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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새누리당 사무총장 “10월 중 교총 등과 간담회 추진” 새누리당과 한국연금학회가 재직 공무원의 부담액을 43%가량 올리고 연금 수령액을 최대 34% 가량 줄인다는 내용의 개혁안을 놓고 토론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한국교총 등 ‘공적연금개악저지를위한공동투쟁본부(공투본)’의 물리적 저지에 막혀 공론화하는데 실패했다. 공투본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은 거대 민간금융회사의 휘하에 있는 한국연금학회를 앞세워 공적연금 제도 자체를 ‘은행 적금’ 수준으로 무력화 하는 공무원연금 개악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전‧현직, 미래공무원에게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특히 공투본은 “대형 민간 보험사 등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연금학회가 오로지 공적연금의 재정안정화라는 논리만 내세워 그동안 국민연금을 용돈 수준으로 전락시키더니 이제는 공무원연금을 개악하려 하고 있다”며 이른바 개혁안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시했다. 이와 관련해 교총 등 공투본은 ▲새누리당과 민간자본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는 연금학회는 공적연금 황폐화에 대해 사과하고 해체할 것 ▲당‧정‧청은 국민노후생활 보장이라는 국가책무를 인식해 ‘공적연금 복원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할 것 ▲새누리당은 국민연금과 공무원 연금 등 공적연금 원상회복에 매진 할 것 등을 요구했다. 공투본은 이해당사자인 공무원들의 의견은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정부와 여당이 공무원연금 개정을 추진할 경우 이에 대해 적극 대응하기로 하고 11월 1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교총은 이와 별도로 같은 날 전국 교육대표자 결의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국회 법사위원장 “사회적 합의 없으면 관련법 처리 안 해”=한편 공투본은 이날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만나 간담회를 갖고 현재 정부와 여당일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정에 대한 문제점을 전달했다. 백복순 교총 사무총장은 “기본적으로 공무원연금은 유예된 급여의 개념”이라며 “이처럼 특수한 상황은 고려치 않은 채 정부가 일방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통해 이를 강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고 공무원연금이 추진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사회적 공론화 절차와 합의가 없다면 법사위에서 관련법 처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백 총장은 25일 이군현 새누리당 사무총장과도 면담을 갖고 “새누리당의 일방적 연금 개악 추진에 교원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며 “공적연금 개혁에 교원 등 당사자가 반드시 참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 총장은 교원 등 당사자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며 교총 등 공투본 대표자와 10월 중 간담회를 갖겠다고 약속했다.
새누리당 10월 중 입법안 제출 로드맵 불구 당 일각 “공무원측 주장 일리 있어” 새정치민주연합 “공무원 의견 반영한 절충안 필요” 여야 합의 과정도 험난할 듯 22일 오전 새누리당과 한국연금학회가 개최하려 했던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공무원들의 집단 반발로 무산됐지만 새누리당은 예정대로 공무원연금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조직적이고 완강한 저항을 확인한 상황에서 무조건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과 연금학회는 이날 공개 토론회는 개최하지 못했지만 비공개 회의를 통해 연금학회안에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이한구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원장은 “(연금학회안이)전문성을 바탕으로 연구된 방안인 만큼 이 정도면 괜찮다 싶다”며 “새누리당 특위에서 준비하고 있는 개편안에 반영할지를 내부논의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무산된 토론회를 다시 열기 보다는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국민 여론 수렴절차를 거친 뒤 당의 안을 마련하고 이를 최고위원회와 새누리당 차원의 공청회, 의원총회 의결 등을 거쳐 당론으로 확정한 뒤 10월 중으로 입법안을 제출한다는 로드맵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토론회 자체를 무산시킬 만큼 저항이 거센데다 한국교총 등이 참여하고 있는 ‘공적연금개악저지를위한공통투쟁본부(공투본)’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 대응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공무원단체의 입장을 들어보면 연금제도 개혁에 반영할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며 “민간보다 적은 월급에 제한된 노동3권, 연금이 후불적 임금 성격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강경드라이브에서 한 발 물러섰다. 현재 논의 되고 있는 급격한 개정에 대한 절충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 당내에서 지역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수도권 및 충청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공무원들의 반대표를 의식한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당내 기류다. 당론을 만들었다고 해도 국회 내 논의과정도 문제다. 나성린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거쳐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공무원연금법 개정 논의 구조에 최종적으로 야당을 끌어들이겠다는 입장이지만 부담스런 법개정에 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책 관계자는 “당의 입장이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공무원연금을 손봐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한다”면서도 “적절한 타협과 절충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개정안이 올 경우 거수기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상황이어서 여야 합의도 중요한 절차가 될 전망이다. 이 위원장은 22일 공투본 대표단과 간담회에서 “새누리당이 준비했던 토론회처럼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찬성과 반대하는 입장이 진지하게 의견을 주고 받는 토론회를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만일 이 토론회가 성사될 경우 공무원연금 개정 논의의 새로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푸르덴셜사회공헌재단과 한국중등교장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2014 제16회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The Prudential Spirit of Community Awards)에서 본교 환경동아리 ‘다살이(지도교사 조무현)’가 동상을 수상하였다. 본교 동아리 ‘다살이(함께 살아간다는 순우리말)’는 1995년 강릉 문성고 ‘환경감시반’으로 조직돼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주제로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해 온 환경동아리로 성장해 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연을 느끼고 교감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차츰 자연을 가꾸고 돌보며 환경과 인간이 살을 맞대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다살이는 환경정화 위주의 체험활동에 머물렀던 기존 환경동아리와는 달리 보고, 듣고, 만지며 자연과 소통하고 친환경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청소년의 친환경적인 가치관 정립을 위해 가꿈과 나눔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가꿈 활동을 통해 지역 내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남대천을 비롯한 경포 습지 환경 정화 및 하천 모니터링, 숲 가꾸기 체험, 하천자연도 평가와 생태조사, 숲 탐방, 경포호 철새모니터링과 생태기행, 쓰레기 문제와 재활용 체험, 유기농 체험 등과 같은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직접 찾아가 환경 정화 활동을 하였다. 지난 4월에는 청소년 남대천탐사단 출범과 함께 물사랑 선포식을 가졌으며 남대천탐사단 40명은 하천 수생식물을 조사하고 모니터링 활동을 시작했다. 올 해는 강릉의 젖줄인 남대천 살리기에 매진할 것이며 10월에는 남대천 게릴라 문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슬픔을 함께 나누면 반,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처럼 지역의 각종 행사 및 일손 돕기, 사랑의 연탄나누기, 장애인 시설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펼치는 나눔 활동에도 직접 참여함으로써 봉사활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도 하였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기르기 위한 일환으로 선생님과 학생들의 가슴에 노란색 리본을 달아주며 슬픔을 함께 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사회의 의미를 알게 되었으며 건전한 학교문화 조성의 일환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아름다운 사회 환경을 만드는데 앞장서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활동을 인정받아 다살이는 환경부 장관상을 비롯하여 매년 여러 상을 수상하였다. 다살이는 지역 내 시민단체와 관계기관과의 연계도 두드러진다. 단순히 예산을 지원받는 차원이 아니라 환경보전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연간활동 계획을 세워 실천하여 왔다. 지난해는 동부산림청과 ‘청소년 산림봉사단’을 꾸려 ‘숲 가꾸기’를 전개하였으며, 올해는 강릉의 제21과 ‘청소년 남대천탐사단’을 발족해 ‘하천 살리기’에 나설 예정이다. 이 외에도 강원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 강릉시종합자원봉사센터, 강릉 MBC와 공동으로 자연을 가꾸고 돌보는 방식의 환경체험학습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청소년과 시민의 환경보전 의식 고취에 이바지 하였다. 올해는 강릉시로부터 신리천 정화 및 모니터링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지역의 환경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는데 자발적으로 앞장서 왔다. 다살이가 추구하는 ‘공존’은 이젠 자연을 넘어 삶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다살이는 동아리 자체 내 5개조로 편성된 소모임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옴시디움’은 우리말 알리기 캠페인 활동과 양로원 위문봉사, ‘Passion(열정)’은 일손돕기봉사, ‘위스트링’은 음악봉사, ‘솔올’은 호스피스 활동과 벽화그리기, 가족봉사단인 ‘향가봉’은 유니세프와 연계해 활동하고 있다. 소모임에는 지역 내 타 학교 학생들의 참여도 적극적인데, 각 소모임마다 2~3개 교를 연합해 운영하면서 학생 간 교류의 폭도 넓혀가고 있다. 환경문제는 지속가능발전과 맞물려 삶의 전 영역과 연관되어 있는 복잡한 주제이다. 단순히 자연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환경을 돌아보고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살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이다. 다살이는 지금까지 교내·외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봉사활동의 진정한 의미를 실천하고 있으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아이들의 창조성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다살이 활동을 하면서 배운 봉사정신은 사회생활에서도 큰 밑거름이 되리라 여겨진다. 무엇보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몸소 실천해 온 아이들의 봉사활동 하나하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다살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생활하면서 단순히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것들을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진다면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워 질 수 있다며 다살이 활동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다살이는 단순히 자연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환경을 둘러보고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자연과 사회 속으로 한 발 더 다가가는 봉사 동아리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아름다운 가을은 마음을 더욱 빛나고 아름답게 만든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공기는 마음을 유쾌케 한다. 가을이 되면 하늘이 높아지듯이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고귀한 꿈은 더욱 높아가고 정신적으로 더욱 살쪄간다. 성인은 친구관계도 굳은 신뢰로 묶여 있다. 단금지교라는 말이 있다. 역경 계사 상에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자른다는 뜻이다. 두 삶이 마음을 하나로 합친다면 그 예리함은 쇠도 잘라낸다. ‘전국시대 조나라의 염파와 인상여의 ’문경지교‘도 같은 뜻이다. 서로를 위해 목이 잘리더라도 후회가 없는 관계이다. 성인 같은 선생님도 친구와의 관계가 늘 두텁다. 誠於信,성어신이다. 신뢰를 중요시한다.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을 안다. 그래서 학생들과의 관계도 신뢰를 지키고 선생님 상호간도 그렇고 학부모님과의 관계도 그렇다. 성인은 눈앞의 작은 일에 얽매여 판 전체를 잘못 읽는 일이 없다. ‘가랑잎이 눈을 가리면 태산을 보지 못한다. 이파리 하나가 눈을 가리면 태산도 보이지 않고, 콩 두 알이 귀를 막으면 천둥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이는 성인이 아니다. 성인 같은 선생님도 그러하다. 눈앞의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 언제나 작은 일보다 큰 일에 관심이 많다. 나무보다 숲을 본다. 판 전체를 읽는 일에 관심이 많다. 성인은 불행이나 불운 등 부정적인 일에 낙심하지 않는다. 사물이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가 난다. ‘대저 사물이란 그 평정(균형)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낸다. 즉 사물이 평형을 얻지 못하면 소리가 나는 법이다.’ 불행, 불운이 사람을 뒤흔들어 놓아도 결국은 사람을 단련시켜 큰 인물이 되게 하고 큰 걸작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균형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는다. 성인은 무엇이든 참는다. ‘이를 참을 수 있다면 무엇인들 참지 못하겠는가’ 공자의 말이다. 이것을 용인할 수 있다면, 용인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성인은 무엇은 참고 무엇이든 용인하였다. 마음이 한없이 넓다. 바다와 같은 하늘과 같다. 성인 같은 선생님도 마음이 한없이 넓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 하기가 힘들다. 무엇이든 참고 무엇이든 용납한다. 참고 또 참고 용인하고 또 용인한다. 성인은 ‘하늘을 즐기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유연하게 대처한다. 싫은 상대가 누구든 있다. 그 싫은 상대를 피할 수만은 없다. 싫은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바꿀 줄 안다.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 받고 병나는 것을 안다. 대국이면서 소국을 섬기는 것은 하늘을 즐기는 것이다. 대국이 소국을 섬기는 것 보았나? 거의 보지 못했을 것이다. 대국이 소국을 즐기는 것이 하늘을 즐기는 것이다. 이는 지혜로운 이다. 소국이 대국을 섬기는 것은 많이 본다. 소국은 대국을 벌벌 떨면서 섬긴다. 대국이 두렵기 때문이다. 성인 같은 선생님은 대국이 소국을 섬기는 태도도 유연하게 대처한다. 이렇게 함이 하늘을 즐기는 것임을 안다. 수많은 학생들을 상대하다 보면 정말 상대하기 싫은 학생들이 나온다. 그래도 하늘을 즐기는 태도로 그들에게 유연하게 대처한다. 성인은 아내를 대함에 변함이 없다. 일관성이 있다. 가난할 때는 좋아하고 풍족하게 되면 아내를 독충처럼 취급하는 그런 이가 아니다. 그러니 아내와 싸울 일이 없다. 성인 같은 선생님도 언제나 가정을 중시한다. 가난할 때나 부할 때도 변함이 없다. 좋은 때나 힘들 때도 마찬가지다. 변함이 있으면 가정은 깨지고 만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 같아도 곧 사라지고 불행만 찾아온다. 이런 것은 아는 이는 선생님이다.
요즘 출퇴근하는 직장인에게 자가용은 필수다. 젊은 세대들은 집보다 자가용 구입을 우선순위로 둔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가용을 부(富)의 과시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무어라 말할 수 없다. 부부가 출퇴근하면 자가용이 두 대다. 자연 아파트 주차장이 붐빈다. 지상주차장만 있는 아파트는 주차 전쟁이 일어난다. 다행히 우리 아파트엔 지하 주차장이 2층으로 있어 주차 걱정은 없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3대 이상 세대는 주차료를 받는다. 자가용 출퇴근자의 고민은 무엇일까? 아마도 치솟는 기름값에 대한 걱정일 것이다. 필자의 경우, 집에서 직장까지 왕복 106km인데 일주일이 멀다하고 기름을 넣어야 한다. 톨게이트 비용까지 합치면 40여 만원이 교통비로 들어간다. 그래서 대체 수단으로 대중교통 수단을 찾기도 한다. 버스나 철도가 있지만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모 장학사는 퇴근길에 지하철을 이용했더니 집까지 2시간 30분이 걸렸다고 한다. 이러니 대중교통은 아예 포기다. 통근자가 자가용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거리가 멀어도, 기름값이 많이 들어도 출퇴근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만원버스나 지하철에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 자기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또 길이 막히지 않는 지름길을 찾는 운전자도 있다. 자기만의 비법인데 고속도로 비용까지 줄이면 금상첨화인 것이다. 요즘엔 최첨단 네비게이션이 있지만 때론 혼잡하지 않은 국도를 이용하면 그런대로 자기만의 통근로를 개척할 수 있다. 필자의 출퇴근 거리가 멀고 자연히 시간이 오래 소요되면서 고민거리 하나가 새로 생겼다. 보통 집에서 7시 경에 출발하면 50분 정도 소요가 되는데 월요일이면 교통체증에 시달린다. 의왕터널을 지나 청계로 접어드는데 막히기 시작한다. 차가 막히면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지각 걱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자연히 변칙을 생각한다. 바로 끼어들기. 얼마 전에는 마음이 조급하여 끼어들기를 하다가 트럭과 가벼운 접촉사고가 난 일도 있었다. 해결하는데 개인돈 7만원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지난 월요일, 과천-봉담 도로부터 막힌다. 여기서 고민 하나? 지난 번처럼 끼어들기를 시도해 볼까? 아니지, 얌체행위를 하면 안 되지? 아침 시간 누구나 바쁜데 지성인이 이러면 안 되지? 몇 번 고민을 하다가 교통규칙을 지키기로 했다. 언제 교통을 뚫릴지 모른다. 월요일 통근자들은 차를 몰고 나와 도로에는 차량이 많다. 그래도 스스로 인내력을 시험한다. 100m 정도 가는데 20분이 걸렸다. 그래도 참고 기다린다. 이게 선진국민의 바른 태도다. 직장 동료들에게 물었다. 출근시 차량이 밀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어쩔 수 없이 끼어들기를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마냥 기다리다 보면 30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라고 한다. 다만 무식하게 끼어들지 말고 교통 상황을 보라는 것이다. 차량흐름과 양보해 줄 상대방 차량, 기어 들 공간 등 세세한 것을 알려 준다. 역시 출퇴근 고참들은 다르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것이다. 심지어 상대방의 차종, 가능하면 소형 차량이 좋다고 한다. 차선과 떨어져 있는 정도, 자신의 차량 속도까지 계산해야 한다는 것. 자, 이런 차량 출퇴근 끼어들기 요령을 나도 배울 것인가? 아니면 월요일은 좀 더 일찍 출근 하여 교통체증에 대비할 것인가?
인생사는 항상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움을 당하고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간단한 방법 중 하나가 평범한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평범해서 전혀 흥미롭지 않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일상도 시간이 흐른 뒤 회상하면 느낌이 새로울 때가 종종 있다. 과거 자신의 평범한 기록도 되새기면 흥미롭고 의미가 있다고 여길 때가 많다. 현재의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는 것은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거리’를 준비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미국 하버드대의 공동연구진은 현재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행동이 미래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것이 있다. 먼저 대학생 106명을 대상으로 최근 지인과의 대화 내용과 사진, 기말 과제 보고서, 기말시험 문제 등 현재의 기록을 남기도록 했다. 이후 3개월 후 과거에 남긴 기록을 다시 봤을 때 얼마나 흥미롭거나 의미가 있을지 등에 대해 예상해 보라고 했다. 또 실제 3개월 뒤 과거 기록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도 조사했다. 참가자들은 3개월 후 발생할 상황을 예측한 것보다 3개월 뒤 실제 과거 기록을 접했을 때 같은 상황을 더 흥미롭고 의미가 있다고 응답했다. 공동연구진은 또 애인이 있는 성인 130명을 대상으로 밸런타인데이에 겪은 일을 기록하라고 했다. 참가자들은 평범하게 밸런타인데이를 보낼 때는 흥미롭지 않고 의미도 별로 없다고 응답했지만 3개월이 지난 뒤에는 오히려 평범한 밸런타인데이를 특별한 밸런타인데이보다 더 흥미롭고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사람들은 현재 삶의 가치를 하찮게 여긴다. 그러다 보니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는다. 기록을 다시 볼 것 같지도 않고 다시 본다고 해도 그리 행복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심리작용의 대표적인 오류 중 하나다. 인간은 미래의 감정상태를 예측할 때 현재의 감정 상태를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미래의 감정은 현재와는 다르다.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평범한 일상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자신을 돌아본다면 변화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기록은 특별할 필요도 없다. 현재는 미래에 대한 선물이다. 오느늘을 멋지게 살았다는 느낌만 가져도 내일의 좋은 삶의 재료가 된다. 최선을 다하는 현재는 행복한 미래를 약속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기록을 남긴다. 이런 리포트를 쓰는 것도 매우 작은 것 같지만 행복의 요소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필자는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과에 재직중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도 20년이 지났다.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교수님들의 강의내용을 숙지하느라 집중하였고, 같은 길을 걸어온 선배 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익히고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5년이 지난 즈음부터 같은 주제라도 연구의 방향과 내용에 있어서 기존의 것을 각도를 달리해서 보거나 보다 넓은 범주에서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유아교육은 범주가 0세부터 만8세 즉 0세부터 초등3학년까지의 교육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만3세부터 만5세 즉 5세부터 7세의 교육으로 한정지어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유아교육과를 졸업하면 0세부터 초등3학년까지 담당한다. 배소연(2011)의 연구에 의하면 대학에 다니는 동안 3학년에 영유아(0-5세)의 발달과 교육, 아동(6-8세) 발달과 교육을 학습하고, 공립학교 유아반과 유치반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3학년에 배정되어 실습을 받는다. 현재 한국의 문화는 필자 개인의 몹시 주관적인 느낌을 바탕으로 표현하자면 표면적으로는 조선시대 신분계층에 의한 특권과 의무가 많이 없어진 듯하나 의식저변에 있어서는 여전히 강력하게 기능하고 있다. 2005년 필자는 프랑스 노르망디주의 루앙대학을 방문하였다. 오랜 친구이며 당시 프랑스 대사관 명예 영사이셨던 김양희 박사님의 초청으로 10일간 루앙대학 기숙사에서 지내며 프랑스 노르망디의 이곳 저곳을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당시 필자는 미국 미주리대학 교환교수로 있었으므로 미주리 대학 사범대학에 말씀을 드리고 10일간의 프랑스 방문일정을 잡았다. 루앙대 교수님들과의 만남, 학생들과 만남, 루앙대 내부 시설을 둘러보는 중에 김박사님께 유치원을 견학할 수 있는가를 여쭈어 보았다. 약속이 잡히고 김박사님은 당일 유치원에 데려다 주셨다. 유치원은 초등학교와 한 공간에 있었으며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넓은 창으로 햇볕을 잘 받게 건물이 지어졌다. 프랑스에서는 루소이후 교육의 개념은 국가의 미래인재 육성이다. 인간으로 기능하기에 필요한 기초교육과 인성이 형성되는 영유아의 교육부터 시작하여 초등학교, 중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분야의 전문성이 중시된다. 따라서 선생님들은 유아교육 전문가, 초등교육 전문가, 중등교육 전문가로 불리운다. 고유 분야의 특성이 다르며, 그 분야만의 전문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최근의 프랑스 교원양성은 교사교육대학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유치원, 초등교사부터 중등, 특수교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사 전문교육을 대학원 수준의 단일 종합기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유아교육과 초등교육과의 연계성이 매우 강조되어 2세-11세 교육은 동일한 교육기관에서 동일한 과정을 통해 양성하고 있다. 제1,2차 세계대전 중에 벌어진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만행으로 인해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인가? 혹은 인간으로 육성되었는가?’가 지성인들의 화두가 되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인간의 고등문화로 인해 인간으로 육성되어진다. 한국의 문화는 지위가 높거나 나이든 성인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면 모든 분야의 인간교육을 다 할 수 있다는 인식을 보편화한 것은 아닌가? 영유아교육기관의 설립 목적은 근본적으로 가정에서 부모나 양육자에 의해 행해질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체계적인 양육 즉 보호와 교육에 있다. 인간의 교육을 위해 근본은 가정에 두되 가정을 이루는 부모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며, 사회구성원으로 요구되는 전문적 지식과 기술, 태도 형성 부분에 체계적 지도가 미흡하므로 전문화된 기관이 필요해졌고 이에 부응하여 설립된 것이 교육기관이다. 이는 초등교육기관, 중등교육기관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피교육자의 특성이 영유아교육의 경우 스스로 일상의 생활을 할 수 없으므로 일상의 기본 생활이 영위되도록 살펴주며, 더불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본생활을 습관화시키고 고둥단계로 전이될 지식의 기초단계를 학습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서구 교육의 학교조직체계를 확립한 코메니우스는 영유아시기에 배워야 할 내용을 형이상학, 언어, 수, 과학을 비롯하여 인내와 절제 즉 인성교육, 정치학 및 가정경제학 등을 포함 총 20개 교과를 언급하고 있다. 기초교육이므로 형이상학의 내용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가정경제학은 가족구성원 및 역할 익히기, 정치학은 친구나 형, 어른에 대한 예의 등 사회적 관계와 태도 익히기 등 영유아 생활에서 알아야 할 기본 단계의 것들이다. 이 영역들은 서로 연결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교사는 개개영역에 대한 지식을 숙지하고 영유아의 특성상 통합하여 수업을 이끌어가야 한다. 영유아교육은 현장에서 교과를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하나의 주제 안에 언어, 수, 과학, 사회 등이 이루어지나 각 영역의 단계별 내용은 단계에 맞게 구성되어야 한다. 영유아교육이 박사까지 훈련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근 학계에서 무수히 거론되어 용어가 ‘포괄, 융합, 통합’이다. 이 용어들이 단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연결, 교과간의 연계만을 의미하는 것인가? 포괄, 융합의 용어가 많이 거론된다는 것은 독립된 영역의 깊이 있는 학문 즉 전문화된 영역으로 해결할 수 없거나 이해될 수 없는 분야들이 많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005년 필자가 미주리대학(UMSL) 교환교수로 갔을 때 (한시적 부교수로 임명되었었다) 초등교육과의 한국계 김송교수가 초등교육과 교수들과 함께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식물원에서 초등교육과 학생들의 수업이 있으므로 함께 가자고 하였다. 대학과 식물원이 연결하여 예비교사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영유아들은 집에서 나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는 동안에도 무수히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영유아교육기관에서 체계적인 기초교육을 익히며, 가정으로 돌아가서도 또 무수히 많은 것을 배운다. 발을 디딛는 곳곳이 학습의 장이다. 더욱이 21세기에는 전자매체의 발달로 지구촌 전체가 학습의 장이 되고 있다. 문화란 인간의 생활, 삶 그 자체이다. 한 공동체 안에는 일관되게 흐르는 주도적 사상과 가치가 있으며 관습과 제도, 사고방식으로 표현된다. 이 문화의 특징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 생애와 생활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어떠한 관습과 제도, 사고방식 즉 문화를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미래는 결정된다. ‘아녀자’ 즉 아이와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아녀자’라는 언어 속에 녹아있는 인식은 어떠한가? 결코 존중이나 배려의 의미가 있지 않다. ‘아이’는 국가의 동량이 되도록, 또한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재능과 역량에 따라 역할이 주어지고, 존중되어야 한다. 필자가 참석한 2010년 중국 항조우 국제유아교육학술대회에는 공산당의 높은 직위의 분들이 나와 중국의 미래와 영유아교육을 소개하였으며, 2012년 싱가포르 학술대회에는 교육부장관, 국방부장관, 행정부 장관의 직함을 가진 분이 나와 싱가포르의 미래와 영유아교육을 비롯한 교육전반에 관한 계획을 직접 설명하였다. 싱가포르에서는 이 한분이 중요한 세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2013년 이화여자대학에서 개최한 서울 국제학술대회에서 인도네시아는 2045년 인도네시아의 비전이라는 주제로 영유아교육부터 시작한 국가개조 프로젝트에 관해 발표하였으며, 2014년 발리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서는 길거리의 현수막에도 붙어있는 고위직 장관 여성분이 나와 직접 발표를 하고, 발리 시장님이 참석자 전원을 위한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필자는 몇 년전부터 ‘한국문화와 유아교육’이라는 강좌를 대학원에 설강하였다. 문화란 시대 상황과 어우러져 오랜 시간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며, 이전의 문화형식이 후대의 문화에 영향을 주며 진행되어 나가므로 한국 영유아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전체적 시각에서 이해하기 위해 한국 문화에 대한 지식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늘 듣고 말해 왔듯 한국은 작은 땅덩어리에 기댈 곳은 교육 뿐이다. 현재를 단군이래로 최대의 영화라며 으쓱할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이, 더 멀리 날기 위해 한국 문화와 교육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도 어린이들의 활동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설렌다. 그만큼 아이들의 모습은 영롱하다. 티 한 점 묻어 있지 않다. 맑은 어린이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화된다. 덕지덕지 묻어 있는 세진들이 한꺼번에 씻기는 느낌이다. 어린이들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세상을 맑게 해주는 옹달샘 역할을 한다. 오염되어지고 있는 세상을 시나브로 정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 그러니 어찌 어린이를 보배라 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존재이다. 어린이의 행동은 충동적이다. 어린이들이 행동할 때 깊이 생각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어린이들은 즉흥적이다. 흥이 생기면 천방지축으로 날뛴다. 그런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행동하고 본다.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실천한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어린이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어린이들의 이런 행동을 억제하고 통제한다면, 어린이들의 마음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다. 어린이는 어른이 아니다. 그러니 어린이의 행동을 어른처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큰 문제다. 어린이는 미숙한 존재다.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일 뿐이다. 어른들의 사고방식으로 어린이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어린이는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하는 존재이다. 그러니 배우고 익혀야 한다. 학습의 가장 좋은 방법은 체험이다. 체험은 바로 어린이가 직접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직접 행동하고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어린이의 행동은 학습하는 과정이다. 행동함으로서 배운다. 그런데 어른들은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어린이의 학습을 방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린이는 다양한 체험을 해보아야 한다. 그런 체험을 통해서 성숙해진다. 어린이는 절대 어른이 원하는 대로 성장하지 않는다. 어린이도 분명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렵다. 어린이가 어른들의 기대대로 행동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른들이 바라는 대로 얌전하게 성장하면, 어른들은 크게 만족한다. 그러나 그 것이 절대로 옳은 것은 아니다. 어린이들의 행동에는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바람직한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린이의 행동 결과가 바람직하다고 늘 기뻐만 할 수는 없다. 그런 어린이들은 소극적인 어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린이의 행동 결과가 바람직하기만 하면, 어린이들의 도전정신은 기대할 수 없다. 실패가 어린이를 성장하게 만든다.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해 보아야 성숙할 수 있다.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면, 성숙의 정도가 늦다고 보아야 한다. 어린이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는 실수를 통해 성숙해진다. 실수하지 않은 어린이는 자만에 빠지기 쉽다. 실패하지 않은 어린이는 소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실패가 크면 클수록 더욱 더 성장하게 된다. 실패를 통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실패의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실패는 어린이의 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린이가 실패하였다고 하여 질책해서는 안 된다. 벌칙을 가해서도 안 된다. 어린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어린이는 스스로 성숙해질 수 있다. 아무리 지도하여도 어린이 스스로 거부하게 되면, 그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벌칙을 가한다고 하여 어린이가 반성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 스스로의 의지로서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질책이나 벌칙이 어린이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어린이는 밝아야 한다. 원래 어린이는 밝다. 그리고 맑다. 그런데 자라면서 환경의 영향을 받아 밝음에 그림자가 생긴다. 투명하게 맑은 어린의 마음에 세진이 묻어지게 된다. 어린이를 지도하는 어른들에 의해 어두워지고 탁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어른의 관점에서 어린이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도 어른들처럼 생각할 것이라 예단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원래의 어린이의 모습을 유지시켜주어야 한다. 밝음은 더욱 더 밝은 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맑은 어린이의 마음을 더욱 더 눈부시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어린이가 기운을 키우고 덕성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다. 어린이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사랑이다. 어린이가 바르게 성숙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어린이를 사랑하자.(春城)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전환점이 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과연 어느 시기일까?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상당수는 20대라는 사실에 공감하는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사람에게는 각각 어떤 특별한 연령대 밖에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사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작은 불꽃같은 것이다. 주의 깊고 운 좋은 사람은 그것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커다란 횃불로 키워내 생을 밝히며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청소년기의 감성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확실한 방향을 잡고 현실을 토대로 살아가는 20대에 축적한 문화적 경험들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자양분 삼아 살아간다는 이들이 많다. 그 시절에 접했던 음악이나 책, 영화가 각별한 것은 경험의 주체가 ‘20대의 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20대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예전에 들었던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하지만 삶이 팍팍해짐으로 돈을 버는 일이 일생일대의 과제가 된 ‘어른’들은 경제활동 이외의 것들에는 도무지 심드렁하다. 일상이 지루한 소설처럼 전개되다 보니 음악을 듣고 책을 읽어도 거기에 접붙일 경험이 부족하다. 이처럼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도 젊은 시절 학생운동에 환멸을 느끼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에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방황하는 내 인생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역사 속의 인물, 바로 마키아벨리였다. 그가 내게 준 가장 큰 영향은 역사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기를 변화시키고 그것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무라카미의 말처럼 삶이 지치지 않고 충만해지려면 청춘 시절에 얻은 불꽃을 다듬고 키워 횃불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20대에 얻은 불꽃에 마음이 쏠려 불꽃을 횃불로 만드는 일에 소홀한 게 아닐까. 삶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길다. 그리고 깊은 것임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인간이 살아가면서 행운만으로도 부족하고 능력만으로도 부족하다. 자기 자신을 끝없이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교사 혹은 개인으로서 지도자로 성공하려면 자신의 방법을 항상 변화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미래 상황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더러, 비록 시작이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사물과 상황이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최근 변화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전 세계의 지식이 인터넷 상의 거대한 가상 광장에 집결하게 되었으며, 스마트한 기기들을 이용하면 그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정보를 많이 끌어모을 수 있게 되었다. 과거가 지식을 소유하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지식을 공유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 변천에 따른 교사의 역할과 바람직한 교사상 역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식의 홍수시대를 맞아 교육의 패러다임은 교육자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으며, 교사와 학생간의 심리적 관계, 인성교육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있다. 그래서 현대의 교사는 어디로 갈지 갈 길을 모르고 헤매는 것을 알려 주는 안내자,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교수, 학생들이 닮고 싶어 하는 롤모델, 어려운 문제의 해결에 조언을 해 주는 상담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이야기꾼이자 학생들의 관찰자로서의 평가자의 역할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가야한다. 변화의 중심에 교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변화하는 시대의 핵심은 새것을 학습하는 방식이다. 학습은 뇌의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의 뇌는 근육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발달시킬 수 있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주장이다. 적절한 운동을 통해 뇌를 강화시킬 수 있다. 또, 생각하는 힘을 키우면 뇌의 용량이 확대되고 새로운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는 습관을 개발하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을 놓치게 된다. 자기 잠재력을 충분히 개발하지도 못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나는 특정영역에서 나보다 탁월하지 않은 사람을 결코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누구나 특정 분야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태어나는데 이것을 발견하기 까지는 많은 노력이 따른다. 이같은 노력이 잠재력을 꽃피우게 된다. 나이가 들면 뇌가 퇴보하여 모두 힘들것이라 생각하지만 다행스럽게도뇌 능력은 노력에 의해 꾸준히 향상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이 한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함께 대학에 입학했던 친구들이 거의 퇴직을 하고 나니 만나는 기회도 뜸해지고 있다. 가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나라 취업 환경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 수 있다. 제대로 대학을 나왔어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녀들이 자영업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말했다. “경제가 좀 좋아져야지. 아주 힘들어.” 그 말을 받아 말했다. “양극화 몰라? 경제가 좋아져도 안 돼. 장사 잘 될 수 없어.” 이는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이다. 우리 나라 전체 고용 인구 중 23%가 자영업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보다 7%포인트가 높다. 12%인 일본에 비해서는 11%포인트, 7%인 미국에 비해서는 무려 16%포인트가 높은 수치이다. 이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은 직업 생태계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즉 인구는 늘어나지 않으나 하나 있으면 될 치킨가게가 둘 셋이 들어서 서로 죽이기를 한다는 말이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다. 인턴이다 시간제 고용이다 하여 일자리가 좀 늘어났다지만 크게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또 어렵다고들 하니 신규 진입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영업자의 비율이 30%를 넘었다.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새로 생긴 일자리라는 게 대개 월 70만∼80만 원 받는 일들이다. 게다가 청년 구직자가 100만 명 이상이다. 좀 된다 싶으면 너도나도 뛰어들게 돼 있다. 결국 장사가 돼도 죽고 안 돼도 죽는 판이다. 더욱이 대부분 사양 업종이다. 동네 문방구나 책방은 인터넷 상거래로 죽어가고 있다. 골목시장이나 동네 구멍가게는 대형 유통체인망의 입점으로 죽는다. 프랜차이즈 어쩌고 하지만 이 역시 수수료다 뭐다 하여 골병이 든다. 무엇으로 이 흐름을 막을 것인가. 법으로든 뭐든 막아봐야 잠시다. 결국은 넘어지고 자빠지고 한다.이러다 보니 그 형편이 말이 아니다. 자영업자의 가구소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월 300만 원 정도이니 살기가 쉽지 않다.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오히려 크게 떨어진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이들 소득보다 뚝 떨어져 있던 임금근로자의 가구소득은 월 400만 원까지 올라와 있다. 역전도 보통 역전이 아니다. 제대로 못 벌었으니 빚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진빚은 평균 1억2000만 원으로 임금 근로자들 빚 4000만 원의 3배에 이른다니 누가 믿을 것인가. 특히 1억8000만 원에 이르는 50대 베이비붐 세대의 빚은 위험 수준이다. 많기도 하지만 늘어나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18.5%가 늘어났다. 그러고도 자영업자 부도의 절반이 이들 세대의 것이었다. 이런 판에 노후 대책인들 제대로 할 수 없다. 자영업자의 30%가 국민연금조차 들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도 베이비붐 세대의 가입률은 더 떨어져 있다. 이들의 ‘실버 빈곤’이 머지않아 나라를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 왜 이렇게 이 힘든 자영업에 매달려 있는가? 한 조사에 따르면 90%가 먹고 살자니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달리 일할 자리도 없고 사회적 안전망도 허술하니 어찌하겠나. 그대로 앉아 죽을 순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말 딱한 현실이다. 유럽 국가들 같으면 은퇴를 하거나, 아니면 실업상태에 머물며 재교육이나 재훈련을 받고 있어야 할 사람들까지 이렇게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까먹으며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물어도 답이 없다. “개인이 어쩌고 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국가가 잘 해야지.” 그렇다. 일차적인 책임은 국가에 있다. 일자리다운 일자리를 만들고, 재교육 재훈련 체계 강화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갖추는 일, 이 모두가 국가의 일이다. 국가? 어떤 국가 말인가. 이런저런 문제 다 내팽개치고 세월호 참사 후 협상에 실패하고 국회 문을 닫고 있는 그런 국가 는 아니다.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구멍은 내 가슴에만 나 있지 않았다. 둘러앉은 모두의 가슴 속에 나 있었다. 그 구멍 뚫린 가슴으로 하늘을 보자. 이 좋은 결실의 계절에 왜 이렇게 허전함이 마음에 스며드는가!
성인은 일과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할 줄 안다. ‘장소가 다르면 용도가 다르다’는 말이 있다. 전국시대 조나라 무령왕이 한 말이다. 북방 이민족이 입는 기능적인 복장과 기마전 전법을 받아들여 군사력을 강화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은 호복 착용에 앞장서고, 중신의 반대를 억누르기 위해 논의를 거듭했다. 이 말은 이의를 제기하는 숙부를 설득할 때 한 말로 일이 다르면 예법이 바뀐다. 장소가 다르면 예법이 바뀐다 장소가 다르면 쓰이는 길이 바뀌고, 일이 다르면 예법도 바뀐다. 장소가 달라지면 물건도 바뀐다 모두가 상통하는 말이다. 성인 같은 선생님도 시와 장소에 따라 적절한 방법으로 대처할 줄 안다. 선입견으로 고집을 내세우지 않는다. 환경에 따라, 특성에 따라 바꿀 줄 안다. 생각이 굳어 있지 않다. 언제나 유연하다. 환경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한다. 성인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발을 잘라 신발에 맞추다’는 말이 있다. 대저 기르는 방법으로 기를 대상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비유하자면 발을 잘라 신발에 맞추고 머리를 깎아내 관에 맞추는 것과 같다 주민을 기르는 수단인 영토를 지키려고 해당 주민을 전쟁에 내몰아 피해를 입히는 것은 발을 잘라 신발에 맞추고 머리를 깎아내어 관에 맞추는 것 같은 짓이다. 이렇게 함은 성인이 할 일이 아니다. 성인 같은 선생님은 발을 잘라 신발에 맞추는 어리석은 짓은 않는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더욱 하지 않는다. 오직 학생을 위하고, 학부모님을 위하고, 학교를 위하고 교육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성인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지 않는다. 맹자가 군사력을 통해 천하를 지배하려던 제나라 선왕에게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목적과 방법이 어긋나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성인 같은 선생님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지혜롭다. 바른 목적과 방법으로 무엇이든 이루려고 한다. 교육을 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짓을 하면 학생들을 모두 어리석게 만든다. 성인은 흉내 내지 않는다. 흉내를 내다 경박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 비슷하게 된다. ‘후한의 마원이 이른바 호랑이를 그리려다 못 그리면 도리어 개 비슷하게 된다 호랑이를 그리다 완성하지 못하고, 거꾸로 개 비슷하게 된 일을 가리킨다. ’마원은 형의 두 아들이 당시의 호협 두계량을 흉내 내는 것을 염려하여 계량을 따라하다가는 자칫 천하에 경박한 사람이 된다고 하면서 흉내 내지 않도록 했다. 성인 같은 선생님은 흉내를 내다 경박하게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성인은 피해를 없애려다 도리어 피해가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땔감을 끌어안고 불 끄러 간다. ‘전국책 위책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시대 말, 진에 대패한 위 안리왕이 토지를 할양하려고 하자, 중신 손신은 땅을 가지고 진을 섬기는 것은 비유하자면 땔감을 끌어안고 불을 끄러 가는 것과 같습니다. 땔나무가 다 없어지지 않으면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범인은 불난 집에 부채질 한다 성인 같은 선생님은 피해를 없애려다 도리어 피해가 확대되도록 하지 않는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못된 짓은 하지 않는다. 성인 같은 선생님이 있기에 세상을 선하게 만든다. 성인은 임기응변에 능하다. 장수가 군중에 있으면 군주의 명령이라도 받들지 않을 수 있다. ‘춘추시대의 병법가 손무가 한 말이다. 대장을 맡은 이는 군중에 있을 때는 군주의 명령이라도 받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장수가 바깥에 있으면 군주의 명령이라도 받들지 않을 수 있다. 성인 같은 선생님은 임기응변으로 잘 대처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런 선생님은 지헤로운 선생님이다.
충청남도서산교육지원청(교육장 한석천)은 9월 20일(토) 서산여고대강당에서 관내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역사 골든벨 대회를 실시했다. 이 대회에서 본교는 금메달 셋, 은메달 셋, 동메달 셋(지도교사 김성한, 김용호)을 차지해 10월 18일 여섯 명이 도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역사 골든벨 대회는 학생들이 평소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역사책 읽기를 통해 우리 역사 바로알기 및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기 위해 해마다 실시해오고 있다.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얼굴에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 역사를 바로 알기위한 진지함이 돋보였다. 영예의 금상을 수상한 1학년 조정익 군은 “요즘 우리 학생들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역사 골든벨 대회를 통해 우리 역사를 조금이나마 바로 아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회 소감을 밝혔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9시등교가 현실이 됐다. 90%에 가까운 학교들이 여기에 동참하였다고 한다. 물론 100% 자발적 움직임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교육청의 공문을 무시할 학교가 몇이나 되겠는가. 권장사항은 반드시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선학교의 분위기다. 당연히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문이 내려오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번에는 다른 시도에서 9시등교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도 관계자가 나쁘지 않은 방안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쁘지 않은 방안'이라면 좋다는 것이다. 조만간 공론화될 가능성이 높다. 전북에서는 다음달부터 등교시간을 30분 늦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제주도교육청도 긍정 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만약 서울에서도 시행이 된다면 전국이 9시 등교를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제도든지 일단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 시작은 쉽지만 폐지는 어려운 것이다. 문제는 이 제도를 추진하면서 당사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의 의견도 잘 듣지 않은채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의견수렴은 모든 정책의 추진에서 기본적인 사항이다.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부작용이 덜 한 것이다. 나머지 시도에서도 의견을 제대로 들었는지 궁금하다. 찬성이 얼마나 나왔으며 예상되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었는지 의구심이 앞선다. 다음주면 절기상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추분이 돌아온다. 추분을 지나면 낮의 길이가 짧아진다. 해뜨는 시각이 늦어지고 해지는 시각은 빨라진다. 9시등교를 하게되면 아침에는 여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교 시간이 늦어지면 학생들이 어려워질 수 있다. 방과후 수업등의 일정 조정도 불가피하다. 현재 9시 등교를 하지 않는 중학교만 하더라도 7교시를 마치면 오후 4시를 넘기게 된다. 여기서 30여분 더 늦어지게 되면 5시 가까이 되어서 하교를 하게된다. 청소등의 뒷정리를 하고 방과후 수업을 수강하게 되면 더 늦어지게 된다. 하교 시간이 늦어지면 학생들의 귀갓길을 염려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아침에는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학생들의 안전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의 귀가 시간은 더 늦어지게 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하절기와 동절기의 등교시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학생들이 더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당초 학생들의 수면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도 어긋난다. 하절기에는 등교시간을 늦추고 동절기에는 더 빠르게 한다는 것인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상식선에서 생각해도 해가 늦게 뜨는 겨울에 등교시간이 늦춰져야 한다. 해가 빨리 뜨는 하절기에는 등교시간이 빨라도 큰 문제가 없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방안이 될 수 밖에 없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줄 필요는 당연히 없다. 그러나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하교후에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하기 원한다. 하교 시간이 늦어지면 이런 부분들도 학부모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학교에서 짐심시간 문제도 쉬운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학교의 점심시간 시작은 12시 30분이다. 30분이 늦어지면 오후 1시가 점심시간이 되어야 한다. 너무 늦다. 점심시간을 12시 정도로 앞당기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점심시간 이후의 수업이 4시간정도 된다. 학생들의 수업이 오후에 몰리게 되면서 학습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면시간 확보해 줬으면 학습효과가 높아져야 하는데 도리어 학습효과가 떨어지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을 위한 방안이 학생들에게 도리어 해가 된다면 그 방안은 실패한 방안이 되는 것이다. 대도시의 경우에는 교통의 흐름이나 대중교통의 혼잡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교사의 출근시간은 8시 전후로일반 직장인들 보다 1시간 정도 빠르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통흐름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 등교시간이 늦춰지면 교통량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정체가 더 심해질 수 있다. 대중교통의 혼잡도가 높아질 수도 있다. 출근시간과 등교시간이 늦어진 대신 이 과정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서울만 하더라도 교사수가 8만명 정도인데 이중 절반이 승용차로 출근한다고 할때 4만대의 차량이 한꺼번에 거리로 몰려 나오게 된다. 영향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여기에 행정실과 일반직을 합하면 교통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등교시간이 늦어지면서 대중교통의 혼잡도가 훨씬 높아질 수도 있다. 9시 등교는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9시등교는 좀더 지켜 보아야 할 문제이지 당장에 동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충분한 의견수렴이 앞서야 한다. 대략적인 효과만 가지고 추진하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당사자들의 의견수렴은 필수다. 시간을 두고 검토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과 단순 비교하여 삭감하는 쪽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단순비교 할 수 없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대부분 공무원들은 명확한 논리로 답하지 못한다. 공무원연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과 단순히 비교하여 형평성이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할때 명확하게 답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이 어떤 차이가 있으며 공무원연급기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이유가 무엇인가. IMF외환위기때 공무원들이 대거 퇴직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퇴직, 교원정년단축으로 인한 명예퇴직과 정년퇴직 등이 원인이었다. 문제는 이때 구조조정 등으로 퇴직한 공무원들의 퇴직관련 비용을 전액 공무원연금기금에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공무원연금기금의 고갈 원인이며, 주식에 투자하여 6416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한다. 공무원들의 잘못은 없는데, 연기금 고갈을 마치 공무원들의 잘못으로 돌리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방대한 기금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전문가 없이 주먹구구 식으로 기금을 운영하는 것도 큰 문제라는 기사가 있었다. 일반인과 비슷한 사람들이 기금의 운용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으로 재직중에는 노동3권의 제약, 정치활동금지, 영리활동 및 겸직제한, 품위유지의무 등을 꼭 지켜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징계 및 공직의 박탈 등이 뒤따르며, 연금액의 1/2까지 감액하여 지급하게 된다. 공무원연금은 고용주로서 국가의 책무를 다하고 퇴직자의 노후보장 및 사회정착 지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또한 퇴직금 및 낮은 보수에 대한 보상적 급여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공무원연금제도 이다. 일반기업에서 고용주가 국민연금의 일정부분을 보전해 주는 것처럼 공무원도 고용주인 정부에서 일정비율 보전해 주도록 법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고용주인 정부에서 부담하는 비율은 우리나라가 12.6%, 일본23.8%, 미국 23.6%, 독일 52.5%, 프랑스 53%로 우리보다 훨씬 높은 것은 물론, 독일의 경우는 공무원의 부담륭이 0%이다. 굳이 어런 비율을 따지지 않더라도 선진국들과의 격차가 큰 상태에서 공무원들에게 부담을 주면서 연금제도를 개혁한다는 것에 공감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고용주가 4.5%, 근로자가 4.5%를 부담하고 있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로 7.5%를 공무원과 정부가 반반씩 부담하고 있다. 국민연금보다 공무원연금이 부담하는 비용이 훨씬 많다. 물론 정부의 부담도 높지만, 이는 사용자인 국가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기금의 운용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금의 부족을 공무원들에게 부담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보다 더 내고 더 받는 것을 더 내고 덜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덜내고 덜 받으라는 것도 아니고, 정부의 부담이 크므로 더 내고 덜 받아서 국민연금과 동일하게 하라는 것이다. 놀라운것은 정부가 공무원연금 기금을 사용하고 갚지 않은 금액이 6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기금운용을 잘못한 정부의 책임을 공무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많이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개선하겠다고 하는데, 공무원연금법을 개정 할때마다 나왔던 방안이다. 그 방안들이 오래가지 못하고 또다시 기금의 부족으로 이어져 왔는데, 다른 대책없이 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다. 지금처럼 공무원들에게만 부담을 준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금의 부족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공무원이 부담하는 비율과 일반국민이 국민연금을 낼때 부담하는 비율의 차이를 따져보지 않고 단순히 수령액수만을 비교하여 공무원연금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을 공무원들의 노후대책으로 활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그런데 공무원은 원래 국민의 세금으로 보수를 받고 있다. 따라서 공무원연금 역시 국민의 세금이 일정부분 들어가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공무원들의 보수가 어디서 그냥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국민의 세금으로 보수를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부터 공무원의 보수나 후생 복지는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연기금이 부족하다고 세금으로 공무원연금을 부담하니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따져 보아야 한다. 퇴직금을 올려 주는 방안도 있다고 하는데, 이 방안이 그대로 실천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나중에가서 기금이 부족하여 퇴직금을 올려줄수 없다고 하면 연금깎이고 퇴직금도 제대로 못받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또다른 방향으로의 개선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퇴직금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공무원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국민연금보다 못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국가가 고용한 공무원에 대한 대우가 국민연금과 같아진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많이내고 많이 받는 연금을 많이내고 적게 받도록 한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낸만큼 국민연금보다 더 받아야 하는 것이 공무원연금의 구조이다. 기금이 고갈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무조건 비교하면서 형평성 운운 한다면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당사자는 물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공무원연금 가입을 강제하지 말고, 공무원들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공무원연금을 그렇게 개혁하면 차라리 적금을 들겠다는 공무원들도 많다. 이번에 공무원연금제도 개선안을 낸 연금학회의 이사진과 기관회원 대부분이 재벌보험사, 증권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동안에 줄곧 공적연금을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을 주장한 단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단체에서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개악시켜왔으며, 재벌보험사에 국민과 공무원들의 노후를 팔아넘기는 그런 단체라고 한다. 그런 단체에서 내놓은 개혁안을 받아 들일 수 있을까. 공무원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만약 무리한 개혁을 시도하려면 지금까지 누적된 연금을 모두 지급한 후에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옳다. 무조건 일정비율 낮추고 시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무원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적립한 연금에 대해 보상을 해 줘야 한다. 자꾸 깎아버리고 걷는돈 더 걷는 쪽으로 가면 조만간 또 기금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다. 정부는 이 방법이 가장 손쉽게 기금을 조성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만 공무원들의 주머니를 자꾸 터는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차라리 공무원연금제도를 폐지하고 자유롭게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 여론몰식의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서는 곤란하다. 어떤 법이나 규정이라도 결국은 당사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포함 할 수 있는 방안의 마련이 아쉽다.
나이가 들어도 인생을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부럽다. 나도 머지 않아 퇴직을 하고 그런 나이를 먹을 때가 오는데 그 때를 그려보며 오늘도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분이 바로 자신이 세운 남부대에서 ‘인간학’을 강의하고 있는 우암학원 조용기 학원장이다. 89세 나이지만 그는 강의 때마다 젊은이들에게 “자기 삶의 키워드를 찾으라”고 강조한다. 인간이란 “흔들리고 넘어지고 상처를 입어도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진정한 삶 아닐까요.” 그는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가 쓴 ‘때로는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를 학생들에게 낭독하게 한 뒤 그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남부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씩 강의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교과목 이름은 교양학부의 2학점짜리 ‘조용기 인간학’이다. 같은 학원 산하의 전문대인 전남 곡성군 전남과학대에서도 매주 화요일 같은 강의를 하고 있다. 2000년부터 두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니 벌써 15년째 들어간다. 그는 본인이 겪은 험준한 세상살이를 사례로 들어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는 지혜를 풀어낸다. 이분의 강의를 들으면서 젊은이들은 열정과 꿈을 가진 20대 청춘의 보폭에 맞춰 자신의 인생을 되짚어 보기도 한다. 한 수강생은 “꿈이 있는 삶은 미래를 희망하는 삶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고 노력하는 삶이라는 교수님의 강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강의 때마다 쪽지시험을 봐 긴장도 된다”며 웃었다. 조 학원장은 풍부한 인생 경험에 오랜 강의 노하우를 가졌지만 강의 준비는 젊은 교수 못지않게 철저하다. 두 시간 강의를 위해 보통 6∼7시간 책과 씨름하고 자료를 만든다니 젊은 사람들이 배워야 할 대목이다. 직접 강의계획서를 쓰고 학생들이 낸 리포트도 꼼꼼하게 살펴 학점을 준다. 이면지를 갖고 다니며 생각날 때마다 메모를 해 사용할 정도로 검소하다. 조 학원장은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 땅의 청년들에게 미래를 열어주고자 천막 교실 두 채에서 교육에 투신했다. 우암학원은 64년 만에 남부대, 옥과고, 병설유치원, 노인 일자리를 위한 곡성시니어클럽, 우암병원 등을 갖춘 전인교육의 현장으로 성장했다. 그는 2004년 곡성군 적정규모 학교 통폐합 시범사업에 힘을 보태기 위해 50년 넘게 운영해 온 옥산중학교를 국가에 헌납하고 자신의 아파트도 학교법인과 대학 재산으로 기부했다. 조 학원장은 “강의하는 날이 가장 행복하다”며 “요즘처럼 빨리 변하는 세상에 흑백사진 같은 내 인생 이야기가 즐겁고 재미있을까마는 눈을 반짝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학생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는 마치 몇 해 전 작고한 일본의 노 교수 쇼치 사브로를 떠올리게 한다. 104살이 된 쇼지 박사는 2010년 고령에도 불구하고 빨간색 재킷 차림의 건강하고 활달한 모습으로 대구대가 제정한 ‘사랑·빛·자유상’ 수상자로 시상식에 참석하였으며, 106살되던 2012년 영면하였다. 그는 일본 최초 특수학교인 시이노미학원을 1954년 설립한 이후 일본을 비롯해 한국과 중국 등 각국에 특수교육의 중요성을 알려왔다. ‘뇌성마비아의 치료교육’ 등 특수교육 관련 200여 권의 저술을 통해 일본의 대표적인 특수교육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조학원장도 앞으로 더욱 교육을 통하여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는 역할을 잘 감당하길 기대한다.
9월 20일(토) 12시 30분부터 17시까지 본교 교정과 송파수련관 일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2014 열려라! 즐거운 화학세상’이 개최되었다. ‘즐거운 화학세상!’이란 주제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한국RC협의회 주최로 개최되었으며,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등이 후원했다. 학생들에게 과학을 쉽게 이해하고 접하는 기회와 미래 세계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역량을 기르고자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해 볼 수 있는 체험부스의 설치 운영으로 과학체험의 재미를 더했다. 12시 40분에 개회 및 인사말, 오리엔테이션에 이어 13시부터 체험 및 놀이마당 참여로 행사는 저녁 늦게까지 진행됐다. 각종 과학영상 상영과 홍보 등의 체험이 다양하게 운영되었다. 또한 푸짐한 상품과 함께 기념품이 지급되어 참가자들의 열띤 호응을 얻어냈다. 이번 행사에 도우미로 참가한 본교 김진홍 군은 ‘과학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네요, 평소에 과학은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원리를 배우고 나니까 신나네요, 항상 과학을 생각해야겠어요!’라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이번 과학체험행사는 과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진행하여 청소년들이 과학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유익한 행사였다며 이런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대학생 중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시골서 들어온 학생들이라고 한다. 대치동 학원에서 떠돌다 들어온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에 대한 흥미가 준다고 한다. 한줄 세우기에 익숙한 공부 휴유증 때문이다. 때문에 입학하면 열정이 식는다고 한다. 그래서 학년이 올라가면 시골에서 온 학생들이 잘한다는 것이다. 졸업해도 시골서 살던 아이들은 리더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자도 시골 출신들은 더 적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먼저 공부에 즐거움을 느낀다. 호기심, 집중력, 몰입, 탐구의 기쁨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남이 가르치거나 남이 시키는 공부에는 이러한 것이 부족하다. 특히 학원과 같이 눈으로만 배우는 공부, 강요된 공부에서는 이러한 것을 배우기 어렵다. 그럼 어떤 공부가 진짜 공부일까? 그것은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는 공부가 즐거운 공부다. 그런데 자신이 선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바로 유태인 방식의 독서와 묻고 답하는 토론이 그것이다. 자녀를 진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로 만들려면 점수를 높이기 위해 배우는 공부가 아니다.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공부 잘하면 가고 싶은 대학이 의과대학과 법과대학이다. 하지만 한의사들이 예전만은 못하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안다. 놀고 있는 변호사가 많으며 병원도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아직도 의과대학과 법대에 들어가려고 학원으로 자녀를 내몰고 있지 않은가? 좋은 대학만이 공부의 목표가 아니다. 좋은 대학 들어가기 위해 이 학원, 저 학원에서 배우는 공부보다 하고싶은 공부를 하도록 해라. 독서를 잘 하는 아이로 만들어라. 또한 토론하는 기회를 자주 갖는 일, 글쓰기에 힘을 기울이는 아이로 만들어라. 이것이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이다. 자기주도 학습 능력을 갖추면 공부가 즐거워 질 것이다. 진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로 만들려면 또 하나가 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인성 교육이다. 실패를 극복하는 일, 실패해도 도전하는 마음가짐도 마음 그릇의 문제다. 인성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가치관을 갖는 자녀로 만들어라. 가치관이란 무엇이 가치 있는가 하는 고민의 잣대를 갖아야 한다. 즉 옳고 그름에 민감한 사람으로 길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이 모이면 신념이 되고 신념은 철학으로 바꿔지는 것이다. 신념과 철학이 있는 사람은 공부하는 궁극의 목표를 알기에 즐거워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짜 공부다.
여행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비참한 존재들, 두려운 존재들, 가슴 시린 모습들이 전개된다. 집시들이 어린 자식들의 손을 잡고 하루종일 구걸하는 모습, 어린아이에게 광장에서 악기 연주를 시켜 돈을 버는 어른들, 쓰레기통에 버려진 페트병과 캔을 뒤져 연명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우리가 편안한 패키지 여행이 아닌 온갖 고생문이 활짝 열린 자유여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삶과 가장 닮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 입맛에 딱 맞는 것, 유명한 것, 대단한 것들만 추구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어여쁘고 눈부신 부분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없듯이, 자기 자신이 지닌 최고의 장점들만 골라 살아갈 수 없듯이, 여행 또한 그 사람들이 애써 숨기고 싶어하는 것들까지 모두 끌어안아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잠들어 있던 오감을 활짝 깨울 만한 자극적인 것, 견문의 폭과 깊이를 한꺼번에 확장할 수 있는 경이로운 존재들을 본다. 하지만 빛나는 존재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불가피한 어둠과 그림자들 또한 만나게 된다. 루브르박물관과 대영박물관은 물론 1년에 수 백만명 이상의 여행자를 끌어 모으는 수많은 박물관들 중 약탈과 제국주의, 상업주의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박물관은 거의 없다. 그 유구한 문화유산들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인력이 동원되는지, 그 수많은 유물들의 아우라에 기생하는 수많은 관광상품들과 기념품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착취와 부당거래가 이루어지는지, 모두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쩌면 동경으로 가득찬 유럽여행 버킷리스트를 짜는 일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 문화유산이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 상업으로 소비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부조리와 불합리의 씨실과 날실 속을 헤매게 된다. 취미의 대상이자 동경의 대상이 되어버린 유럽여행은 날이 갈수록 공격적인 마케팅을 구사하는 여행산업의 강력한 마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럴수록 나는 아주 작은 몸짓으로 거대한 자본의 시스템에 포획되지 않는 우리만의 소박한 여행방식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전 지구를 자신들의 상표로 뒤덮는 데 성공한 대형 프랜차이즈점보다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작은 가게들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그 지방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여행자의 윤리가 아닐까. 그 장소의 진정한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더 강한 체력을 길러야 하고, 더 의젓하게 욕구를 누를 줄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나만 생각하는 여행’의 자기 중심성을 깨뜨려야만 한다. 해마다 때로는 숙제처럼, 때로는 구도의 과정처럼 여행을 계속하다 보면, 점점 ‘여행의 달인’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들이 많다. 가끔은 나를 여행 전문가로 착각하고 여행정보를 물어보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쥐구멍으로 숨고 싶다. 정작 내가 여행을 할 때마다 깨닫는 것은 점점 더 똑똑해지는 나 자신이 아니라 나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무지다. 나는 아직도 터무니없이 모르는 것, 아는 줄로 착각하는 것, 어렴풋이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좌충우돌하는 여행의 과정 속에서 아프게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예쁜 장면만 수집해 그 장소의 좋은 것들만 취합하는 박제된 여행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하게 포장된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나 자신의 꿈과 희망과 미래와 접속하는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담은 여행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내 몸과 내 삶을 조금씩이라도 나를 바꾸는 여행의 맛을 마음이라는 가장 오래가는 뚝배기에 가득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