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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드라마 밀회, 불륜을 녹이는 아름다운 선율 워낙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뮤지컬과 음악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빼놓지 않고 챙겨 보는 편이다. 슈베르트의 애잔한 선율이 주인공들의 엇갈린 운명과 사랑을 암시하듯 잔잔하게 흐르던 ‘겨울 나그네’ 헨델의 가슴시린 아리아가 아직도 내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파리넬리’.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생을 통해 모차르트의 음악을 통째로 내 장기 기억속에 저장하게 해 준 ‘아마데우스’. 인간이란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레미제라블’ 등. 영화속 아름다운 음악의 가슴벅찬 감동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요즘 다시 나의 감성 안테나를 가만히 자극하는 드라마가 있으니 바로 ‘밀회’이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연령층에서 각기 나름의 이유로 이 드라마가 깊은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이유야 어쨌든 나 역시도 어느새 설레는 가슴으로 드라마를 기다리는 시청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1회에서 나온 슈베르트 ‘판타지아’, 베토벤 ‘황제’ 1악장, 바흐 평균율 846, 모차르트 소나타, 차이콥스키 ‘4계’ 중 4월을 비롯해 유아인이 혜원에게 자세 교정을 당하면서 치는 슈베르트 ‘방랑자 판타지’까지. 드라마는 두 주인공의 절제된 대사와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을 통해 밀폐된 공간에서 나누는 스승과 제자의 위험한 사랑을 감성적으로 표현해 내는데 성공한다. 유아인과 김희애가 함께 연주하던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는 음악을 통해 교감하면서 아찔한 카타르시스에 이르는 두 사람의 내면을 극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보여주었다. 또 다른 등장인물 인서의 협연곡 ‘황제’는 베토벤 특유의 장엄함과 열정적이면서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다. 예술을 매개로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주인공을 보면서 내 안의 감성도 예민하게 촉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예술의 전당에서 피아니스트와 직접 마주했을 때도 얼마간 지루함을 느끼곤 했었는데 유독 드라마 속 피아노 선율이 가슴에 사무치듯 파고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공들의 섬세한 내면을 피아노를 통해 표현해 내는 예술감독의 탁월함도 빼 놓을 수 없지만 리얼리티를 잘 살린 배우들의 연기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삶의 단면에 단도직입적으로 직면하게 해 주는 것이 예술이다. 불편하든 그렇지 않든 예술은 삶의 단면을 잘라 상징화시킴으로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 준다. 우리 삶에 잠시 쉼표를 찍고 쉬어가라고 속삭인다. 고독과 절망에 몸부림치면서도 기댈 곳 없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예술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칫 통속적으로만 그려질 수 있는 불륜이 음악을 통해 고품격이라는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난 걸 보면서 음악의 탐미적, 예술적 가치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먼지 앉은 피아노 뚜껑을 열고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다시 집어 드는 나를 보며 TV 속에서 뿐만 아니라 내 삶에도 하나의 반전드라마가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그리 오래지 않을 때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라에 충성하기, 스승과 부모 섬기기를 잘 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회 규율의 기준이 있었다. ‘예의’가 그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지 않는다. 지하철에 자리 양보하지 않는 사람에게 예의를 물어봐라. “예의라고?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 하고 있어.” 입 밖에 꺼내는 것도 공격의 대상으로 바꿔질 수 있다. 이렇게 사회규율이 사라진 것은 식탁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세계 최하위 행복지수를 가진 나라에서 살고 있다. 최고의 이혼율, 자살률, 사고 공화국, 학교폭력, 언어폭력 등 사회가 제정신이 아니다. 건강한 가정이 사라져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자화상이다. 가족관계에서도 정서적 사막화에 빠져들고 있다. 그것은 함께하는 가정의 식탁문화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가정의 정서적 사막화가 생기기 전에는 가족 식탁 문화를 중시했다. ‘밥 먹었니?’라는 말이 인사로 쓰인 적이 있었다. 식사시간이면 으레 가족이 함께했으며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도 나왔다. 자녀들은 아버지 올 때를 기다려 자리에 앉으시면 숟가락을 들었다. 밥 먹을 때는 소리 나지 않아야 했다. 밥상 위에 올라온 고기반찬은 어른이 먼저 들어야 먹을 수 있었다. 배려와 기다림을 가르쳐준 것이다. 그것이 예의로 이어졌다. 요즘 우리 사회는 가정에서 함께하는 식탁이 사라져가고 있다. 사회구조의 변화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함께 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을 거르고 뿔뿔이 출근하여 점심 겸 늦은 아침을 먹는 가정이 늘고 있다. 이른바 ‘브런치’, 우리말의 ‘아점’이 그것이다. 아이는 어떤가? 아침에 눈뜨면 엄마, 아빠 얼굴도 마주하지 않고 우유 한 컵, 빵 한 조각으로 급히 학교로 달려간다. 그리고 점심때 무상급식, 저녁때는 텅 빈 집으로 혼자 들어온다. 한동안 스마트폰 게임을 즐길 때 엄마의 메시지가 온다. ‘영철아, 너 학원 다녀왔니? 저녁때 가는 학원도 잊지 말아라.’ 아이는 깜짝 놀란다. 허겁지겁 가방을 들고 학원을 향한다. 어두워져서야 아이는 학원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텅 빈 집안이다. 아이는 생각한다. ‘우리 집은 왜 텅 비었지?’ 사라져가는 가족 식탁 문화, 텅 빈 집의 나 홀로 시간, 아이들은 무엇을 꿈꾸고 배울 것인가?하지만 서양은 휘황찬란한 밤 문화가 많지 않다. 노래방도 음식점도 술집도, 야근도 우리처럼 많지 않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다. 우리가 자랑했던 동방예의지국이 서방예의지국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질 날이 머잖아 올지 모른다. 가정이 건강하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낙화의 미학 영원을 위해 스스로 독배를 드는 연인들의 마지막 입맞춤같이 벚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종말을 거부하는 죽음의 의식. 정사(情死) 의 미학. - 오세영- 시인 오세영은 벚꽃의 생을 비장미와 극치미의 절정에서 불꽃처럼 사그라지는 정사의 의식으로 소멸시킨다. 출근길 어느 날인가부터 만개한 벚꽃이 화사함으로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극적인 낙화의 이미지로 또 내 눈에 들어온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이고 벚꽃이고 또 낙화이건만 해가 바뀔 때마다 내 안에 닿는 느낌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무너져 내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마음 한 켠에 희미한 아픔이 느껴지는 것도 시간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세월의 옷이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인가.. 이기철 시인은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으면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 이라고 했다.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이라고 권했다. 하얀 봄빛을 받으며 떨어지는 벚꽃 그늘에 앉아 오늘 하루 나를 모두 벗어놓고 싶다. 누구의 에미, 누구의 아내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고 싶다. 그러면 일상의 무거움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질지 누가 알겠는가.
북내초 주암분교장(교장 김경순)이 위치하는 곳은 도서벽지에 속한다. 따라서 지역 특성상 노인 내외분이나 독거노인이 대부분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8일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북내초등학교 주암분교장 어린이 전교생 24명은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 주암리 마을 회관을 찾아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어린이들은 바이올린과 기타반주에 맞추어 '어버이 은혜'를 노래했다. 노래를 듣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엔 눈시울을 붉혀 숙연해지기도 했고 “뉘집 손자가 저리 잘하냐?”며 활짝 웃기도 하였다. 곧이어 학년별로 미리 준비한 장기자랑을 할 때에는 모두가 활짝 웃으며 즐거워하였다. 학생들은 장기자랑을 마친 후 돌봄교실에서 정성스럽게 만든 카네이션을 일일이 달아드렸다. 주암리 노인회장(이광식)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찾아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예쁜 카네이션도 달아주고 맛있는 떡까지 준비해온 아이들이 너무 고맙다.”며 학생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한편 북내초등학교 주암분교는 김경순 교장의 교육방침인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학교라는 기치 아래 매년 어버이날을 기념하는 작은 음악회를 이어오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집단생활을 한다. 그리고 그 집단 내에서 일종에 사회적 서열을 갖는다. 그것은 단순한 위치 배열에 그치지 않고, 지위와 역할 등을 부여받는다. 특히 이런 지위는 개인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교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사회적 서열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생 교단에 서 있는 것을 행복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러나 교사도 현실적인 직장인이다. 생활하다보면 조직의 생리적 구조에 눈을 뜬다. 승진 자체를 목표로 두지는 않지만, 사회적 생리이기 때문에 따라가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조직 내에서 주어지는 성취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었다. 나는 교직에 처음 들어오면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기도 전에 입시 준비를 했다. 그것은 내가 서툰 탓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원했던 방식이었다. 열심히 한 탓에 몇 년 만에 노하우가 생기고, 이내 젊은 시절부터 입시 전문가가 됐다. 일찌감치 부장 직책도 맡으면서 아이들을 지도했다. 당시는 선지원 후시험 제도였다. 그때 나의 전문적(?)인 감으로 보낸 아이들은 그대로 가서 합격을 했다. 밤늦게까지 학습 지도를 한 덕택에 명문대에 수십 명이 붙었다.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동료 교사들도 나의 능력을 부러워했다. 그럴수록 나는 학교에서 거침이 없었다. 물론 처음 교직에 들어올 때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 대한 마음이 뜨거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꼭 그것만은 아닌 듯하다. 그때 나는 학교를 위해서 학생들을 위해서 헌신한다고 했지만, 욕심이 있었다. 동료 교사들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칭 명문 대학 입학생 숫자에 민감했다. 많으면 안도감을 느끼고 적으면 불안감을 느꼈다. 공개적으로 주도권 싸움을 하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에는 경쟁 관계에서 이기려는 심리가 담겨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자주 말했다. 나의 땀방울은 모두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눈앞에 보이는 세속적 기준에 집착했다. 나는 교직이라는 노동의 현장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기적인 열정을 보인 것이다.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이들이 큰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따뜻한 손길도 보내지 못했다. 입시 성적을 인정받아 승진을 한 것도 아니다. 대학 입학생 숫자에 매달리던 기억은 산화되어 녹슨 채 남아 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며 매로 다그치던 모습도 후회의 서랍에 부끄럽게 남아 있다. 내 삶은 끊임없이 외부로 열려 있었다. 외부의 가치 기준에 매몰되고 거기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덧없고 부질없는 일들에 시선이 더 쏠려있으니, 눈빛도 친절하지 않았다. 남처럼 되려고 얘를 쓰고, 남의 수준에 오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는 와중에 아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동료들 사이에서 어깨를 펴고 건방지게 활보했다. 당연히 진실보다 성과만 좇아 다니기에 나를 돌볼 겨를도 없었다. 그것은 경쟁을 위해서 필연적인 행동이라고 합리화했다. 참 힘들게 살았지만 정작 나는 설익은 인격과 미성숙한 심성에 취해 있었다. 다행이 최근에 와서 삶의 길이 달라졌다. 그것은 승진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하고 부터이다. 한편으로 보면 다른 길은 승진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경쟁에서 떠밀려진 것 같고, 차선의 도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길의 발견이다. 이제 나를 볼 수가 있다. 내 안에 무엇을 필요로 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외부의 조건에서 벗어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가치는 무엇일까. 스스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힘이 생겼다. 인생이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도달해야 할 정상이 있거나 혹은 정해진 결과가 없다는 것이다. 늘 진행형에 불과한 미완성의 과정이다. 따라서 인생은 정상을 향해서, 성공의 문에 도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즐겨야 하는 것이다. 참된 인생을 위해 여기저기서 지침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도 공허한 일이다. 그저 되돌아보고 새롭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뿐이다. 무엇인가 스스로 자문할 때 인생의 길이 보인다. 외진 들녘에서 예쁜 들꽃을 보는 경우가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시간의 성숙에 따라 순리로 피어난 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꽃들은 산빛과 물빛을 닮아 더 없이 아름답다. 우리의 삶도 다를 바가 없다. 들녘의 꽃이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나도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달려왔으니 할 만큼은 했다. 후회도 없다. 나의 존귀함이 보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작 나를 돌보는 일이 극히 드물다. 그러다보니 나를 사랑한다는 말조차 어색하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망각하고 남들만을 위해 살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면서 내 고유의 내면세계를 지니게 되었다. 이제껏 가져보지 못한 너그러움이 생긴다. 남과 겨루기보다 그들과 충만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랑이 보인다. 명성과 명예는 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소박하고 질박한 삶의 모습이 멋있는 경우가 많다. 맑고 단아한 마음, 평정과 겸양을 갖춘 삶이 교만하지 않고 감동을 준다.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훈훈한 사랑에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늦은 나이에 발견한 나에 대한 사랑이 삶을 따뜻하게 한다.
어설프게 서구 물을 좀 마신 분들은 조선왕조에서 있었던 몇 가지의 유교적 폐해를 내세워서 우리의 역사가 온통 유교 때문에 찌든 것처럼 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교를 국시로 삼았던 조선왕조 500년이 저만큼이나 지탱된 것으로 볼 때, 그것이 의미 없는 공론만은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을 가끔 해보게 된다. 필자는 유교에 대해서 비교적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유교에서는 왜 그렇게 여인들을 비하했을까 하는 점이다. 한 사회가 발전함에 있어서는 여인의 특수 능력만으로서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유교의 남존여비는 분명 잘못된 것이오, 그러한 유습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오늘날의 우리의 현실도 언젠가는 개선돼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역사에서 배우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1세는 국왕 헨리 8세와 볼린 왕후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그가 14살 되던 해에 부왕이 죽었다. 그 후 그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등극하지 못하고 이종사촌 언니인 매리 1세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런던탑에 유폐되는 등 그 어린 시절이 다사다난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공주의 몸으로 그토록 고초를 겪으면서도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지식과 교양을 쌓는데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고전과 역사, 음악, 신학, 외국어 등을 연마함으로써 언제인가는 권토중래 할 날에 대비할 만큼 영악한 여인이었다. 10여년에 걸친 왕실의 음모가 끝나고 그가 25살의 나이도 국왕의 지위에 정식 취임했을 때 그는 유럽 왕실의 부러움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을 만큼 아름답고 지적인 여인이 되었다. 처녀의 몸으로 왕위에 오르자 각처에서 혼담이 들어왔다. 특히 당시 유럽 제일의 해상 강국이었던 스페인의 필립 2세가 엄청난 국력을 배경으로 회유와 압력으로써 그에게 청원했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이를 거절하고 말았다. 그때 그가 “나의 남편은 대영제국이니 나는 달리 결혼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한말은 오늘날까지도 인구에 회자하는 경귀로 전해지고 있을 정도이다. 연약한 여인이 국왕에 오르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녹녹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그는 프란시스ㆍ베이컨과 같은 위대한 철학자를 과감히 기용했고, 세실, 월싱햄과 같은 재상들이 그 경륜을 펼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었다. 이와같은 그의 정치적 수완으로 영국은 일거에 해상강국을 건설했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대형제국의 기초를 쌓는데 성공했다. 문학과 예술에도 깊은 소양을 가지고 있던 엘리자베스 1세는 셰익스피어며, 베이컨, 허버트, 스팬서 등의 문인ㆍ철학자를 뒷받침 해 줌으로써 국민문학의 황금시대를 이루었으며 재위 45년의 치적을 남기고 1603년에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엘리자베스 1세의 인생을 돌아볼때면 과연 여인이란 우리의 조상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약하고 무용한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날 대영제국의 기틀이 한 처녀의 경륜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는 점은 오늘의 우리 사회에 결코 남의 애기처럼 들릴 일만은 아니다. 또 한국의 여인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바탕없는 주장만을 내세우기 보다는 좀 더 자신을 연마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세계의 역사는 어제나 오늘이나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우리 나라가 세월호 참사로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또한 평형수 없는 세월호가 거친 바다에서 침몰한 사고를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때이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그래서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은 국가 개조라는 거대한 담론 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선채가 바르게 전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업무 수행에 책임을 질 사람을 잘 배치하는 것이다. 또한,국민들이 보수와 진보의 극도의 대립이 아니라 중산층을 살려 좌로나 우로 치우침이 없이 전진하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기업은 기업, 공무원은 공무원, 국민은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는 것은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
□ 헬리콥터 부모 비교적 여유롭고 시간적 여유가 많은 부모 가운데 헬리콥터 부모가 많다. 헬리콥터 부모는 등교에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아이 주변을 맴돈다. 한둘 나은 자식 남보다 앞세우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헬리콥터 부모가 되는 이유는 자녀에 대한 과잉기대다. 과잉기대로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하고 간섭하려든다. 자녀에 대한 과잉기대는 과잉보호로 이어진다. 하지만 헬리콥터 부모가 되는 이유는모두 같지 않다. 자녀 능력에 대한 과잉 기대로 헬리콥터 부모가 되기도 하지만 자녀 능력을 과소평가로 헬리콥터 부모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두 부모 모두 자녀의 간섭으로 이어진다. 헬리콥터 부모 밑에 자란 아이는 교우관계에서 시작하여 학교 안팎에 생기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어른이 되어서도 독립심이 떨어진다. □ 무관심형 부모 무관심형 부모의 특징은 아이와 정서적인 교감을 갖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하루 한 끼 식사도 나눌 시간도 없고 가족끼리 마주 않아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없이 바삐 사는 부모다. 무관심형 부모는 아이에 관한 정보도 부족하다. 있어도 올바르지 못하다. 심지어 아이가 몇 반인지 아이의 짝 이름, 담임선생님 이름도 모른다. 아이가 좋아하는 과목, 힘들어하는 과목은 어떤 과목인지도 모른다. 무관심형 부모도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란다. 돈만 많이 벌어 학원으로 보내면 해결될 줄 안다. 자녀가 잘 되는 일은 시험점수를 높이는 일이고 학원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불도저 부모 불도저로 공사를 하듯이 자녀교육도 밀어붙이면 된다는 부모다. 자녀에 대한 과잉 기대 때문이다. 불도저 부모는 ‘해라.’ ‘하지 마.’ 식의 지시적인 언어를 주로 사용한다. 불도저 부모도 아이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지 못한다. 또한 자녀의 모든 선택권은 부모에게 있다고 믿는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적극성이 떨어지고 남을 추종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 이런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반항적, 충동적인 기질을 가질 위험이 있다. 또한 성인이 되면부모에게 적개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컨설턴트 부모 컨설턴트 부모는 자녀와 충분한 정서적 교감을 나눈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런 다음 문제점을 파악하고 아이 혼자 해결하도록 충고와 조언을 준다. 때로는 아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도움도 준다. 컨설턴트 부모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한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컨설턴트 부모 밑에 자란다고 학업성적이 좋은 것은 아니다. 물론 나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높아져서 건강하고 바람직하게 성장한다. 컨설턴트 부모 밑에 자란 아이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의 거울도 자신의 안에서 찾기 때문에 건강한 가치관을 갖는다. 실패를 극복하는 의지도 강하고 자신감도 높다. 어려운 난관도 해결하는 문제 해결 능력을 소유한 아이가 된다.
“재난시스템․메뉴얼 운용도 결국 사람” 모두의 책임 자각…학교부터 실천을 물질만능, 성적지상주의 근본 개혁도 세월호 참사가 한 달여를 지나는 가운데 일선 교원들도 수많은 희생들이 헛되지 않도록 보다 본질적인 처방과 실천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교육자로서 슬픔을 거두고 제자리로 돌아가 기본, 생명, 인성교육을 다시 시작하자는 다짐이다. 교원들은 “아무리 정교하고 체계적인 제도를 마련해도 이를 제대로 운용하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민주시민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헛일”이라는 지적이다. 전영례 광주 신용중 교장은 “총체적인 부패의 난맥상에서 제도적, 기술적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염불”이라며 “법을 지키지 않고 원칙과 기본을 우습게 아는 사회풍토에서 생명을 중시하는 인성교육, 민주시민 육성 등은 소리 없는 외침으로 끝날 뿐”이라고 말했다. 인성교육을 통해 기본이 선 사회를 만들자는 대목이다. 김수운 청주 내곡초 교감은 “생명존중과 올바른 직업윤리를 가르치는 인성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중요하게 강조돼야 한다”며 “또한 안전교육 강화 차원에서 초등교 때부터 수영과 태권도 등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쳐 스스로를 보호할 체력과 규칙을 지키는 습관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본, 인성교육 강화를 위해 과열 입시, 성적 지상주의 풍토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높았다. 이정규 강원 상지여고 교사는 “교총이 스승주간을 애도주간으로 추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성적지상주의 등의 병폐를 뽑기 위해 당연히 교육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사는 “항상 탁상공론으로 끝나는 인성교육, 창의교육 등을 현장에 착근시키려면 현 입시제도의 근본적인 변화와 그에 따른 교육과정 개정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부산 A중학교 교장은 “학교현장이 성적에 온 신경을 쓰다 보니 인성교육 등을 할 시간이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 고교 교사는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의 인성, 가치 등을 가르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더 많다. 무너져가는 교사의 권위와 학교가 자기 위치에서 책임감을 다하지 못한 사람을 만든 거라 생각한다”며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힘이 되고 가르침을 주는 교육세상이 왔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아울러 학교, 교원에 대한 그릇된 시선은 거뒀으면 하는 바람도 이어졌다. 경남 B중학교 교사는 “이번 참사에서 교사들은 책임감과 사도정신을 보여줬고 희생도 적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교사에 대한 시선은 가혹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수학여행 준비를 위해 엄청난 서류와 마음고생, 현장지도에서의 어려움과 고통이 극심한데도 일부 국민과 학부모는 마치 교사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놀러가는 정도로 생각한다”며 “다수의 교사는 수학여행 인솔 부담 때문에 2학년 담임도 기피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발 교사의 헌신과 직업적인 소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했으면 좋겠다”며 “그것이 바로 무너진 교육을 살리는 지름길”이라고 피력했다. 이인호 수원하이텍고 교사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사회, 유착에 의한 부정부패가 만연한 대한민국의 부정적 요소들을 과감히 청산하고 책임자는 엄중 문책함으로써 안전 대한민국을 향한 국가 개조가 이번 참사를 계기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총은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그동안 행해왔던 '스승의 날 주간'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애도 주간'으로 정하고 스승의 날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원경아, 네가 지난해 성균관대학에서 드림 클래스 수업을 받고 왔었지? 아마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캠프가 아니었는지 궁금하구나. 이와 같이 삼성그룹은 사회 양극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소득 재분배가 아닌 교육 양극화 해소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 교육 지원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는 여타 기업처럼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주는 단순한 형태가 아니다. 삼성 임직원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학생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교감하고 가르치는 방식을 택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삼성그룹 사회봉사단 관계자는 "교육 양극화 해소가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한 첫걸음"이라며 "저소득 가정 학생들도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희망의 사다리`다. 희망의 사다리는 영유아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별 특성에 맞는 교육 지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가장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초등학생 공부방이다. 임직원 자원봉사와 사단법인 희망네트워크가 삼성의 초등학생 공부방 지원의 양대 축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갈 곳이 없는 초등학생을 돌보기 위해 삼성은 공부방과 결연을 하고 임직원의 특기와 업무 역량을 활용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부방으로 불리는 지역아동센터는 이용자 대부분이 저소득 가정 초등학생인데 학습지원, 생활지도, 다양한 체험활동이 절실한 상황이다. 2013년 기준 임직원 1만1230명이 전국 359개 공부방을 매주 정기적으로 방문해 자신의 특기와 전문지식을 활용해 영어ㆍ수학ㆍ과학 등을 학습 지도하고 체육활동, 공연 관람 등 문화체험 활동을 실시했다. 효과적인 공부방 봉사활동을 위해 공부방 자원봉사 표준 모델을 만들어 삼성이 설립한 사회적 기업인 희망네트워크를 통해 공부방 자원봉사자 가이드북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삼성은 임직원들이 활동하는 공부방 400여 곳에 TV, 컴퓨터 등 학습기자재를 지원했다. 계열사별로 공부방 특별활동도 진행했다. 삼성SDI는 공부방 시설 보수, 학습 지도, 체육활동, 영화ㆍ공연 관람, 놀이동산 나들이뿐 아니라 공부방 아동들에게 자매부대(26사단) 병영 체험 캠프 기회를 제공했다. 삼성중공업 보배봉사단은 외국인 직원과 함께 매주 2회 장평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영어학습 지도와 임직원 재능을 활용한 미술ㆍ음악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삼성석유화학 울산사업장은 깜짝생일파티, 송년회 등을 함께 하며 긴밀한 정서 교류를 했다. 삼성생명 충청지역사업부는 대전시 서구 도마동 소재 `사랑의 터`를 시작으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밝고 건강하게 생활하도록 책상, 의자, 책장, 블라인드, 칠판 등을 교체하는 `사람사랑 공부방` 활동을 실시했다. 삼성에버랜드는 공부방 아동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수도권 지역 공부방 10곳 360명에게 급식재료비 후원, 문화체험, 크리스마스 선물을 지원해 신체적ㆍ심리적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호텔신라 신당꿈봉사팀은 신당꿈지역아동센터 아동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경복궁, 종묘 등을 견학하는 역사체험과 창극, 영화, 콘서트 관람 등 문화체험 활동을 실시했다. 임직원 자원봉사와 함께 또다른 축을 구성하고 있는 희망네트워크는 취약 계층 아동들이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전문화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2011년 2월 24일 개소한 사단법인 희망네트워크는 삼성이 설립한 첫 사회적기업으로 2011년 서울에, 2012년 광주광역시에 설립됐다. 지역 공부방 60개소를 거점으로 1800여 명의 취약계층 아동을 지원하기 위해 교사, 직원 등 152명을 고용해 현장에 파견 운영 중이다. 전문강사는 사회복지ㆍ상담ㆍ문화예술 등 관련 분야 전직 교사와 교사 자격증이 있는 유휴 인력, 심리상담 전문가 등으로 저소득층 여성인력, 경력 단절 인력 등을 활용해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초등학생 외에 영유아 대상으로 전국 31개 도시에서 총 64개 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며, 네가 참가하였듯이 중학생을 대상으로는 방과후 학습기회를 제공하는 드림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너도 장래 어른이 된다면 이런 기업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좋은 기업을 만들어 돈이 없어 배움에 접근하지 못하는 학생들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으나 네가 깊이 생각하여 보고 네 갈길을 정하여 보기 바란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잘못된 일들이 너무나 많다. 자랑스러웠던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 이후 늘 마음이 무겁고 기분이 우울하다. 말 한마디, 글 한 줄도 조심스러워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이 온 국민의 슬픔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보듬을 방법도 마땅치 않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얼마나 크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애도의 물결이 해외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평소 같으면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들려왔겠지만 올해 어린이날은 세월호 여파로 대부분의 기념행사가 취소되어 조용히 지나갔다. 이 기회에 미래 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는 기반이 제대로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이 많아도 지구는 돌고 태양은 다시 떠올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준다. 이번 5월 5일은 손녀 정하가 태어나고 첫 번째 맞이한 어린이날이라 우리 가족에게는 남달랐다. 걸음마도 못하는 아이가 뭘 알까만 그냥 바람이라도 쐬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 꽃, 나무, 동물에 멋진 하늘까지 보여줄 수 있는 세종특별자치시의 세종호수공원과 금강수목원을 찾았다. 행복도시의 참 모습을 한눈에 보여주는 세종호수공원은 도심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물의 면적이 32만㎡나 되어 일산호수공원보다 넓다. 호수공원은 국내 최대 규모에 물과 해변을 테마로 다양한 문화공연과 생태체험을 즐길 수 있는 5개의 주제섬이 있다. 작가들의 조각품이 전시된 중심수변광장을 지나면 호수중앙에 위치해 경관을 즐기면서 문화공연을 관람하는 수상무대섬, 시민들의 축제공간으로 활용되는 축제섬,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물놀이섬, 다양한 수생식물을 관찰하는 물꽃섬, 생태의 다양성을 체험하는 습지섬을 만난다. 또한 주차장이 여러 곳에 있어 사방에서 접근하기가 편하다. 150여m 길이의 모래사장과 최대 50m까지 물을 뿜어내는 고사분수, 호수를 일주할 수 있는 산책로(8.8㎞)와 자전거도로(4.7㎞)도 있다. 인근의 금강 물을 끌어들여 수량도 일정하게 유지한다. 호수 주변에 2013년 12월 개관한 국립세종도서관을 비롯해 2014년 12월 대통령기록관, 2017년 말 세종시국립수목원이 문을 열면 누구나 살고 싶은 행복도시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당진상주고속도로 서세종IC에서 가깝고, 1번과 36번 국도·96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 녹색댐이며 산소공장인 숲. 물과 숲은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들처럼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세종호수공원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의 금강수목원에 가면 뜻 깊고 실속 있는 피서를 하며 여유를 누릴 수 있다. 1994년 개관한 금강수목원은 금강의 푸른 물결을 감상하며 숲 속의 상쾌함을 즐길 수 있어 여느 수목원과 다르다. 연못과 산림박물관, 장미원과 열대온실, 숲속 쉼터와 구름다리, 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연정, 어린이놀이터와 광장, 동물마을 등 교육, 편익, 체육시설을 고루 갖춘 산림휴양공간에서 느리게 걸으며 다양한 웰빙체험을 할 수 있어 매력적인 곳이다. 불티교 방향으로 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물가의 산등성이에 있는 창연정 정자가 수목원의 위치를 알려준다.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기분으로 주변 경치가 아름다운 불티교를 건너면 가까운 거리에 수목원이 있다. 수목원 입구 들어서면 먼저 여러 개의 장승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백당나무, 화살나무 등 키 작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관목원을 지나면 인공폭포와 분수대가 있는 연못이 있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위에서 나들이 나온 어린이나 연인들이 먹이를 던져주면 팔뚝만한 비단잉어들이 몰려든다. 진달래ㆍ영산홍 등을 집단으로 식재한 철쭉원, 나무그늘과 벤치, 연못이 만든 풍경이 한적하고 평화로워 사색하기에 좋다. 만목원을 지나면 돔형 건물 열대온실을 만난다. 망고ㆍ왁스잠부 등 열대식물 340여종과 식충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온실은 열대과수원, 열대화원, 다육식물원 등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다. 온실에서 나오면 꽃잔디가 화려하다. 6월이면 하얀 아트펜스와 5,000여 본의 장미가 조화를 이루는 이곳에서 화려하게 축제가 펼쳐진다. 연못과 연결된 잔디광장 바로 앞에는 산림박물관이 있다. 산림사료의 영구적인 보존과 전시, 산림에 대한 국민계도, 자연학습교육을 목적으로 국립산림박물관에 이어 지방에서 최초로 개관한 곳이다. 지하1층, 지상2층의 전시실은 '숲으로 가는 길, 아름다움의 출발점, 숲이 들려준 이야기, 숲과 함께 사라지는 생명, 숲에서 삶의 질을 찾다, 숲은 희망이다'로 구성되어 있다. 미로원을 지나면 전국의 산야에서 꽃을 감상할 수 있는 야생 초화류를 수집해 조성한 야생화원, 다인용 나무의자에서 음식을 먹으며 휴식하거나 독서하기에 좋은 숲속 쉼터가 있다. 언덕길을 오르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메타세콰이어길이 펼쳐진다. 천연기념물인 독수리ㆍ멸종위기의 반달가슴곰ㆍ원앙이와 토끼 등 사육 동물의 습성과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동물마을, 숲속의 집ㆍ산림휴양관ㆍ물놀이장 등의 휴양림 시설이 이곳 반대편 골짜기에 있다. 동물마을에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창연정을 만난다. 금강수목원의 명물 창연정은 물가에 세워진 정자로 물과 숲이 어우러지며 만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도심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휴식처다. 정자에 오르면 비단결같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금강의 물줄기와 숲속의 집, 산림휴양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고, 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면서 편안히 휴식한다. 마을 뒷산을 오르듯 창연정과 연결된 산책로를 따라가면 조망이 좋은 구름다리를 만난다. 산림박물관, 메타세콰이어길, 동물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추억남기기를 하기에 좋다.
앉으면 작약이요, 서면 목단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천의 얼굴을 가진꽃이 바로 작약이다. 제1교무실 앞에 두 무더기가 있는데 한 무더기에서 벌써 작약이 만개했다. 처음에는 탁구공만한 꽃봉오리가 맺히더니 하루 사이에 활짝 폈다. 작약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겹꽃잎 작약과 홑꽃잎 작약이 그것이다. 이것은 홑겹잎 작약으로, 그 단아한 자태가 마치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듯하다. 뿌리는 약용으로 쓰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꽃말은 '수치'이다.
요즘 프로야구는 세월호 참사이후 경기중 응원에서 앰프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지나친 응원도 없다. 치어리더 응원도 없을 뿐 아니라, 홈런을 친 선수도 세레머니를 거의 하지 않는다. 국가적 사회적 분위기가 침울한 까닭이다. 그래도 경기는 치열하게 진행된다. 어쩌면 이전에 비해 선수들의 눈빛은 더욱더 빛난다고 보는 것이 좀더 타당할 것이다. 진정한 승부를 위한 각오가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최근 프로야구에서 눈에 띄게 변한 부분이 있다.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필자뿐 아니라 대부분이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아웃 세이프 판정에 대한 불만이 많았었지만 주심의 고유권한으로 보아 주심의 판정을 존중했었다. 특히 1루에서 그런일이 자주 발생했지만 선수나 감독, 코치가 항의를 해도 판정이 번복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것이 서서히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비디오판독을 하자는 것이다. 올해부터 미국에서는 홈런 뿐 아니라 아웃, 세이프에 대한 비디오판독을 실시하고 있다. 당연히 판정이 번복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추신수 선수의 판정 번복도 있었다. 이런 것이 요즈음 세계 야구의 흐름이다. 주심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어 도입한 제도가 제대로 된 판정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아직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는 홈런 여부 외에는 비디오 판독제를 도입하고 있지 않다. 미국처럼 아웃, 세이프에도 비디오판독제를 도입하자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현재의 추세대로 라면 내년에는 우리나라 야구장에서도 아웃, 세이프에 대한 비디오 판독이 실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계적인 추세와 팬들의 요구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디오판독이 실시되지 않고는 있지만 판정에 좀더 정확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1루에서의 판정이 예전에 비해 더욱 정확해 졌다고 보는 것이 좀더 타당할 것이다. 비디오판독 논란 이전에는 1루에서 세이프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었다. 주자와 공이 비슷하게 1루수 글러브로 들어가면 거의 아웃 판정을 받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1루에서 세이프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야구경기를 자주 보는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결국 비디오판독 이전에 스스로 변화를 택한 것이다. 기존의 아웃, 세이프 판정을 좀더 자세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수도 있고, 거의 비슷한 타임에서 아웃 판정하던 것에서 정확한 판정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정황은 순전히 필자의 생각이긴 하다. 최근에 본 몇 경기만으로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야구경기에서 변화가 있다는 것은 감지할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야구팬들의 요구가 있다면 변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심판들은 더 어려워 지겠지만 시대적 요구를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시대에 맞는 판정을 하고 흐름을 따라야 현재와 같은 프로야구 흥행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심판들의 노력을 높이 살 만 하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정책이 펼쳐져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수학여행을 금지시키고 안전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 역시 진작에 있었어야 하는 것들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되,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교육에만 매달려서는 곤란하다. 전 국민의 안전의식이 앞서야 된다는 이야기이다. 인도를 걸어갈때 아파트 입구나 골목입구에서 나오는 자동차를 자주 목격한다. 지금까지 보행자가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구에서 일단 정지하여 보행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차를 본적이 과연 몇번이나 있는가 생각해 보자. 거의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도로에서 자동차가 계속 달리고 있어,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음에도 보행자가 지나가는 가운데에 차를 세우곤 한다. 물론 필자도 여기에 해당된다. 어차피 큰 도로로 나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잠시 멈췄다가 보행자가 지나가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것들은 운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골목에서 나오는 차를 보면 보행자가 멈춰야 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자동차가 멈추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안전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안전한 사회가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안전수칙을 지키라고 가르치면서 어른들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잠시 빗나갔는데, 교육정책의 추진도 변화에 따라야 한다.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거나 교육행정기관의 권위주위가 그대로 지속돼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이다. 교육지원청으로 명칭이 바뀐지 수년이 지났지만 교육지원청으로 생각하는 교사들은 거의 없다. 예전의 교육청 일 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상황이나 현실 판단없이 공문으로 시행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학교는 그것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교육과정 개편도 마찬가지이다. 의겨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은 2009개정교육과정의 집중이수제가 도중에 폐지에 가깝게 변화되었다거나, 중학교의 스포츠 클럽활동도 쉬운 행보는 아니다. 여러가지 문제점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장공모제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존 교장들의 임기연장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수용하지 않고 그대로 추진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전권을 가짐으로써 비리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무시하고 도입됐다. 공모제로 교장을 임용한 학교의 변화가 무엇인지 교육부에서는 알고 있는가. 일반학교와 뭐가 달라졌는지 교육적 효과가 충분히 드러난 것이 있는가. 교사의 입장에서 볼때 그런일은 전혀 없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교장공모제는 요지부동으로 그대로 시행되고 있다. 왜 변화가 없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공모제 말고도 다른 대안으로 논의될 수 있는 교장 임용방식이 많음에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프로야구에서는 불과 1-2개월 사이에 변화가 일어났다. 팬들의 요구를 거슬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교육계의 요구를 그대로 무시해서는 안된다. 조그만 변화부터 시작할때 학교교육은 크게 발전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무리한 정책의 추진보다는 변화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파악하여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요즈음 교육현장의 중론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로야구계의 변화를 교육부에서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5월을 맞이하여 우리 가슴에 희망을 품어야 할 때인데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우리 모두가 가슴 아파하는 시간 속에갇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국가가 뭐니 민족이 뭐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를 떠나서 가지고 있는 관심사 중에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은 저의 어린 자식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요인이 돈도 아니고 머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는 이미 지식경제 시대로 접어들었기에 우리 자녀들이 두뇌를 잘 쓰지 못하면 변화하는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두뇌강국이 되지 않으면 미래도 없게 됩니다. 이같은 세계 경쟁 사회에서 우리 자녀가 당당한 자신의 삶의 인생에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이 없다면 인생에서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 이것을 우리는 '자아 존중감 혹은 자존감'이라고 부릅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자존감은 "나는 다른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만한 소중한 사람이다." 라는 자기 가치감과 나는 유능한 사람이다. "내게 맡겨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라는 자신감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즉 자존감은 타인의 평가나 객관적인 조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자존감은 낮을 수 있습니다. 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 전 전교 10등 안에 드는 편이예요. 하지만 무슨 일이든지 최고가 아니면 늘 나는 어쩔 수 없어 라는 생각이 들고 제가 체육을 못하는 데 그게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어요. 친구들이 모두 날 사랑해주어야 하고 세상 모든 일이 나를 위해서만 돌아가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요." 이 학생의 경우 공부는 잘하지만 자신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어 일상생활이 불행한 것입니다. EBS 아이의 사생활에서 자존감 관련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자존감이 높은 자녀들은 본인의 모습을 그릴 때 활동성이 크고 밝은 표정 선명한 색깔로 그리는데 반해 자존감이 낮은 자녀는 신체상을 작게 그리거나 표정 없이 표현했습니다. 단체로 텐트를 쳐보는 실험에서도 자존감이 높은 자녀는 다시 해보자 이렇게 해보자 하며 적극적인 문제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자존감이 낮은 자녀는 방관자적 입장에서 "너 때문이잖아." 하며 포기했습니다. 이렇게 자존감이 높은 자녀들은 항상 자신감에 차 있으며 어려움이 닥쳤을 때도 끝까지 도전합니다. 또한 혹시 실수를 하더라도 순순히 인정하고 모든 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자녀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을 만큼 가치가 있다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늘 불화에 시달리게 될 확률도 높습니다. 하버드 대학 교육학과 조세핀 킴은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자존감이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이라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존감은 비단 학업 뿐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줍니다.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를 극복할 때 자존감이 낮은 사람보다 높은 사람은 더 잘 이겨내고 성공합니다. 직업, 우정, 또는 가족 관계에 이르기까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더 잘해 낼 것입니다. 자존감은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자 근원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깊어야 거목이 될 수 있듯이 자녀에게도 긍정적인 자존감을 심어 주어야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존감은 자녀가 행복한 인생을 사는 데 있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그러기에 가장 먼저 심어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이런 힘을 길러주기 위하여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조금은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아이 잘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에는 부모가 생각하는 그림처럼 되는 아이는 없다. 좋은 부모는아이 생각대로 그림을 그리고 꿈꾸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의 꿈, 아이의 능력은 이런 부모 아래서 쑥쑥 자란다. 자녀의 능력을 키워주는 부모, 무엇이 다를까? 먼저 부모 스스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즉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스스로 일관성 있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부모의 일관성 있는 언행이 아이의 가치관을 만들고 행동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부모도 인간이다. 때로 화도 내고 어제 한 말을 바꾸기도 한다.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아이 앞에서 정작 비밀을 감추기도 한다. 이럴 때 부모도 왜 그런지 이유를 공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혹은 인간이라는 것을 공감하는 것도 좋다. 문제는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가에 달려있다. 아이는 자신의 삶에서 본보기를 닮으려고 한다. 아이의 본보기는 아버지, 엄마, 힘센 반 아이,못된 친구일 수 있다. 때로 스포츠 스타일 수도 있고 연예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문방구점 주인이 될 수 있고선생님일수 있다. 아이에게 훌륭한 본보기를 만들어주자. 부모 스스로 본보기가 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오늘 어딘가에서 만난사람, 이야기가 담겨있는 사람들, 즉 위인전을 읽도록 만들어주자. 그것이 꿈꾸는 아이를 만든다. 좋은 부모는 아이가 느끼고 생각하도록 기다려주는 사람이다. 때로 아이가 실패 했을 때도, 점수가 형편없이 나왔을 때도 그것을 야단치고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도록 기다려주고 도와주는 사람이다. 반대로 나쁜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아이의 점수가 자녀 양육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삼는다. 자녀 점수는 부모 능력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에게 본보기를 만들어주는 일에 게으르다. 부모 스스로 본보기가 되지도 못한다. 점수 이외에 가치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쁜 부모는 아이가 기대하는 것이 나오지 않을 때 야단만 친다. ‘틀렸잖아.’ ‘아니야.’ ‘그것도 못하니?’ ‘하지 마’ 등의 부정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한다.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느끼고 생각하도록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쁜 부모는 아이의 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해주기를 좋아한다. 아이에게 책임이 있어도 ‘그건 네 책임 아니야. 친구가 나빠.’, ‘네 책임 아니야. 네 선생님이 나빠.’, ‘네 책임 아니야. 내가 해결해 줄 게.’ 이렇게 해결하려고 든다. 숙제가 어렵다고 징징대면 ‘가지고 와.’ 정답만 가르쳐준다. 아이가 넘어지면 혼자 일어나도록 기다리지않는다. 실패 했을 때 언제나 해결해주려고만 한다. 아이가 문제를 극복하도록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 나쁜 부모의 가장 큰 특징이다.
누구나 꿈을 꾼다. 아이도 꿈을 꾸고 엄마도 꿈꾼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부모가 꾸는 꿈과 아이의 꿈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아이의 꿈을 대신 꿔준다. 꿈까지 빼앗는 것이다. 엄마가 대신 꾸는 꿈을 강요하면 아이들이 따라할까? 따라하는 아이, 따라하지 않는 아이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꾸는 꿈을 꿔야 행복하다. 이젠 부모 꿈이 아닌 아이의 꿈을 꾸도록 하자. 아이의 꿈은 전교 1등이 아니다. 대통령도 장관도 아니다. 아이의 꿈은보고 느끼는데서 생긴다. 아이가 보고 느끼는 그림을 그리게 해라.뛰놀 곳으로 내보내라. 아이는 소꿉놀이를 하면서 엄마 꿈을 꾸고, 아빠 꿈을 꾼다. 아이는 자연에 나가서 뛰어놀고 세상을 탐구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자연의 고마움도 배우고 행복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운다. 아이는 친구들과 놀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게 아이의 꿈이다. 작은 씨앗이 움터서 커다란 나무가 되듯이 아이도 꿈을 꾼다. 아이를 큰 나무로 만들려면 아름다운 추억을 심어주어라. 아이가 꾸는 꿈은 부모가 강요하는 꿈이 아니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꾼다. 그것이 아이의 꿈이다. 아이는 꿈을 먹고 자란다. 아름다운 꿈은 나무의 기름진 거름이다. 하지만 억지로 주는 비료는 아무리 좋아도 화학비료에 불과하다. 화학비료로 키울 것인가 유기농으로 키울 것인가 고민하여라. 화학비료로 자란 식물은 바람에 잘 쓰러진다. 하지만 유기농으로 키운 식물은 바람에 쓰러지지도 않지만 건강하다. 세상에 되고 싶은 꿈은 많다. 그런데 무엇이 되는 꿈보다 어떤 사람으로 되는 꿈을 꾸어라. 대통령이 되는 꿈보다 세종대왕이 되는 꿈, 링컨 대통령을 닮는 꿈 말이다. 부자가 되는 꿈보다 빌게이츠처럼 창의적이고 선한 부자가 되는 꿈 말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존경받는 사람은 부자도 권력자도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전달해준 사람이다. 내 아이 누군가를 따를 사람을 만들도록 하자. 누군가에 의한 훌륭한 모습을 닮도록 하자. 내 아이 삶은 부모의 삶이 아니다. 그리고 아이의 삶을 대신해줄 권리도 없다. 세상에 무엇이 소중한지, 아이 스스로 찾아 도전하고 개척하도록 하자. 그러면 아이는 자신의 일에 행복을 찾을 줄 알게 될 것이다.
이 화창한 날씨, 집에서 그냥 머물 수 없다. 아파트 뒷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일월공원이라도 나가야겠다. 산책로에 나간 지 오랜만이다. 호수 주변의 자연은 어떻게 변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요즘 주말에 부쩍 늘어난 것이 자연과 가까이 하는 일이다. 호수 입구에서 일월공원 쪽으로 가니 애기똥풀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늘 다니던 산책길을 벗어나면 이렇게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 아파트를 배경으로 기록사진 한 장을 남긴다. 그런데 벌써 여름인가? 잠자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논에는 물이 가득하다. 무논이다.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써레질을 핸 놓았다. 한 쪽 모판엔 모가 자라고 있다. 모판을 덮었던 비닐은 벗겨지고 없다. 그만치 기온이 올라간 것이다. 이제 좀 있으면 모내기가 시작되리라. 모를 보면서 교육을 생각한다. 도시 아이들은 이것을 모르고 쌀나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일월호수의 메타세콰이어길. 산책로 좌우에 늘어서 있는 모습이 마치 열병식을 하는 것 같다. 어느새 연두색잎이 무성하여 그늘을 만들었다. 일월공원 산책로의 특징은 버드나무길, 벚꽃길, 메타세콰이어길, 중국단풍길이 있어 지루함을 덜어준다. 야외공연장쪽으로 가니 지난 가을에 이식한 느티나무가 새순을 올렸다. 옮겨심기가성공한 것이다. 이팝나무는 하얀꽃을 매달고 있다. 꽃 전체가 마치 쌀을 튀긴 것 같다. 자연은 순리를 거스리지 않는다. 꽃이 피는 시기가 나무마다다르다. 서호중학교 교정에도 이 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일월호수에 배 두 척이 떠 있다. 줄에 매여 있는데 이 배의 용도는 무엇일까? 란국농어촌공사에서는 생태계 교란 외래어종 및 개체 수 조절을 위한 포획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호수 가장자리 다섯 곳에 그물이 드리워져 있다. 이 곳은 먹이가 풍부하여 배스, 떡붕어 등이 지나치게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산책로 길이는 1900m, 한 바퀴 돌았는데 운동량이 부족하다. 아내는 운동기구를 이용한 운동을 하고 필자는 한 바퀴 더 돈다. 공원이 사람들로 잠시 활기가 넘친다. 유치원 다섯 곳이 연합으로 이 곳에서 학부모 참여교실을 열었다. 교육이 성공하려면학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산책로에 풍등이 수 십 개 매달려 있다. 어느 교사에게 물으니 설명해 준다. 어린이를 통해 가정에 과제를 내 주었다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말, 아이가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을 한지에 적어 오면 교사들이 풍등을 만들어 매달아 놓는다.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풍등을 보니 가족의 소중함이 나타나 있다."○○야, 네가 아빠 엄마 딸로 태어나 주어 고맙다. 사랑해!" "건강하게 자라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고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을 게요"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작품에는 스티커를 붙이게 안내하였다. 문득 우리 딸과 아들, 유치원 생활이 생각난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학부모 참여수업에 참가했는데 자녀와함께 작품 만드는 것이 서툴다. 긴장된 가운데 땀을 뻘뻘 흘려가며 어려움을 겪던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통해 자식과 좀 더 가까와질 수 있다. 5월의 신록이 눈부시다. 까치 가족도 나들이를 나왔는데 새끼까치가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린다. 직박구리는 날카로운 부리를자랑하며 유치원 어린이들을 환영하고 있다. 호수에선 백로가 얕은 물을 거닐며 물고기를 노리고 있고 호수 위를 왜가리가 날고 있다. 오리부부는 짝을 지어 헤엄을 치고 있다. 왕송호수에서 발견한 물닭을 여기서도 발견하였다. 눈부신 5월이다.
어떤 사람의 꿈에 관한 이야기다. 내 유치원 들어갈 때 꿈은 유엔사무총장, 초등학교 입학할 때 꿈은 대통령, 2학년으로 올라갈 때 꿈은 장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꿈은 선생님,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할 때 꿈은 공무원,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꿈은 대기업 사원이 되는 것, 그러나 대학교를 졸업할 때 꿈은 취업, 하지만 지금은 취업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어릴 때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은 세상 무엇보다 신기하고 경이롭다. 아이에게는 무한한 꿈이 있다. 부모는 아이의 꿈을 꾼다. 대학 교수, 의사, 판사 등 부모가 대신 꿔주는 꿈은 크기만 하다. 부모는 자신이 꾸는 꿈을 위해 다짐하고 노력한다. 초등학교로 들어가면 성적표가 눈에 들어온다. 집에서는 언제나 1등, 때로 100점짜리 점수를 받을 때는 확신에 선다. 그러나 아이의 점수는 늘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때로기대에 못 미칠 때가 있다. 따로나아지지 않아실망할 때도 있다.부모의 심정은 여러 가지다. ‘내 아이 지금 등수 어떻게 하지?’ 여전히 어떤 부모는 아이의 등수가 마음을 어지럽힌다. 어떤 부모는 일찍이 유치원 때부터 아이의 점수 경쟁에 매달렸다. 원어민이 가르치는 유치원, 피아노 학원, 학습지 등 입소문 난 것은 모두 매달렸다. 하지만 차츰 경쟁에 매달린다. ‘공부도 경쟁이야. 선행학습을 해야 남을 따라갈 수 있어.’ 부모는 학원으로 아이를 보낸다. 하지만 언제나 좋은 점수는 아니다. 부모의 기대는 조금씩 줄어든다. 부모는 조금씩 깨닫는다. ‘내 아이 공부 생각대로 되지는 않아.’ 시간이 지나면서 꿈도 작아진다. 때로 화도 난다.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유치원 때 꾸던 내 아이 꿈은바꿔진다.초등학교 졸업 때 내 아이 꿈은 선생님, 그러나 말 듣지 않는 내 아이, 맘대로 되지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자녀를 다그친다. ‘넌 어떤 세상인데 그러다가 나중에는 밥벌이나 할 수 있니?’ 그러나 아이는 부모가 조절하는 리모컨을 벗어나려고 한다. “엄마, 나 학원 싫어. 공부, 잘 하고 싶지만 맘대로 되지 않아.” “뭐라고?” 커갈수록 다툼이 생기고 아이와 대화도 줄어든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점점 고집 센 아이, 관계도 삐뚤어져 때늦은 후회를 한다. 부모가 모르는 것이 있다.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 영재, 과연 인생의 영재가 될까?공부는 부모 욕심대로 되지는 않는다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전교 1등 언제까지 1등이 아니다. 자녀의 능력을 키우는 부모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녀가 자신의 삶을 살도록 도와준 부모들이다. 자녀 자신의 삶이란 부모가 선택한 아이의 삶이 아니라 자녀가 선택한 삶인 것이다. 자녀 능력을 키워주는 부모, 방해하는 부모 무엇이 다를까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알렉산더의 부왕 필리포스는 이웃 나라와 전쟁을 자주 했다. 마케도니아는 연전연승하고 영토는 넓혀져 갔다. 그러나 알렉산더 왕자는 ‘내가 점령해야 할 땅을 아버지가 다 빼앗는 구나’ 한숨을 쉬었다. 필리포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알렉산더 왕자는 20세의 젊은 나이로 왕이 되었다. 왕이 되자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작은 도시(폴리스)들은 어린 왕을 깔보았다. 그 중에 테베 시는 어린 알렉산더를 깔보고 반란을 일으켰다. 알렉산더는 직접 병사를 몰고 가서 반란군을 토벌하고 테베시의 전 시민을 노예로 팔아 버렸다. 소문이 퍼지자 마케도니아의 영향력을 받던 폴리스들은 잠잠해졌다. 얼마 후 알렉산더는 세계 제패의 꿈을 품고 부하들을 모았다. “앞으로 우리는 세계를정복한다. 폴리스가 아니라 발 닿는 세상 어디로든지 우리 땅으로 만든다.” 말을 마치자알렉산더 대왕은 소장하고 있던 보물을 전부 병사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명령했다. 그 말을 들은 창고지기가알렉산더 대왕 앞으로 급히찾아왔다 “저로서는 폐하의 뜻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폐하의 보물창고는 텅 비게 됩니다.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러자 알렉산더 대왕이 대답했다. “창고가 빈다고 나의 보물을 다 내준 것이 아니요. 나의 보물은 창고 안에있지 않소.” 알렉산더는 손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폐하, 저 먼 곳이라니요? 그게 무엇입니까?” “나에게는'꿈'이 있소.” “그래도 보물이 아깝잖아요.” “나는 저 먼 곳 다른 나라 널려 있는 보물을 차지하겠소. 그래서세계를 차지할 것이오.”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지금의 터키지역) 왕이 되어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군사력을 인도까지 진출시켰다. 알렉산더는 정복한 국가에 그리스 문화를 접합하여 헬레니즘 문화의 토대를 쌓았다.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산맥을 넘어 갈 때의 일이다. 대왕이 말을 타고 가다보니 구렁텅이에 빠진 마차를 끌어내느라 고생을 하고 있는 젊은 병사가 눈에 띄었다. 알렉산더는 가던 길을멈추고한동안 바라보았다. 병사는 있는 힘을 다했지만 힘이 부쳐서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이렇게 고생하더니 병사는 마차에 실려 있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운반하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젊은 병사가 안쓰러워 다가갔다. “도대체 그 짐이 무엇이 길래 그렇게 고생을 하느냐?” 젊은 병사는 대답도 않고 짐을 열심히 옮기기만 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다시 물었다. “말이 끌어내지 못하면 다른 병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서 도움을 받든지, 아니면 그냥 상관에게 보고만 하면 될 텐데, 구태여 그렇게까지 고생하느냐. 자네 책임이 아닐 것 같네.” 그러자 병사는 알렉산더 대왕인 줄 모르고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 “네, 장교님 이 짐은 우리대왕님의 보물입니다. 고생스러워도 제가 잘 챙겨야지요.” 그 병사의 대답은 알렉산더의 대왕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말했다. “이봐라! 내가 알렉산더 대왕이로다! 과연 훌륭한 병사로구나.” 놀란 그 병사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부동자세로 섰다. 대왕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짐을 다음의 목적지 부대까지 가져가라. 그리고 너의 짐에다 집어넣어라! 그 보물은 모두 너의 것이 될 것이다! 누가 묻거든 나 알렉산더 대왕이 직접 너에게 주었다고 말해라!” 대왕은말을 마친 후 자리를 떠났다. 우리의 보물은 어디에 있을까? 무인도 해적들이 감춰놓은 보물섬에서 찾아야 할까? 복권에 당첨되어야 할까? 진정한 보물은 지금 하고 있는 일 자체가 가장 값진 보물은 아닐까?그리고 가까이 고락을 같이 하는 가족이 가장 비싼 보물은 아닐까?
의왕시 왕송호수를 찾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 해를 거듭할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들 삶도 복잡하고 팍팍하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신경을 끊고 무관하게 살아 갈 수 없다. 다만 적절한 치유가 필요하다. 그 치유 방법 중에 하나가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 아닐까?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왕송호수 주변을 찾았다. 둑 아래엔 입북작목반원들이 가꾸는 비닐 하우스가 여러 동 있다. 작목반원들은 상추 등 생산물들을 구운동에 있는 농협 하나로 마트 등에서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필자와 관계있는 어느 한 동에 들어가니 재배작물이 바뀌었다. 해마다 상추였는데 지금은 토마토가 열매를 탐스럽게 맺고 있다. 비닐하우스 속 토마토. 도심 속 가까이에서는 처음 본다. 노지에서처럼 기둥을 세워 쓰러지지 않게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천장에서 끈이 내려와 줄기를 집게로 잡는다. 끈이 나무 기둥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 베란다 텃밭에 적용해도 되겠다. 이 저수지는 과거 명칭이 왕송저수지였으나 최근 왕송호수로 바뀌었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의왕시이지만 수원시 입북동과 경계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데크를 걸으니 오붓한 분위기가 살아난다. 수원 광교저수지 광교마루에도 보행자를 위한 데크가 있듯이 이 곳에도 시민들이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데크를 거닐며 호수를 내려다보니 호수 위에 새둥우리가 보인다. 그 위에 검은색 오리 한 마리가 한참동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곳을 찾는 조류만 120 여종 된다는데 차음 보는 새다. 몸 전체가 검은색인데 이마와 부리만 하얗다. 무슨 새일까? 흰부리오리? 혼자 붙여본 이름이다. 인터넷에서 도움을 요청하니 ‘물닭’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조류전문가의 검증이 필요하다. 특이한 풍경은 호수 위에 솟대를 세워 놓은 것. 대개 마을 입구에 민간신앙으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솟대다. 광교산 사방댐 입구에도 솟대가 있는데 호수 위에 솟대가 이채롭다. 그렇다면 나무로 만든 새 위에 진짜 새가 앉을 수도 있겠다. 앞으로 이 곳에 오면 저 새 둥지를 유심히 보아야겠다. 부부생활부터 산란, 알 품기, 부화, 새끼 기르기 등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호수에서 이러한 장면 여간해서 관찰하기 어렵다. 조류의 생태를 통해 자연의 신비로움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바쁜 삶속에서 시간을 내어 자연을 가까이 하려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새로움의 발견이다. 자연은 늘 같은 것 같지만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변화에 대한 관심은 경이로움에 이른다. 그 경이로움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호기심은 탐구정신으로 이어진다. 경험에 따르면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심성이 곱다. 자연을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치고 악인이 없다. 악했던 사람도 선한 사람으로 변한다. 자연은 심성 치유의 효과가 있다. 울적했던 마음도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훨훨 날아가 버린다. 기분을 전환할 수 있다. 세상만사 근심을 잊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을 찾는다. 오늘은 산과 들, 호수 중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