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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자립형 사립고는 말 그대로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학교자체 내에서 학생들의 수업료를 통해 스스로 재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립학교를 말한다. 일반 학교는 대개 공립이나 사립으로써 사립인 경우에도 정부가 경제적인 보조를 다 해주고 있는 실정인데, 자립형 사립고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수업료가 일반 학교에 비해 3배 정도가 더 비싸다. 이러한 자립형 사립고는 2002년 이후 현재 우리나라에서 민족 사관고, 포항 제철고, 광양 제철고, 울산 현대 청운고, 부산 해운대고, 전주 상산고 등 6군데 학교에서 이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도는 1995년 교육 안에서 처음으로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시행은 2002년에나 시행되었을 정도로 굉장히 그 기간을 길었고 야기되는 문제 또한 많았다. 우선 자립형 사립고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제도가 학생들의 만족도를 더 높여주고, 그들의 실력을 더욱 향상시켜 준다고 말하고 있다. 만족도 조사에서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5점을 받음으로써 일반 공립이나 시립에 비해 높았다. 또한 전국적인 수상실력을 살펴보면 일반학교에 비해 자립형 사립고에 다니는 학생들의 수상실력이 월등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많은 돈을 내고 그 만큼 그 돈을 학생들에게 투자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높이는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자립형 사립고는 교육의 획일성을 극복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부분적으로는 비평준화 지역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소수지역으로써 대개 평준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도는 학생들을 평준화시킴으로써 학생들의 실력을 비슷비슷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이를 통해 실력이 저하되고 평범한 학생들과 수준이 비슷해진다. 왜냐하면 그 학생들의 적성과 능력을 학교제도가 키워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의 독특한 개성과 적성을 발휘하지 못한 채 획일적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자립형 사립고는 학교 중심으로 자유롭게 학교 운영을 해 나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종교 중심으로 성품이나 정서에 주력할 수도 있고, 학생들의 능력이나 적성에 맞추어 이를 좀 더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교도 있다. 물론 이러한 사실들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자립형 사립고는 많은 문제점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소지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자립형 사립고가 학생들의 만족도와 수상실력이 높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일반 학교에 대해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이 일반적으로 적다면, 자립형 사립고는 첨단 설비를 우선 갖추고 있을뿐더러 공부를 잘하는 중학생이 대거 이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므로 상・중・하 학생이 섞여있는 일반 학교에 비해 아이들의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나는 전북 익산에 사는 학생으로서 옆 도시인 전주에서 상산고가 자립형 사립고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잘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많은 반대에 부딪혔어도 결국은 자립형 사립고가 되었는데 그 곳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률은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정말 상위 클래스로 공부를 잘 하는 학생도 떨어질 정도로 우수한 두뇌 집단으로 처음부터 잘했기 때문에 당연히 수상실력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로 사회적인 불평등을 야기시킬 수 있다. 교육적으로 좀 더 적성과 개성에 맞는 수업을 받기 위해서 즉, 좀 더 좋은 교육적인 환경을 찾기 위해 자립형 사립고로 학부모들의 시선이 몰리고 있다. 자립형 사립고는 암기 위주로 배우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학생들의 질적 수준을 높여 나간다는 목표 아래 학교 운영을 하고 있다. 이에 반한 부모님들은 자립형 사립고로 자녀를 보내기 위해 학부모들은 노력하고 있고, 그에 따라 과외 열풍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평준화 정책으로 그나마 약간 잠재워 놓았던 과외 열풍이 또 다시 이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빈익빈 부익부로 교육적인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의 자립형 사립고를 진행해서 만들려고 하는 것보다 이 문제점을 토대로 평준화 교육에서도 학생들의 적성과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즘 한창 수준별 학습이 중요시되고 있는데 일반학교에서도 이러한 수업을 정부가 교육적 정책을 통해 노력한다면 한결 나아질 것이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자립형 사립고가 6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어차피 계속 해 나갈 제도라면 특성화된 프로그램으로 이를 운영하고 자립형 사립고의 목표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적성을 키워줌으로써 목표에 걸맞는 학교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자립형 사립고는 일반학교에 비해 매우 높은 수업료를 받고 있고, 이를 자율적으로 운영하므로 투명한 재정관리가 필수적이다.
급변하는 우리 사회에 큰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성(性)’으로 인한 문제들(성폭행, 성희롱, 성추행)이다. 특히 ‘성폭행’은 날이 갈수록 그 행위가 대담하여 시민들을 ‘안전불감증’으로 시달리게 하고 있다. 이에 정부가 성폭행 가해자에 대해 실형을 구형하는 등의 강경한 조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특별한 관심을 갖고 조심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고 본다. 만에 하나라도 성 피해를 입었을 경우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를 감추려고만 하지말고 신고 내지는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것도 좋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학교에서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학생이 성폭행 범죄를 저지를 경우 해당 학교에 책임을 물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전 교직원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 2회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성폭행 못지 않게 범하기 쉬운 것이 ‘성희롱’과 ‘성추행’이다. 무엇보다 성에 관련된 문제는 감추기 쉬운 민감한 사안인 만큼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성폭행을 당하지 않기 위한 대처요령 등을 주기적으로 아이들에게 인지시켜 줄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교는 중간고사 기간을 이용하여 전교직원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실시하였다. 학생들은 ‘성폭력 예방과 치유’에 관한 내용의 인터넷(http://9sungae.com) 강의를 시청하였으며, 교직원들은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에서 제작한 직장내 범하기 쉬운 성희롱과 관련된 비디오(성희롱, 당신도 가해자일 수 있다)를 시청하였다. 철저한 성교육이 필요한 작금, 자칫 잘못하면 저지르기 쉬운 성폭행, 성희롱, 성추행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와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이번 성교육을 통해 선의의 가해자 내지는 피해자가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무엇보다 성교육이 사안이 발생할 때만 국한되지 말고 주기적으로 이루어져 올바른 성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게 되길 기도해 본다.
대통령자문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가 교직경력 5~10년 이상의 교사는 누구나 교장 직에 응모해 교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교장공모제 도입을 논의 중이라고 하는데 교육 경력 5-10년으로 막중하고 중요한 교장 업무를 맡기겠다는 발상이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잊게 한다. 더군다나 현행 교장자격증제도를 없애고, 각 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교장을 선출한다고 하니 교육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다른 생각(교장자리에 앉고 싶은)을 가진 자들의 욕심이 아닐까하는 우려가 앞선다. 이런 발상은 교육을 아무나 하고 교장을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의 제도에 모순이 있으면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자격증제도를 없애고 선출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되리라고 생각하는가? 교직경력 5년이면 20대 교장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인데 교육경력 5년으로 단위학교를 책임지는 교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수준이 아닌가?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도자 자리요 학교구성원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 하는 교장을 무자격자 중에서 짧은 교직경력자에게 맡긴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요. 교육의 공동화는 물론 교육의 황폐화를 가져 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세계의 교육을 살펴봐도 선진국에서는 없던 교장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자격요건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왜? 거꾸로 가려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학교장의 요구조건 중에 리더십을 꼽는데 축구감독에 비유해 보자. 「히딩크」 감독보다 축구기량이 더 뛰어난 선수경력 5년-10년 된 선수를 축구선수와 학부모들이 위원회를 구성하여 선출한 다음 감독을 시킨다면 과연 그 축구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선수와 감독은 다른 것이다. 감독은 선수를 은퇴하여 코치와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경험을 통해 리더십을 쌓고 자기만의 노하우를 가진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교육의 모든 문제가 학교장에게 있는 것처럼 공모제라는 미명아래 흔들어 놓으면 다시는 회복하기 힘든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국가의 앞날이 암울한 지경에 이르면 그 책임을 누가 진단 말인가? 우리나라의 교육의 문제는 학교장에게 자율과 권한을 더 주어 학교장의 교육철학을 펼치고 리더십을 발휘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 주는 일에 앞장서야지 자격도 없이 교육경력도 짧은 교장을 선출하는 교육을 망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학교장은 교육행정만 하는 자리가 아니다. 단위학교의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이를 경영하면서 학생을 교육하고 교사를 獎學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성이 있고 올바른 인성을 길러 민주시민으로써 학생을 교육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자리이다. 학생을 직접 가르치지 않고 교육행정만 맡아 했거나 교육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또는 CEO로서 경영마인드를 쌓았다고 교육을 맡을 자격요건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교육을 흔들지 말고 교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일부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 5월이 시작되었다. 며칠 전 한겨레신문에 실린 듀나인가 하는 사람의 글을 읽고 또 다시 지나온 길이 되돌아 보이고 속이 편치 않았었다. 더구나 그 기사 이후에 교총에서 하는 일련의 조치를 보면서 더 더욱 속이 편치 않다. 지금와서 새삼 ‘군사부일체’의 스승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사부일체를 가르칠만큼 스승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교육의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바른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조상들의 가르침 자체는 진리일 수밖에 없고 지금도 유효하다. 존경과 신뢰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상대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볼 때 우리 교육이 존경과 신뢰를 잃은 첫째의 원인은 교사들에게 있다고 자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이 최선을 다해 교사의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만드는 이 나라 정부와 사회도 그 책임이 교사에 못지않게 무겁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확실한 주관을 가지고 쓰는 글을 부모님이 주신 자신의 이름을 밝혀 쓰지 못하고 듀나란 국적불명의 필명으로 쓰는 것을 보면 외관은 한국인이나 이미 그는 한국사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가 영화평론가며 소설가라고 표기했으나 그의 평론이나 소설을 읽은 바 없어 어떤 생각의 평론과 소설을 쓰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글 한 편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그가 말한 교사란 ‘애들을 가르칠 만한 기초적인 지식과 실력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이것은 김대중 정부부터 지금의 정부까지의 교육정책이나 교사들을 대하는 태도로 미루어볼 때 명확하게 언어로 표시하지 않았다뿐이지 그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되며 그것을 미루어 볼 때, 듀나는 익명의 정부 관리나 아니며 정부의 하수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더욱 그런 생각을 금할 수 없는 것이 이런 모욕적인 글이 공공연하게 일간지에 실린다면 이 나라의 교육을 책임진 교육부장관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교사들을 쓰레기라 모독한 것에 항의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늘 입만 열면 교육을 걱정하는 여러 학부모단체들도 당연히 내 자식은 쓰레기에게 맡겨지지 않았다는 항의를 하고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으로 이 글에 동조하는 것이 평소에 그들도 교사들을 보는 눈이 쓰레기를 보는 눈에 가까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 그들이 표면적으로는 인간교육을 논하고 교사의 인격을 말하는 이면에 그런 저의가 깔려 있다는 것이 너무 가증스러워 보인다. 그들이 이미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 교사들의 단체인 교총이 항의하고 고발하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참담한 일인가. 교총은 이런 글을 칼럼이라고 게재하는 신문같지도 않는 한겨레신문을 방문해서 항의하고 반론의 게재를 요구하기 전에 교육부 수장에게 모든 교사들의 명예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해야 했으며 여러 학부모 단체들의 침묵도 그 저의를 물어야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다른 길은 없다. 모든 교사는 스스로 쓰레기가 아님을 보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며 교육과 교사를 모독하는 어떠한 세력과도 당당하게 맞서 싸우기 위해 모두 일치단결해야 할 것이다.
사학법 재개정을 둘러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극한 대치로 1일 국회 본회의가 무산되는 등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양보권고'를 거부한 열린우리당은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2일 본회의에서 민주노동당 등의 협조를 통해 3.30 부동산대책 관련 입법 등 주요 민생법안 처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에게 이들 법안의 직권상정을 요청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강행처리시 모든 책임은 여당에 있다"고 비난하면서 본회의장 점거 등 물리력 저지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지방선거를 한달도 남겨놓지 않은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는 "국정을 책임진 여당 입장에서 민생법안은 반드시 회기내에 처리하겠다"면서 "한나라당이 물리력으로 법안처리를 막는다면 국민의 엄중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김원기 의장에게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안, 도시.주거환경정비법안, 임대주택법안 등 부동산 3법, 주민소환법안, 동북아역사재단법안, 법학전문대학원설치법안, 국제조세조정법안 등 12개 법안에 대해 직권상정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 김 의장의 한 측근은 "사학법 문제로 모든 것을 연계해 국회가 열리지 못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국회의장이 놓아둘 수 있겠느냐"며 직권상정 수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원내대책회의와 최고위원회,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고 사학법 재개정 대치국면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 불참 방침을 정하고 김원기(金元基) 의장을 방문, 직권상정을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이재오(李在五)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민노당이 여당의 '낭중취물'(囊中取物.주머니속 물건)이냐"면서 "그렇게 하면 한나라당은 가만 두지 않을 것이며, 강력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말해 물리력 동원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우리당의 공조 요청에 대해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은 반대입장을 표명했지만 민노당은 비정규직 법안의 이번 임시 국회 처리를 연기할 경우 다른 법안 처리에 협조할 수 있다는 조건부 수용 방침을 밝혔다. 의석분포(총 296석)로 볼 때 우리당 142석과 민노당 9석만 합쳐도 의결정족수(149석)를 충족할 수 있어 직권상정이 이뤄질 경우 법안처리는 가능할 전망이다. 한편 이날 전체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던 3개 상임위 가운데 운영위는 우리당과 민노당의원만이 참석한 채 독도수호.역사왜곡대책특위 구성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건교위는 우리당 의원만이 모여 부동산대책법안의 의장 직권상정을 요청키로 한 뒤 1시간만에 산회했다. 국방위는 아예 열리지 못했다.
2008학년도 대입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대학의 학생부 반영비중을 높이고 고교에서 논술교육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강력히 추진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1일 오후 차관 주재로 '2008학년도 대입제도 정착 추진단' 1차 회의를 열고 2008학년도 대입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에 필요한 여건을 조성하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검토하고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2008학년도 대입제도는 고교 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비중을 확대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점수가 아닌 9개 등급으로만 제공하며 대학별고사의 비중을 낮추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추진단은 2008학년도 대입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교와 대학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교육차관을 단장으로 대학 입학처장, 고교 교사, 대교협 ㆍ교육혁신위 관계자 등으로 구성됐다. 추진단은 고교 및 대학의 의견을 수렴해 학교를 통한 논술교육 활성화 방안, 입학사정관 도입 및 활용방안, 학생부 반영비중의 강화, 학교간 학력차의 조화방안, 과도한 학습부담 및 사교육 의존도 해소방안 등의 정책을 협의해 나가게 된다. 추진단은 특히 일선 고교의 성적부풀리기 방지 등을 통해 학생부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대학들이 대학별 고사 비중을 낮추는 대신 학생부를 입학전형에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추진단에서 논의된 내용을 교육부총리 자문기구인 '교육발전협의회' 등을 통해 심화, 확산시켜 나가고 관련 정책에도 적극 반영키로 했다.
부산에서는 전국 처음으로 코시안(Kosian.한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편견을 넘어 당당한 세계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겠다는 명분으로 대안 초등학교 문을 열고 이를 점차 늘려갈 계획이라고 한다. 10수 년 전 초등학교에서 여자 아이들에 비해 남자 아이들이 많아진 ‘남초현상’을 두고 남학생들에게 “너희는 나중에 결혼하기 힘들겠다.”고 말했더니 그들 중에 “외국에서 수입하면 되지요, 뭐.”라고 말했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정말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농촌 총각을 중심으로 국제결혼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 이제 그들의 자녀들이 초․중등학교에 입학하는 나이로 성장함에 따라 최근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교육 측면에서도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육당국에서도 국제결혼가정에 대한 각종 현황 조사를 비롯하여 그들에 대한 교육대책을 시달하며 관심을 쏟고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를 안고 있는 그들을 위해 각종 정책을 수립 추진하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최근 공문을 보면 단순한 현황조사를 넘어 아이들과 부모들의 개인정보와 생활상을 상세히 파악하여 집계된 결과를 TV 등 언론에 무분별하게 보도함으로써 인권을 침해하고 있어 이를 지적하고 싶다. 이런 행위가 아무리 혼혈아를 위한 교육대책이라는 명분이라 할 지라도 이렇게 눈에 띄는 관심 집중 정책은 그들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이며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우리는 언제까지 그들에게 인종차별적인 용어 ‘코시안’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것인가? 그들에게 이런 꼬리표를 붙인 채 아무리 좋은 정책으로 관리하는 한 그들은 죽을 때까지 당당한 ‘코리안’으로 남을 수 없을 것이다. ‘코리아’에서 태어나 또 ‘코리안’으로 살아가야 할 ‘한국인’에 대한 별도의 호칭은 엄격한 차별이다. 더구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마저도 사실은 가장 차별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코시안’들이 편견을 넘어 당당한 세계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한 대안학교,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당당한 한국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겠다는 명분은 자칫 그들을 ‘혼혈’이라는 장벽을 고착화함으로써 어쩌면 영원히 당당한 ‘코리안’으로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모순을 더욱 키우는 정책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코시안’이 아니라 ‘코리안’이다.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놓고 교원단체들 간에도 찬반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1일 오전 간부회의를 열어 사학법 재개정 불가 방침을 굳힌 열린우리당을 강력 비난하며 정치권은 사학법 재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재갑 대변인은 "작년 12월9일 열린우리당 주도로 개정 사학법이 통과된 이후 교육적 혼란과 갈등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며 "특히 정부와 여당은 각종 행정력과 범정부 차원의 사학비리 감사를 통해 사학을 압박하는 등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학생과 학부모, 국민들을 불안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으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따라서 정부와 여당은 여론만 내세워 개정 사학법을 강행하지 말고 결자해지의 자세로 재개정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 사립중고법인협의회와 한국사학법인연합회도 개정 사학법은 위헌소지가 많은 만큼 재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립학교개혁 국민운동본부(사학국본)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이날 오전 청와대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개정 사립학교법은 학교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임에도 야당과 사학재단의 주장에 밀려 법 의미 자체가 퇴색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사학법 재개정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교조 이민숙 대변인은 "국회 파행 운영에 발목이 잡혀 사립학교법이 후퇴한다면 노무현 대통령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앞으로 사립학교법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강원지역 상당수 초.중.고교가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스승의 날 휴업을 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1일 강원도교육청에 따르면 강원도 내 고등학교 115개교 중 39%에 이르는 45개교가 학교장 결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휴업을 결정했다. 또 도내 중학교 161개교 중 현재까지 60여개교가 넘는 학교들이 휴업을 하기로 결정했고 초등학교도 대부분의 학교들이 자율적으로 휴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스승의 날만 되면 매년 반복되는 일부 교사들의 촌지문제 등 교육 부조리로 선생님을 존경하는 풍토보다 오히려 부작용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강원도 초등교장협의회 최상은(강릉 남산초교 교장) 회장은 "강릉지역은 모든 초교가 휴업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스승의 날의 본래 취재를 벗어나 잡음이 끊이지 않음에 따라 각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휴업을 권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춘천의 한 교사는 "사실상 스승의 의미가 퇴색되고 교사들의 자긍심에 상처만 입히는 스승의 날을 많은 교사들이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며 "학기말인 2월달로 스승의 날을 옮기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연간 수업일 수 220일 중 10% 내에서 학교장이 재량으로 수업을 조정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재개정을 거부한 채 4월 임시국회에서 민생법안을 강행처리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한나라당이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 불참과 실력저지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정하고 나서 여야가 정면대결로 치닫고 있다. 우리당이 '소(小) 야당'과 공조, 민생법안 처리를 강행할 경우 한나라당은 물리력을 동원한 저지에 나설 것으로 보여 5.31 지방선거를 한달 앞두고 정국경색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우리당은 1일 원내대책회의를 열어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야당의 협조를 구해 부동산대책 후속법안과 국방개혁기본법안, 주민소환제법안, 동북아역사재단법안, 국가재정법안, 로스쿨 법안 등 민생개혁법안을 회기내 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우리당은 한나라당 소속인 안상수(安商守) 법사위원장이 이들 민생법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 2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사학법 문제로 모든 것을 연계해 국회가 열리지 못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국회의장이 놓아둘 수 있겠느냐"며 직권상정 요청 수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와 최고위원회,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고 사학법 재개정 대치국면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 불참 방침을 정했다. 이재오(李在五)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민노당이 여당의 '낭중취물'(囊中取物.주머니속 물건)이냐"면서 "만약 그렇게 하면 한나라당은 가만 두지 않을 것이며, 강력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말해 물리력 동원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우리당의 공조 요청에 대해 민주당은 반대입장을 표명했지만 민노당은 조건부 로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의장 직권상정이 이뤄질 경우 민생법안 처리는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석분포(총 297석)로 볼 때 우리당 142석과 민노당 9석만 합쳐도 의결정족수(149석)를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노당은 여당이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처리를 연기할 경우 다른 법안 처리에 협조하겠고 밝혔으며, 여당도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비정규직 법안의 회기내 처리는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원내대표는 "부동산 시장 안정이 중요하지만 국회의 정상적 의사결정 또한 중요하다"며 "재건축 이익환수법은 6월 임시국회에서 정상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의총에서) 정했다"고 밝혔다. 국민중심당은 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먼저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면서 일단 1일 국회 본회의에는 불참하기로 했다.
송혜림 | 울산대 아동가정복지학과 교수, '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시민의 모임' 이사 다양하게 해석되는 가족의 의미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필자의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을 보니 '가족'의 역할이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있어, 언젠가 집에 놀러온 아이 친구들을 보고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흰 종이 한 장씩을 주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얘들아 가족 하면 생각나는 거 뭐야? 그림으로 그려볼래?" 초등학교 초년생에게는 사뭇 추상적이고도 어려운 질문이겠으나, 사실 그 아이들 대부분은 형태가 달라도 여하튼 가족생활을 하고 있으니 생각나는 것이 많았는지,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친구들 종이를 힐끗거리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종이를 되돌려주었다. 거기에는 가족과 함께 밥 먹는 그림 그리고 함께 여행 간 그림이 단연코 많았다. 어린 아이들에게 가족이란, 함께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즐거운 여가시간을 보내는 친밀한 집단인가보다 정도로 결론이 났다. 얼마 전 새 학기가 시작되고 늘 그랬듯이, 강의를 수강하는 전공, 비전공의 학생들에게 '가족' 하면 생각나는 게 뭐냐고 물었다. 초등학생들과는 달리 사랑, 신뢰, 위로,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기, 관계의 지속성 등이 강조되는 것을 보면 청년들에게 가족은 사뭇 정서적 관계 맺음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성별에 따라, 연령에 따라, 결혼여부에 따라 공통점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최근 들어 가족과 관련된 언론의 보도나 통계, 실태조사, 의식조사 등을 보면 가족에 뭔가 큰 변화가 있는 것이 확실하고 그래서 더더욱 사람들은 가족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 든 어르신들에게 가족은 아들, 딸, 사위, 며느리를 포함하지만, 막상 사위나 며느리는 장인, 장모 혹은 시부모를 가족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경우도 있다. 또 호적상, 주민등록상 가족에 대한 규정은 내가 생각하는 가족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다. 가족은 우리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에게 너무나 가깝고 일상적인 생활세계이면서 또 들여다볼수록 어렵고 한마디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그래서 매우 어려운 주제라는 것이 연구자로서 필자가 늘 하는 생각이다. 가족은 단지 변화 과정에 있을 뿐 가족의 모습이 다양해진 것은 많은 요소들과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이면서 동시에 과정이겠으나, 그 중 가치관의 변화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긴다니 대부분 결혼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는 가족의 구조나 모습, 관계 등에 대한 생각도 어느 하나의 전형으로 회귀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 들어, 혈연과 혼인·입양의 관계를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가족'의 개념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결혼을 했나, 누가 낳았나를 기준으로 가족을 규정하기보다, '누구와 어떻게 사는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가족개념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주장도 있다. 이제 2008년도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신분제는 기존의 호주제 중심의 가족제도를 대폭 손질 보완하여, 자녀를 낳으면 경우에 따라 엄마 성(姓)을 줄 수도 있고, 엄마의 재혼과 함께 그 자녀는 새 아빠의 성(姓)으로 바꿀 수도 있으며, 함께 사는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가족과 친족의 범주를 구별하는 등의 내용들이 검토되고 있다하니 가족의 개념도 많이 바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다양해지는 형태의 가족을 보고 있으면, 상당히 가족이 취약해지고 불안정성이 증대되며 그래서 가족의 의미나 가치 그리고 중요성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려 하고, 아이도 안 낳거나 적게 낳으려 하며, 이혼은 더 많이 하니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은 변화 과정에 있을 뿐, 지속적으로 '구성-해체-재구성'을 반복해 가며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삶에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별히 살벌한 경쟁, 살아남기 위한 스트레스가 심한 이 시대에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구성원 간 사랑과 신뢰를 주고받으며 여가를 함께 즐기고 휴식과 안정을 제공하는 정서적·관계적 역할의 수행이라는 차원에서 더 부각되는 공동체이며 생활단위라는 데에도 의문의 여지는 없다. 점차적으로 서구에서도 또 우리나라도 '사랑'이라는 정서, 관계에서의 책임감 등이 중시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의 달에 가족을 다시 생각하며 우리가 짚어보아야 하는 것은, 이처럼 형태의 다양성을 보이는 가족을 우리 사회가 인식적으로 또 제도적으로 얼마나 수용하고 있는가이다. 어쩌면 실제 삶에서 가족은 다양해지고 있지만, 우리의 인식 속에선 줄곧 '엄마, 아빠와 그들이 낳은 아들, 딸로 이루어진 가족'을 정상가족, 전형적 가족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증가추세를 보이는 '그렇지 않은' 가족의 구성원들은 이 사회에서 비정상적이고도 이상한 일탈가족으로 낙인찍히게 되지 않을까에 대해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엄마, 아빠 중 하나는 없거나, 성이 다른 아빠 혹 형제자매와 살거나 하는 경우는 계속 증가해왔고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이다. 우리의 생각 바꾸기가 필요한 때 일하는 엄마도 계속 증가 추세이다. 그런데 각급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가정생활조사, 숙제와 준비물, 학교행사 등은 '낳아준 엄마아빠와 산다', '집에는 엄마가 있다'는 전제 하에 출발한다. 여성의 취업률이 50%를 넘어간다 하는데도 중·고등학교 시험 감독에 학부모가 참여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저학년 배식이나 청소, 환경미화도 상당한 부분 부모, 그 중에서도 엄마의 손에 의존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은 교육현장에 남아있는 '관행'이기도 하다. 그것이 100% 자발성과 자율성에 기초한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마는, 그것이 아닐 경우에, 게다가 그 과정에서 학교활동의 참여자와 비참여자 간의 갈등이 싹튼다면 이러한 관행을 계속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오랫동안 주부 상담을 해 온 필자는 이와 관련한 취업주부들의 심리적 갈등과 소외감, 다른 학부모들에 대한 미안함 등에 대해서 많이 들었다. 엄마는 취업하고 아빠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어떤 가정에서 초등학생 자녀 점심 배식에 참여해야 하는데 시간 내기가 자유로운 아빠가 갔더니, 다른 엄마들이 불편해하고 아이들도 웃고 해당 자녀는 얼굴 빨개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난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몇 번 더 아빠가 참여했더니 힘 센 아빠가 무거운 것도 잘 들고 청소도 빨리 잘 해서 다른 엄마들이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한참 후에 들었다. 사실 생각만 조금 바꾸면 되는 일인데 생각바꾸기는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다. 양성평등의 관점이 부각되는 이 시대에 가족과 관련된 일을 여성, 엄마, 주부에게만 부담지우는 일은 상당한 낙후와 지체의 표현이다. 가족은 양성 간, 세대 간 평등과 민주적 관계를 배우는 경험의 장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자녀들은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배운다. 아빠는 앞치마 두르고 부엌에 서 있고 엄마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그림이 교과서에 등장한다. 그런데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어떻게 우리 자녀들이 ‘평등’이라는 가치를 제대로 배우고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해마다 5월이 되면 가족의 달이라 하여 가족을 다시 생각하는 행사도 많고, 각급 학교에서의 숙제나 활동도 가족을 주제로 한 것이 많다. 가족에게 편지쓰기, 가족운동회, 가족과 함께 하는 체험활동 등 다양하다. 그 중 아빠에게 편지쓰기를 보자. 직장 때문에 가족에게 소외되는 아빠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그 아빠를 격려하고 배려하기 위하여 편지를 쓰고 봉투에 아빠이름 붙여 직장으로 보내는 그 의도는 긍정적이지만, 아빠가 없거나 아빠와 성이 다른데 그걸 굳이 밝히고 싶지 않고, 아빠가 실직하여 마땅히 편지 보낼 직장주소를 써 낼 수 없는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상처로 남는 활동들이다. 이러한 사례는 변화되고 새롭게 재구성되어가는 다양한 가족을 소외시키지 않고 더불어 살기 위해 우리의 생각바꾸기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임을 상기시킨다. 형태가 아닌 사는 방법에 주목해야 그래도 더 많은 수의 자녀들이 그들을 낳아준 엄마, 아빠와 사는 현실에서 꼭 그렇게 얼마 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고려하고 배려해야 하는가라고 누군가 의문을 제시한다면, 필자는 당연히 그렇다고 말한다. 일단 '얼마 되지 않는'이라는 전제가 틀렸고, 만약 소수라 해도 우리가 더불어 살기를 지향한다면, 그래서 나누고 참여하고 서로 배려하는 성숙한 문화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또 소외와 편견 없이 상호작용하고 싶다면, 이미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수용하고 차별 없이 대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가족이 결핍감이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당당하게 이 시대를 함께 사는 가족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가족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가족을 다시 보고 되돌아봄으로써 새롭게, 제대로 보기 위한 시도를 우리가 함께 해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가족과 학교, 직장, 사회 모든 생활현장에서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사회에 가족의 가치를, 새로운 가족문화를 정착·확산시키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서도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 5월 가족운동회를 경험한 어떤 아빠와의 상담이 있었다. 그냥 운동회도 아니고 명색이 5월 가족의 달 행사인 가족운동회니까 모든 가족이 가능한 한 많이 참석해야 한다는 취지도 있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인다는 사실에 흐뭇해하며 그 날을 기다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신데 막상 이 아빠는 참으로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직장에 다니는 아빠도 참석할 수 있는 날을 정하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있는 쉬는 토요일이었고, 쉬는 토요일이라 일찌감치 예정되어 있던 직장동료와의 운동, 동창회 모임 등을 다 그 다음 날로 미뤄놓았던 것이다. 주중 장시간 근무에 시달린 상담자는 토요일에는 온 가족이 즐거워야 하는 가족운동회에 참여해서 뛰고 뒹굴고 소진한 다음, 일요일에는 미뤄놓은 약속을 지키느라 월요일 출근이 다른 날보다 힘들었다고 하소연했다. 1년에 한두 번 있는 가족운동회일 것이니, 다른 가족 모두가 즐거웠다면 그냥 참고 받아들이라 해야 하나, 필자는 잠시 고민했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는 이런 경우 그 다음 날을 부모휴가일로 정해 자녀들의 일로 학교나 행사에 참여하는 경우의 부담을 줄어주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다양한 가족이 더불어 사는 새로운 가족문화는 지엽적인 행사나 캠페인, 홍보로만 되는 일은 아니다.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가족은 그들 나름대로 노력할 일이지만 국가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지원이 있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를 요구해야 할 권리가 분명히 있다. 필자는 그 형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한다. 몇 년 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소년범죄자 중 훨씬 더 많은 비율은 사람들의 선입관과 다르게 가난하거나 무엇이 부족하거나 이상한 가족이 아니라 소위 부모가 다 있는 정상가정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발표된 바 있다. 결국 어떤 모습으로 사는가보다는 어떻게 사는가 하는 삶의 내용이 더 중요함을 알려준다. 사회구성원 모두 노력해야할 과제 형태가 변하고 가치가 변하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적 변화도 크지만, 그래도 가족은 우리들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최초로 만나고 경험하는 생활의 공동체임은 확실하다. 가족 안에서, 가족을 통해서 우리는 사랑과 믿음의 주고받음을 경험한다. 가족은 소속감, 안정감, 편안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서로 주고받고 배우고 경험하는 상호존중, 되돌려 받음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배려하는 기쁨, 더불어 사는 삶의 책임과 협력 등은 가족생활을 통해 충분히 경험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가족 구성원들이 전인적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거쳐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족 안에만 머무르는 가족이기주의적 현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족이기주의는 사회보장이나 복지수준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의 복지를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낸 왜곡된 대응방식이다. 가족 밖에는 믿을 이 없고, 가족 중 누군가 성공하면 그 가족 모두가 잘 살 것이라는 생각은 과도한 교육열, 그로 인한 계층 간 위화감과 불신 등의 사회문제를 우리에게 남겨놓았다. 다른 가족의 불행과 실패, 낙오를 무시하고 내 가족만 무사하면 된다는 가족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은 가족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가치들 -책임과 배려,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 등-을 희석시키고 의심하게 만든다. 따라서 가족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가족구성원들 간에 경험하는 긍정적 가치들을 다른 가족과 그리고 사회와 나누는 개방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신뢰, 책임 등은 이제 가족과 사회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교환되어야 하고, 사회적 영역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그래서 최근 들어 부각되고 있는 자원봉사, 나눔, 참여, 평등, 평화 등과 같은 가치가 가족에서 체험될 수 있어야 하며, 가족은 이러한 가치를 배우고 실천하는 평생을 두고 지속되는 중요한 교육현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자면 가족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일은 필수다.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되 그 본질적 의미와 가치는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 이타성과 협력, 책임과 신뢰를 배우고 익히는 가족, 이러한 가치를 가족 내부적으로만 갖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다른 가족 그리고 사회와 활발히 교류할 수 있는 개방된 가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더불어 사는 가족, 나눔과 참여가 실현되는 가족, 이것이 이 시대 새로운 가족문화의 핵심이다. 가족은 평생학습의 현장으로 거듭나야 하며, 개인과 가족 그리고 국가사회가 공동의 노력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5월 가족의 달에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전영주 | 신라대 아동가족상담학과 교수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가족에서 일어난 일들을 단지 '상당한 변화'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후기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가족의 형태, 가족의 기능, 가족 가치관에서의 근본적인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변화를 정리하자면, 가족형태의 다양화, 친밀성의 혁명, 평등성으로의 변화, 가족의 공공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 어떻게 바른 가정의 역할을 정립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다양한 가족에 대한 수용 얼마 전 부산의 한 신문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이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해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입양가정이나 국제결혼은 말할 것도 없이 미혼모(미혼부) 가정, 자발적 무자녀 가정, 동거가구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경향을 보였고 심지어 응답자의 20%는 동성애 커플도 가족으로 인정한다고 답변했다. 통계치를 인용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한부모 가족, 재혼가족, 동거 커플, 동성애 커플, 국제가족, 분거·기러기 가족, 입양가족, 공동체가족 등이 증가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혼'이나 '혈연'이 '가족'을 이루는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일반인의 생각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가정이란 무엇인가? 정상가족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혼인으로 맺어진 부모와 친자녀로 이루어진 중산층 핵가족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많은 가족이 이 범주에 적용되지도 않을 뿐더러, 부모 주도적인 폐쇄적 가정에서 자녀들은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기를 꿈꾸고, 부부는 함께 있어도 진정한 교류를 하지 못해 남모를 외로움에 떨기도 하는 중산층 가족을 종종 보게 된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가정일수록 정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 진정한 가족이라면 가장 안전하고 서로 친밀하게 느끼며,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우군이 되어주고, 힘들 때 기꺼이 인내해주고 시간을 내어주는 관계일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가끔 '비정상적' 형태의 가족에서 이러한 진정한 가족관계가 발견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는 가족의 형태를 가지고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뿐더러, '비전형적' 가족형태는 기능도 병리적일 것이라고 가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다양한 가족의 출현은 사회구조의 변화를 반영한다. 수천 년간 지속된 농경시대에는 혈통을 바탕으로 한 친족중심 확대가족이 주를 이루었다. 농경시대에는 사람 수가 바로 노동력이었기 때문에 다산을 통한 가족의 확대는 복의 근원이었다. 산업화는 인류의 사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또 하나의 혁명적 사건으로 '개별화'를 촉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도시화,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공장, 직장을 따라 이주가 빈번해지고, 부부 중심의 핵가족은 생활과 생존의 기본단위가 되었다.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가 만연하였으며, 구조적으로는 가족 내 임금노동과 무임금노동에 따른 남녀 간 성별이분화가 뚜렷해지게 된 것이다. 산업화로 촉발된 '개별화'는 후기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도 그 기세를 멈추지 않았고, 이제 우리는 다양한 가족의 출현을 통해 근대 부부중심의 핵가족이 해체되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각 시대의 주요한 가족형태는 가족이 처한 사회적 상황에 대한 생태학적 적응 양식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추세 속에 우리에게는 가족에 대한 정상성의 신화, 즉 편협함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삶의 방식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가족의 형태에 따라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어려움을 다룰 수 있는 교육과 상담, 정책의 준비가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성별과 세대의 간극을 넘어 한편 우리 가족이 갖고 있는 심각한 어려움 중 하나가 성별 간의, 또 세대 간의 심화되고 있는 의식 차이이다. 가족은 기본적으로 성별과 세대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 집단인데 성별과 세대 간의 간극이 넓어진다는 것은 가족갈등과 소외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가족은 화성인과 금성인이 함께 산다고 표현할 정도로, 남성과 여성이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 남녀 간 의식 차이의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만이 아니라,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여성의 의식 변화는 빠른 반면 기득권을 가진 남성의 가치관의 변화속도는 느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결혼생활 만족도가 더 낮으며, 이혼제기율은 더 높다. 대다수 남편들은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지만, 아내들의 경우 남편과 다시 살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높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연구에서 결혼관, 가족관, 성의식, 성역할, 사랑관, 배우자관 등에서 심각한 남녀 학생의 의식 차이가 나타난다는 보고가 있었다. 다양한 가족에 대한 수용성 역시 남성보다 여성이 더 높다. 이러다보니 남성과 여성의 의식 불균형 상태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소외시키며 두 성(性)간의 진실된 교류를 차단하게 되었고, 높은 이혼율은 이러한 성별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세대 간의 의식 차이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데, 특히 20대의 여성은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반면 50~60대의 여성은 가장 보수적이다. 한 가족 안에서 어머니와 딸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상반된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화 시대에서 컴퓨터 조작과 정보의 근접이 어려운 구세대는 오히려 신세대로부터 배워야하는 입장이 되었다. 신세대에서 구세대로의 '역사회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보니,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권위를 내세우며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적이며 친밀한 관계, 평등성에 입각한 새로운 세대관계의 제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정내 중심은 부부간 애정 산업화 이후 가족의 여러 가지 기능 중 유독 강화되고 있는 기능이 애정의 기능이다. 과거 가족이 수행했던 종교적 기능이나 교육의 기능 등은 사회의 여타 제도로 흡수, 대행되고 있지만, 가족이 제공하는 정서적 지지와 애정의 기능은 다른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다. 후기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개인의 성욕구와 낭만적 사랑에 대한 추구가 더욱 강해졌고, 따라서 과거의 가족은 '애정'이 좀 부족하더라도 가족이 유지되어야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애정'과 '만족스러운 성생활'이 결혼유지의 중요한 조건이 되어가는 추세이다. 우리사회의 가족은 빠른 속도로 '부모-자녀 중심'에서 '부부 중심'으로 중심축이 이동되고 있다. 여전히 많은 부부가 자녀 중심적 생활을 하고 있고 불만족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자녀 때문에 이혼을 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젊은 세대로 갈수록 배우자와의 사랑에 비중을 두며 자녀보다 배우자를 중시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30여 년 전보다 평균수명이 자그마치 20살이나 늘었고, 평균자녀수는 1/5로 줄었으며, 이혼율은 3배 이상 늘었다. 자녀를 위해 여전히 많은 투자를 하지만, 자녀보다는 배우자와 지내는 시간이 늘어 배우자 선택에 보다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연령은 높아지고 혼전 동거는 늘게 되었다.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부부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기간이 워낙 길다보니, 사별로 인한 헤어짐보다 이혼으로 인한 결혼생활의 종결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자녀가 성장해 집을 떠난 후에도 부부가 함께 해야 할 시간이 상당히 늘어난 것이 주요 이유이다. 자녀가 떠난 후 길고 긴 중·노년기 동안 둘만 남아 서로 공통된 대화의 화제도, 취미도 없다면 참으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단순한 '추세'나 '경향'을 떠나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가족의 중심축이 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남남이 만나 자기 몸처럼 아껴주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는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하는 것인지 배운다. 여성의 부담, 남성의 소외 요즘 부모들은 딸 하나 잘 키우면 아들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고, 딸의 교육에 아들 못지않게 몰두하고 있다. 아들선호사상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그러나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지금, 여성들의 인생 부담이 더 적어진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중년 여성이 자녀(아랫 세대)를 돌보는데 평균 17년, 부모(윗 세대)를 돌보는데 평균 18년의 세월을 보낸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의 여성도 경우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지므로 중간세대 여성은 앞으로 더 긴 세월을 아랫 세대와 윗 세대의 돌봄과 부양에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면서 여성이 책임져야하는 가사노동, 돌봄노동, 임금노동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이러한 여성의 과도한 부담은 바로 혼인기피와 저출산의 문제로 연결된다. 한편 여권의 신장과 함께 여성의 부담이 급증하는 다른 한 쪽에서는 남성의 소외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가부장제도 하에 권위로 군림하던 남성은 어느 새인가 돈 벌어오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가족의 주변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족의 정서적 관계에서 어머니는 중심인물로서 자녀, 친족관계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 아버지는 가부장제 가족의 가장이라는 가면 뒤에 늘 겉도는 가족 아닌 가족이 되어버렸다. 직장에서 퇴직이라도 하고나면, 이러한 가족 내 남성 왕따 현상은 더욱 극심해져 허무함, 심하면 우울감을 갖게 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오늘날의 가족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중심에는 여성의 과도한 부담을 나누는 것과 뿌리 깊은 남성의 소외를 극복해야하는 과제가 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부담과 소외를 이해하고, 어루만져줄 수 있어야 한다. 자녀를 제대로 사랑하기 가족이란 내 배우자와 자녀를 사랑하고 돌봄으로서, 나 아닌 타인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훈련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어느 누구도 제대로 사랑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배우자와 좋은 친구로 우정이 식지 않도록 노력하기, 갈등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등 결혼생활은 노력 없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자녀를 제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아이가 필요한 의·식·주를 제공하고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사회적 기술을 습득시키는 것에만 국한하면 안 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자녀 사랑법이 있다. 첫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보듬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자녀에 대한 가장 큰 사랑 방법이다. 부모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후에 본인도 그러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녀를 잘 키운다는 것은 잘 떠나보낸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과도하게 기대하는 것, 내 인생의 미해결된 꿈을 자녀의 삶에 부담지우는 것 등은 자녀가 부모를 떠날 수 없도록 옭아매는 결과를 가져온다. 셋째, 자녀에게 함께 부대끼며 싸우고 놀 형제를 주어야 한다. 사회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더라도, 형제 없이 자라는 아이는 여러 측면에서 박탈될 수밖에 없다. 요즘 가슴으로 낳는 아이라고 하여 연예인을 비롯한 공인들의 공개입양이 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생물학적 친자녀 못지않은 사랑을 느낀다고 입을 모으며, 사랑을 줄 수 있도록 해준 입양아들에게 고마워 한다. 넷째, 부모가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가족이 속한 공동체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아들(장남)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졌지만, 요즘은 아들, 딸 불문하고 자녀교육에 몰두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 종종 '어머니 CEO 투자 주식회사'라 할 정도로 어머니가 기획한 가족상황에서 자녀의 교육과 출세를 위해 몰두하는 중산층 가정이 목격되곤 한다. 그러나 자녀에게 물려주어야할 것은 돈과 출세방법이 아니라 가족의 사랑이다. 가족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은 부모의 모습은 아이의 미래 공동체의 모습에 투영되기 때문이다. '제도'에서 '관계'로 의미변화 "TV를 없애면 강북가족이 해체되고 애완견을 없애면 강남가족이 해체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가족은 TV와 애완견을 매체로 간신히 지탱되고 있다는 자조적인 말이다. 과거에는 타인의 존경을 받고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사는 삶을 성공적인 삶으로 보았다. 그러나 최근으로 올수록 남 보기에 그럴 듯한 모습으로 살기보다는 소박하고 진정한 관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혈연과 제도를 넘어선 관계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추세는 바로 가족이 '제도'에서 '관계'로 의미가 변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존경을 받으며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지만 안은 텅 빈 가족보다, 소박하지만 친밀하고 진실된 관계를 제공하는 가족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자녀 사랑법은 개인과 사회의 영성 수준과 관계있다. 자녀가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인류의 소유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전제조건이다. 요즘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들의 처지는 공사장 트럭 한 구석에 둥지를 틀어야하는 새와 다를 바가 없다. 둥지를 틀어 새끼를 낳고 먹이를 주려면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간의 사랑하고 싶은 욕구, 사랑 받고 싶은 근본적인 욕구는 가족과 자녀에게 태초부터 주어진 것이다. 미래의 가족은 열린 가족일 것이다. 혈연과 지역, 국적, 인종, 지역과 제도를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 가족이 제시될 때, 우리는 안전하게 아이를 낳고 행복한 인간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박미숙 | 광주 송원여자정보고 교사 가족의 전통적인 정의는 혈연과 혼인으로 결합하여 이루어진 집단이라는 것이다. 또 혼인, 혈연, 헌신, 법률 등으로 맺어져 앞으로의 상호관계를 기대하며 오랫동안 동거하는 사람들의 관계망으로 정의하였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성리학적 원리에 기초한 우리나라의 '가족'은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 이유는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변수로 인한 사회 구조의 변화로 가족 구성원수의 급격한 감소와 다양한 형태의 가족 출현, 가족 생활주기 등의 많은 변화를 가져 온 것이다. 가정은 가장 원초적인 조직 공동체 미국 가족의 변화를 살펴보면 우리의 미래 가족 문화를 예측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다민족이 살고 있는 미국 가족은 '지속성'과 '변화'의 두 가지 축을 모두 가지고 있는 복잡한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가족이 직면하고 있는 세 가지의 변혁은 첫째, 가족 내에서 발생한 성역할의 변화가 부부 간의 부양자 역할과 가사 노동의 역할을 공유하는 양상으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둘째, 가족 밖에서 생활하는 미혼자가 증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 혼자만의 집에서 사생활, 존엄성, 권위, 고독 등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 정형화된 친부모 가족에서 탈피하여 편부모(한부모) 가족, 혼합 가족, 확대 가족, 공동체 가족, 동거 가족, 동성애 가족 이외에도 결혼, 부모되기, 가족과 함께 살기 등을 거부하는 독신자, 무자녀부부, 편모 가족, 편부 가족, 노인 가족 등의 증가로 다양한 가족 문화, 가족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스콜닉과 스콜닉, 1997) 가족이 살고 있는 터전이나 삶의 보금자리를 우리는 '가정(家庭)'이라 한다. 따라서 가정은 자발적 의식에 따라 이루어지고 운영되는 형태로서 한 개인이 자기 삶의 주인임을 체감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조직이며 공동체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족의 현실은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 인구의 감소와 이혼율 급증이다. 이것이 단초가 되어 가정 해체로 인한 사회 문제 및 문화계승의 단절, 고령화 사회에 따른 노인문제, 다양한 형태의 가족 출현으로 인한 전반적인 가족관계의 변화, 가정폭력, 청소년범죄 등의 문제가 초래되고 있다. 이들 문제점의 증가는 가정의 안정성까지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는 인적 자원의 빈약으로 이어져 아이들의 진로를 불투명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 저하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식, 기술, 태도 등의 습득 및 실천 교육은 타 교과에 비해 가정교과가 주도적으로 담당해 왔다. 행복 추구가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볼 때에, 삶 자체(가족)를 생각하고 실천하기 위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가정(家政)교과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한 셈이다. 결국 앞에서 말한 가족붕괴, 저출산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의 기반은 가정교과가 기본이 된다는 점은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교육과정 총론 개정 방향 설정 연구〉(허경철, 2004)에서는 가정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한 교육을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나 일반 사회인을 대상으로까지 전개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실제로 사회적 요구 분석으로 볼 때 성교육, 예절교육에 대한 범교과 학습 요구가 높고, 이는 관련 가정교과에서 수용하는 것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나타나 있다. 감동과 배려를 교과서에 포함해야 가정교과서에서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가정(家庭)과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현대 우리나라의 가족문화와 가치관의 부정적인 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정학(家政學)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고 적극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세계적인 추세인 가정학의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교육 내용을 지양하고 보다 기능속의 가치와 가정문화를 살리는 방향과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 중심의 교육을 할 수 있게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 교과서 속의 가족이야기는 가족의 유형으로 소가족과 대가족에 대한 개념과 특징을 주로 다루며 가족 간의 관계가 주로 표피적인 내용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일상적인 대화와 내용만 다룬 까닭에 대화부족으로 인한 깊이 없는 가족관계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경향과 부모 자식 간에 서로 감동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는 배려가 아쉽다. 이청준의 〈눈길〉이라는 소설이나, 허세욱의 〈아버지의 뒷모습〉이라는 수필에서 보면 자식은 평소에 당신의 사정을 말하지 않는 부모에게서 별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부모님의 내색하지 않는 희생적인 자식 사랑을 알게 되어 깊은 회한에 잠긴 자식의 모습을 나타낸다. 교과서에서는 이런 측면의 내용을 다루어야 표피적인 느낌을 중시하는 청소년들에게 부모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의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범교과적인 측면에서 해결 필요 또 정형화된 가족은 마치 전혀 문제가 없는 가족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교과서에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은 정상적인 가족 속에도 문제점이 있고 현실적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에 처한 가족들에게도 문제점이 많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그 가족이 보편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를 심층적인 신뢰와 사랑이 밑바탕으로 극복해가는 메시지를 담은 모습의 내용 또한 교과서는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밖에 가족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다. 그런 문제들을 찾아서 교과 영역에 맞게 다양한 문제를 범교과적으로 다루어서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그 문제의 중요성과 적극적인 해결의 필요성을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중요성, 가정 윤리, 가족구성원의 필요성과 생활습관, 가정생활 및 가족 간의 이해, 신뢰, 믿음, 가족관계의 의사소통 강조, 변화하는 시대에 따른 부모나 자녀로서의 역할의 변화 및 중요성,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형성의 중요성, 청소년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 청소년의 심리적 갈등, 가족문제, 가족관련 법규, 인구 고령화에 따른 가정과 사회문제, 아동과 노인 복지 관련,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방법, 10대 임신과 관련한 부모의 교육 강화 등 시대적으로 해결을 당부하는 사회의 요구는 강력한 것이 현실이다. 가정교과는 더 이상 의·식·주와 관련된 생활기술을 배우는 기능교과가 아니라, 인간이 주체가 되어 생활을 자립하고 삶을 향상시켜 가는 능력을 기르는 교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우리 모두의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볼 때에, 가족이든 가정이든 문제의 해결은 교육을 떠나서는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범교과적인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 가족의 문제인 것이다. 이것을 너무 추상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교육의 중심을 가정교과로 두고 시작하면 발전적인 확산도 기대할 수가 있다. 가정교과의 성격과 목표도 변해야 사회의 발전에 따라 가사노동이 사회화되는 시점에서 의·식·주와 관련한 기술은 생활의 자립이나 생활문화의 전승, 또는 개인과 가족의 건강유지를 위한 측면에서 필요한 것이지, 의·식·주의 기술 자체가 학습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이춘식, 2004). 사실 현대인들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경제적 측면과 물리적 측면에서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가족 구성원의 역할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정에서 남녀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기초적인 사실부터 인식해야 한다. 지식기반 사회가 빨리 변하는 만큼 가정도 변한다. 이에 따라 사회양상을 반영해야 하는 가정교과의 성격과 목표가 변화하여야 한다.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기본이다. 가정은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자유로이 만들 수 있고, 그것이 위협받을 경우 자신의 능력이나 아니면 제도적 장치의 힘을 빌려서라도 지켜질 수 있어야 한다. 가정을 통해서 가족 구성원의 정신적, 물질적 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더욱 풍요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가정의 기능과 소중함의 교육을 학교에서는 지금까지 가정교과가 주로 담당해 왔다. 하지만 사회가 변한 만큼 가정교과의 내용이나 구조도 능동적으로 변해야 하고, 다른 교과에서도 개인 가정의 기능과 소중함을 중요한 과제로 다루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가족의 개념이 혈연이나 혼인에 의한 개념에서 탈피하여 학교, 지역사회, 민족, 인류가 한가족 공동체 의식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며, 가정 해체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서 우리사회는 한층 건강하고 밝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김진희 | 경남대 가정교육과 교수 Ⅰ. 들어가는 말 가족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사회 제도이며 우리나라의 가족제도도 그 구조와 기능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보였다. 외형적으로는 전통적 확대가족이 감소되고 다양한 가족형태가 나타났으며 내부적으로는 성역할이나 가족관계, 가족주의 가치관 등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가족에 대해 우리가 지니고 있는 전통적 개념들을 수정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가족에 대한 정의는 비전통적인 가족을 포함하기 위해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가족에 대한 정의는 '가족(the family)'이라는 획일적 형태보다는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족들(families)'이라는 것에 기초한 사회적 단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개념화해야 할 것이다. 올슨과 드프레인(Olson & DeFrain)은 '가족이란 둘 또는 그 이상의 가족원들이 서로 돕고 몰입되어 있으며, 애정과 친밀감, 가치관과 의사결정 그리고 자원을 서로 나누는 집단'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미국 Heritage 사전(1982)에서는 '한 지붕 밑에 가구를 형성하고 있는 집단'으로 정의하여 혈연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유영주 외, 2005). 좀 더 포괄적인 정의(Chilman et al., 1988)에 따르면 '현대 가족은 친밀, 헌신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집단에 속해있다는 정체성을 의식하고, 그 집단의 고유한 정체성을 수립하며 성적으로 표현적이나 부모자녀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았다. 가족에 대한 정의가 확장되고, 다양한 가족 유형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바람직한 가정 확립'이라는 논의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는 바람직한 가정을 연상할 때 남편-아버지, 부인-어머니, 자녀-형제자매라는 세 가지 지위로 구성된 완전한 구조 속에서 가족구성원들이 정서적 친밀감을 유지하여 응집성 수준이 높은, 기능적으로 완전한 가족을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구조와 기능이 모두 완전한 가족은 점점 감소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가족 유형들이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가정 확립'을 위해 먼저 고려할 것은 사회변화를 이해하고 그 사회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가족들을 인정함으로써 각자가 선택한 생활 유형 속에서 '바람직한' 방식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Ⅱ. 바람직한 가정이란? 이를 위해서는 전통적이고 완전한 가족에 대한 신화를 벗어나 다양한 가족 유형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 사회에서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교육의 장에 있는 교사들은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가족 유형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을 지원함으로써 '바람직한 가정 확립'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가족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과 교사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교사들이 바람직한 가정 확립을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를 논의해 볼 것이다. 다양한 가족의 출현과 유형들을 살펴보는 기회를 통해 전형적인 가족에서 벗어나는 가족들을 동등하게 대할 수 있는 가치관을 확립하고, 교사의 역할을 재인식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다양한 가족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사의 역할을 찾고자 한다. 후기산업사회, 정보사회 또는 탈현대사회로 지칭되는 최근 한국사회는 가족, 결혼, 자녀 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보편화된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함께 가족환경의 변화로 구조, 구성원 특성, 생활양식 등의 많은 측면에서 다양한 가족형태가 출현하고 있다. 다양한 가족은 가족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변화의 결과물이면서 사회의 기본단위로서 가족제도가 갖는 유기체적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그 방향성에 대하여 긍정적 또는 부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무의미한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가정은 전형적인 하나의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율성과 선택권 및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한 다양성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본고에서는 특정 가족형태가 갖는 배타성을 극복하여, 개별 가족이 당면한 문제와 위기상황을 해결하고 적응하는 가족이 바람직한 가정이라는 관점에서 가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가족의 출현 과정과 유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2005년 "가정은 개인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사회통합을 위하여 기능할 수 있도록 유지·발전 되어야 한다"는 이념으로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 시행에 즈음하여 발표한 다양한 가족에 관한 기획물(김승권, 김유경, 조애저, 박세경, 2005)의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하였다. 1. 다양한 가족의 출현 과정 (1) 사회적 요인 산업화 과정을 먼저 경험한 서구 선진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산업화는 도시화, 핵가족화를 촉진시키며, 아울러, 집단주의적 또는 가족주의적 가치관을 왜곡시키고 서구적인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확산시킨다. 한국사회에 급진전된 젊은 연령층 인구, 특히 젊은 남자들의 도시로의 이동은 한편으로는 농촌지역에 남겨져 있는 가족에게 사회적 긴장을 야기 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거와 근무 장소 간 원거리에 의한 분거가족의 증가를 가져와 도시생활에서 과다한 경쟁과 함께 가족원간의 긴장과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주말부부가족이 발생하게 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2) 가치관적 요인 다양한 가족의 출현배경으로서 가치관적 요인으로 혼인가치관, 자녀가치관, 부부관계 가치관, 가족부양 가치관, 여성의 자아욕구 등을 들 수 있다. 혼인가치관에는 결혼가치관, 이혼가치관, 재혼가치관 등이 있다. 과거 우리 사회는 보편혼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혼인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결혼이라는 사회제도에 대하여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견이 감소하고 '일종의 선택(option)'으로 생각하는 의견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3) 인구학적 요인 인구학적 요인에는 초혼연령 상승, 혼인 감소, 소자녀 선호, 중년세대의 조기사망, 평균수명 연장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먼저 여성의 초혼연령 상승은 교육에 대한 열망 및 미혼여성의 취업기회 확대 그리고 자아성취 욕구의 증대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초혼연령의 상승에 더해 혼자 살기를 원하는 독신자의 증가로 미혼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는 특히 남성보다 결혼에 대한 반대 입장이 강한 여성에게서 매우 현저하다. 또한 평균수명의 연장은 노인가족원이 많아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핵가족화를 감안한다면 노인단독가구가 증가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자의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통계적으로 약 6~7세 높다는 것은 남녀의 결혼연령 차이 약 3세를 감안할 경우 남편이 사망하고 여자노인 혼자서 사는 시간이 약 9~10년이나 될 것임을 말해준다. (4) 개인 및 가족 요인 다양한 가족의 출현 배경으로서 개인적 및 가족 요인에는 여성교육수준 향상, 여성경제활동참가 증대, 이혼가족 증대, 국제결혼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의 경제사회발전은 전반적으로 국민의 교육수준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특히 그 상승효과는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여성의 양성평등의 의식 증대, 경제활동 증대, 경제적 독립의 가능성 증대 등으로 모든 가족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교육수준의 상승 및 여성의 자아성취욕구 증대와 함께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PAGE BREAK]2. 다양한 가족의 유형 (1) 구조적 측면의 다양한 가족 구조적 측면의 다양한 가족은 전통적으로 가족의 구조적 특성을 결정하는 주요 가족관계로서 부모-자녀관계와 부부관계가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한부모 가족, 미혼모 가족, 노인 가족, 무자녀 가족 등이다. 구조적 측면의 다양한 가족은 성역할 구분이 모호하거나 또는 불안정하게 이루어지면서 결국 가족기능을 수행하는 데 있어 문제를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 가족이 구조적 특성으로 갖게 되는 가정생활 상의 특성이 반드시 가족원 개개인이나 사회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문제적 시각은 그릇된 편견을 갖게 할 수 있다. 가족구조의 다양성 자체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구조의 다양성에 대하여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부의 가족이 역기능적으로 기능하게 될 때가 문제인 것이다. (2) 가족원 특성에 의한 다양한 가족 가족원의 특성에 따른 다양한 가족 유형에는 전형적인 동질적 특성을 가진 가족원의 특성을 벗어나 재혼, 입양 등을 통하여 이질적인 가족원으로 구성된 새로운 가족관계가 형성되거나 이질적인 국적과 문화를 가진 남녀가 결혼을 통하여 가족을 형성하면서 나타나는 재혼가족, 입양가족 그리고 국제결혼 가족 등이 있다. 이는 기존의 혈연이나 부계중심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비롯하여 동일 언어 및 문화 등을 벗어나서 혈연이나 성씨, 다른 국적의 이질적 특성을 갖는 집단들과 새롭게 가족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가족형태와는 전혀 다른 가족원의 특성 및 결합원리 등의 특성을 갖는다. 가족구성원의 특성상 전형적인 혈연중심, 동일 성씨 중심, 동일 국적 중심, 출산 중심의 개념을 벗어나는 비전형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3) 생활양식에 따른 다양한 가족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가족은 기혼여성의 취업, 주요 가족원이 국내의 다른 지역에서 살거나 또는 외국에 거주함으로써 발생되는 가족유형이며 맞벌이 가족, 주말부부 가족, 기러기 가족 등이 포함된다. 맞벌이 가족의 증가 현상은 맞벌이 주말부부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부부가 같은 지역에서 직장을 찾을 수 없을 때 과거에는 한 배우자가 직장을 포기하고 다른 배우자와 함께 동거하는 것을 당연시하였으나 최근에는 부부 각자가 원하는 직장을 위해서 비동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짐으로써 맞벌이 주말 부부 가족이 발생되고 있다. 이외 1990년대부터 시작된 조기유학 열풍이 만들어 낸 부산물로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인 기러기 가족이 생겨나고 있다. Ⅲ. 가정을 위한 교사의 역할 오늘날 교사의 역할은 과거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해졌으며, 어떠한 역할이 주된 역할인지를 구분 못 할 정도로 교사의 여러 역할들이 동시에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은 시대나 사회에 따라 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살고 있더라도 사람에 따라서 역할을 달리 규정하고 있다. 학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학급담임 교사의 역할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지만 어떤 자질과 능력이 바람직한 교사의 조건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합의된 의견은 없다. 위에서 바람직한 가정 확립을 위한 교사의 역할을 이야기하기 위해 가족의 다양성과 교사의 역할들을 살펴보았다. 이는 최근 가족에서 나타나고 있는 구조와 기능상의 변화를 볼 때 '바람직한 가정'의 모델이 하나가 아님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함이었다. 사회변화와 개인적 선택을 고려하지 않는 '바람직한 가정'은 그 바람직함에 포함될 수 없는 가족들을 발생시키고, 이들은 곧 문제로 인식되는 오해와 편견을 낳게 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정은 유형이 아니라 유형에 따른 적극적인 대처와 적응이라는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면 많은 가족들이 비정상적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바람직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양한 가족 유형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바람직한 가정을 확립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교사의 역할을 몇 가지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교사는 바람직한 가정 확립을 위해 다양한 가족 유형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동일시 대상이며 학생들의 행동 모델이므로 교사가 가족에 대해 보여주는 가치와 태도는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교사가 담당하는 학생들은 개인마다 다양한 가족 유형 속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교사가 보여주는 비전통적인 가족에 대한 배타성과 편견은 학생들이 자신의 가족 유형을 부정하거나 친구들의 가족 유형에 대한 낙인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수업과 학생 지도에서 다양한 가족 유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나 비난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며 다양한 가족 유형 모두 개인적 선택으로 인정하는 개방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 교사 개인의 가치나 기준으로 학생들을 대하기보다 평가와 판단을 배제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비전통적인 가족 유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적응과 대처가 중요하다는 가치를 갖도록 하여 다양한 가족 유형이 각 상황에 적합한 바람직한 가정을 유지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두 번째, 교사는 바람직한 가정 확립을 위해 교사와 학부모에게 상담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전통적인 가족 유형에서 벗어난 가족 유형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가족문제와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심리적·정서적 고통을 경험하거나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학교생활의 부적응을 초래하고, 청소년 범죄와 탈선으로 연결되는 개인적 문제뿐만 아니라 자녀문제로 인해 가족관계가 악화되는 가족문제로 까지 이어져 질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이 처한 가족 상황 속에서 건전하고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조력자가 되어 고민을 들어주고 문제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학부모 상담을 통해 비전통적인 가족 유형에서 필요한 자녀 교육과 지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부모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가족 유형이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바람직한 가정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세 번째, 교사는 교과 지도와 특별 활동 등을 통해 학생들이 다양한 가족을 이해하도록 교육하여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가족 유형은 정상범주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사회변화에 따라 야기되는 적응적 변화임을 제시하여 자신의 가족 유형과 친구들의 가족 유형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다양한 가족 유형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도록 하는 가치를 갖는데 도움을 주어 학생들이 각자의 가족 유형에 잘 적응하도록 도움을 주며, 가족유형에 따라 친구들을 판단하여 또래 집단에서 배제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학교생활 적응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네 번째, 교사는 바람직한 가정 확립을 위한 가정생활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가정생활교육은 가족구성원으로서 개인과 가족 전체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변화하는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가족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모든 교육적 활동으로 정의된다. 교사가 교과지도와 학급운영을 통해 가정생활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므로 학교 단위 혹은 지역사회 내에서 가정생활교육 역할을 담당하고, 교사는 이러한 교육에 참여하는 인적 자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가정생활교육은 가족문제에 대한 예방적 기능을 하므로 바람직한 가정 확립을 위해 우선 되어야 할 영역이다. 따라서 가족해체와 결손이 발생하기 전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가정생활교육을 통해 원만한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가족 기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 또한 이미 전통적인 가족 유형에서 벗어난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이혼가족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가정생활교육을 함으로써 추가적인 문제 발생을 예방하여 바람직한 가정은 유형이 아니라 기능과 생활임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람직한 가정 확립을 위해 교사 개인의 가정생활을 원만히 유지해야 한다. 가족은 사회의 하위 체계이므로 개인의 가족 체계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교사 개인의 바람직한 가정생활은 사회 전체의 바람직한 가정 확립에 기여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교사들도 자신의 가정생활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여, 가족의 역기능적인 문제 발생을 예방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사도 독신, 이혼, 재혼 등의 가족 형태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교사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가족 유형 모두가 바람직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김상희 | 공주대 유아교육과 교수 다양한 가족을 경험해야 하는 교사 처음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이런저런 일로 많이 바쁨에도 불구하고 수락을 한 이유는 두 자녀의 엄마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현직교사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경험하고 느껴온 생각들을 정리하여 학생과 학부모 및 교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였다. 지금은 유아교육과로 소속을 옮겨서 재직하고 있지만 근 18년간을 가정교육과에 근무하면서 교육대학원 수업에서 교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장의 실태 및 어려운 점 등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좋은 교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체험 중 성공적인 사례들을 이 자리를 빌려서 소개하고자 한다. 아울러 유치원 원장 및 유아교사들과의 토의에서 얻은 사실들을 바탕으로 현 사회가 안고 있는 가족의 문제점과 이에 따라 현장교사들에게 요구되는 점들이 무엇이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가정을 떠나 새롭게 소속하게 되는 첫 번째 사회기관인 유치원에서 나타나는 요즘 아이들의 여러 문제점들은 교사들의 역할이 연령층이 어릴수록 더 중요하며, 때문에 참된 교사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를 제시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초·중·고 학교들이 평준화가 되었다고는 하나 학교 간의 차이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도시와 농촌 간에는 물론이거니와 같은 도시 내에 있는 학교 간에도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한 차이는 단지 생활수준의 차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모들의 교육수준과 직업 및 삶의 가치관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에 따라 학생들이 경험하는 가정생활에 많은 차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추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사에게는 이런 다양한 상황에 대한 폭넓은 사고가 요구된다. 애정과 사회화 기능이 강화된 가족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정생활은 급속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급속한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 사회의 초고속 진입에 따른 사회적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가족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농업경제에서는 자녀를 많이 낳으면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이 많아져서 집안을 번창시킬 수 있으므로 다산을 원하였고 특히 장남이 결혼 후에도 부모를 모시며 함께 살아가는 직계가족을 이상적인 가족으로 생각하였다. 아들은 노후에 부모들이 의존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아들에게 부모들은 헌신적이었고 그들 간의 유대감은 매우 견고하였다. 반면 열심히 양육했다 해도 성장하면 출가하여 남의 식구가 될 딸에게는 애정이 있어도 아들만큼 투자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딸에게는 많은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화를 거쳐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게 되고 교육과 직업을 위한 자녀들의 지리적 이동이 잦아지면서 가족이 한울타리에 사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고, '품안의 자식'이라는 옛말처럼 부모·자녀관계의 유대감도 점차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최근 젊은 세대들은 자녀는 낳고 기르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드는 반면, 투자한 노력에 비해 되돌아오는 것은 별로 없는 소비의 개념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이 자녀를 적게 낳게 되면서 남아선호사상이 줄어들고, 아들과 딸 모두에게 교육의 기회를 동일하게 부여하게 됐으며, 고정된 성역할 개념이 감소하고 상황에 따른 융통성 있는 성역할을 강조하는 양성성이 강조되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의 증가는 가정의 기능을 급속하게 변화시키게 되었다. 가정의 기능에서 생산과 보호, 교육 등의 기능은 감소하고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기능은 정서적 유대감을 공유하는 애정의 기능과 사회에 잘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 교육시키는 사회화의 기능이다. 가족의 기능 약화 및 가족구조의 변화 등은 많은 가족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즉 핵가족화와 함께 소자녀 및 외동아만 갖는 가족이 많아지면서 부모의 과보호에 따른 자신만을 아는 이기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사회적응문제, 부부가 모두 직업을 가지면서 아이를 적절하게 양육해줄 사람이나 기관의 부재로 인한 보육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특히 가족의 형성이 부부의 애정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부부관계가 가족의 가장 중요한 관계가 되어 부부간의 애정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이혼을 또 하나의 선택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 같은 사회가치관의 변화와 여성의 경제능력의 상승 등은 가족문제 발생 시 예전처럼 참고 살기 보다는 쉽게 이혼을 선택하는 비율이 늘어나면서 가족해체가 급속하게 증가하여 그 결과 부모이혼 후 자녀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이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내 가족에 대한 이해가 선행 되야 이처럼 가정의 위기라고도 인식되는 오늘날 교사의 올바른 역할은 무엇일까? 우선 '바람직한 가정'이 무엇임을 교사들이 올바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들은 자신이 소속된 가정의 모습을 분석하고 반성해 보아야 한다. 교사 자신이 소속된 가정이 바람직한 모습을 형성하느냐의 여부가 학생들에게 일차적 가정의 모델로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혼인 교사들은 자신의 부모와 형제로 구성된 원가족을, 기혼인 교사들은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로 구성된 생식가족을 남들이 바람직한 모습으로 인정해 줄 수 있는가를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된다. '나'의 모습이 건강하고 내 가족의 모습이 건강할 때 교사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선생이 되려고 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나란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으로서 자신의 성장과정을 분석시키고, 조부모를 포함한 3대에 걸친 가계도를 그려오는 숙제를 내주곤 한다. 학생들은 가계도를 그리기 위해 부모 및 친척과의 대화를 통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족의 일원으로 어떠한 배경을 가진 환경에서 태어나서 자라왔음을 알게 된다. 또한 부모의 양육태도에 영향을 미쳤을 조부모 및 부모의 형제관계 등을 분석함으로써 인간관계의 첫 단계인 가족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부모관계 및 형제관계에서 쌓였던 오해와 분노를 풀어가게 되면서 '나'와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을 재확인하는 경험을 갖게 한다. 현직 교사들에게도 이러한 가계도의 분석경험은 자신의 가족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가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실력과 함께 따뜻한 사랑 나눠줘야 교사는 '나'를 이해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성숙한 존재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은 인간관계의 첫 관문이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과정이며,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성숙한 모습을 보일 수 있고,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닌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사랑을 공유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사는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해 나가면서 성숙한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사의 권위가 떨어지고 그래서 학생과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무례한 행동들이 매스컴에 대두될 때마다 많은 교사들이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갖게 된다고들 말한다. 실제 모든 선생들이 다 비난의 대상은 아니지만 유명한 학원 강사에게 많은 학생들이 서로 배우겠다고 줄을 서고 학원 강사들이 고액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현실에서 교사들이 교단을 지킬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학생들이 가까이 다가설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그래서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하고 성숙한 선생님이 되도록 노력하자. 이때 교사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아울러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실력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실력을 갖추고 따뜻한 사랑까지 나눠줄 수 있는 교사에게 누군들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할까? 제자가 졸업 후 보내온 한 장의 카드와 편지만으로도 교사의 보람을 느끼면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교사에게 우리는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PAGE BREAK]학생과 학부모를 잇는 역할 필요해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를 잇는 가교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학생들은 가정을 떠나 학교생활을 하게 되면 대부분이 사회관계 속에서 자신을 적응시키는데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은 이해를 초월하여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이해해 주지만 학교는 함께 잘 지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규칙과 규범을 정해서 이를 위해 개개인의 요구상황은 참아줄 것을 요구하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정에서 형제가 적거나 없어서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경험이 부족한 아동의 경우 학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는 곳이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이제 학교생활을 이끌어주는 교사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부모 품을 떠난 자녀에 대해 대부분의 부모들이 어떻게 대해야 적절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교사에게만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교사의 입장에서 한반에 30명이 넘는 학생들을 일일이 파악하고 개별적으로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대해준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내 자녀만을 보는 부모의 입장보다 교사는 반 전체 학생을 비교해 보면서 특별히 신경써줄 학생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부모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점들을 부모에게 알려서 문제를 예방하거나 도와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교사는 일일통신문, 알림장, 교사와 학부모간 일기, 간단한 편지 등을 교환함으로써 학부모와의 의사소통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가정에서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부모의 이혼, 사별, 별거, 학대 등)이나 부모와의 갈등(편애, 부적절한 양육행동, 학대 등) 등을 겪고 있는 아동들은 정서적으로 유난히 불안해하거나, 지나치게 산만하고 수동적, 폭력적이거나 영양상태 및 복장상태가 극히 부실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제대로 가정에서 보호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경우이므로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서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호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교사가 관심을 갖고 적절한 지지자 및 보호자 역할을 담당해줄 때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 어려운 가정상황 때문에 불행하게 되는 일을 방지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문제에 맞서는 전문가가 되자 교사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교사는 전문직이다. 이것은 자신이 전공한 영역의 지식을 갖고 이를 잘 전달하는 능력 뿐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이를 학생들이 실생활에 접목하여 행복한 삶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량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먼저 교사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가르치는 분야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흥미를 갖고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실력 있는 교사에게 배울 수 있다면 부모는 비싼 과외비를 들여가며 학생들을 밖으로 내몰지 않아도 되고, 비싼 과외비 마련을 위해 생기는 가족 간에 불화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교사는 자신이 맺고 있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즉 교사는 직장 동료관계, 가족관계, 제자 및 학부모와의 관계 등을 잘 유지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 앞에 서서 늘 주목을 받게 되는 위치에 있는 교사는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법으로 체험한 다양한 인간관계의 예를 들게 된다. 이때 그들과의 긍정적인 관계가 자연스럽게 표출될 때 학생들은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배우게 되고 자연스럽게 가족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인간관계로 일반화될 수 있을 것이다. 교사가 자신만의 경험이 아닌 열린 시각을 가지고 학생들이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인간의 발달단계에 따라 각 단계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발달적 특성과 발달과업을 파악하여 각 단계에 해당되는 인간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여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교사는 문제에 직면하여 이를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해결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과 학부모의 문제까지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개입하고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학교라는 기관에서 또래와 교사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연장되어가는 추세이다. 학교라는 틀에 포함되는 시기가 빨라지고 '전생애 교육'의 의미가 강조되면서 연령범위가 점차 확대되어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을 대해야 하는 교사는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이를 해결할 능력을 요구받게 된다. 물론 교사가 모든 문제의 완벽한 해결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역량을 벗어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될 때 이를 전문가를 찾아서 적절한 시점에서 넘겨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모습을 갖춰라 이처럼 점점 교사들의 능력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이들에게 '전생애 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교사들은 부단한 노력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교사의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다양한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접하게 되고 이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교사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교사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과거의 관점과 다르게 다양성의 수용이 요구되는 요즘이기에 교사는 열린 시각을 가지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융통성 있게 이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과 새로움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적절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현명함을 갖추어야 한다. 즉 성역할고정관념, 동성애, 다양한 가정(이혼가족, 재혼가족, 한부모가족, 미혼모 가족 등)에 대한 편향된 사고를 벗어버리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이들에게 도움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화 사회에서 우리는 무한정으로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사가 지식을 넘어서 지혜를 나눌 수 있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수 및 연구 활동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의 자녀를 두고 있는 필자는 아이들의 학교에서 운영위원과 학부모위원을 하면서 '학부모의 입장'에서, 자식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학생의 입장'에서, 교단에서 교사들을 가르치면서 '교사의 입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해왔다. 그 결과 '나', '가족', '부모', '교사'가 각각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길을 홀로 갈 수는 없으며, 서로가 긴밀한 끝으로 이어져 상호협조와 보완을 통해서만이 발전적이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학부모들이 신학기가 되면 어떤 사람이 자녀의 담임교사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고 한다. 안심하고 내 자녀를 맡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정 내의 어려움과 자녀문제를 상의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교사를 원하고 있는 이들 학부모에게 "나는 어떤 교사로 비춰지고 있는가?"를 자문해 보자.
글·사진 | 박하선 사진작가, 여행칼럼니스트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찬란한 문화 이슬람 공화국 '이란' 역사는 자그로스(Zagros) 산맥을 중심으로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지만, 문명이라고 부를만한 형태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 3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신바빌로니아와 협력하여 앗시리아를 멸망시킨 메디아(Media)왕국, 그리고 최초의 페르시아 제국을 세웠던 아케메네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역사 속에 굵은 획을 긋게 되고, 그 찬란했던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의연하게 당시의 위용을 말해주고 있다. 그 문화의 향기를 찾아 남부에 있는 고도 '시라즈(Shiraz)'를 찾는다. "5월에 시라즈를 방문하는 사람은 고향이 어디인지조차 잊을 것이다" 라고 극찬했던 유명한 시인 '사디(Sadi)'의 말이 전해지는 곳, 시라즈. 이곳은 잔드(Zand) 왕조가 페르시아를 다스리던 1753년부터 1794년까지 이 나라의 수도였다. 그러나 시라즈를 이란에서도 손꼽히는 문화도시로 만든 것은 진정 잔드 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기원 전에 벌써 한 시대를 주름잡고 페르시아 제국의 위용을 드높였던 곳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라는 엄청난 유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아의 수도'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다. 현지에서는 '다그테잠시드(Takht-e Jamshid)'라 불리는 이곳은 시라즈 시내에서도 50여㎞ 더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과거 페르시아 제국 최고의 영광이 서려있는 현장으로 가는데 있어서 이 정도 거리쯤이 무슨 걸림돌이 되겠는가. 새벽길을 달렸다. 이왕이면 유적지 안에서 동이 터 오고, 불덩이 같은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도착해서였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이 들여 보내주지를 않는 것이다. 물론 아직 개장 시각이 되지 않았다. 시라즈에 있는 문화재 관리국에서 특별 발급해 준 허가서를 내밀고도 통사정을 해서야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돌멩이 나도 고고학적 가치 지녀 기원전 700년부터 330년까지 고대 페르시아를 다스렸던 아케메네스 왕조의 봄 궁전으로 건축된 이 페르세폴리스는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문화재관리국의 보호 아래 놓인 다른 유적지들과는 달리 현재 이곳은 군인들이 관리하고 있는데, 이는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도난 사고를 방지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이 페르세폴리스에서는 작은 돌멩이 하나도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고학적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성벽처럼 둘러싸인 벽면을 따라 나있는 넓은 돌계단을 오르니 그 옛날 페르시아 제국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기원전 518년 페르세폴리스의 건축을 처음 명령한 왕은 '다리우스(Darius) 1세'였다. 당시 아르메니아인들은 여름 궁전을 하그마탄(지금의 하마단)에, 겨울 궁전을 수사(Susa)에 두고 있었다.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봄 궁전이자 새해 첫 날인 3월 21일에 벌어지는 '노르즈(Now Rouz)' 축제를 치르기 위한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총면적이 12만5000㎡에 달하는 페르세폴리스를 짓는 대공사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공격했던 기원전 330년까지도 끝이 나지 않았었다. 강한 지진이나 홍수 등 어떠한 천재지변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지어진 이곳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파괴하지만 않았다면 오늘날까지도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알렉산더 광풍에 사라진 세계의 문 아르메니아인들은 페르세폴리스를 짓기 위해 이집트, 그리스, 앗시리아 등 여러 나라의 문화를 복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민족의 문화를 그대로 베끼지는 않고 자신들의 고유문화와 적절히 조화시켜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페르세폴리스에서 특정 문화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그리스 신화 속의 괴물 켄타우로스의 모습이 거대하게 새겨진 출입구를 비롯해 대기실, 접견실, 100개의 기둥이 있는 방, 1.5㎞에 달하는 지하수로 등으로 엄청난 규모와 시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도처에서 만나게 되는 조각상들마다 섬세하기 그지없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특히 노루즈 축제 때 다리우스 왕에게 선물을 바치러 온 23개국 사신들의 조각은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관심사다. 계단 양쪽에 새겨진 조각들이 사신들의 출신 지역에 따라 다섯 부분으로 크게 구분되는 있는데, 그들의 복장과 공물로 가져온 선물들이 아주 다양하다. 당시 이 페르세폴리스는 지구상에 전성하던 모든 문화의 집결지였다. 외국사신이 빈번히 내왕하고, 동서양의 상인들이 북적거렸다. 중앙아시아에서 연결되는 실크로드와 인도에서 건너오는 해로의 요지에 위치하여 풍부한 물자와 다양한 외국의 문물이 화려한 조각과 거대한 기둥들로 떠 받혀 있는 '전 세계의 문'을 통하여 유입되면서 이 페르세폴리스를 살찌웠다. 그러다 보니 사치와 향락, 호화로운 파티가 연일 계속되었다. 그러나 페리세폴리스의 운명은 그리 길지 못했다. 페르세폴리스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마케도니아의 20대 청년 알렉산더의 광풍에 견뎌낸 세력은 없었다. 페르세폴리스에 도착한 알렉산더는 이 놀라운 아시아의 번성을 감당할 없었기에 철저히 파괴하고 불태웠다. 그리고 전군을 풀어 다리우스 3세를 추격했다. 카스피해 연안까지 쫓긴 다리우스 3세는 결국 죽음 직전 포로가 된다. 부하의 배반으로 온몸이 칼에 찔린 아시아의 대왕이 마케도니아의 한 병사의 눈에 발견된 것이다. 포로로 잡힌 다리우스 3세는 그 병사로부터 한 모금의 물을 받아 마신 후, 조용히 눈을 감는다. 기원 전 330년 7월, 막 해가 지는 시각이었다. 대 페르시아의 제국도, 그 수도였던 화려한 페르세폴리스도 이렇게 하여 기나긴 망각의 역사 속으로 묻혀 갔다. 되살아나는 고대 아시아의 자존심 1931년부터 시카고 대학의 동양연구소 고고학팀이 본격적인 발굴과 복원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페르세폴리스의 역사적 의미는 되살아났다. 근처에 있는 왕들의 무덤군 '나그쉐로스탐'을 찾아가면서 이곳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쳐 온 '후세인 카시프'는 말한다. "원래 이 페르세폴리스의 건물들에는 500여 개의 기둥이 있었습니다. 17세기 사파비드 왕조 때 만 해도 약 40개 정도가 남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죠. 그러나 현재는 그 수가 더 줄어서 남아있는 것은 13개 뿐 입니다." 긴 세월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던가. 그나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다음부터 발굴과 복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다행이란다. 고도 1500m의 황량한 평원에 쏟아지는 불볕아래 펼쳐지는 폐허의 잔해에 묻히고, 잊혀버린 페르시아 제국의 위용을 떠올려 보면서 고대 아시아의 마지막 자존심. 그 숨결을 느껴보다 보니 어느 덧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 '페르세폴리스.' 새교육 5월호에서 만나보세요.
허종렬 | 서울교대 교수, 대한교육법학회 회장 지방교육자치제도를 고치고자 하는 시도가 작년에 이어서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논의의 큰 흐름은 선거제도를 직선제화하고 교육위원회를 시도의회와 통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작년에도 국회교육위원회에 이 쟁점들과 관련하여 제기된 개정법안만 5건에 이른다. 그런데 아직 법안으로까지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최근에 제기된 개선방안에 현직 국․공․사립의 유․초․중등학교 교사에게 교육위원 겸직을 허용하자고 하는 내용이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교육자치법은 교육위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학식과 덕망이 높은 자와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 등으로 제한을 가하는 동시에, 교육위원이 되는 자들의 직무 전념 등을 위하여 국․공립학교 교사를 포함한 국가공무원 및 지방공무원과 사립학교의 교사 등은 이 직을 겸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특히 한국교총에서 마련한 개정법안을 보면 이것을 고쳐서 고교 이하 각급학교 교사들도 대학교수와 마찬가지로 교육위원을 겸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을 담고 있다. 다만 교사들의 경우 그 직을 유지하면서, 교육위원 선거 및 당선 후 교육위원으로서 활동을 하는 것은 직무의 특성상 어려움이 있으므로, 겸직 금지는 풀어주되 교육위원 재임기간 중에는 교직을 휴직하도록 하는 단서를 달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교총 안에 대해서 이미 열린우리당은 교육위 간사인 정봉주 의원으로 하여금 교사들의 교육위원 겸직 허용조항을 담은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을 내도록 하고 현재 내부 조율 중이라고 한다. 정 의원 측은 교총에서 성안해서 보내준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을 원안 그대로 발의하여 빠르면 6월 국회까지는 처리되도록 할 방침이라고 한다. 한나라당 등 야당들도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교사들의 교육위원 겸직 허용 주장은 이미 1991년 지방교육자치법이 발효된 직후부터 바로 제기되어 왔다. 교사들은 대학교수들에게는 이것을 허용하면서 자신들에게는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처음부터 납득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겸직 금지가 자신들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교수와 차별하는 것이며, 공무담임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보아, 결국 같은 해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기까지 하였다(헌재 1993.07.29. 91헌마69). 그러나 당시 헌법재판소는 이 소원을 기각하였다.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이유는 모두 세 가지이다. 교육위원 겸직을 대학교수에게만 허용하고 초․중등학교 교사에게는 금지한 것은 첫째, 공무원의 신분을 가지는 국․공립학교 교사는 물론 이에 준하는 신분보장을 받는 사립학교 교사가 당연히 감수하여야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라고 하는 기본권 제한의 사유에 해당하여 합헌이며 둘째, 교육위원들은 연간 최대 40일에 이르는 정기회·임시회 외에도 각종 소위원회에 참석해야 하는데, 이러한 사정에 있는 사람들이 매일 매일 수업과 학생지도를 수행해야 하는 교사의 직을 겸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직무전념의 원칙에서 볼 때 당연한 조치이고 셋째, 교사는 법령에 따라서 학생을 교육하는 자로서 항상 학생들과 사제동행을 하여야 하는 자리인 반면에, 교수는 상대적으로 많은 학문연구와 사회활동의 자유가 인정되는 바, 위와 같은 차별은 직무의 본질과 태양의 관점에서 볼 때 합리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육자치법이 교사들에게 겸직금지 이외에 입후보(入候補) 금지까지 포함한 것은 아니므로 그 공무담임권을 침해한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헌재의 이러한 판단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중립성 관점에서의 판단은 교육위원회의 활동이 정당활동이 아닌 것은 물론 오히려 일반행정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과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임에도, 이것을 단지 선거라고 하는 정치과정을 거치는 것이라 하여 교사들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며 둘째, 직무 전념의 원칙에 입각한 판단 역시 이를 교사에게만 요구할 것은 아니고 교수들에게도 요구하여야 하는 것이며, 그 상대적 차이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따라서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타당성이 떨어지고 셋째, 직무의 본질과 태양의 차이에 따른 판단도 설사 교사와 교수 사이의 그러한 점을 인정하더라도 가령 교사의 경우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는 기간동안 휴직을 하게 한다든지 하는 대안이 있음을 간과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제는 교육계와 국회 차원에서 겸직을 허용하자는 주장에 대해서 여야 정당들의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모처럼 이 주장이 법률을 실제 개정하는 단계에까지 가지 않겠는가 하는 전망을 해보게 된다. 교사의 교육위원 겸직 허용이 시․도교육위원회 활동의 현장적합성 등을 제고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도 있도록 여야가 마무리 입법을 잘 추진해주기를 바란다.
이승원 | 인천대 강사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들은 연일 위생개혁의 시급함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들에게 위생을 통한 인민의 건강은 문명개화의 척도이자 서구 문명국과 같은 부강한 국가가 되기 위한 지름길이었다. 급진개화파들은 서구 여러 나라가 문명국이 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건강한 인구’에서 찾았다. 건강한 인구 육성은 국력이었고, 그 힘을 기반으로 문명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문명의 적은 ‘똥’이다 글자에서도 냄새가 난다? 확실히 요 글자만은 기호 그 자체가 냄새를 풍긴다. 똥! 옛 글자로 쓰면 ‘똥’이다.(인터넷 상에는 옛글자 표기가 안됩니다) 좀 유식하게 한자로 쓰면 ‘屎’(똥 시)다. 한자로 쓰면 냄새가 풍기지 않는 것도 같다. 그런데 똥이 왜 문명개화의 적일까. 또한 똥과 신체검사와 위생과 단발은 어떤 관계를 맺을까. 알쏭달쏭하다. 유길준은 에서 ‘전염병이 전쟁보다 더 무섭다’고 말하며 위생사업의 중요성을 목울대에 힘을 주어 외쳤다. 유길준뿐만이 아니었다.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들은 연일 위생개혁의 시급함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들에게 위생을 통한 인민의 건강은 문명개화의 척도이자 서구 문명국과 같은 부강한 국가가 되기 위한 지름길이었다. 급진개화파들은 서구 여러 나라가 문명국이 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건강한 인구’에서 찾았다. 건강한 인구의 육성은 국력이었고, 그 힘을 기반으로 문명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건강한 인구의 육성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적은 바로 전염병이었다. 1821~2년에는 13만 명이, 1859~60년에는 40만 명이, 1895년에는 30만 명이 죽었다.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좀벌레처럼 일상의 즐거움을 갉아먹었다. 우연하게, 그것도 갑작스럽게 닥치는 죽음의 공포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두렵게 마련이다. 정부는 개화파들의 위생개혁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정부는 ‘도로와 위생에 관한 규칙’을 만들었다. 마치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도로를 깨끗이 쓸고, 상하수도 시설을 정비하고, 변소와 주방을 개량하고, 정기적으로 길거리를 소독했다. 그러나 오랜 삶의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다. 급기야 정부는 공권력인 경찰을 투입했고 경찰들은 민중들의 삶을 감시했다. 노상방뇨 하는 사람이 있는지, 우물이 더럽지 않은지, 하수도에 더러운 오물을 버리는지, 뒷간의 분뇨를 잘 치우는지 등등. 위생감찰을 주된 업무로 하는 ‘위생순검’이라는 특별 직책도 등장한다. 이들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거리를 활보하며 길가에 대·소변을 보는 사람들을 적발하는 것을 임무로 삼았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상점의 위생상태도 점검했으며, 만약 불결한 상점이나 상한 음식을 파는 가게가 적발되면 태형(笞刑)이나 벌금형을 내렸다.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하여 위생개혁에 팔을 걷어붙이며 끝까지 박멸하려고 했던 물질은 바로 똥과 오줌이었다. 똥오줌과의 대 전쟁이 선포된 것이다. 특히 노상방뇨는 크나큰 범죄행위였다. 정부와 계몽가들에게 똥은 단순히 생리적 현상에 의한 배설물이 아니었다. 똥은 만병의 근원이자 공기를 오염시키는 악독한 물질이었다. 똥에서 나오는 냄새를 사람들이 맡으면 질병에 걸린다고 믿었다. 똥은 각종 세균이 서식하고 번식하는 숙주라고 판단되었고, 길가에 널려 있는 똥의 척결만이 살길이요, 문명개화의 길이었다. 이렇게 우리에게 친숙한 ‘똥’은 어느 날 갑자기 만병의 근원, 비위생의 표본으로 새롭게 ‘발견’되었다. 대로에 똥을 누는 자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었다. 사실 똥이 무슨 죄가 있는가. 느닷없이 바뀐 세상, 근대의 시선, 문명의 시선이 똥을 적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런데 만약 무심코 길가에 노상방뇨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건 팁(Tip)이다. 일전에 용동 등지에서 어떤 의관한 사람이 오줌을 누다가 일순사에게 붙잡혀 뺨을 맞고 의관을 다 찢겼을 뿐 아니라, 땅에 눈 오줌을 도로 먹게 하며 무수한 곤욕을 당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분하게 여겼다.(‘오줌 누다 봉변’, 1909. 2. 12. 잡보(雜報)) 일본 통감부가 한국을 다스릴 무렵인 1909년, ‘일순사’가 뺨을 때렸다고 하니, 일제의 만행이라고 치부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 문제는 일본순사의 행위가 아니다. 위생에 대한 강박증이 만들어낸 제도의 폭력이다. 의료가 병을 치료하는 행위라면, 위생은 병을 예방하는 일이다. 치료는 일차적으로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전제로 하지만, 위생은 도래할 질병, 미래의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의 시스템이다. 이는 일상의 습속(習俗)을 개량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몇백 년 동안 지속되었던 삶의 방식을 갑자기 바꾸는 일은 녹록지 않다. 위생은 질병과의 전쟁이기도 하지만 민중의 삶의 습속과 싸우는 일이다. 근대는 낡은 삶을 용납하지 않는다. 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의 규칙들을 만들고, 또한 사람들을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 내야 한다. 낡은 외투를 벗고 허허벌판으로 떠밀려 나간 사람들은 철저하게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야만 하는 것이다. 위생이 고생이라! 공권력을 동원한 정부는 위생개혁을 위한 박차를 가했다. 분명 인민들의 삶을 보다 좋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에게 위생은 ‘고생’의 다른 말이었다. 경찰들은 길거리에 퇴비 쌓는 행위를 금지했다. 변소는 똥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함부로 똥을 풀 수도 없었다. 똥간을 푸는 일에도 돈이 들었다. 지금처럼 탱크로리가 딸린 차가 온 게 아니라 똥통을 짊어진 사람들이 방문했다. 그들이 공짜로 뒷간을 청소해줄 리 없었다. 똥을 치워주는 대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백성들에게 이 ‘분뇨처리부대’는 안 그래도 어려운 살림에 반갑지 않은 손님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일명 1900년대 식 새마을 운동의 명목으로 신설된 ‘청결법’과 그에 따른 ‘위생비’는 사람 잡을 세금이었다. 순검과 헌병들은 아무 집이나 무단으로 들어가 위생비를 내지 않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했고, 세금징수를 빌미로 부녀자에 대한 성폭행을 서슴지 않았다. 민중들에게 부과된 위생비는 약 1원 정도였다. 지금으로 보면 대단한 액수가 아니지만, 당시 쌀 한 가마니가 약 5~6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신학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니 만큼 어찌 위생에 둔감할 수 있겠는가. 미래의 동량인 학생들이 비위생적 환경으로 질병이라도 걸리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황제가 단발하는 것도 위생에 관계되는 일이라며, ‘위생’에 방점을 콕 찍지 않았던가. 물론 아관파천에서 돌아온 고종은 황제로 등극하면서 단발령을 철회하기는 했다.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 “짐이 그때 단발령을 내린 것은 본의가 아니었다. 친일세력이 국정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짐은 다시 명하노니, 이후로는 편할 대로 하라.” 그렇지만 한번 트인 물꼬를 쉽게 막을 수는 없었다. 수백 년 간 지속되어 온 장발 ‘관습’ 또한 만만치 않았지만, 단발이 ‘위생’과 연관되었고,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문명개화한 사람의 상징이 된 이상, 계몽의 선두에 서야할 학생들 역시 단발의 유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학생들은 황제가 편할 대로 하라고 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알아서 해라’라는 말을 완곡법으로 받아들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단발이 편해서였는지, 여하튼 그동안 고이 길러왔던 댕기를 싹둑 자르기 시작했다. 댕기 동자의 시대는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계의 새로운 패션, 단발 1930년대 활약한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김기림은 근대 초기 한국의 역사를 ‘단발의 시대’라고 선언한다. 남들은 스포츠니, 스피드니, 센스니 떠들 때, 김기림은 과감하게 단발이야말로 근대 초기 한국 사회를 주름잡았던 중요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단발은 하나의 사건을 떠나 조선반도를 들썩이게 했던 대단한 유행이었다. 100년 전 단발과 복장개량은 구시대의 관습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서양식 복장을 입은 것은 단지 서구의 유행을 추종해서가 아니다. 물론 그런 부류들도 있긴 했다. 그러나 몸의 외피를 바꾸는 일이자 끈질기게 내 몸을 구속했던 제도적 관습을 벗어나는 적극적인 행동이 바로 단발이었다. 단발은 머리 모양을 바꾸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꾸는 행동이었다. 그것은 혁명과도 같은 폭발력을 지닌 의식이었으며, 전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처음부터 신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이 단발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신들의 모습을 바꿨다. 단발을 하고 도포를 벗어 던지는 것이 문명개화된 학생의 상징이었고 또한 그것이 문명의 대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행동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장발의 전통이 쉽게 무너질 리 없었다. 국가와 학교 그리고 계몽가들은 학생들에게 단발을 하라고 연일 목소리를 높였으나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정은 자식들의 단발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이로 인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행여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먼저 단발을 한 친구의 독려로 머리카락을 잘랐지만, 쉽게 집으로 들어갈 수 없는 학생들도 많았다. 날이 저물어서야, 부모 몰래, 그것도 벙거지를 쓰고 집으로 들어가는 일일 비일비재했다. 앞에서도 잠시 얘기했듯이 단발은 일종의 의식(儀式)이었다. 그것은 양반과 상놈의 구별을 없애주는 상징적 행위이기도 했고, 야만인에서 문명인이 되는 계기이기도 했으며, 변화된 신체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설렘, 매혹, 공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이었다. 단발은 그저 머리카락을 짧게 깎았던 것이 아니라 아예 ‘삭발’에 가까웠다. 상고머리에 포마드 기름을 바르는 단발은 고급에 속했고, 대부분의 학생은 머리를 빡빡 밀었다. 듬성듬성 이가 빠진 바리캉이 청년들의 머리털을 쥐어뜯는 동안 주위의 친구들은 그들의 단발을 독려하며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무쇠골격 돌 근육 소년 남자야. 문명의 정신을 잊지 마라. 우리는 덕을 닦고 지혜 길러서, 문명의 선도자가 되어 봅시다.’ 신체검사, 신체를 도표 속에 감금하다 단발도 복장개량도 크게 보아서는 위생의 문제였다. 위생의 문제는 겉모습만 문제 삼지 않았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잠자는 것, 머리 감는 것, 목욕하는 것, 운동하는 것 등등. 해야 할 일이 산처럼 쌓였다. 더구나 미래를 이끌어갈 새 시대의 주인인 학생들의 건강은 곧 국력과 비례한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세심하게 관리되었다.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신체검사를 받았다. 요즘 학생들에게 음란사이트와 인터넷 게임이 크나큰 문제였다면, 당시 학생들에게는 호환과 마마 같은 질병이 문제되었다. 질병, 특히 전염병을 예측하기란 아직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1907년과 1909년 콜레라 기승을 부릴 무렵 정부에서는 각 학교에 의사들을 보내 학생들의 신체검사를 일제히 한다. 지금처럼 몸무게, 키, 시력 등을 측정하여 수량화하는 게 아니라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1910년 일본에 의해 한국이 강제병합 되면서 신체검사의 모습도 크게 바뀌었다. 현재의 신체검사와 비슷한 모습이 당시에 연출된다. 1913년 4월 조선총독부 훈령 제24호로 공포된 법이 있다. 일명 ‘관·공립학교 생도 신체검사 규정’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이 법령을 근거로 매년 4월에 학생들의 신체를 검사했는데 항목은 모두 11개였다. 키, 몸무게, 가슴둘레, 척주(脊柱), 체격, 시력, 눈병, 청력, 귓병, 치아, 질병이었다. 질병 검사의 항목은 영양불량, 빈혈, 선병(腺病), 각기(脚氣), 폐결핵, 두통, 신경쇠약, 비질(鼻疾), 인후병, 전염성 피부병, 기타 만성질환이었다. 근대 초기 각 학교에서 학생들이 신체를 조사한 건, 문명국가 건설과 부국강병책을 위해서는 자라나는 학생들의 건강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때에도 ‘체력은 곧 국력’이라는 모토가 작동했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 때 실시된 신체검사는 황국의 건강한 ‘신민’을 육성하려는 방책이었다. 의미는 서로 다르지만 결국 학생들의 몸은 국가에 의해 표준화되고 검사되고 관리되었으며, 그렇게 한 국가의 국민으로 길들여져 갔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는 ‘체력장’을 실시한다. 그 무시무시한, 입학시험보다 더 공포스러운 체력장이 드디어 등장한 것이다. 입학시험에 합격이 되어도 체력장을 통과해야만 상급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체력장의 종목은 질주력(疾走力), 도약력(跳躍力), 투척력(投擲力), 운반력(運搬力), 현승력(懸乘力) 이었다. 일명 100미터 달리기와 3000미터 달리기 그리고 멀리 뛰기와 멀리 던지기가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식민지시기에 만들어진 체력장이라는 제도는 시대를 뛰어넘어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면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기에 이른다.
(녹우당 전경) 최효찬 | 경향신문 기자 주도적인 사람으로 살아라 구약성서에 노예로 팔려가 이집트 총리가 된 요셉(창세기 37:2)의 이야기가 있다. 요셉이 노예가 된 경위는 이렇다. 그는 어려서부터 꿈을 잘 꾸었다. 그는 11명의 형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 그는 이것을 형제들에게 이야기 했다. 평소에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요셉을 시기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그의 형제들은 결국 요셉을 이집트 노예로 팔아버렸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꿈이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련은 계속됐다. 그는 여인의 유혹을 뿌리친 죄로 감옥에 갔다. 그곳에서도 미래를 준비했다. 감옥 관리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에게 기회가 왔다. 파라오의 관리인 두 명이 자신의 꿈을 해몽해 달라고 요셉에게 요청한 것이다. 요셉은 그들의 꿈을 해몽해 주고, 감옥에서 나가거든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느 날 파라오가 꿈을 꾸었다. 그 꿈이 하도 불길해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해몽가들을 불러내었다. 아무도 파라오의 꿈을 해몽한 사람이 없었다. 그의 꿈을 해몽한 관리가 요셉을 기억해내고 파라오한테 소개해 주었다.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해몽해 주었다. 그것은 이집트에 7년의 풍년과 그 이후 7년의 흉년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파라오는 요셉의 지혜를 높이 사 그를 이집트 총리로 발탁했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서도 항상 잊지 않고 지낸 것이 있다. 그를 버린 그의 가족들이었다. 형들은 그를 버렸지만, 요셉은 가족들을 항상 마음에 품고 지내왔다. 흉년기간 요셉의 형들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오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요셉은 형제들을 만났고, 그들을 용서했고, 도움을 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주도적인 사람은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닌다. 스티븐 코비는 에서 '주도적이 되라'는 명제를 던지면서 요셉의 에피소드로 주도적인 삶을 강조한다.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대해 다른 사람들 혹은 주위 여건이나 제약조건들을 원망하기 쉽다. 하지만 요셉과 같이 주도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활을 통제하고, 자기 자신과 '될 수 있다'는 결의에 노력을 집중한다. 이를 통해 주위 상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을 만든다는 것이다. 요셉의 이야기는 고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삶을 그리고 있다. 이에 대해 코비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요셉과 같이 자기 삶을 주도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당부한다. 15년을 유배를 당한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삶을 주도적으로 살다간 선비였다. 유배기간의 '강요된 은둔'은 주옥같은 시를 쓸 수 있게 했고, 나아가 세상을 더 밝히는 수많은 저서들을 낼 수 있었다. 고산과 같이 세상은 개인의 불행과는 별개로 '은둔의 미학'으로 다른 삶들을 밝히기도 한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복귀와 함께 장관직에서 해임된 이후 죽는 날까지 15년 동안 은둔하면서 과 등 역작을 남겼다. 물론 그 와중에 현실정치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등을 헌정하면서 끊임없이 메디치가에 구애를 보냈지만, 메디치가는 끝내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이게 오히려 마키아벨리에게는 사후에 더 명예로운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소신을 가진 선비형 정치가 고산은 조선이 풍전등화의 시대였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와중에서 살았다. 17세기는 당파싸움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이전투구의 세상에서 벼슬길에 갓 오른 고산은 30세에 광해군 당대의 권력자 이이첨의 죄상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당한다. 당시 고산이 상소문을 짓고서 그 피해가 관찰사였던 부친(윤유기)에게도 미칠 것을 알고 먼저 보여주니 아버지는 울면서 만류하다가 결국 자식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예측한 대로 부친도 자식의 귀양과 함께 삭직 당하여 불운한 여생을 보내야 했다. 고산은 37세 때(1623년) 인조반정으로 유배에서 풀려나 의금부도사에 취임했다. 봉림대군(효종)의 사부를 하기도 했다. 병자호란 중인 51세 때 임금이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보길도에서 은거를 시작했다. 52세 때에는 대동찰방과 사도시정이라는 벼슬을 받았으나 벼슬길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당시 집권세력(서인)이 대궐로 돌아온 임금을 문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고해 고산은 경북 영덕으로 2차 유배를 당했다. 74세 때 효종이 승하하자 조대비의 복제문제로 상소를 올렸다가 다시 함경도 삼수로 유배되었다. 그의 생애 세 번째 유배였다. 고산은 81세에 이르러서야 왕의 특명으로 유배에서 풀려나 해남을 거쳐 보길도에 들어 은자 생활을 하다가 85세 때 부용동에서 세상을 떴다. 고산의 유배기간은 총 14년 7개월이나 됐다. 요즘에는 고산 윤선도와 같은 소신 있는 선비형 정치가를 만나볼 수 없는 현실에 비춰보면 고산이 살벌한 당시 정치풍토 속에서 얼마나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자녀를 문화의 바다에 빠뜨려라 고산은 유배 등 정치적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학문세계를 구축했다. 그게 바로 고산가의 박학다식의 가풍이다. 고산은 당시의 사대부로서는 감히 다루기 어려운 의학, 천문, 지리, 점성술, 음악, 미술 등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는 이러한 학문을 연구하였을 뿐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이를 직접 응용하였다. 고산은 한의학에 정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약을 처방해 주기도 했다. 또 당대의 뛰어난 풍수가이기도 하다. 그만큼 당시 양반들이 천시하던 분야에도 남달리 열정을 가지고 공부를 한 실용적인 학자였다. 당대에 이름을 날린 학자들은 대부분 유년시절이나 청소년시절에 큰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모들의 각별한 자녀교육의 지침 속에서 '훈육'되는 게 조선시대 양반가의 가풍이었다. 그러나 고산은 11살 때 산사에 들어가 책을 읽었으며 특별히 어느 스승으로부터 배운 바가 없이 독학하였다. 이는 다른 명문가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그래서인지 고산은 주자학뿐만 아니라 실용학문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는 후손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해남 윤씨가의 독특한 가학으로 전승된다. 고산의 학문세계는 그의 후손들에게 삶의 지침과 등불이 되었다. 바로 그의 주도적인 삶이 교훈이 되고 가르침이 되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 불우한 생을 산 고산은 후손들에게는 가능하면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말고 대신 실용적인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그래서 고산이 살던 녹우당은 풍수지리학, 의학, 천문학, 병가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접할 수 있는 국내의 유일의 '잡학 도서관' 역할을 했다. 녹우당에는 공재 윤두서가 그림 공부하는데 교본으로 이용한 를 비롯해 중국 고천문서인 등 외서들이 즐비했다. 후손들은 녹우당에 있는 수많은 서적을 보면서 자신의 갈 길을 찾았다. 또 소치 허련 등 해남 주변 사람들도 찾아와 인생의 길을 열어나가는데 등불이 되어주었다. 고산의 가르침대로 후손들은 당시 엄격한 양반질서에서 잡학이라고 천시하는 의학, 천문학, 점성학, 기술학, 미술 등을 대대로 공부했다. 고산과 같은 대학자이자 시인을 배출한 집안에서 윤두서-윤덕희-윤용 등 3대에 걸쳐 화가가 나왔던 것이다. 고산가 자녀교육의 핵심은 시대에 앞서 실용적인 학문에 힘쓰고 자녀들에게는 '문화적 충격'을 줄 정도로 다양한 학문의 세계에 접하게 하면서 '문화의 바다'에서 뛰놀게 한 데 있다고 하겠다. 시·서·화에 독보적인 재능을 발휘해온 고산가의 가풍은 400년을 뛰어넘어 그 후손들에게도 드러나고 있다. 고산의 14대손인 윤형식의 딸은 대학을 마치고 화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손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집을 내기도 했다. 고산에서 시작된 박학다식의 유별난 가풍은 그 후손들을 문화의 바다에 빠지게 했고, 그러한 가풍은 대대로 그 향취를 더하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재물이 쌓인 후엔 명예 추구 명문가의 생성과정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명문가는 변증법적이고 진화론적인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명가의 지위를 재생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상당한 재산가의 반열에 오르고, 이어 이러한 '물질적 부'를 바탕으로 지역주민들에게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면서 신망을 얻게 된다(先財後名). 이후 자녀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큰 인물이 나오면서 한 가문의 '정신적 부'를 이룬다. 그리고 물질과 정신이 합쳐져 지속적으로 자긍심 높은 가문과 인물을 배출하면서 명문가를 대대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일종의 정(물질)-반(정신)-합(물질과 정신의 총합으로서의 명가)의 변증법적인 과정을 거친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산가의 경우도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해남 윤씨가의 가문을 초석을 쌓은 가문의 기획자가 윤호정(1476∼1543)이라면 그의 고손인 고산 윤선도는 명문가로 위상을 드높인 인물이다. 해남 윤씨는 상속재산으로 갑자기 거부가 된 윤효정 이후로 인재들을 배출하게 된다. 13세에 해남의 갑부 해남 정씨 집으로 장가든 윤효정은 처갓집의 재산을 상속받아 갑작스럽게 부자가 되었고, 윤효정의 세 아들이 과거에 합격하면서부터 해남 윤씨는 명문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거부가 된 윤효정은 먼저 어려운 지경에 이른 백성들을 3번이나 구제해 주면서 지역민들로부터 신망을 얻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윤효정을 비롯해 해남 윤씨가는 '삼개옥문 적선지가(三開獄門 積善之家)'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근검과 함께 적선은 녹우당에서 지금도 후손들이 집안의 제1 덕목으로 내세우고 있는 가훈이다. 해남 윤씨가는 윤효정의 3형제가 과거에 급제하고 이어 고산 윤선도까지 5대에 걸쳐 연속 과거급제자를 배출하면서 호남의 명문가이자 최고의 재력가로 부상했던 것이다. 이어 고산에 이르러 학문에 제한을 두지 않고 미술과 천문학, 의학, 점성학 등에까지 다양하게 연구하는 가풍을 세우는 등 자녀교육의 원칙과 가학의 전통이 세워지게 된다. 즉 명문가는 한대에 걸쳐 이루어지지 않고 최소한 3대에 걸친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고산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한 집안의 학문적인 취향이 오랜 세대에 걸쳐 지속되면 가학의 전통으로 훌륭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대로 수집된 수많은 서적들은 후손들에게 '지성의 바다'에 빠져들게 하는 향기로 작용한다. 이 향기는 가문 구성원들에게 절제심과 자긍심을 높여주는 촉매제가 된다. 한편 재력이 넉넉한 부자가문에 태어난 경우 그 자손은 유유자적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다. 더욱이 재능을 타고났다면 가문을 빛낼 인물로 성장하기도 한다. 를 쓴 분석철학의 대가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그는 평생 경제적인 문제에 고민하지 않고 대학교수도 싫다며 시골에 은거하면서 학문적 성공을 일궈낸 인물이다. 188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장 부유한 철강 재벌의 여덟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케임브리지대 교수직도 버리고 노르웨이의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에 오두막을 짓고 은둔하며 철학적인 사유에 집중하며 살았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천재적 재능이 있었겠지만, 부모의 재력이 없었다면 과연 교수직을 내던지면서까지 생활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는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역시 거액을 상속받은 형제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은 그에게 오히려 짐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명문가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경제력을 꼽을 수 있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훌륭한 인물이 탄생하기까지 눈물겨운 후원 스토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천하제일가문으로 꼽히는 공자의 경우 후원자로 72제자의 한사람인 자공이 있었다. 만약 자공의 지원이 없었다면 평생 관직에 오르지 못했던 공자가 생업을 돌보지 않고도 위대한 사상가로 우뚝 설 수 있었을까. 칼 마르크스 역시 엥겔스라는 평생 후원자가 없었다면 과 같은 책이 햇볕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명가의 지속을 위한 3가지 조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자전적인 소설 을 통해 한가문의 흥망사를 다뤘다. 여기서 토마스 만은 변증법적이고 진화론적인 가문의 성장과정을 체험적으로 들려준다. 소설에서처럼 한 가문의 흥망성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토마스 만은 1875년 독일 뤼벡에서 부유한 상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시의원을 지내는 등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토마스 만은 1901년에 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의 형 하인리히 만도 작가로 명성을 날렸다. 여기까지는 한 가문이 진화론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명가의 재생산 단계에 접어드는 듯하다. 경제력에 이어 큰 인물을 배출한 것. 그러나 토마스 만의 가문은 이후 그의 아들 클라우스와 미카엘의 잇단 자살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장남 클라우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소설가가 되었지만 문학적으로 아버지만큼 성공하지 못해 고통을 겪었다. 작가로서의 명성은 얻었지만 끝내 그는 자살했다. 이와 같이 명가로의 도약과 지속적인 확대 재생산은 결코 쉽지 않다. 잘 나가던 가문도 몇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쇠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문호인 괴테가도 괴테가 귀족의 반열에 올랐지만 손자대에 이르러 가문이 끊겼다. 지속적인 명가의 재생산은 가문 구성원들의 절제심과 함께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류 역사에서 명멸한 수많은 명가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특히 최소한 3대 이상에 걸친 노력 없이 명가로 도약하기 힘들다. 경제력을 지닌 것만으로도 안 된다. 나눔과 베품의 실천을 통해 이웃들로부터 신망을 얻어야 한다. 자녀교육을 통해 절제심을 지닌 인물을 배출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적어도 이러한 3가지의 기본조건을 충족시킬 때 명가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핵심적인 요소가 자녀교육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cafe.daum.net/parque) 삼국시대의 주요 키워드는 〈삼국지〉일 것이다. 중국의 4대 기서(奇書) 가운데 첫 순위를 차지하는 대하 '전쟁역사소설(戰爭歷史小說)'인데, 시대적 무대는 농민들이 중심이 된 민중봉기(황건의 난)가 일어난 서기 184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백성들의 반 정권 투쟁 황건의 난 현대 중국에서는 황건의 난, 즉 머리에 누런 천을 쓴 비적 떼가 난리를 쳤다는 뜻이 아니라 '황건기의(黃巾起義)'라는 표현을 쓴다. 단순히 그들을 도적이 아니라 사회적 모순을 개혁하기 위한 혁명세력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원래 광무제 유수로부터 시작되는 후한(後漢)은 처음부터 중앙집권적 정부가 아니라 호족 연합정권의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커져버린 지방의 호족들은 본격적인 권력집단으로 성장함으로써 문벌귀족으로 발전해갔다. 후한 말도 역시 전한(前漢)과 마찬가지로 연이은 어린 황제의 즉위로 태후를 비롯한 외척과 환관들이 세상물정을 모르는 황제를 둘러싸고 정치를 농락했다. 결국 국가의 기간산업인 농업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걸친 침체를 가져왔으며 백성들은 수입격감에 조정의 중과세라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배고픔과 탐관오리의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인심은 흉흉해지고 도적 떼가 들끓어 비적화(匪賊化)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은 백성들로 하여금 '몽땅 다 바꿔버리자'는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이때에 '태평도(太平道)'가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많은 반란 중에 특히 농민 반란군은 국가의 체제 자체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조선말에 동학혁명군이 봉기하자 조정은 청나라와 일본의 세력까지 끌어들여 결사적으로 진압코자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삼국으로 다시 분열된 중국 대륙 후한 중기부터 마그마처럼 끓고 있었던 백성들의 반 정권 투쟁에 대해 심정적으로 동조한 장각(張角)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당시 다수의 유민(流民)들을 끌어 모으는데 성공하여 불과 10여 년 사이에 수십만의 신도를 끌어 모아 종교집단의 차원을 넘어서 정치집단으로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를 대현양사(大賢良師)라 칭하고 거사에 즈음해서는 자신은 천공장군(天公將軍), 동생인 장보와 장량을 각각 지공장군(地公將軍)과 인공장군(人公將軍)으로 삼고 총 병력 36만에 달하는 황건군(黃巾軍)을 조직하였다. 중국민중의 눈에 황제라는 존재는 하늘의 위임을 받아 천하를 다스리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타도의 대상일 뿐이며 이를 대신하여 새로이 덕이 있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有道伐無道, 無德讓有德)는 상황논리가 크게 작용하여, 진나라를 멸망으로 몰고 갔던 '진승·오광의 난'처럼 이번에는 후한 멸망의 도화선, 황건의 난이 터진 것이다. 의외로 강적을 만난 후한의 외척들은 모든 힘을 동원하여 반란군 진압에 나섰으며 자체적인 방어능력이 없었던 중앙정부는 각 지역에 황제의 이름으로 황건적 토벌을 위한 격문을 보내니 호족들은 황명에 따른다는 구실로 군비를 강화하고 자기의 사병조직을 총동원하여 영지방어에 나섰다. 이 때 유비(劉備)도 관우, 장비와 도원의 결의를 맺고 의병을 조직하여 황건적 토벌에 나섰다. 자칭 대현양사(大賢良師) 장각이 죽자 황건의 난을 주도했던 지도자급들은 어느 정도 진압되었으나 혁명적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 지방의 호족들이 엉뚱한 생각을 품게 되어 '대업(大業)'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되었다. 제후들은 십상시의 난과 동탁의 집권을 계기로 천자를 능멸하는 역적을 친다는 구실로 중원의 패권다툼을 하다가 최후의 승자인 조조(曹操)가 위왕(魏王)에 오르고, 서기 220년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계속 헌제를 협박하여 선양을 받는 형식으로 황제 위에 오름으로써 기원전 202년부터 시작된 한나라는 문을 닫게 되었다. 한편 유비는 한조(漢朝)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손권과 연합하여 적벽대전에서 조조군을 대파한 여세를 몰아 서천지방을 중심으로 촉(蜀)을 세우고 후한이 망한 후에 제위에 올랐으며(서기 221년), 손권(孫權)은 강남을 중심으로 그 지역의 호족들을 규합하여 유비와 함께 조조의 남진을 저지하는데 성공하여 오(吳)를 세우고 한조가 망하자 위와 촉한에 비해 뒤늦게 황제에 올랐다(서기 229년). 이로써 중국대륙은 삼국분립시대(AD 220~280)로 들어가게 되었다. 과장과 왜곡의 역사서술 〈삼국지〉 원래 삼국지(三國志)는 삼국시대의 촉(蜀)과 그리고 그 이후 서진(西晋) 조정에서 봉직한 진수(陳壽)가 삼국시대를 정리한 정사(正史)로서 위지(魏志)·촉지(蜀志)·오지(吳志)를 총 65권으로 정리하였는데, 그는 삼국 가운데 유일하게 위지에 본기(本紀)를 넣어 역사서술을 했다. 다시 말해서 조조의 위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승자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이후 사마염이 조 씨의 위를 멸하고 오나라까지 병합하여 삼국을 통일하지만 중국은 다시 대혼란에 빠져드는데, 이를 남북조 시대라 한다. 남북조 가운데 송나라(조광윤의 송나라가 아님)의 문제는 배송지에게 역사서로서 진수의 에 해설을 달라는 황명을 내려 본문보다 엄청나게 방대한 소설체 주석이 달렸으며, 한족의 남조(南朝) 국가들은 〈삼국지〉의 주인공들 이야기 가운데 재미있고 과장되며 엽기적 내용들을 모아 라는 야담집을 펴냈다. 는 배송지의 해설(삼국지주, 三國志注)과 더불어 나관중의 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이야기꾼, 즉 설화인들이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중 나관중으로 일컬어지는 집단이 세간에 떠도는 를 모아 를 편찬하였다. 이 말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개인적 문학작품이 아니라 삼국지 관련 설화들을 진수의 를 바탕으로 집대성한 것으로 보면 무리가 없다. 그런데 사관이 바뀌고 말았다. 유비의 촉한을 정통 중화로 보는 공정(工程)이 진행된 것이다. 날이 가면 갈수록 엄청난 과장과 왜곡이 쌓여만 갔다. 제갈량이 화살 십만 개를 만들고 동남풍을 불게 하였고, 관운장의 혼령 때문에 여몽이 죽고 조조 역시 충격을 받아 죽게 된다. 1400년대 후반에는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가 간행되었고 이외에도 명나라 때는 수십 종의 '삼국지'가 쏟아져 나왔다. 진수의 는 어디까지나 국가에서 편찬한 것이다. 따라서 중원을 통일한 위나라의 계승자인 진나라를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사마(司馬) 씨가 조조가 세운 위(魏)를 멸하고 제위를 찬탈하거나 유비의 촉(蜀)이나 손권의 오(吳)나라에 대해서 역사적 왜곡들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승자의 기록임에는 분명하다. 승자의 기록이 올바르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기술이 그렇게 이루어져 왔다. 여기에 앞서 배송지의 가 나온 배경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조시대 송나라의 문제가 어째서 배송지에게 진수의 에 주석(해설)을 달도록 황명을 내렸는가 하는 배경 말이다. 배송지에게 삼국지에 주석을 달라 황명을 내린 송나라 문제의 정치적 의도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비록 그의 아버지(유유)가 중원을 북방민족으로부터 지켜내고 자신은 정변을 극복하고 나라를 편안케 했지만, 문제는 아버지가 황제를 시해했다는 원죄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문제는 황실의 권위를 회복시키고 민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국지〉를 유효적절하게 이용하여 그의 아버지가 창업하고 자신의 통치하는 송나라가 중국대륙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천명하였다. 아무리 북위를 비롯한 북조국가들이 힘이 있어도 그들은 단지 무도한 오랑캐 무리라며 스스로 자위하면서 말이다. 왜곡된 중화주의에 놀아난 조선 남북조시대에서 600~700년이 지난 후 절도사 출신 조광윤(趙匡胤)이 송나라를 세우고 문치주의(文治主義)를 표방하는 바람에 국방력이 약화되어 요나라와는 '전연의 맹약'을 맺고 재물을 바치며 평화를 구걸하였다. 또한 금나라에게 '정강의 변'을 당하여 나라가 잠시 단절되기도 하였고, 남송으로 거의 명맥을 유지하다가 결국 몽골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엄청난 절망감에 빠진 한족들에게 남아도는 것은 시간뿐이었다.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각종 사서와 경전, 그리고 부풀려진 삼국지에서 민족적 우월성을 찾기에 급급했다. 특히 주자(朱子)는 자신의 학문적 바탕을 골수 중화주의에 두고 에 대한 철저한 재평가 작업을 통해 유비가 건국한 촉한을 중국에 있어서 유일한 정통 왕조로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주자학이 성리학으로 이어지면서 조선왕조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되어 중국인은 더욱 골수 중화주의자, 조선은 골수 사대주의자가 되고 말았다. 소위 한족 왕조 명나라의 '촉한공정'에 한방 먹은 것이다.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1328~1398)은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를 전면에 기치를 내걸면서 다시 한 번 삼국지의 역사왜곡을 감행하였다. 왜냐하면 지긋지긋한 이민족의 통치에 주눅이 든 한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 가운데 가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원장의 아들 영락제는 중화주의를 확산시키는 도구로서 삼국지를 널리 활용하였다. 관우를 관제(關帝)로 추존하는가 하면, 환관 정화를 남방원정에 보내어 삼국지를 동아시아 전체에 퍼지게 하였다. 여기에 조선 조정은 물론 민중들까지도 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소위 한류열풍(漢流熱風)이 조선사회에 불어 사대사상이 모화사상(慕華思想)으로 발전하여 중국인의 '관우 신격화 농간'에 빠지고 말았다. 관우 사당이 전국 팔도에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국가차원의 제사까지 바쳤다. 임진·정유의 국난극복이 관우의 영험 덕분이니 국가차원의 사당을 세우라는 명나라 황제의 명에 따라 서울 한복판에 동묘도 세웠다. 전후복구도 바쁜데 쓸데없이 예산과 국력을 낭비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국난극복에, 그리고 전후복구에 여념이 없는 광해군을 마구 흔들었다. 명나라 황제의 세자 책봉이 없었으니 폐세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현실외교를 하고 있는 광해임금을 끌어내리고 환란을 불렀다(인조반정과 정묘·병자호란). 부모의 나라인 명나라를 돕지 않고 후금(청)과 양다리 외교를 한다는 죄목을 씌워서 말이다. 뿌리 깊은 사대주의는 서민음악에도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이며 2003년 11월 7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우리의 자랑스러운 판소리 다섯 바탕에 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소중화주의적 사설로 말이다. 우리의 잣대로 평가한 새로운 가 나오면 좋겠다. 아무튼 우리나라는 나관중 〈삼국지〉의 최대 피해국인데, 현대 중국은 또다시 역사왜곡을 획책하고 있다. 이른바 '동북공정'이다. 그들의 억지가 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역사의식의 몫이다. 중국을 탓할 바가 아니다. 정말이지 고구려사와 발해사가 문제가 아니다. 이러다간 전체 민족사가 중국사로 넘어갈 판이다. 이제는 역사를 바라보는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