싶어 하는 롤모델, 어려운 문제에 처할 때 해결에 조언을 해 주는 상담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이야기꾼이자 학생들의 삶을 관찰하고 관찰자로서의 평가자의 역할 등 매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가야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많은 조직가운데 역시 변화가 빠른 것은 기업조직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이 위협받는다. GE의 전 회장 잭 웰치의 경영 노하우 중에 아주 중요한 원칙 하나가 ‘너무 늦기 전에 변해야 한다!’였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이 말이 뜻하는 바를 그는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누구도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모두가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 ’물론 그래서 나도 이곳에 있다. 내가 지금 이대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마 다른 곳에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게임이 아주 극적으로 변할 것이다.” 잭 웰치는 사업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흐름을 지적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전혀 다른 10년을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계획,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잭 웰치는 다른 리더들과 달리 변화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는 변화가 흥미로운 것, 도전적인 것이며, 심지어는 자유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제품들과 새로운 경쟁자들이 나타나, 날마다 새롭고 전과 다른 사업 환경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변화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생존전략임을 그는 본능적으로 이해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부딪치면서 오직 하나의 질문만을 되뇌었다.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가 내린 결론은 “날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일하라”는 것이었다. 지난 산업사를 되돌아봐도 마찬가지이다. 기술혁신에 성공한 회사가 우뚝 일어나면, 후발 주자들이 뒤쫒으면서 끝을 알 수 없는 산업재편이 일어났다. 노키아, 소니처럼 최고의 모범 기업들이 순식간에 찬밥신세로 전락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한마디로 늘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려고 노력해야만 과거의 낡은 습관과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감각을 현실 변화라는 숫돌에 항상 날카롭게 벼려서, 습관적인 틀에 흘려버리지 않았다. 변화야말로 생산적이고 필수적인 사업 전략임을 반복해서 증명해 보였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또 변해야 한다. 따라서 리더는 낡은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필자가 잘 아는 지인은 학교를 책임지는 교장은 많이 변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교사들이 본 교장은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교사들이 변해야 학교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젊은 시절 학생 운동에 환멸을 느끼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에 다음과 같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한다. “방황하는 내 인생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역사 속의 인물, 바로 마키아벨리였다.그가 내게 준 가장 큰 영향은, 역사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기를 변화시키고 그것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것이었다. 세월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행운만으로도 부족하다. 또 능력만으로도 부족하다. 자기 자신을 끝없이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지도자로서 성공하려면 자신의 방법을 항상 변화시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상황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울수록 준비가 필요하다. 교직은 매우 창조적인 직업이며 변화의 세계 자체이다. 아이들은 금방 변화를 받아들인다. 이처럼 빠르지는 못할지라도변화를 받아들여야 교사도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교사는 학생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는 행복한 교직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때부터 아이들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아이들은 빠른 속도에 적응이 잘 되어간다. 그러나 어른은 속도가 느리다. 교사는 어른이기에 속도가 학생을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상황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더러, 사물과 상황이 빠른 속도로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교사 혹은 개인으로서 성공하려면 자신의 방법을 항상 변화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새 학기를 맞이하기 전에 다시한번 가슴에 새겨둘 것은 나 스스로의 '준비'이다.
2013년 1월 23일자 조선일보 A11면에 실린 "김일성 무장투쟁 속에서 참다운 공산혁명가 자라..."라는 제목하의 글을 읽으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요즘 청소년의 장래희망 1위라는 대한민국의 교사가 어떻게 조국과 민족을 배신하는 그런 왜곡된 사실을 순진한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으며 수많은 국민과 수많은 교사들이 방관하고 있는 것인가? 북한이 체제유지를 위해 편찬한 '현대조선력사' 에 실린 문구를 토씨도 빼지않고 그대로 옮겨 만든 자료로 책을 만들고 동류들을 모아 세미나를 열고 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발췌하여 보도한 내용을 보면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참다운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자라나고 혁명대오의 주체사상화가 실현됐다." "김일성은 현지 지도를 통하여 모든 실태를 세밀히 요해(了解)하고 당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정확한 대책을 제시하는 등 실제적인 산 모범을 보여주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조한 신군(先軍)정치는 세계 정치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정치방식" 등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주모자를 추앙하며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그들의 표현 그대로 기술하여 교재를 만들었다니 어째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교사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경찰이 압수한 주모자 김씨의 메일에는 "한국 민중에게 올바른 수령관을 세워줘야한다.","경애하는 김정일 영도자님께서 지니신 권위는 그 누구도 지녀본 적인 없는 가장 높으신 권위" 등의 내용이 적힌 문서도 있다하니 이런 사람과 같이 한 교단에 섰던 한 사람으로 부끄러운 맘도 든다. 대법원은 뻔뻔스럽게 무죄를 주장하는 김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2년 선고를 확정했고 물론 당국은 교사의 직에 해임을 했다고 했다만 과연 이런 사람을 그냥 교사의 직에 해임하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해서 자유롭게 다니며 또 다른 음모와 자기들 말로 "투쟁"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맞는 처치인지. 그들이 그렇게 추앙하고 사랑하는 어버이가 살고 있는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막고 솜방망이 같은 벌을 내린 재판부도 혹시 이들과 동조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지난 18일 강원도 고교평준화 시행에 따른 중학교 3학년의 고교배정 발표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최근 일선 고교는 학교마다 배정된 학교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한 뒤 자녀가 우리 학교에 배정받은 한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어머니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난 뒤, 학교와 관련된 여러 가지 궁금한 내용(학교 위치, 등·하교 버스 시간, 특색교육, 생활지도, 학교급식, 진학상황, 교과서, 일과 시간, 방과 후 수업 등)을 자세히 물었다. 질문이 많아 답변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으나 나름대로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주었다. 그런데 질문 중, 학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 더러 있어 제대로 설명을 해주었다. 그제야 그 어머니는 안심하듯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사실 요즘 학부모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하는 학교에 배정받지 못한 자녀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혹은 '학교와 교사는 믿을 만한가?' '우리 아파트의 한 학부모는 원하지 않는 고교에 배정받은 자녀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가 걱정된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고교 배정 이후,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다소 희비가 엇갈렸지만 강원도 교육청 평준화 시행 방침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눈치였다. 그러나 평준화가 자리 잡기까지 학부모의 근심은 끊이지 않으리라 본다. 이에 평준화 원년 새내기를 맞이하는 일선 학교 고등학교는 학부모가 우려하는 내용을 최소화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미 신입생 예비소집을 가진 학교는 신입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 일정을 치렀거나 잡아 둔 상태다. 특히 지역사회 내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선호하지 않는 일부 고등학교의 경우, 그간 지역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학교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전 교직원이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그 학교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교육, 최근 진학상황, 교육과정, 학생지도 방침 등을 유인물로 만들어 학생과 학부모에게 나눠주며 학교의 위상을 올리는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학교 출신 선배를 초청하여 배정된 학교가 전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데 노력하였다. 평준화 원년 많은 문제점이 도출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조금이라도 평준화의 정착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교육청과 일선 학교, 교사와 학부모 나아가 모든 학생이 혼연일체 되어야 할 것이다. 도교육청은 기존에 평준화를 시행해 본 지역(춘천·원주)에서 나타난 장단점을 철저히 분석, 다시 시작된 평준화에서는 기존의 단점을 수정 보완하여 평준화 이후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재정지원 또한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학교 측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평준화 이전에 제시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 믿음을 줘야 할 것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우려하고 있던 사안들이 현실로 나타나 학교에 적응을 잘 못 해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거나 전학을 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진학 상담 활동을 강화해 학생들이 주어진 목표를 빨리 설정하여 학교생활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몇 년간은 평준화 세대(1학년)와 비평준화 세대(2·3학년)가 공존하기에 학교는 학년 간 생길 수 있는 갈등을 해소하는데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학교 방침을 세울 때에도 학년 간 지나친 차별화를 두어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사 또한 수업시간 은연 중 학력 격차와 관련된 말을 하여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줘서는 안 될 것이다. 학부모는 학교방침에 무작정 불평을 토로하기보다 좋은 의견을 제시하여 평준화가 정착되는 데 많은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불만을 무조건 들어주며 동조하기보다 이해시켜 아이들이 빠른 시일 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학교의 관심' '선생님의 열정' '학부모의 믿음'으로 아이들은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차츰 배정된 학교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며 모교에 애착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 아침은 하늘이 맑고 깨끗하다. 멀리 보이는 산들이 낮의 햇빛을 고대하면서 숨을 죽이고 있다. 추위를 견디며 서있는 나무들이 대견스럽다. 송백은 서리와 눈을 견디어낸다. 송백이 바로 지혜를 가진 우리 선생님이 아닌가 싶다. 깨끗함은 언제나 보아도 좋다. 깨끗한 삶이 얼마나 좋은지 자연은 우리들에게 매일 가르쳐주고 있다. 명심보감도 자연처럼 매일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정기편에 보면 사람은 모두가 나의 스승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착한 사람에게서 깨끗함과 선함과 정직함을 배우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나도 그런 점이 없나를 살펴서 깨끗하게 살아가도록 권하고 있다. 학교 뒤편에 죽은 대나무를 다시 심는 일이 한창이다. 대나무처럼 곧고 바르고 강직하게, 학교의 교목인 소나무처럼 청렴하게, 올곧게 살아가는 우리 선생님, 학생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이런 삶은 모두가 바라는 삶이다.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면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산 중턱이 변하여 아름다운 학교가 되었다. 골짜기가 메워지고 높은 산이 깎이고 꾸불꾸불한 산길이 넓은 길로 변했다. 골짜기가 변해 운동장이 되었다. 桑田碧海(상전벽해)란 말이 실감났다.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말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깊고 깊은 산 중턱이 변하여 학교 터가 되고 학교 건물이 세워지고 운동장이 만들어졌으니 이제 학교다운 학교다 싶다. 엊그제 다녀가신 이르크추크 교육장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학교는 이런 곳에 세워져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장관님답게 교육환경이 중요함을 말씀해 주셨다. 공부하기 좋은 쾌적하고 조용하고 전망 좋은 곳이 우리학교다. 좋은 학교가 되기 위한 요소 중 하나가 교육환경이다. 교육환경을 자랑만 할 것이 아니고 잘 관리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관리가 우리 선생님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는 불가능이란 없다. 꿈만 있으면 노력만 하면, 쉬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다.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꿈을 향해 나가는 자세만 있으면 우리의 꿈이, 때가 되면 이루어질 것이다. 꿈을 가진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꿈을 이루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불가능해 보여도 불가능은 없다. 大器晩成(대기만성)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큰 학교가 세워지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개교한 지 3년이 되었어도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마무리가 되면 정말 멋있는 학교가 될 것 같다. 일반학교의 두 배의 크기 학교이니 오래 걸리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될 것 없다. 조금만 더 참으면 완성이 된다.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우리에게도 인내가 필요하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조금만 더 참고 앞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 그러면 우리의 꿈이 이루어진다. 선생님에게 요구되는 것이 인내이다. 한계점에 다다랐다 해도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임계점을 넘어야 변화가 온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음이 더욱 요구된다. 우리학교의 운동장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골대만 세워지면 완성이 된다. 골대가 없으니 운동장다운 맛이 나지 않는다. 畵龍點睛(화룡점정)이란 말이 새삼스럽다. 가장 중요한 일을 완성시키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일을 맡은 이가 우리 선생님이다. 미완성된 학생들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하는 이가 선생님이다. 그러니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이르크추크 교육장관님과 관계자님 그리고 각 학교의 대표 학생들이 오늘 아침에 인천공항을 향해 떠났다. 수고한 만큼 보람이 있었다. 아주 먼 곳에서 오신 귀한 손님이라 최선을 다해 맞이했는데 반응은 참 좋았다. 모든 것에 만족하였다. 특히 학생들도 학교의 모든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였다. 어떤 학생은 엄지손가락을 들기도 하였다. 이들이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가 되어주면 좋겠다.
중학교 학교운영지원비 징수 위헌결정(2010헌바220)은 2012년 8월23일 확정됐다. 이에 따라 작년 2학기부터 중학교는 학부모에게 학교운영지원비를 걷을 수 없게 됐지만, 모든 시도교육청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통해 교원 및 행정․회계직의 수당을 지급했다. 그렇다면, 왜 올해는 교육청별로 상황이 들쭉날쭉한 것일까. 기존대로 지급하는 시도의 경우는 ‘지급근거를 법률로 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고 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은듯하다. 예산을 편성한 시도 역시 지급근거가 없다는 것(그래픽 참조)을 인식하고 있음은 지난 17일 열린 전국교육감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교과부에 건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24일 교과부에서 열린 시도관리국장 회의에서도 다시 시도 형평성 등을 주제로 논의가 이뤄졌지만,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 벽을 넘지 못한 상황만 확인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유래가 없는 중학교 교원의 시도 간 보수 차이(2월 중 법개정이 되지 않는다면)는 선출직 교육감으로서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부담을 떠안은 ‘선구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일부 교육감과 법을 따른 교육감, 그리고 초․중등교원 수당체제에 대한 행안부의 이해 부족 등에 따른 복합적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교총, 인수위·행안부 수당지급 근거마련 촉구 초·중·고 교장단도 건의서 제출 등 적극 동참 수당개편안 2월 국무회의 상정돼야 지급 가능 부산 ○○중 교장은 ‘2013 학교회계 예산편성 기본지침’을 받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학교회계에서 지급되던 ‘교원연구비와 행정‧기능‧학교회계직 관리수당 등을 제외한다’고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청과 타 시도 교장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서울‧인천 등은 사정이 같았지만 경기‧경남 등은 예산편성을 했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초등과 고교는 그대로인데 중학교만 그것도 시도별로 보수가 다를 수가 있는 것인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당규정이 변경된 것도 아닌데…. 예고된 바 있는(본지 11월22일, 29일자 보도) 중학교 교원연구비를 비롯한 제 수당 대란이 이처럼 현실로 다가오자, 한국교총과 한국초중고교장총연합회(회장 심은석‧이하 교장단)가 문제 해결을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교총과 교장단은 28일 대통령직인수위 교육과학분과 와 법질서·사회안전분과 및 교과부를 방문, ‘교육발전과 교단안정 및 교원사기진작을 위한 건의서’를 전달하는 등 현 정부 임기 내에 교원 연구비를 포함한 수당 문제를 매듭지어 줄 것을 촉구했다. 지난 24일 한국교총에서 열린 한국국공립중학교장회(회장 이기봉) 연수에 참석한 중학교 교장들은 지난해 8월 학교운영지원비 학부모 징수 위헌판결에 따라 올해부터 일부 시도에서 중학교만(초등 보전수당‧고교 학교운영지원비 존치) 연구비 등 수당지급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을 놓고 설전이 이어졌다. 이날 특강을 맡았던 김종관 교과부 학교지원본부장과 행사에 참석한 김영윤 학교지원국장에게 교장들은 교과부 대책에 대한 질문을 잇달아 쏟아냈다. 김 본부장은 “당장은 중학교 9만6800명 교원이 해당되지만 무상교육이 예고돼 있는 고교에도 곧 닥칠 문제”라며 “행안부와 지난해 10월부터 수당규정 개정안 논의에 들어갔지만 쉽지 않다”고 밝혔다. 김 국장도 “학교폭력 등으로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수당체계 개선을 통해 담임 및 보직교사 수당 등 인상안을 제안했지만 행안부는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과부 국장 등의 이야기는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 중학교장회를 하루 앞둔 23일 교총 정책지원국 등의 방문을 받은 행안부 서필언 차관은 이 문제를 전체 공무원 처우개선 차원에서 접근할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임금보전이 아닌 합리적 수당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며 “일률적 수당지급은 어렵다”고 말하는 서 차관에게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내기까지는 ‘인건비 총액이 늘지 않는 범위에서 초‧중등 형평성을 고려한 안’이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해야만했던 것. 국공립중학교장회의 결의문 채택에 이어 하루 만에 초중고교장단이 건의서 제출에 적극 동참하게 된 데는 이처럼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기봉 중학교장회장은 “현재 서울·인천·부산 등 6개 시도가 미지급 결정을 했고 제주·강원 등 3개 시도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며 “2월 안에 정리가 되지 않으면 가뜩이나 힘든 중학교 교원들의 사기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심은석 초중고교장회장도 “학교 경영자 입장에서 교원과 행정직 등의 사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가 조속히 합의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교장단은 수당 미지급 보전방안 마련 외에 △담임교사 및 보직교사 수당 인상 △교장(감) 자격 취득 시 기산호봉 상향조정 등도 함께 요구했다. 수당체제 개선 근거규정을 2월 중 마련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수당규정은 행안부와 교과부 간 합의를 넘어 기재부·법제처를 거쳐 국무회의에 개정안을 상정, 통과돼야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5일 국무회의 상정은 쉽지 않다고 볼 때, 19일(12일 개최 불투명) 하루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안양옥 교총회장은 “점점 열악해지는 현장과 담임 및 보직교사 처우개선을 위해 수당은 반드시 보전돼야 한다”면서 “당선인 면담 신청 등 교총과 교장단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수당 개선책이 관철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나긴 하룻밤 벽에 걸린 시계는 쉬지 않고 째깍거리며 가느다란 초침을 열심히 돌리고 있었습니다. 꼬마전구에서 나오는 뿌연 불빛은 밤이 깊어지면서 점점 더 밝아지는 듯 눈이 부셔오고, 째깍거리는 시곗소리가 고막을 울리는 듯 점점 크게만 느껴집니다. 경수는 시곗소리가 지하철이 몰려오는 소리마냥 크게 울려서 두 손으로 귀를 틀어 막았습니다. 꼬마전구의 불빛이 눈이 부셔서 두 눈을 꼬옥 감았습니다. 옆에 웅크리고 누운 훈식이도 몹시 불안한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눈치입니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끊이지 않고 덜컹거리는 열차의 소음이 끊임없던 지하철역이지만, 막차가 몇 명 되지 않는 손님을 싣고 졸리운 듯 걸음을 재촉하며 휑하니 떠나고 난 지금은 이젠 무덤 속보다 더 조용하고 괴괴하기까지 하여, 작은 숨소리마저 천장이 들썩일 듯 크게 들리는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곳으로 변하여 버렸습니다. 경수는 점점 피곤하고 견딜 수가 없으면서도 눈만은 더욱 말똥말똥해지고, 곁에서 옷자락만 움직여도 그 소리에 놀라 깨어나곤 하는 자신이 무척이나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어서 이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계의 초침이 가는 것을 바라봅니다.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초침의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고장난 시계가 아니라면 어느 시계나 똑같은 속도로 가고 있을 것이라는 것쯤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알고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경수의 눈에는 이 시계가 느림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 이렇게 시간이 느리냐고,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갈 수가 없다고 소리라도 치고 싶습니다. 눈을 감으니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환한 얼굴로 양팔을 벌리고 안아 주려고 오시는 어머니,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칭찬을 해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그만 눈에서 눈물이 핑돌고 맙니다. 경수는 울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어머니가 더 보고 싶어지고 어머니의 품에 꼬옥 안기고 싶습니다. 땀냄새와 어우러져 풍겨오던 어머니의 냄새가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귓가에서는, “경수야! 어딨니? 경수야, 어딜 가서 무얼하고 있니?”하는 어머니의 외침소리가 맴을 돌고 있습니다. 눈물이 쏟아지는 눈앞으로 맛있는 반찬이 가득한 밥상을 들고 어머니가 빙긋이 웃으시며 다가오는 듯 합니다. 어쩌면 무서운 얼굴로 잔뜩 꾸중을 하실지도 모르지만, 지금 어머니의 품에만 안길 수 있다면, 쪼르륵 소리가 나는 배고픔도, 무서움도, 이토록 가슴이 미어지도록 보고 싶음도 모두 다 해결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냥 벌떡 일어서서 달려가고 싶습니다. “어머니!” 하고 외치며 달려가고 싶습니다. 경수가 학교에 입학하던 날은 경수네 집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경수 아버지가 나이가 많이 들어서야 결홍을 했기 때문에 이제 겨우 국민학교에 입학을 하는 경수의 나이 일곱 살인데, 아버지는 마흔살이나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벌써 중학생이 된 자녀들 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니 경수의 입학이 얼마나 반갑고 대견스러운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양쪽에서 경수의 손을 잡고 경수가 바라는 대로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사주면서 즐거워했습니다. 또 가방, 신발 주머니, 실내화도 사주었습니다. 경수의 학교 생활은 날마다 즐겁고 신나는 날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꼭 엄마처럼 아이들을 귀여워했고, 쓰다듬고 안아 주면서 재미난 이야기와 노래로 싫증이 나지 않도록 보살펴 주었습니다. 4월이 되어서 교과서의 공부가 시작될 무렵부터 어머니는 경수를 따라 학교에 나오시던 일을 멈추었습니다. 그 대신 학교까지 걸어서 다닐 수가 없다고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시고, 버스를 태워 주면서 차비와 용돈을 주셨습니다. 경수는 버스에 올라서 기사 아저씨 옆에 달린 요금통에 5백원 짜리 동전을 딸랑 집어 넣으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노란 유치원 가방에 유치원 모자를 쓰고, 마을 앞에 나와 있으면 유치원 통학차가 실러 와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돌면서 친구들을 싣고 달려가곤 했습니다. 어쩌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에라도 따라 가려면 어머니는 언제나 어머니의 차비만 달랑 내셨습니다. 아직도 어린 경수의 차비만 달랑 내셨습니다. 아직도 어린 경수의 차비는 안 내어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도 차비를 내고 차를 타게 된 게 어른이 된 것만큼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또, 반가운 건 차비 80원을 내고, 나머지 거스름돈과 집에 돌아갈 때의 차비 80원만 남기고 마음놓고 군것질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경수는 친구들에게 자기의 과자를 나누어 줄 수 있고, 좀 달라고 손을 벌리는 친구위 손에 알사탕 한 개라고 나누어 주고 나면 그 기뻐하는 모습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경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 친구들에게 경수는 자기 차비로 몽땅 과자를 사서 나누어 먹기도 하고, 걸어서 집에 오기도 하고, 심술이 나면 혼자서 과자 봉지를 들고 기찻길을 따라 걸으면서 먹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차비까지 몽땅 과자를 사먹고 터덜터덜 걸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몹시 기다린 모습으로, “아니, 왜 이제야 오니? 이렇게 늦게까지 어디서 뭐했어?” 하시며, 걱정을 하셨습니다. “엄마, 돈을 잃어버려서 찾다가 할 수 없이 그냥 걸어 왔단 말이야.”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술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니, 그랬어? 그럼 좀 빌려 달라고 선생님한테 말씀드리지 그랬니? 언니들한테라도 빌려 달래지. 그럼 엄마가 갚아 줄 텐데…….”하시며, 몹시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경수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차비도 남기지 않고 몽땅 털어 사먹어 버리는 버릇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학교 주변을 맴돌다가 다시 학교로 들어가서, “선생님, 차비를 잃어버렸어요.”하면, 선생님이 백원짜리 동전 한 닢을 주십니다. 그거면 집에 올 수가 있으니 걱정이 없습니다. 그래도 자꾸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으니, 가끔씩 써 먹는 방법입니다. 언젠가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고, 자꾸만 잃어버리자 어머니도 꾸지람을 하셨기 때문에 또 그런 방법을 쓸 수는 없습니다. 이제 경수는 돈을 함부로 쓰는 버릇이 고칠 수 없도록 깊게 배어들었습니다. 하루라도 돈이 없으면 힘이 없고 맥이 주욱 빠지는 것 같습니다. 뭔가를 사지 않으면 그날은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뭘 사먹고 친구들하고 나누어 먹어야만 합니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아프다고 자리에 누워 계셨습니다. 경수는 이제 2학년이 되었으니 아픈 엄마더러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만히 나오는 순간 어머니의 돈지갑이 보였습니다. 경수는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어머니의 돈이지만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경수는 인사를 하고서 달리듯 집을 빠져 나왔습니다. 온종일 걱정이 되어서 공부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맛있는 떡볶이를 사 먹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경수는 걱정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는 간신히 일어나셔서 집안일을 하시고 계셨지만 돈 이야기는 하시지 않았습니다. 경수는 ‘후유’하면서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심을 하였습니다. 2학년 가을부터 경수네는 서울 신촌 시장에 조그만 반찬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아서 아침에 집안일을 마친 어머니는 경수가 학교에 간 뒤에 아버지를 도우려고 간단한 점심 준비를 해가지고 집을 나서십니다. 저녁 열 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도와서, 저녁때가 되도록 함께 가게일을 하시다가 돌아오면 저녁 일곱 시쯤 됩니다. 경수가 집에 돌아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머니가 아침에 놓아두고 가신 경수의 점심상과 전자자에 들어 있는 밥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경수는 입에 맞는 반찬이 있으면 밥을 많이 먹지만 보통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숙제를 합니다. 물론 과자나 뭐 그럴듯한 군것질을 준비하여 먹어가면서 말입니다. 전자 오락기로 게임을 하기도 하고,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온 재미난 만화와 무술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경수네 집에 자주 놀러 옵니다. 경수 어머니도 경수가 혼자 외톨이가 된 것이 미안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노는 것을 그다지 말리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큰 말썽을 부리지 않고 혼자서도 잘 자라주는 귀여운 경수가 그저 고맙고 대견스럽기만 하였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런 경수가 자신들의 꿈이며, 내일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보다 휠씬 특별한 아이로 자라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해달라는 건 모두 다 해주고, 남보다 더 좋은 옷, 좋은 학용품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경수는 더욱 더 용기를 내어 친구들과 사귀고 무서운 줄 모르고 마음껏 돈을 쓸 수 잇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말씀만 드리면 친구들과 사귀며 쓸 만큼의 돈을 주시기 때문에 걱정이 없습니다. 가끔씩 어머니의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하나쯤 가져다 쓰더라도 어머니는 그걸 눈치채지도 못하고, 또 그쯤은 하루나 이틀이면 모두 없어지고 마는 작은 돈이니 항상 경수에게는 돈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지갑에서 돈 2,3만원을 가지고 나온다 해도 아버지, 어머니는 눈치를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되었으니 그깐 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돈을 훔치는 버릇이 생긴 자신이 자꾸만 미워지지만 그래도 학교에 나가기만 하면 또 돈을 써야만하니 어쩔 수 없이 돈은 필요합니다. 경수는 며칠 전 유선 방송에서 보여준 프로그램의 사이사이에 비친 양념통닭의 광고가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그 곳에 가서 한번 실컷 먹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경수는 지난 일요일에 어머니의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서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수요일에는 오전 수업으로 끝나는 날이니까 학교가 끝나는 대로 제일 친한 친구 훈식이와 함께 서울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수요일 아침에 훈식이는 머리가 아프다고 책상 위에 엎드려 있다가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경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돌아가 책가방을 놓아두거서 누군가와 함께 서울에 가자고 할 계획으로 학교 부근에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훈식이가 교문 앞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경수는 훈식이에게 다가서며, “훈식아, 서울 가자. 신촌 로터리에 있는 켄터키 치킨 집에 가서 켄터키치킨 사먹고 오자.” 하고 훈식이를 끌었습니다. 지난번에는 경수와 함께 양념통닭을 먹은 적이 있었으므로 별로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둘은 나란히 치킨 집에 들어가서 한 마리를 시킨 후 몽땅 먹어 치웠습니다. 아직도 돈은 충분합니다. 호주머니에 든 돈을 어디에 쓸까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 전자 오락실에 가자.’ 경수는 훈식이의 손을 끌고 전자 오락실에 들어가서 5천원을 바꾸었습니다. 신나는 놀이가 많았습니다. 태권도․권투․야구등 갖가지 놀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습니다. 더구나 동네에서 놀 때는 해가 저물어가면 곧 어두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곧장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실내이기 때문에 밖이 어두운지 밝은지조차 알 수가 없는 데다가 신나는 오락기에 정신을 몽땅 빼앗기고 있습니다. 벌써 5천원이 다 떨어졌고, 다시 5천원을 동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바꾸는 것을 보고 있던 고등학생쯤 되는 형이 경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더니 귀에 바짝 입을 대고는, “야, 꼬마야. 잠시 좀 나올래, 조용히 좀 나와 응.” 하며, 앞장 서 나갔습니다. 경수는 따라 나갔습니다. 으슥한 골목으로 끌려간 경수는 그 형에게 단돈 백원은커녕 한 푼도 남김없이 모두 빼앗겼습니다. 차비만 남겨 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조금도 사정을 보아주지 않았습니다. 경수는 힘없이 오락실 문을 열고 들어 섰습니다. 훈식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 가서 가만히 지켜보던 경수는 훈식이가 놀이를 끝내자 가만히 어깨를 잡고 말했습니다. “훈식아 가자. 돈을 몽땅 뺏겼어.” 경수가 기운이 빠진 모습을 보이자 훈식이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부랴부랴 밖으로 나와서 보니 벌써 거리는 사람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열한시가 넘어서 열두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경수와 훈식이는 몹시 걱정이 되어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벌써 버스는 끊어진 시간이었고, 집에 가려고 해도 돈도 한 푼이 없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지하철을 타고 종점 구파발까지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작정 지하철역으로 들어가서 매표구의 눈을 피해서 살금살금 검표기계밑을 통과하였습니다. 무작정 플랫폼에 들어오는 전철을 탔습니다. 그런데 몇 정거장을 가도 구파발이 아닌 시내로만 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내려서 반대편 차를 타고 갔습니다. 3호선을 어디서 갈아 타야 하는지 모르는 경수와 훈식이는 귀를 기울이다가 충무로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차가 떠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역무원아저씨에게 끌려서 역무원 숙소에 들어선 경수와 훈식이는 겁에 질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밤새 그냥 쭈그리고 누워서 시곗소리와 전등 불빛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생각하고 누워 있습니다. 집에서 야단이 났으리라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차를 태워 보내줄게.” 아저씨의 말만 믿고 무섭고도 기나긴 밤을 지새고 있는 것입니다. 쭈그리고 누워서 시달리던 경수는 그만 깜빡 잠이 들었는지, 덜커덩거리는 지하철 소리에 눈을 번쩍 떴습니다. 이제 겨우 다석 시가 조금 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벌써 지하철을 타고서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습니다. 경수는 이제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피곤해서 벌떡 일어나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오는 속에서 다시 잠이 든 경수는 여덟 시가 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간신히 일어나서 훈식이를 깨우고 간단히 세수를 한 후 밖으로 나섰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구파발을 향하는 전철을 타고 달려서 구파발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아홉 시가 훨씬 넘어 있었습니다. 눈치를 살피며 살금살금 나와서 역을 빠져 나왔습니다. 약 8킬로미터 가야 하는데 차비는 한 푼도 없으니 버스를 탈 수가 없습니다. 이쩔 수 없이 걸어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경수와 훈식이는 고픈 배를 움켜쥐고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학교에서는 두 아이의 행방을 찾느라고, 온통 벌집을 쑤셔 놓은 것만 같았습니다. 본 사람이 있는지, 어디고 갔는지를 추리하며 전교생이 야단이 났고, 보았다는 사람들이 교무실로 모여 들었으나 결론은 점심을 먹은 뒤에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쉬지 않고 전화벨이 울리고 갖가지 소식이 몰려왔지만 특별히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열두시가 거의 되어서 겨우 어느 부락에서 아이들이 학교로 오고 있어서 확인하고, 지금 곧 데리고 오겠다는 연락이 들어 왔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오고 부모들이 달려와서 서로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그제서야 안심을 하고,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경수는 어머니가 보이자, 두 팔을 벌리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어머니의 냄새를 가슴 속 깊숙히 들이마시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경수야! 어디서 무얼 했어?” 어머니는 목이 메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경수와 훈식이 어머니에게 식사 준비를 하도록 미리 보내고 나서 아이들을 불러들였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너희 멋대로 행동하니까 어떠니? 어제 낮엔 재미있고 신났었지. 하지만 어젯밤부터 오늘까지는 그렇지 못했지.” 아이들의 얘기를 주욱 듣고 나신 교장 선생님은 두아이를 번갈아 보면서 말씀을 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처음 비를 맞으면서 밖으로 나서면 빗방울이 이마에 떨어졌는지, 콧등에 떨어졌는지를 다 알 수 있고, 깜짝 놀랄 만큼 차갑게 느낄 수 있지만, 계속 비를 맞으면서 걷고 있노라면 비가 오는지 어쩐지를 몰라서 그냥 걸어가면서 맞아도 비를 느끼지 못하게 된단다. 너희들이 처음에 작은 잘못을 저질렀을 땐 곧 그 잘못을 깨닫고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지 했을 게다. 하지만 그걸 깨닫기도 전에 일은 점점 눈덩이처럼 커졌지. 너희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이어서 앞으로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더 이상 나쁜 짓은 하지 않도록 조심들 해야 한다. 알겠니?”하고 두 어린이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경수는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잘못을 스스로 반성을 해보면서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온 일이 자신에게 잘해 준 게 아니라 망쳐 놓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어머니는 돈이 얼마나 많으면 내가 몇 만원씩 돈을 훔쳐도 모르실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체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결국 나는 자꾸만 훔치게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경수는 곧 다르게 생각해 봅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제는 정말 착한 사람이 되어야지.’하고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