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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이광현 |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 교사의 특성을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겠지만 현재 통계적으로 유용한 자료는 교사의 성별현황, 연령수준, 교사의 학력수준(학위) 현황 등이 있다. 그리고 교사의 교수환경과 연관된 가장 중요한 통계지표는 학급당 학생 수와 교원 1인당 학생 수 지표이다. 따라서 교사의 성별비율, 평균연령, 학력수준 등의 통계를 살펴보고 학급당 학생 수와 교원 1인당 학생 수 통계를 살펴봄으로서 교사의 특성과 교수환경에 대해서 살펴본다. 초등학교 여교원 비율 가장 높아 먼저 통계로 살펴본 이들 교사의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은 초·중등 교사에서 여성 교사의 비율의 가파른 상승이다. 먼저 교사의 성별 현황을 시계열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을 보면 초·중등 교육에서 여성 교사의 비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1965년도에 1/4에 불과했던 여성교사의 비율이 2006년 거의 72%에 육박하고 있다. 한편 중학교의 경우도 여성교원이 2006년 67.3%로서 1965년도의 16.1%와 비교하면 40여년 만에 51.2% 포인트나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여성 교사 비율의 증대는 교원의 여성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특히 여교원이 80% 이상 되는 학교의 비율을 보면 초등학교는 23.8%에 이르고 있으며 심지어 초등학교 중에서 교장부터 수업교사까지 100%가 여성 교사인 경우도 존재한다. 이러한 여성 교사의 과도한 비율이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등에 대한 연구는 드문 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충원 교사 적어 평균연령 상승 두 번째로 교사 평균연령의 연도별 추이와 시·도별 2006년 현황에 대해서 살펴보자. 에서는 교사 평균연령의 연도별 추이를 학교 급별로 제시해주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교원의 평균연령이 모든 학교 급에서 증가추세에 있다. 이러한 평균연령의 증가추세는 임용고시 합격자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추측될 수 있다. 이러한 교원 평균연령 현황이 시·도별로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에서는 전남의 평균 연령이 46세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가장 평균연령이 낮은 시도는 대구로서 36.9세로 나타나고 있다. 중학교의 경우 제주가 44.1세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전북이 43.7세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도 제주가 43.7세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전남과 전북이 모두 43.3세로서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전남이 44.8세로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각 학교 급의 전반적인 경향을 보면 현재 전남지역과 전북지역 교사의 평균연령이 다른 시·도보다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중등학교에서는 전남·전북지역과 더불어 제주도도 평균연령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분포에서 제주도라던가 전남·전북지역의 인구가 줄어들고 학령아동 수도 적어 새로 충원되는 젊은 교사들이 다른 지역보다 적기 때문으로 풀이되어진다. 교사의 학력수준 갈수록 높아져 다음으로 교사의 학력수준 통계 연도별 추이를 살펴보자. 2000년도에 초등학교 교원 중 석사학위 소지자는 8.3%인 1만 1657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2006년도에는 3만 971명으로서 전체 초등교사 중 18.9%가 석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초등학교 교사 중 박사학위 소지자도 2000년도에 120명이었으나 2006년도에는 489명으로서 4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중학교의 경우도 석사학위 소지자의 비율이 2006년도에 28.7%에 이르고 있으며 박사학위 소지자도 574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계 고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는 석사학위 소지자가 모두 30%를 넘어섰으며 특히 일반계 고등학교의 박사학위 소지자는 2006년도에 1182명으로 2000년도의 2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이처럼 교사의 학력수준은 점차적으로 계속 신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원 1인당 학생 수 더 줄여야 마지막으로 교사를 둘러싼 환경 중 교수환경과 연관된 학급당 학생 수와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시계열 자료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는 각 학교 급별로 학급당 학생 수와 교원 1인당 학생 수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학급당 학생 수를 보면 초·중등학교 모두 1965년도에는 50명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초등학교는 1975년도에 56.7명으로 줄어들고 그 이후로도 점차 감소하여 2006년 현재 30.9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1965년 이후 크게 감소하여 학급당 학생수가 2006년도에는 35.3명(중학교), 33.7명(일반계 고등학교), 29.9명(실업계 고등학교)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중학교의 경우 최근 2년간, 즉 2005년 이후에는 약간 그 감소 추세가 꺾인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보면 감소추세가 학급당 학생 수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1965년도에 교원 1인당 학생수가 62.4명으로 학급당 학생 수 65.4명과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매년 그 감소추세가 더 높아서 2006년도에는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24명으로서 학급당 학생 수에 비해 6.9명이 더 작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경우도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학급당 학생 수보다 모두 낮고 2000년도 이후에는 10명대로 모두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교원 1인당 학생 수의 감소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교원을 확충해온 노력과 1980년대 중반 이후 학생 수가 점진적으로 감소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등학교에서의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초등학교 교원 1인당 학생 수보다 작은 이유는 교과전담교사 체제로 중등교육이 운영되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교직의 여성화에 대한 연구 필요 지금까지 통계자료로 살펴본 교사의 여성비율추세, 교원의 평균연령, 학력수준 등을 보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구할 수 있다. 먼저 여성비율 추세의 급격한 상승은 향후 고등학교까지 여성 교사의 비율이 모두 높아지리라 예측될 수 있다. 이러한 교직의 여성화로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효과가 어떤 변화를 보일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교사의 평균연령을 보면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나타나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시·도별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역의 교사 충원의 미비로 교사의 노령화 역시 지속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회적인 문제가 교육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교사의 학력수준의 상승은 긍정적인 경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석·박사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이 얼마나 내실이 있으며 학교현장에 도움을 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연구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사의 근무여건, 교수 환경을 보여주는 학급당 학생 수,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개선되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OECD 선진국 평균을 보면 학급당 학생 수 평균은 각각 초등학교 21.4명, 중학교 24.1명이다. 또 교수 1인당 학생 수 평균은 각각 초등학교 15.2명, 중학교 13.7명, 고등학교 12.7명이다. 근무여건과 교육환경의 개선을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 수,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더욱 감소시키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 설명하고 있는 표는 새교육 1월호 및 교육통계연보,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정보 센터 D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영수 | 충북대 교육학과 교수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역사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어제의 스승에서 오늘의 교사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사회적 위상을 역사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도 오늘날 교사의 실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데 그 이유가 있다. 말하자면 역사 가운데 존재하는 교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은 교사의 실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교육적 권위와 책임 다하는 스승 이러한 점에서 '교사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교사, 그는 누구인가?'라는 교사의 실체를 묻는 질문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교사, 그는 누구인가?'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 역사적으로 교사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변화를 겪어왔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올바르고 진실하며 존엄한 길 그리고 아름답고 깨끗하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길을 사도(師道)라 부른다. 〈예기(禮記)〉에서는 '사도란 스승의 길이며 스승이 닦고 행하여야 할 진리의 도(道)'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길을 걷는 사람을 일컬어 '스승'이라 하였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걸어야 할 스승의 길을 밝힌 것이 사도헌장이다. 이러한 스승의 길은 인간을 진실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인격을 가진 인간을 형성하는 도로서, 이 길을 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경우 이러한 길을 걷는 스승은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갖추고 있었는가? 첫째, 만인에 대한 사표(師表)로서 삶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스승이라 하면 '솔선수범' 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분으로 존경의 대상이었고 드높은 교육목표 아래, 배워야 할 지식과 살아가는 도리로서 예를 갖추어야 할 것을 당연시하였다. 예컨대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擊蒙要訣)〉 입지 편에서 '성인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강조하고, '사람이 살아갈 때에 학문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막히고 소견이 어두워져서 올바른 삶을 살 수 없다. 무릇 학문을 하고자 하는 자는 성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하여 꾸준히 쉬지 않고 정진할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둘째, 항상 새로운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는 자세를 실천함으로써 교사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예기〉에서는 '교학상장(敎學相長)', 즉 남을 가르치는 것과 아울러 항상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는 진리탐구의 자세를 가르쳐주고 있다. 셋째, 정성을 다해 가르치는 헌신적인 교사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교회불권(敎誨不倦)', 즉 가르치는 일을 싫어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으며, 정성을 다하여 후진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학불염 교불권(學不厭 敎不倦)', 즉 '배우는 일에 싫증을 느끼지 않고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 모범을 보여주고 있었다. 넷째, 경사(經師)로서 뿐 아니라, 인사(人師)로서의 모범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는 '경사는 만나기 쉬워도 인사는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학생들의 사표가 될 스승상으로서 경사로서 뿐만 아니라, 인사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노력해온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전통사회에서 스승으로서의 교사는 교육적 권위를 지키고, 교육적 책임을 다하는 귀감을 보여줌으로써 어느 누구도 함부로 가벼이 대할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 같은 교사를 사표(師表)라 하였고, 심지어 '군사부일체(君士父一體)'라는 이름으로 선생을 존경하였으며,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고 걸어 갈 때에도 3척의 거리를 두고 행보를 하였다. 근대사회에서는 경찰이나 순경이 교사를 함부로 다루지 못한 시절도 있었으며, 군수와도 맞먹는 대접을 받던 적도 있었다. 실로 스승으로서의 교사의 위상은 오늘날처럼 개혁과 비판의 대상이 아닌, 존경 그 자체이었음을 볼 수 있다. 역사의 세속화 속에 훼손된 본질 스승으로서의 교사는 역사의 세속화를 걷는 과정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여기에서 세속화란 역사의 변화를 수식하는 하나의 용어로서 과학과 기술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의 세속화는 동양에서는 유교적 가치의 몰락, 서구에서는 종교적 제도의 굴레로부터 해방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역사의 세속화는 교직세계에 새로운 교직문화로서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인지양식을 갖게 하였고, 직업세계에서의 극적인 변화, 즉 '전문화'의 바람을 불게 하였다. 이러한 전문화의 영향으로 교사는 특수한 전문적 기능에 자신을 적응시키도록 강요당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제 인간의 문제 내지 인간성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전문적 기능만이 사회적으로 객관적 인정을 받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교직의 경우 오랜 동안 전문직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교사가 지식사회의 산파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역사의 세속화 과정에서 우리는 얻은 것과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실상 산업혁명을 거쳐 지식정보 혁명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회변화 속에서 기술정보 지식의 유용성의 가치를 강조함에 따라 교육 본질적 가치 중요성이 과소평가되거나 외면되기 시작하였고, 교직의 직업평가 기준이 크게 변화되었다. 이제 교직이 다른 범속직으로서 전문직업과 동등한 취급을 받게 되었으며, 지난날의 스승상과 오늘의 교사상 간에는 현격한 괴리가 파생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그토록 소중히 여겨져 왔던 교육적 권위와 교사에 대한 존중의 사회적 보호막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교직사회가 촌지수수 엄금과 체벌 금지의 차원에서 평가되고, 학교는 스승의 날 조차 임시공휴일화해야 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이는 현실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사는 치열한 입시경쟁 하에서 이기주의와 경쟁주의를 부추기는 학교교육의 도구화가 되어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교사는 무력감을 갖게 되고, 인간성 교육으로부터의 소외를 맛보게 되었다. 또한 사회적으로 전문가의 행태가 비전문가의 가벼운 비판과 외형적인 평가에 의해 간섭을 받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고,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과소평가되고 보다 중요한 가치가 훼손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 변화는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교직관, 교사관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에, 과거 스승으로서의 교사의 가치에 대한 존엄성과 교사가 하는 일의 소중함, 그리고 교육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할 과제를 우리에게 시사해주고 있다. 가르침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오늘의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전문적으로 맡아 일하는 전문직업인을 일컫는 말이다. 교사는 교육행위를 하는 개인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르치는 일을 하는 직업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르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에서 '전문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 같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하여 먼저 교사는 가르친다는 의미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가르친다는 의미가 함축하는 내용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가르친다는 의미를 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가르치는 일의 가능성과 한계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 가르침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지식과 교과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학습의 본질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라고 할 때에도 '무엇이 바람직한 수준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물음은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교사는 이와 같은 복잡한 물음에 대해 답하기 위해 고민해 온 사람이다. 교사는 국어, 수학, 과학 등 인지적 교과목을 가르침으로써 학습자로 하여금 우주 삼라만상 속에 존재하는 질서의 세계와 진선미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게 하는 사람이다.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세상을 보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한 방식에 불과하다. 겉으로 드러난 자연현상은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으며, 우리가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 가운데 우리가 모르고 이해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교사는 가르침을 통해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며, 행하지 못하는 것을 깨달아 행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무지로부터 벗어나서 앎의 세계로 입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인지적 교과목을 통해서 보지 못하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또 세상에 존재하는 사회적 사실과 현상을 인지적 교과목에 나타난 지식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교육을 받음으로써 학습자는 인지적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교사란 학습자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여 보지 못하던 것을 제대로 보게 하며, 귀를 열어서 듣지 못하던 것을 올바로 듣게 하고, 절름발이와도 같은 자신의 무릎을 스스로 일으켜 세워 힘차게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현실 간 존재하는 격차 교직은 스승으로서의 교사(과거)와 전문직으로서의 교사(현재) 간의 괴리에서 빚어지는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위기는 사회적, 역사적 상황변인에 따른 것이다. 그 상황변인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교직 전문성은 신장될 수도 있고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교사는 일반적으로 특수한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장기간 교육훈련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하며, 자율성을 갖고, 수업 전문성을 발휘하고, 교원단체 결성과 교원윤리강령 제정을 통해 스스로 권익과 책임을 통제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교직이 전문직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사는 전문적 활동, 즉 가르치는 일을 준비하고 좋은 수업을 위한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대에 적합한 전문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 재정, 기술지원 인력의 한계가 적지 않고, 좋은 수업을 위한 교사의 자율성이 충분히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커다란 격차는 오늘의 교직사회가 안고 헤쳐 나가야 할 숙제이다. 이제 전 사회구성원은 이 시대에 요구되는 교직 전문성과 스승으로서의 교사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승으로서의 교사상을 목표로 설정하고 현대적인 교직전문성을 확립해 나갈 때, 교육의 본질 회복을 기대할 수 있고, 기강이 살아날 것이며 나아가서 교육적 권위가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스승으로서의 교사상을 목표로 하는 교직전문성을 신장시키기 위해서 교사의 권능부여(empowerment)가 강조돼야 한다. 교사의 권능부여란 '교사의 전문적 지위를 고양시키고자 하는 활동 내지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가르치는 직무와 무관한 일 속에 파묻히게 될 경우, 전문적 활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며, 나아가서 교사로서 보람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실상 교사가 전문가로서 교육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신뢰 받지 못한다면, 교사의 자율적인 전문적 능력 발휘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교사가 스스로 전문가로서 인식하고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교육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 변화하는 현실에도 기본은 지켜야 스승에서 교사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위상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 왔으며, 교사 스스로도 역할에 대한 지각이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교사의 자질 자격을 규정하는 제도의 틀이 새롭게 구성되어 왔다. 새로운 사회변화는 교사에게 새로운 역할을 요구한다. 역사의 세속화가 진전됨에 따라 교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교사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부과되어 왔다. 이를테면 스승으로서의 교사상은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상으로 탈바꿈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간과해서 안 될 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화되어 왔다고 해도 교사의 본질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사관이 변천되었고 교사를 인식하는 다양한 패러다임이 등장했지만 교사의 실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마치 철따라 옷이 바뀌지만 사람의 실체가 변함없듯이 말이다. 또한 우리는 역사의 세속화 과정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며,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변천 속에서 새롭게 요구되는 가치가 부상하는 가운데에서도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교직전문화 과정에서 간과되어 온 차원에 대해 유의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교육의 본질적 가치의 중요성을 망각하지는 않았는지, 입시 위주의 공리주의적 공교육과정에 몰두한 나머지 교사의 길이 스승으로서의 길에서 얼마나 멀어져 왔는지를 심각히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교사 양성제도가 스승으로서의 교사를 양성하는데 얼마나 결함이 많은 지를 제대로 깨닫고, 교육현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한국교육의 전통에서 볼 수 있는 스승으로서의 자세에 비추어 볼 때, 학교에서의 주지교육이 인간교육을 실천하는 데 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의 제자들이 참된 정신과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참된 지식과 진리를 전파하는 참된 스승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교사와 학생이 모두 인간 교육의 꿈을 안고 올바른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양명희 | 경희대 교수 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다. 교실 수업 개선, 교원평가제 도입, 우수교사 확보, 수업 전문성 개발 등이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도적인 장치만으로 교육혁신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진정한 변화는 교사의 의지와 참여를 수반할 때 가능하다. 교사동기에 대한 관심 높아져야 교육혁신의 주체로서 교사의 중요성은 교사가 교수·학습 과정을 주도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우선 찾아볼 수 있다. 교사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며, 교사의 행동과 사고는 학생들의 사고, 태도, 가치관 및 행동 변화로 연결된다. 따라서 교사가 수업과 학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지각을 이해하는 것은 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해 중요하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나라는 교사에 대해 주로 정책적이고 거시적인 접근을 취함으로써, 교사들이 수업, 학생과 관련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교직에 대해 가지고 있는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아이들의 학습 동기를 유발시키기 위해 아이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이나 사회 심리적 욕구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동일한 논리로 교사가 교직에서 지각하는 어려움이나 경험하는 문제에 대해서 귀 기울이고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3단계로 나눠지는 교사관심사 교사들이 학교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나 그들이 지각하는 문제점은 교사관심사라는 틀 속에서 연구되어 왔다. 교사관심사는 교사교육 분야의 한 주제이며, 미국의 Fuller가 1960년대부터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탐구한 영역이다. Fuller는 교사양성 프로그램이 의도한 교육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교육을 받는 대상인 교사의 관심사와 흥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교사 교육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교사들이 경험하는 문제점과 관심사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의 이러한 생각들은 그가 예비교사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다가 발견하게 된 것이다. 11주간 그룹면담 연구를 하던 중 예비교사들의 관심이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차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주목한 것이다. 학기 초에 예비교사들의 관심은 어떻게 새로운 교직환경에서 적응, 생존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나 후반에는 수업이나 학생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학생들의 학습 향상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관심을 전환하였다. Fuller는 이 결과를 일반화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집단에 반복 연구를 실시하였으며, 1차 결과와 동일한 결과를 얻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후 Fuller의 개념은 다른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확인되고 정교화되고 확장되었다. 현재 세 종류의 관심사(자기관심, 직무관심, 효과관심)가 논의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교직 생활 초기에는 교직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대부분 교사들은 교사로서의 '자기(자기관심)'에 초점을 맞춘다. 자기관심은 주로 학생 및 수업 통제 능력, 교직 생활에 대한 적응, 교사로서의 이미지 관리, 생존 및 위기 상황 극복, 교사 자질의 적합성, 학부모와 교장·교감의 기대 부응, 학생 및 동료교사로부터의 평가 등에 관심이 높다. 교사불안에 대한 연구에서도 초임교사들이 학생 통제, 교사로서의 능력 부족, 학생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 수준이 높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초임교사가 교직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생존과 관련된 당면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면, 수업을 비롯한 '직무과제'를 만족스럽게 수행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관심사가 이동하게 된다. 이제 관심은 직무 과제로 향하는데 수업이나 직무 수행에 있어서 숙달성과 효율성에 많은 관심을 나타낸다. 따라서 직무관심도가 높은 교사들은 전문성 성장을 위한 기회 부족, 학급당 과밀한 학생 수, 교사에 대한 많은 규칙과 규제, 불충분한 행정 지원, 수업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 부족 등과 같이 효율적 직무수행에 방해가 되는 문제들에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인다. 점차 수업에 필요한 기술이 향상되고 직무 수행에 있어 숙달 수준이 높아지면, 만족감을 지각하면서 교사의 관심사는 이제 학생에게로 향하게 된다. 이는 '효과관심'이라고 불리는데, 교사관심사의 마지막 단계이며 가장 성숙된 형태이다. 이 단계에 있는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습향상 및 학업성취, 학생들의 사회적·정서적 욕구에 대한 이해, 학습 동기 유발, 학생의 잠재력 극대화, 학생들의 지적, 정의적 성장 유도, 배움의 가치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 등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요컨대 교사관심사는 교사로서의 자기 적응과 생존의 문제해결에서 수업과 직무 수행의 효율성 추구로, 다시 학생에 대한 자신의 교수 효과성 추구로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관심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이러한 결과는 주로 서구의 나라들을 중심으로 확인된 결과이다. 이에 우리나라 중·고교 교사들에게도 교사관심사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신규교사 연수(초임교사)와 1급 정교사 자격 연수(경력교사)에 참여하였던 중·고교에 재직 중인 교사 10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교사들에게도 자기관심, 직무관심, 효과관심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관심사임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외국의 교사들은 '교사로서 받는 외부로부터의 평가'와 '교실 통제'를 모두 자기관심으로 인식하는데 비해, 우리나라 교사들은 외부로부터의 평가와 교실 통제가 분리되어 오히려 직무관심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평가'와 '직무 수행'이 섞여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중·고교 교사들이 외부 평가를 자신의 과제 수행과 밀접하게 관련지어 지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외부 평가를 자신의 직무 수행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나라 교육의 독특한 구조, 환경, 풍토를 반영하는 결과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결과는 우리나라에서는 초임교사가 교사관심사의 세 영역 모두에서 경력교사보다 더 높은 관심을 나타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Fuller는 초임교사가 자기관심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반면 경력교사는 직무수행이나 교수효과와 관련된 영역에 높은 관심도를 보인다고 하였는데, 한 단계의 관심이 다른 관심으로 변화하는 것은 지각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초임교사가 자기관심이 높은 것은 외국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바이다. 그러나 경력교사가 초임교사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높은 자기관심을 보인다는 점은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서 경력교사가 자기와 관련하여 지각되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사관심사는 교사들이 교직을 수행하면서 지각하는 동기적 특성과 어떠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교사들의 자기결정성과 교직에 대한 내재적 동기와의 관련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결과, 세 영역의 교사관심사가 자기결정성이나 내재적 동기와 같은 교사의 동기를 차별적으로 설명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자기관심이나 직무관심은 자기결정성이나 내재적 동기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반대로 효과관심은 교직수행에 있어 유능감, 자율성, 즐거움, 내재적 가치 지각의 향상을 가져온다는 매우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났다. 내재적 동기 높이는 해법 찾아야 나아가 교사관심사와 교사동기 간에는 일정한 관계 패턴이 형성되어 존재하였는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 교사의 유형을 크게 3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유형은 자기관심과 직무관심이 낮으면서 효과관심이 높은 교사들이다. 이들은 자기결정성이 높고, 교직에 대한 내재적 동기도 높으며, 압력 및 긴장감을 지각하는 수준이 매우 낮았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교사들은 생존이나 직무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자로서의 지녀야할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효과관심으로 관심이 이동된 상태에 있는 교사들로 추측해볼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은 효과관심과 더불어 자기관심 또한 높은 유형이다. 이들은 교직에 대한 가치를 높게 지각하고, 교사로서 다양한 노력을 투자하며 동료 교사와의 관계 또한 친밀하고 소속감을 강하게 인식하면서 동시에 교직 수행에 대한 압력 및 긴장감도 더불어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행동의 주체가 되어 의사결정권을 갖고 활동이나 직무에 대하여 가치를 인식할 때 느끼게 되는 자율성이라는지, 개인의 능력을 행사하여 주어진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를 원하는 내적 욕구에 해당하는 유능감이 높지 않았다. 마지막 유형은 자기관심이 높지만, 직무관심과 효과관심이 낮은 교사 유형이다. 그런데 이들은 교직수행에 있어 즐거움, 노력 투자, 유능감 지각과 마이너스의 상관을 나타내었으며, 교직에서 지각하는 압력 및 긴장감이 높았다. 이 경우 첫째 유형과 비교한다면, 교직에 대한 동기는 매우 부적응적이라 할 수 있다. 자기결정성이라는 심리적 특성은 삶의 만족감과 심리적 안정감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특성이다. 또한 교직에 대한 내재적 동기를 가진 교사들은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활동과 관련하여 즐거움과 내재적 재미, 성취감, 자아실현을 경험하고 만끽하게 된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 이외에도 교사의 내재적 동기는 학생들의 학업성취, 노력, 지속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교수 상황에서 교수전략과 같은 교사 행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교직에 대한 내재적 동기가 높은 교사의 학생들이 학습에 대해 더 높은 흥미를 보여준다는 연구결과를 고려한다면 교사동기를 교사들이 보이는 여러 개인차 중 하나로만 인식하기에 앞서, 그 중요성을 새삼 검토하고 확인할 필요가 여실한 것이다. 결국 교사관심사는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요구를 나타내는 것이며, 유능한 교사가 되고자 하는 하나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교사가 변화의 핵심이며 그들에 대한 이해가 교육혁신을 위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라면, 교사들이 수업과 관련하여 지각하는 어려움과 문제 등이 파악되어야 하고, 해결되도록 이를 지원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사가 자기관심이나 직무관심에 머무르지 않고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효과관심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들의 어려움과 문제를 충분히 공유하고,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교육적인 풍토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또한 교사의 의지와 참여를 수반할 때 가능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진동섭 |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지난 반년 동안 가장 중요하게 한 일 중의 하나는 모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교평가에 참여한 것이다. 그 동안 필자의 주된 관심 분야가 학교조직인데 일선 학교와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상황이 항상 죄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학교평가위원으로 일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시간적 부담은 있었으나 그동안의 죄스러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고, 스스로에게도 좋은 배움의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되어 기꺼이 참여하게 되었다. 민감한 감각을 가진 우리 아이들 현장방문 평가에서는 각종 문서를 확인하고 관련 교사와 교장 및 교감을 면담했다. 필자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활동은 학교시설을 돌아보고,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교실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첫 번째 학교에서부터 눈에 들어온 것은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었다. 그냥 조는 것이 아니라, 책상에 엎드려서 곤히 자는 학생들이 대여섯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잠깐 자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렇게 자는 학생들을 한 학급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학급들에서도 볼 수 있었다. 지역사회 여건이 그렇게 좋지 못한 총 17개의 학교를 방문하였는데, 이러한 모습을 소수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서 볼 수 있었다. 30여명의 학생 중에는 자는 학생이 대여섯 명 포함되어 있었고, 음악을 듣는 학생, 멍하게 앉아 있거나 다른 책을 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만화책을 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교사는 절반 정도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하고 있었다. 학교평가를 하는 중이었던 지난 9월, 모 일간지에 소개된 마틴 린드스트롬의 〈세계 최고 브랜드에게 배우는 오감 브랜딩〉이란 책을 접하게 되었다. 오감(五感) 브랜딩(branding)이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신체 감각을 통해 감성적으로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이는 인간 의사소통의 95%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80%는 감각을 통해 전해진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내일신문 2006. 8. 10). 오감 브랜딩의 내용을 읽는 순간, 방문했던 '잠을 자는 학교'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내용은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새삼 새롭게 깨달은 내용은 기업이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고객의 머릿속에 각인시켜 판매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의 깊이이다.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 엔진의 가속음에서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 부드러운 저음으로 할지, 아니면 젊은 느낌을 주기 위해 경쾌한 소리로 할지를 연구하고 실험한다. 심지어 트렁크 여닫는 소리, 깜빡이와 에어컨 소리도 고객의 취향을 고려해서 만든다. 운행 시 타이어 타는 냄새가 역겨운 것에 착안해서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면 라벤더 향이 나도록 하는 '아로마 타이어'를 개발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어진 고민거리는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 것인가이다. 미국에서는 성인 한 명이 하루에 1500~2000개의 브랜드를 접한다고 한다(동아일보 2006. 9. 11). 이렇게 많은 브랜드 자극에 의해 민감해진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요즘 아이들은 MP3로 노래를 들으면서 군것질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도 외운다. 핸드폰 문자를 찍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들은 성인들에 비해 감각적으로 대단히 발달해 있다. 어떻게 이들을 가르칠 것인가? 이는 학교평가가 끝난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고민거리이다. 그런데 우리 교직 사회의 요즘 걱정거리는 무엇인가? 혼란한 교직사회 속에서 잠들어 지난 해 우리의 교직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 혼란의 중심에는 교원평가제가 있었으며, 교사들은 교원 성과급 지급에 반대하는 운동도 하였다. 이 혼란 속에서 교장 공모제, 선출 보직제와 같은 교장 임용 제도와 수석 교사제 등이 단위 학교의 교육과 경영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제기되어 논의되고 있다. 자립형 사립학교 확대 실시 논란, 개방형 자율학교 시범 운영, 방과 후 학교 제도 시행 등도 2006년 교직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교육위원회를 시·도의회로 통합하고,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직접 선출하는 것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일도 있었다. 이는 시·도 단위에서 교육제도 수립과 운영의 효율성을 기하고 주민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구상이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도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들 사이에서 뜨거운 찬반 공방이 벌어졌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이 하는 주장들은 모두 명분이 있고, 논리적 설득력도 있으며, 실제적으로 필요한 측면도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 주장의 타당성이나 합리성이 아니다. 교사들, 교육 행정가들, 학부모들, 정치가들이 이런 논의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갑론을박하는 동안 학교에 온 많은 학생들이 교실에서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다시 잠자는 학급으로 돌아가자.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거나 딴 짓을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대표적인 예로 철야 아르바이트, 컴퓨터 게임, 과외 수업, 혹은 건강 문제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특정 과목은 대학입학에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며, 몇몇 학생들은 대학입학에 관심조차 없을 수도 있다. 혹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누적된 학습 결손으로 인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교사들은 이러한 학생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교장, 교감도 마찬가지이다. 직업반을 만들어 운영도 해 보지만, 학생도 학부모도 좋아하지 않는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따로 모아 가르치면 좋겠는데 소위 우열반 편성은 금지되어 있다. 운동 등 공부 이외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경우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하도록 하고 싶으나 그것도 규정, 재정 형편, 혹은 담당교사 문제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소위 'SKY 대학' 입학생 수만 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자는 학생, 딴 짓하는 학생은 지금처럼 그대로 놓아두고 공부할 학생만 데리고 수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 교실에서 학생 각자의 요구와 특성에 맞게 직업교육, 특기적성교육 그리고 입시준비교육을 모두 하는 것이다. 학교 공동체에서의 교사의 위상 교사는 '학교'라는 조직의 한 구성원이다. 학교는 학부모들과 지역사회 주민까지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공동체이다. 때문에 교사는 학부모와 지역사회 주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일하게 된다. 교사의 역할은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교사가 가지고 있는 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진동섭, 근간). 교사직은 전문직이다. 동시에 교사직은 고도의 정신노동을 하는 근로자이기도 하다. 교사직의 근로자성은 교사의 노동조합 활동을 법률로 보장하는 것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표시열, 2002: 215). 전문직이자 정신노동자인 교사는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다양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는 서로가 선택해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이들은 우연적이고 일시적으로 만나서 가르치고 배우는 공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이들 간의 관계는 교육애와 애정,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학생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비선택적·일시적 관계이다. 교사는 교육공급자이고 학부모는 교사가 제공하는 교육의 수혜자 혹은 소비자이다. 교육에 있어서 비전문가인 학부모는 전문가인 교사에게 자녀들의 교육을 위탁했다. 교사는 교육전문가임과 동시에 학부모에 의해 자녀교육을 위탁 받은 사람이다. 교사와 교사의 관계를 살펴보면, 교사들은 서로를 가장 편안한 상대로 생각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들 사이에서는 전문적 협력이 이루어지지만 이는 개인적인 친분에 의한 것인 경우가 많다. 교사와 교장은 학교에 의해 고용된 피고용자의 신분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이들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동업자임과 동시에 학교조직의 상급자와 하급자 위치에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입장에서 보든지 교사는 자율성과 책임감을 가진 전문직이라는 점이다. 학교는 개방적 공동체다. 학교와 환경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도움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학교 내 구성원들 간 관계에서도 개방적인 교류가 이루어진다. 이 안에서 교사가 처한 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대표적인 예로 교사들은 학교라는 담장 안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 학생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교사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줄어들고 교사에 대한 기대와 책임은 높아져만 간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자명한 사실은 교사의 존재를 확인하는 곳은 '교실'이고, 교사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교육의 질'이고, 교사의 존재를 지켜 주는 것은 '전문성'이라는 점이다. 학생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교사로서 교사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학생을 상대할 때는 물론이고 하급자인 교사로서 상급자인 교장을 상대할 때, 피위탁자인 교사로서 위탁자인 학부모를 상대할 때, 전문가인 교사로서 똑같은 전문가인 동료 교사를 상대할 때, 교사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당당함과 자신감은 교사의 전문성에서 나온다. 교사전문성의 핵심은 교육에 대한 전문적 지식 및 기술 체계와 교직윤리 의식이 핵심을 이룬다. 교사들은 이러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교육전문가'가 되어야 한다(진동섭, 2002). 전문가로써 해야 할 세 가지 역할 변화하는 학교사회에서 교사가 전문직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화기 위해 수행해야 할 역할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 중 세 가지만 강조하고자 한다. 우선 현장연구자로서의 역할이다. 로티는 교사직을 '특수하지만 그늘에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교사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나 교육행정가,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교수의 그늘 속에 있다는 것이다. 교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교육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학습하는 현장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현장에 근거한 지식과 기술을 개발함에 있어서 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교사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다음은 교육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이다. 교사는 45분 혹은 50분의 교수·학습 활동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교육 디자이너는 정해진 교육내용을 기계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특성과 요구에 맞게 학습내용, 학습방법 등을 디자인해주는 사람을 뜻한다. 세 번째는 학교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이다(진동섭, 2003). 학교 컨설팅은 교원들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새로운 과제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그 해결을 도와주는 일이다. 40만 교원들은 모두 나름대로 교육에 관한 비법들을 한 보따리씩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교사들 간에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장연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 보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지식과 기술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다른 교원들의 전문성 개발을 위해 활용하고, 본인도 다른 교원의 도움을 받아서 서로의 전문성을 공유하자는 것이 학교 컨설팅의 취지이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역할은 교사들이 혼자서 고민하고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 내에서 함께 이루어지는 역할이다. 현장연구는 개인 혹은 다수가 수행할 수 있다. 교육 디자이너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학교 컨설턴트로서의 역할 역시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한 인문계 고등학교 교실 상황은 전국 모든 학교의 상황이 결코 아니다. 오감 브랜딩은 학교가 아닌 기업의 이야기다. 이는 학교가 기업을 쫓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이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는지 알 필요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변화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파악해야만 한다. 학교는 학생들을 위해 꼭 필요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선 학교는 자력으로 그러한 조직으로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다. 행정가와 정치가들이 여건을 마련해 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교사들은 교직의 현실을 자조(自嘲)가 아니라 자조(自助)해야 한다. 현장연구자, 교육 디자이너 그리고 학교 컨설턴트로서 교사의 역할을 돌아보고, 현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함께 찾아서 함께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돌이 여근을 만났을 때 선돌은 대체적으로 청동기시대 산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선돌이 청동기 유물로 대표적인 고인돌과 결합한다면 어떨까요? 경북 영주로 떠나 봅시다. 시내 휴천동에서 고인돌 2기와 선돌 1기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선돌의 높이는 약 1.5m로 그리 크지는 않으며 고인돌에 사용된 덮개돌 두 점이 제 자리를 잃은 채 바닥에 엎어져 있습니다. 덮개돌엔 성혈(性穴)이 몇 점 보입니다. 성혈은 여근을 상징하며 선돌은 남근을 상징하니 음양의 조화가 완벽합니다. 이렇듯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지석묘가 선돌과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라 하겠는데, 순흥 땅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선돌은 5m 간격을 두고 2기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마을 입구 소나무 숲에 위치해 있는데 오른쪽에 서 있는 선돌 앞에도 덮개돌이 보이고 그 표면에 역시 성혈이 보입니다. 마침 인근에 여근동(女根洞)이라는 마을이 있어 그 여근에 대해 남근을 상징하는 선돌을 세운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여근과 관련해서 선돌이 세워진 것으로 해석하는 이러한 사례로 부산 기장군 철마면 선돌을 들 수 있습니다. 선돌 관리를 맡고 있는 이중희씨에 따르면 맞은편에 내다뵈는 계곡의 형태가 여자의 음부를 닮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이 마을 사내들이 그 기운에 억눌려 제 명에 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이곳을 지나다 그 사연을 듣고는 음기를 차단할 수 있도록 선돌을 세우게 하였고 그 이후로 화가 물러 갔다네요. 이 선돌이 선사시대에 세워졌건 후대에 세워졌건 분명하진 않습니다. 선돌이 이러한 풍수지리개념으로 들어섰다면 그 선돌은 역사시대의 산물일 테고, 가만히 서 있던 선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갖다 붙였다면 청동시시대의 산물일 테지요. 여기서 ‘청동기시대 = 선돌’이란 등식이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접근이 가능하겠습니다. 이 철마 선돌 바로 앞에는 동래 정씨 문중의 산소가 위치하고 있는데 그 망주석을 앞에 내세우고 뾰족한 철마산을 배경으로 4m 가까운 거대한 선돌이 땅을 우뚝 밟고 있어 그 날카로움에 이내 기세가 꺾이고 맙니다. 성기숭배신앙의 흔적을 찾아 이러한 남근숭배신앙은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유포되었던 부근당(府根堂) 당집에는 남자 성기를 상징하는 목각물을 곳곳에 걸어두었었고 삼척 해신당에도 역시 남근을 바치는 풍속이 이어지고 있지요. 경주 안압지에서 남근을 조각한 목제품이 출토되었고,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지철로왕의 거시기 이야기와 선덕여왕 지기삼사 중 여근곡과 관련한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유교문화가 절대적으로 지배했던 조선시대의 경우는 아들을 낳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부여받은 여인네들에 의해 이 남근숭배신앙이 확산되기에 이르렀지요. 인도의 경우, 시바신을 모신 사당에서 생명의 원천이요, 풍요의 상징인 링가와 여근을 상징하는 요니가 결합되어진 것을 볼 수 있지요. 우리나라 곳곳에서 자연적으로 혹은 인공적으로 다듬은 성기숭배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남근과 여근신앙은 쉬쉬하는 차원을 벗어나 당당히 문화재로서 대접받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몇 군데를 둘러볼까요? 전북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 원백암마을 입구에는 300여 년 전 선비 박잉걸이 세웠다는 남근석이 있습니다. 그는 마을 뒷산에 있는 여근곡과 여근암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장승과 함께 남근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자손이 귀한 사람이나 불임증이 있는 여자가 네 번 절하고 이 돌을 안아주면 아이를 갖는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선무도 도량으로 유명한 경주 골굴사에도 남근바위가 있습니다. 이 남근바위를 마주보는 곳에 산신당이 조성되어 있는데 산신당 앞 평상 한 곳에 네모난 구역을 표시해 두었습니다. 그것을 들면 둥그스름한 천연바위에 물이 가득 고여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여근바위 위에 앉아 남근바위에 절하고 산신령님께 절하고 정상의 부처님께 절하니 그 정성이 더하여 좋은 소식이 있을 법합니다. 전북 순창 팔덕면 산동리와 창덕리에 각각 지방민속자료로 지정된 남근석이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약 500여 년 전에 한 여장부가 2기의 남근석을 조각하여 치마에 싸 가지고 오다가 무거워서 1기는 창덕리에 버리고 1기는 산동리에 세웠다고 합니다.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조각하였고, 하단부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것이 눈에 띕니다. 임실 사곡리 남근석은 옛날 이 마을에 돌림병이 돌아 민심이 흉흉해지자 마을 어른들은 마을 형상이 여자의 옥문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마을 입구에 이 남근석을 세워 그 기운을 누르고자 하여 세운 것이라 합니다. 이처럼 남근석은 기자신앙의 대상으로뿐만 아니라 마을전체의 안녕과 번영을 소원하던 공동신앙물이기도 했습니다. 안양 삼막사에도 남근석과 여근석이 함께 있는데 특히 여근석의 적나라함이 눈에 띕니다. 전북 김제 귀신사에는 사자를 닮은 짐승이 웅크려 있고 그 위에 남근을 닮은 마디진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위에 또 하나의 작은 돌기둥을 얹어 두었습니다. 충북 제천 무도리 용암은 여인네들이 건너편에서 돌을 던져 바위에 들어가면 득남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역시 제천 동산(東山)에 있는 천연 남근석은 그 적나라함이 삼막사의 그것과 쌍을 이룰 수 있을 듯합니다. 소위 공알바위라 해서 바위를 돌로 갈아 구멍을 내는 행위는 울산 어물리 마애불이나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두 자식을 바라던 민초들의 소리 없는 반항이자 항변이었습니다. 다랭이 마을에서 암수바위를 만나다 남해 바다에 있는 남해군은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남해군이 가진 매력은 창선대교에서 내려다보는 죽방렴, 파도와 해풍을 막기 위한 방풍림, ‘어서 오시다’ 혹은 ‘안녕히 가시다’와 같은 남해 섬 특유의 사투리, ‘물건’이니 ‘도마’니 해서 생각만 해도 잔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다가 김만중이 유배를 와서 그의 생을 마무리했던 노도, 이순신이 운명한 이락포, 이성계가 명명한 금산 등 역사적인 이야기까지 덧붙이고 산과 바다에서 나는 풍부한 자원까지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보물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해에서 찾아낸 보물 중 보물은 뭐니 뭐니 해도 바다로 곧 떨어질 듯한 논배미라 하겠습니다. 섬을 일주하다 바다에 바로 접하기까지 논배미가 첩첩히 조성되어진 것을 흔히 볼 수 있지요. 특히, 남면 가천마을에 이르면 다랭이논이라 해서 지난 2005년 1월 명승 제15호로 지정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랭이는 ‘다랑이’, ‘다락’, ‘달갱이’의 사투리로 좁고 작은 논배미를 일컫는데 코딱지만한 크기부터 보통 20-30평 남짓한 크기의 다양한 계단식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마늘과 같은 밭작물이 제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다랭이마을 아래에 암수바위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숫바위를 숫미륵, 암바위를 암미륵이라 일컫습니다. 남근석처럼 우뚝 솟은 숫바위 바로 뒤에는 둥그스럼한 바위가 반으로 갈라진 채 여근의 형상으로 자리하고 있고 그 뒤에는 만삭이 된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듯한 암미륵이 보입니다. 1751년 10월 23일에 남해 현령 조광진이 꿈을 꾸고 난 후 이 바위를 땅에서 꺼내 미륵불로 봉안하고 논 다섯 마지기를 바쳤다고 합니다. 크고 생김새가 독특한 선돌이 대개 미륵신앙의 대상이 되었듯이 이 바위 또한 남근석을 닮은 선돌이 미륵불로까지 승격된 사례라 하겠습니다. 암수바위를 보고 마을로 몇 걸음 올라오다보면 이번에는 돌탑으로 쌓은 밥무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지인들이 ‘밥구디기’라고 부르는데요, 이곳에서 매년 음력 10월 보름 저녁 8시경에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 밥무덤 옆에 당산나무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동제를 두 번 모시는데 10월 15일에는 밥무덤에서, 암수바위가 발견된 10월 23일에는 암수바위에서 제의를 갖는 것이죠. 밥무덤은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한 혼령에게 밥을 주어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을내 세 군데 밥무덤이 있는데 마을 가운데 자리한 돌탑형식의 밥무덤에서만 동제를 지내고 나머지 두 군데에는 밥만 모시고 있답니다. 마을 뒷산 깨끗한 곳에서 채취한 황토를 기존 밥무덤의 황토와 바꾸어 넣고 햇곡식과 과일, 생선 등으로 상을 차려 풍농과 마을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린 뒤 황토를 파서 그곳에 밥을 모시고 덮개돌로 덮어둡니다. 초등교원 신규임용시험을 치르는 날, 대폭 줄어든 채용인원으로 인해 시험장 분위기가 여간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4년을 공부했던 어제의 동기가 오늘엔 서로가 서로를 떨어뜨리고 경계해야하는 경쟁자여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채용인원이 줄어든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현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제 저출산 문제는 우려할만한 수준을 훌쩍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나타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 멀리 선사시대 암각화에서부터 선돌과 남근석, 성혈, 장승, 풍수지리사상에서 남아선호사상까지 긴 흐름을 겪으면서 민초들이 바랬던 것은 결국 ‘다산(多産)과 풍요(豊饒)’였던 것 같습니다. 그 염원에는 가정사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전체의 번영을 위한 염원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 바램은 한 가정의 문제, 한 마을의 문제를 벗어나 국가적 과제로까지 다뤄져야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이래저래 낮아지는 출산율을 보며 한동안 왁자지껄했던 그 시절에 대한 미련을 가슴속에만 묻어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울산 옥현초 교사
필자는 2006년 새해 벽두에 본란을 통해 2006년 한 해는 무너진 교육의 기강과 규율이 바로 서고, 추락한 교원의 사기와 권위가 회복되는 해로 만들어야 하며, 법과 원칙을 지켜야 손해 보지 않는다는 행위준칙이 지켜져야 우리 교육에 미래와 희망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새해가 열릴 때마다 금년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와 발전에의 희망과 정성과 열성을 다하려는 다짐으로 출발하지만, 기대와 희망과 다짐이 충족되기란 어려운 모양이다. 여전히 교육에서의 기강과 규율은 비틀거리고, 교원들의 사기와 권위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교육은 국가발전 전략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으며, 여건의 개선 없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교육계를 휘감고 있다. 이제 다시 2007년을 열면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교육의 주체들이 서로 네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내 탓이 무엇인가를 성찰하면서 새해에 관한 설계를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지난 2006년은 어느 해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우리 교육계의 절실한 과제들의 논의와 논쟁이 이루어졌다. 교원능력개발평가제 시행에 대한 논란, 교육인적자원부장관 임명 파행, 학교급식 파문,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 공무원연금법 개악 시정 촉구, 학급총량제 도입에 따른 열악한 교육환경 논쟁, 지방교육자치제의 정체성 혼란 문제, 열악한 교육재정 극복의 시급성, 수석교사제 도입, 학제 개편 등 교육제도와 정책에 관한 논의 및 논쟁, 교사 폭행,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등의 교원과 학생의 인권침해 논쟁, 통합논술 도입에 따른 대학입시의 타당성 제고 논쟁, 공교육 정상화 등 숱한 과제로 교직사회의 불안정과 교육의 이해 혹은 관련 집단 간 의견의 상충이 심화된 해였다. 이러한 논쟁과 이견들은 그 자체로 생산적일 수 있다. 논쟁과 논의와 타협 및 설득을 통하여 보다 나은 방안이 도출되고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논쟁과 논의만 무성했지 어느 것 하나 교육이해 집단 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다시 2007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금년 한 해는 어떤 주제로 고민하는 해가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필자는 ‘공교육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해’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교육의 역사를 통하여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의 교육에 대한 신뢰는 매우 높았다. 교육은 개인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으로 여겼으며, 교육이 국가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신뢰는 지난 IMF 시점을 정점으로 최근 10여년 사이에 불신의 곡선이 거의 직선을 그리는 양상으로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된 이유는 다양하지만, 핵심적인 요인은 우리 교원들과 정부라고 생각한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우리 교육자들에게 그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학생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를 생산적으로 이끌기 위한 교육자들의 노력과 분발이 미흡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개선․혁신․개혁과 같은 이야기만 나오면 거부감을 보이고 회피하려는 행태를 교육자들이 지니고 있다는 사회인과 학부모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교육자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다시 한 번 점검할 일이다. 정부 또한 교육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교육예산 GDP 6% 확보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국가발전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과 신뢰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교육은 투자 없는 결실을 기대하기 어려운 공적 기업이다. 과대 과밀학급을 해소하고 학급당 학생 수를 1명이라도 줄이기 위한 투자, 교사 대 학생 비를 줄이기 위한 투자, 교사의 수업시수를 OECD 수준으로 접근시키는 등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 유능한 교원 양성을 위한 투자, 교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투자, 사교육이 아니더라도 상급학교 진학과 학생 개개인의 적성 및 잠재능력 개발이 가능한 공교육에의 투자, 학교경영과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 없이 교원들의 희생과 교육애를 호소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 처사다. 교원들로 하여금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주면서 열성을 다 해 학생 교육과 지도에 힘쓰자고 호소하는 것이 순리에 맞는다. 지난 2006년과 마찬가지로 2007년에도 교육계에 풀기 어려운 과제들에 대한 논쟁이 무성할 것이다. 교원능력개발평가제, 수석교사제, 교육자치제, 입시제도 등의 제도에 관한 논쟁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수준 교육과정의 부분 개편과 더불어 어떤 인간을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등 교육의 본질 추구 논쟁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교육에 관한 이 모든 논의와 논쟁들이 교육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이승원 | 인천대 강사 기차가 달려온다! ‘속도’가 우리의 일상을 삼켜버렸다. 단 몇 초 만에 부팅되지 않는 컴퓨터는 고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제 시속 300㎞로 질주하는 고속철도의 속도도 그리 빠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속도는 속도를 낳을 뿐만 아니라 속도는 인간을 훈육한다. 좀 더 편리하고 윤택한 세상을 꿈꿨던 인간은 새로운 사이보그의 출현을 갈망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대뇌와 신경세포는 마치 CPU와 RAM의 기능으로 탈바꿈하여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지, 기계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인지하게 만드는지 모르는 모호한 경계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기계와 인간은 모두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 왔다. ‘IT 산업’이 각광받고 있는 현시점에서 바라본다면 구닥다리 기계가 판을 치는 시대였을지는 몰라도, 백여 년 전 세계는 새로운 기계의 출현으로 급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기계란 바로 ‘증기기관’이었다. 5대양 6대주를 횡단했던 유길준은 1889년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은 ‘증기의 세계다!’ 산업혁명의 적자인 증기기관이야말로 신세계를 이끌어가고 구성해가는 최첨단 엔진이었다. 증기기관의 운동이 가열 차게 회전할수록 세상도 그와 함께 재빠르게 변해갔으며, 우리의 삶은 증기기관의 자장(磁場) 속으로 급속하게 빨려 들어갔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단순한 기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최신식 DMB폰으로 인해 전 세계의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내 손안에서 주무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증기기관은 세상을 쉼 없이 움직이고 유통하게 만드는 거대한 기관이었다. 1895년 12월 28일에는 뤼미에르 형제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영화를 상영했다. 그 제목은 이었다.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들은 기차가 마치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줄로 착각을 했다고 한다. 물론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보았던 관람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은 근대식 동력기관의 총아라고 불리는 ‘기차’ 그 자체는 아니었다. 무성영화이었기 때문에 기차의 우렁찬 굉음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스크린 위에 재현된 영상이 현실을 대체할 만큼 사실적이었고, 바로 그 리얼리티를 만들어 낸 영화에 대해서 감탄한 셈이다. 문자문화 탄생이 말하기를 구술·청각의 세계에서 시각의 세계로 전환시킨 인류 문명사의 대변혁이었듯이, 영화의 탄생은 근대적 시각화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시각화되는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뤼미에르 형제가 섭외한 근대의 상징이 ‘기차’였다는 것은 실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차와 증기선은 근대의 상징이자, 세계 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교통수단이었다. 만약 이 두 기관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세계’란 말은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은 중국과 일본을 뛰어넘어 전 세계를 견문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동아시아를 식민지로 개척하면서 비롯되었다. 개항을 계기로 외국을 여행한 사신(使臣)들은 기차의 외양과 내부의 화려함에 정신이 혼미해 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을 무엇보다도 놀라게 만들었던 것은 기차의 ‘속도’였다. 조선 최초의 수신사 김기수의 표현을 빌면 “기차는 불을 뿜고 회오리바람처럼 가 버리며 눈 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게 되어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게 만드는 기기음교(奇技淫巧)의 극치”였다. 그러나 ‘눈을 현혹하는 음란한 기술’인 기차의 출현은 나와는 다른 이질적인 사회와 문화를 접속하게 만들어 주었던 획기적인 미디어였다. 그것은 일본 애니메이션 에서 쿠사나기 소령이 마지막에 일갈했던 말과 동일할 것이다. “네트는 광대해!” 여행,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대한 문화적 체험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개인이건 사회건 간에 주체성 형성에 있어 타자의 발견은 필수적이다. 타자의 발견 없는 주체성의 형성은 절대자인 신(神)의 위치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기회로서의 여행이 깃발을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여행의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시대로부터 존재했다. 고대로부터 근대까지 지속되어 온 여행의 목적은 왕명의 집행을 위한 공적인 목적의 여행, 상인들의 대상행렬(隊商行列), 성지순례, 치료를 위한 여행, 그리고 여행 그 자체를 위한 여행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유럽중심주의적 개념인 ‘지리상의 발견’ 이후의 여행은 단순한 대상행렬이거나 성지순례 등의 여행과는 그 목적이 다르다. 이는 증기기관의 발달로 인해 증기선과 기차가 중요한 여행의 교통수단이 되면서 등장한 근대적 여행, 즉 ‘관광’도 마찬가지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의 여행은 겉으로 보기에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정책이라는 경계 안에서 행해졌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유럽(서양)의 타자인 ‘동양’을 발견해냄으로써 유럽문명을 선(善)하고 우월한 것으로 규정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유럽 국가들은 많은 지식인들을 동양으로 파견하였으며, 그들은 철저한 필드워크를 진행하면서 수집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동양의 이미지’를 재구성하였다. 이때 구성된 동양은 ‘야만’과 동일한 말이었다. ‘야만의 박물지’로 명명할 수 있는 동양에 대한 기록은 동양에 대한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서양인들이 만들어 낸 하나의 이미지이다. 이는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해 왔었다.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었고 그 밖에 위치한 나라들은 ‘오랑캐’로 치부했다. 조선의 사신들은 자신의 젖가슴을 꺼내어 보여주는 일본 여자들과 몸을 칼로 찔러서 산수와 초목을 그린 문신을 한 일본사람들에 대해서 “사람과 같지 않은 오랑캐에 불과하며, 그들은 한 마디로 매우 더러워할 만하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조선 사신들의 이러한 말은 유럽인들이 동양인들에 대한 비하의 발언과 동일한 맥락이었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렇지만 개항의 거센 물결이 조선에 들이치자 조선인들도 어느덧 야만스러운 ‘오랑캐’가 되어 있었다. 영국 사람들은 조선을 똥과 오물이 나뒹구는 더러운 나라이자 도망치고 싶은 흉악한 나라로 불렀다. 조선의 여행자들이 일본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이나 영국의 여행자들이 조선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의 근거에는 철저하게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이 존재했다. 또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하였다. 그 결과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역전되어 오히려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야만인’으로 부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조선반도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살았던 조선인들은 기차와 증기선의 발달에 따라 서로 다른 나라를 쉽게 왕복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인들은 이제 ‘바람이 달리고 번개가 치는 듯한 충격’을 온몸으로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대식 교통체계의 발달에 따른 세계관의 변화와 자아와 타자의 새로운 네트워크 형성은 수평적인 것이 아니라 근대화의 정도와 권력과 힘에 의해서 수직적으로 재편되어 갔다. 미지와의 조우, 신세계를 견문하다 100여 년 전 조선인들의 세계 체험은 강압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시의 세계 여행은 대부분 사행(使行)이었다. 조선은 일본을 비롯하여 서양과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사신을 파견할 수밖에 없었고, 사신들은 공적인 여행을 통해서 조선과는 다른 세계를 체험하였다. 이들이 여행한 공간은 근대식 공원, 박람회, 학교, 무도회장, 연극장, 감옥, 전신국 등이었고, 이는 서양이 자신들의 우월한 문명을 과시하는 공간이었다. 사신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곳’을 여행한 것이 아니라 서양의 나라들이 ‘보여주고 싶은 곳’을 어쩔 수 없이 보아야만 했다. 사신들은 서양이 보여 준 공간을 통해서 근대화를 실감했으며,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조선의 근대화를 추진했던 것이다. 100여 년 전 사신들의 여행은 단순히 여행으로 끝났던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지식의 대근원을 살피는 것’이었으며, 그 지식이란 서양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앎이었다. ‘지금 - 여기’의 우리 삶은 바로 100년 전 여행자들이 체험했던 서양 세계를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100년 전 여행자들은 서구 문명국가가 만들어 놓은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시선 속에서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여행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제 100년 전 여행자들의 여정에 따라 그들이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긴장하며, 때로는 요동쳐야만 했던 현장 속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이 여행의 목적은 지금도 우리의 몸과 의식 속에 깊숙하게 각인되어 있는 ‘서구화 = 근대화’의 본질과 싸우는 일이기도 하다.
김철호 | 저자 [문제] 괄호 안에서 자연스러운 표현을 고르시오. 1. 딸아이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용돈을 (주기로|건네기로) 약속했다. 2. 고마운 마음에 만원짜리 한 장을 (주었지만|건넸지만) 노인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3. 젊은 사서는 내가 신청하지도 않은 책을 태연히 (주는|건네는) 것이었다. 4. 아이가 어머니에게서 받아 온 편지를 선생님에게 (주었다|건넸다). [풀이] ‘주다’의 다양한 쓰임새 한국어에서 ‘주다’만큼 쓰임새가 다양한 낱말도 드물 것이다. 상대에게 물건을 가지도록 건네는 일, 돈·요금·봉급 따위를 지불하는 일, 먹을 것이나 영양을 공급하는 일, 일이나 책임을 맡기는 일, 권리나 지위 같은 것을 부여하는 일, 도움이나 혜택을 제공하는 일, 고통·해·창피 따위를 겪게 하는 일에도 ‘주다’가 쓰인다. 이밖에도 주의나 언질 같은 말을 하는 일, 전화를 하거나 연락을 취하는 일, 점수나 학점을 매기는 일, 상이나 벌을 받게 하는 일, 시간이나 여유를 허락하는 일, 속이나 정을 내보이는 일, 감동이나 겁, 느낌 따위를 느끼게 하는 일, 세례나 안수를 베푸는 일, 몸에 힘을 쓰는 일, 액센트나 변화 같은 영향을 가하는 일, 눈이나 귀를 일정한 방향으로 돌리는 일, 눈치를 보내는 일, 자식을 남의 집 며느리나 양자로 들이는 일, 몸이나 마음을 이성에게 허락하는 일 등등, ‘주다’의 대상에는 거의 제한이 없어 보인다. ‘건네다’는 ‘건너다’에서 온 말 한편 ‘건너다’의 어간 ‘건너-’에 사동접미사 ‘-이’가 붙어서 생겨난 ‘건네다’는 크게 세 가지 뜻으로 쓰인다. 첫째, ‘건너다’에서 나온 사동사라는 태생에 충실하게, 사람이나 물건을 ‘건너가게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다. ‘건네다’가 이렇게 본래 의미로 쓰이는 경우에는 ‘건네다’보다는 ‘건네주다’의 꼴을 취할 때가 많다. “사공이 나룻배로 여인을 건네주었다”, “아이를 업어서 징검다리를 건네주었다” 등이 그 예다. 또 한 가지는 “말을 건네다”, “인사를 건네다” 같은 경우다. 이럴 때는 상대에게 말을 붙이거나 인사를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건네다’는 “물건을 건네다”나 “돈을 건네다”에서 볼 수 있듯이 ‘무언가를 남에게 넘겨준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이 글에서는 이 용법에 한정해서 ‘주다’와 비교하기로 한다). 주의는 ‘주고’ 인사는 ‘건넨다’ ‘준다’나 ‘건넨다’나, 뭔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일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런데도 한국어에서는 이 두 낱말과 어울리는 대상들 사이에 비교적 엄격한 구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넘겨줄 때에는 “돈을 준다”고도 할 수 있고 “돈을 건넨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건너가는 것이 돈이 아니라 말[言]이면 ‘준다’는 안 되고 ‘건넨다’만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말 중에서도 인사나 수작 같은 것은 ‘건넨다’고 하지만 주의나 언질 같은 것은 ‘준다’고 한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누구나(?) 좋아하는 ‘돈’을 예로 들어보자. “돈을 주었다”와 “돈을 건넸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예컨대 “어머니가 아이를 잘 봐달라며 담임선생에게 돈봉투를 주었다”와 “~ 돈봉투를 건넸다”는 어디가 어떻게 다른 걸까. 한번 ‘준’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주었다’나 ‘건넸다’나, 돈이 교사의 손으로 넘어간 사실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둘 사이의 차이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상황에서 생겨난다. 즉, 교사가 돈을 받아서 ‘꿀꺽’ 해버렸다면 ‘주었다’가 어울리고, 정색을 하면서 돌려주었다면 ‘건넸다’가 좀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다’의 대상이 된 사물은 한번 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반면, ‘건네다’의 대상은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돈봉투를 주었지만 손사레를 치며 받지 않았다”보다는 “돈봉투를 건넸지만 손사레를 치며 받지 않았다”가 훨씬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다. ‘주다’는 소유권 이동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무엇이든 ‘주면’ 그 사물은 새 주인을 섬기게 된다. 첫머리에서 ‘주다’와 어울릴 수 있는 것을 여러 가지 살펴보았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주다’에 의해 소속이 바뀐다. 누군가한테 돈을 ‘주면’ 그 사람이 돈의 새 임자가 되고, 권리를 ‘주면’ 그 사람이 권리의 소유자가 된다. 남에게 ‘준’ 상처나 모욕은 고스란히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된다. 주의나 언질도 한 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적으로 주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어서, 상대가 무언가를 돌려주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건넨’ 것은 돌아오는 것이 정상이다 이에 반해 ‘건네다’는 단순히 어떤 물건의 소재가 다른 사람 손으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이때 사물의 소유권 자체에는 변동이 없어서, 건너갔던 것은 다시 주인에게 돌아오는 것이 정상이다. 흔히 “줬다 뺏는 법이 어딨냐” 하듯이, 한번 ‘준’ 것을 도로 가져오려면 ‘빼앗는’ 방법밖에는 없다. 반면 ‘건네준’ 것은 도로 ‘건네받으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한테 말을 ‘건넸는데’ 상대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말을 건네면 말이, 인사를 건네면 인사가 돌아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공이 ‘건네준’ 여인도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 있다. ‘주다’는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이며 자기완결적이다. “몸 주고 마음 주고 정도 주었지만” 운운하는 노랫말에서도 보듯 ‘주는’ 행위는 그것으로 그만이어서, 그에 상응하는 것이 돌아오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것이(이를테면 배신이나 보복이) 돌아온다. 이에 반해 ‘건네다’는 쌍방향적이고 대칭적이며 순환적이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건넨’ 것과 똑같은 것이, 또는 그에 상응하는 것이 돌아오게 되어 있다. ‘건네다’는 소유권과 무관할 때가 많다 그런데, ‘주다’와 ‘건네다’ 사이에는 소유권과 관련해서 좀더 근본적인 차이가 숨어 있다. 앞에서 ‘주다’는 소유권 이동을 전제로 한 낱말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건네다’에서는 애초부터 소유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여인을 ‘건네준’ 사공이 여인의 주인이 아니듯이, 어머니의 편지를 받아서 선생님에게 ‘건네는’ 딸에게도 편지와 관련한 권리가 전혀 없다. 영어로 치면 ‘주다’는 ‘give’고 ‘건네다’는 ‘pass’다. 영어사용자들이 식탁에서 “Give me the salt”라 하지 않고 “Pass me the salt”라고 하는 이유는, ‘give’가 소유권의 존재와 그 이동을 전제로 한 말인 데 반해 ‘pass’는 소유권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동료에게 공을 넘길 때 ‘give’한다 하지 않고 ‘pass’한다고 하는 까닭도 이와 같다. 공을 넘겨주는 선수나 넘겨받는 선수나 결코 공의 임자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건네다’는 구체적, ‘주다’는 추상적 ‘건네다’와 ‘주다’ 사이에는 또 한 가지 중대한 차이가 있다. 누구한테 뭔가를 ‘건네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야 한다. 그리고 ‘건네주는’ 사람이 ‘건네받는’ 사람에게 몸소 물건을 넘겨주어야 한다. 이에 반해 뭔가를 ‘주는’ 일은 서로 만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장은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도 다른 직원을 시키거나 자동이체를 통해서 얼마든지 직원에게 급료를 ‘줄’ 수 있다. 당사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이를테면 공개적인 글을 통해)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일도 가능하다. ‘건네는’ 행동은 구체적이고 ‘주는’ 행위는 추상적이다. ‘주다’는 한 인간에게서 다른 인간에게 뭔가가 건너가고 넘어가고 흘러가는 온갖 경우를 두루 싸잡아 가리키는 말이고, ‘건네다’는 그 중에서 신체의 실질적인 움직임을 동반한 경우만을 지칭한다. ‘건네다’는 ‘주다’의 부분집합이다. 두 낱말의 상대어가 공히 ‘받다’임을 생각하면 이 점이 한층 분명하게 드러난다. 점잖은 글말로 물러난 ‘건네다’ 이렇게 ‘주다’와 ‘건네다’ 사이에는 의미심장한 차이가 숨어 있지만, 입말에서는 ‘건네다’를 쓸 곳에 ‘주다’를 쓰는 일이 흔하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주다’가 ‘건네다’에 비해 발음이 쉽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워낙에 ‘주다’의 쓰임새가 넓다 보니 한국어사용자들의 무의식 속에 “‘주다’는 모든 사물에 쓸 수 있다”는 단정적 사고가 자리 잡게 된 연유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입말에서 ‘건네다’를 썼을 경우 말하는 이의 점잖은 성격이나 지긋한 나이를 느끼게 한다. ‘건네다’가 ‘주다’에 눌린 까닭 ‘인간人間’을 풀면 ‘사람 사이’가 되듯이,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사회를 이루어 서로 뭔가를 주고받으며 사는 존재다. 하기야 그렇게 모여 사는 과정에서 말이라는 것도 생겨났을 테니, ‘주다’의 용법이 다종다양한 것도 더없이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사람의 성정이 저마다 다른 탓인지, 내가 누구에게 무언가를 해주어도 상대가 똑같이 갚아 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 듯하다. 아니면, 사람이 서로 제각각이다 보니 자신이 받은 만큼 고스란히 돌려주기보다는 받은 것에 모자라게, 혹은 그보다 넘치게 돌려주는 일이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쓰임새의 가짓수에서 ‘주다’가 ‘건네다’를 압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은 아닐는지. [요약] 주다 -양자의 직접적인 대면과 신체행동이 따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두루 가리킴 -소유권의 존재와 그 이동을 전제로 함 -일방적, 비대칭적, 자기완결적 건네다 -양자의 직접적인 대면과 신체행동이 따르는 경우만을 가리킴 -소유권 불변을 전제로 하거나, 소유권과 상관없음 -쌍방적, 대칭적, 순환적 [답] 1. 주기로 2. 건넸지만 3. 건네는 4. 건넸다
이동웅 | 울산여고 교장 한 제자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제자와 함께하는 자리는 다른 어떤 자리보다 순수하고 부담이 없어 좋다. 그래서 이런 초대를 앞둔 날이면 마냥 마음이 설렌다. 함께 초대된 분은 제자의 담임이었던 최 선생님, 그리고 지인인 강 선생님이었다. 음식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던가? 과거 학교시절 이야기며, 세상 살아온 이야기, 또 살아갈 이야기 등 모처럼 모든 일들을 다 잊어버리고 있는 말, 없는 말 다 털어놓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특별한 자리로 우리를 초대한 제자 하 선생은 학성여중에 근무할 당시의 제자로 명문대 약대를 졸업했다. 이후 본인의 적성을 고려하고 사회에 더 큰 봉사를 하고자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소아과를 전공한 후 개업의로 10년간 환자를 돌보다가, 다시 정신과 전문의 4년 과정을 거쳐 지금은 부산의 어느 정신과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좀 별난, 그러나 특별한 제자와 함께하는 자리라 잘 못 먹는 술도 마시고, 서로 헤어지기 아쉬워 밤늦게까지 찻집에 들려 또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져보는 편안한 시간이었다. 하 선생은 앞으로 울산에 정신병원과 양로원을 세워 울산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활동을 하면서 일생을 보내려고 병원부지까지 준비해 놓았다는 이야기도 했고, 여러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자기 나름의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부모가 자신의 생각에 자식을 맞추느라 자식이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며, 부모들이 우리의 좋은 교육제도를 마다하고 자식들을 멀리 외국으로 보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 또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이 아이들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긴다며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학교도 함께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며, 부모도 교사 못지않은 교육전문가이니 학교가 그 전문성을 학교 안으로 끌어 들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등 여러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냥 어린 제자라 생각한 하 선생과의 대화로 학교 안에서만 생각하는 필자가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문 안과 교문 밖의 온도차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으며, 나 자신이 진정한 교육자로서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했다. 도리어 내가 제자로부터 회초리를 맞는 자성의 시간으로, 솔직한 충고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공을 일구어 내고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하 선생의 모습이 자랑스러워서 시간을 내서 우리 학교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해달라고 부탁도 했었다. 다음 날 점심 식사를 하고 막 들어오는데, 바로 전날 즐거운 대화를 나눈 하 선생이 오전 서울에서 위암 수술을 받았다는 비보가 전해진다. 눈앞이 캄캄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제의 자리는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그리운 사람을 보고 가려고 미리 마음먹고 정한 자리였음이 분명하다. 그 넉넉한 여유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삶의 목표와 철학이 남다른 까닭인 것이었다. 위로받아도 부족한 처지에 타인을 편안하게 해주고자 자기 몸 생각하지 않고, 내색 하나 없이 늦게까지 시간을 내준 하 선생이 안쓰럽고 한편으론 밉다. 내가 진정 이렇게 가르쳤냐고 가까이 있으면 큰소리 내어 꾸짖고 싶은 심정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도 남을 먼저 배려하려고 애쓰며, 모든 사람에게 비전을 제시해주는 보기 드문 큰 그릇 하 선생. 스승보다 크게 성공하여 항상 자랑스러웠고, 그를 통해 교직의 보람을 느끼며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한, 강한 자부심을 나에게 심어준 하 선생인데 그런 하 선생에게 위암이라니! 그러나 현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없어 너무 안타까웠다. 나의 자랑스러운 제자 하 선생! 빠른 쾌유를 빕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너무 열심히 살아왔기에 잠깐 쉬어가라는 강한 메시지로 생각합시다. 이제까지 쉼 없이 달려온 하 선생에게 뒤도 한번 돌아보고, 자신을 사랑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으로 생각합시다. 그래서 지금의 그 열정과 통찰력으로 생각한 바를 꼭 이루어내야 합니다. 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말입니다. 하 선생은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지금까지처럼 모든 걸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빨리 회복해서 늘 그랬듯이 즐겁게 사회 활동하는 좋은 모습 꼭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 선생만이 가진 특별한 향기를 우리 사회를 위해서 꼭 피워 내리라 확신합니다.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cafe.daum.net/parque) 오랜 방랑 생활 끝에 황제로 등극 몽골은 거란과 함께 동호계(東胡系)로 분류되어 중원의 한족과 반도의 사대주의자에게는 상종치 못할 오랑캐 나라였다. 그러나 원의 지배를 받는 동안 한족들은 민족차별에 불만을 느끼고 지하에서 골수중화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성리학을 완성시키는 한편, 정사 〈삼국지〉를 변조하여 유비의 촉한을 정통중화로 조작하는 공정을 진행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원나라의 통치가 느슨해지자 각지에서 들고일어났고 당시 중국 남방지역에서 백련교(白蓮敎)의 홍건군이 발흥하여 반원항쟁의 중심세력을 형성하였다. 당시 원나라는 몽골황실의 권력다툼이 치열하였다. 몽골제국의 제4대 황제인 몽케칸의 아우 쿠빌라이가 1279년 원나라를 건국하였으나 그가 황제로 즉위하자 막내 동생인 아리쿠부카와 오고타이 가문의 카이즈가 반란을 일으켰다. 쿠빌라이의 '유목과 농경의 조화를 통한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에 정면 도전한 것인데, 결국 이러한 싸움은 원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어 제국의 단명을 재촉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일찍부터 제위 세습제가 정착된 한족과는 달리, 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제위를 꿈꾸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을 푸대접한 것은 원나라의 최대 실수였다. 또한 경제정책 실패는 철저한 푸대접을 받는 한족들로 하여금 뭔가 중대한 결심을 하게 만들어 후한의 혼란기에 황건의 난이 일어났던 것처럼 백련교라는 불교계통의 비밀결사 단체가 '홍건의 난'을 일으킨 것이다. 홍건군에는 주원장이라는 빈농 걸인 출신의 무장이 있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로 잔뼈가 굵었다. 당시 중국 전역을 휩쓴 무서운 역병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되어 중국 전역을 방랑하면서 걸인생활을 하였으나 이러한 생활이 나중에 주원장을 황제로 만들어준 원동력이 되었다. 왜냐하면 방랑생활 그 자체가 그의 훌륭한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백련교가 단순한 종교단체가 아니라 사회변혁을 위한 물리적 힘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여 난징[南京]을 중심으로 강남 동부일대를 장악하고 1368년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북경)를 함락시켜 몽골인을 몽골초원으로 쫓아버렸다. 결국 주원장은 제위에 올라 명 태조(太祖) 홍무제(洪武帝)로 시작되는 한족의 마지막 통일왕조를 이루어내었는데 명나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역대 왕조와는 다른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왕조 초기 황제권 강화로 기초 다져 명나라는 강남에서 발흥하여 중국을 통일한 유일무이의 국가였다. 역대 중국의 통일왕조는 중원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오다가 강남을 흡수시켜 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였으나, 홍무제는 강남에서 시작해서 중원을 정복했다는 점에서 정반대였다. 또한 홍무제는 '왕후장상(王侯將相)에 어찌 씨가 따로 있나'는 말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던 인물이었다. 시황제는 전국시대 진나라의 왕, 한 고조(高祖)는 변방 하급 관리 출신, 수나라의 양견과 당나라의 이연, 송나라의 조광윤(절도사 출신)은 모두 중원 북방의 무장 출신이었으나 홍무제는 걸인 출신이었다. 요나라 → 금나라 → 원나라로 이어지는 오랜 이민족의 통치에서 벗어난 중국은 대명(大明)이라는 국호 하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홍무제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독재체제 구축이 과제라 생각하였다. 우선 승상제를 폐지하여 6부가 자신의 통제 하에 들어올 수 있게 하는 한편, 배타적 중화민족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내건 조선 길들이기에 착수하였다. 또한 국가제도의 고비용 저효율을 과감하게 수술하여 모든 것을 황제권 강화로 귀결시켰는데, 군사기관인 추밀원을 5군 도독부, 감찰기관인 어사대를 도찰원으로 고쳐서 모두 황제 직속기관으로 만들어 행정·사법·군사를 장악하였다. 군사면으로는 처음부터 과감하게 순수 징병제를 포기하고 징병제와 모병제를 절충시킨 병역제도를 채택하였고, 이를 '위소제도(衛所制度)'라 한다. 이 제도는 병농일치의 의무병제의 장점과 전투력 위주의 직업군인 장점을 수용한 것이다. 아무튼 명나라를 건국한 홍무제는 걸인 출신 무장답지 않게 여러 방면에서 탁월한 통치력과 행정능력을 보여 주었다. 더욱이 역대 왕조의 전통을 모방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모든 제도를 정착시킨 덕분에 이후 명나라가 무능한 황제들과 환관들의 전횡에도 불구하고 그런 대로 버텨낼 수 있었으며 조선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또한 후계자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려 26명이나 되는 아들들을 멀리 내쫓아 변방을 지키는 번왕으로 봉하였다. 태조 홍무제가 죽고 손자인 건문제(建文帝)가 15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이에 변방을 지키면서 야망을 키워온 그의 삼촌인 연왕이 군대를 몰아 수도인 난징으로 쳐들어왔다. 물론 명나라의 안위와 황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결국 조카인 건문제는 도망가고 삼촌인 연왕이 제위에 올랐는데, 그가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이다. 영락제는 즉위하자마자 수도를 연경으로 천도하는 일에 착수하여 1420년 자금성이 완공되자 이름도 베이징[北京]으로 바꾸고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의리의 화신 관우를 관제(關帝)로 신격화하여 한족지상주의를 주변국에 강요하였다. 또한 그는 1410년부터 1415년에 걸쳐서 직접 대군을 이끌고 다섯 차례의 출정으로 북방을 평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방 원정에도 주력하여 베트남을 복속시키고 이슬람교도인 환관 정화(鄭和)로 하여금 남해를 원정케 했다. 정화의 원정함대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멀리 인도양과 아프리카 동부 해안까지 진출하였는데, 이유는 당시 중앙아시아의 티무르 제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원정의 결과로 남방의 여러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는 국제관계의 다변화가 이루어졌고, 동남아시아에 관한 정보가 강남 지방의 중국인에게 전해져 화교(華僑)의 기원이 되었다. 환관 중용 이후 쇠퇴의 길로 들어서 환관은 역대 군주들의 경계 대상이 되어 왔다. 환관이라는 존재는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으로서 직접 황제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권력을 향한 행보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락제는 이러한 그들의 속성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일찍이 홍무제는 환관의 정치참여를 엄금하였지만, 영락제는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덕을 톡톡히 보았던 까닭으로 환관을 우대하고 신뢰했던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남해 원정군의 총수로 환관인 정화를 임명한 것도 환관에 대한 영락제의 신뢰도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며 정보정치를 강화하여 '동창(東廠)'이라는 특수 정보경찰기관을 만들어 총수에 환관을 임명하였다. 환관들은 신체적 콤플렉스를 물욕과 명예욕(권력욕)으로 보완하려는 심리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은 황제의 총애를 빙자하여 고관대작들을 얼마든지 견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눈 밖에 나는 사람은 얼마든지 황제에게 참소(讒訴)하여 죽이거나 귀양을 보낼 수 있었다. 제6대 정통제(正統帝) 영종이 아홉 살의 나이로 즉위하자 당장 문제가 터져 나왔다. 제5대 선덕제(宣德帝) 시절부터 태자의 시중을 들고 있었던 환관 왕진(王振)이 정권을 장악하고 국사를 농락하여 국가 지배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때 북방에서 몽골계 오이라트 부족장 에센이 1449년 '토목(土木)의 난'을 일으키자, 왕진은 황제가 직접 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무모한 정벌을 감행케 함으로써 결국 자신은 전사하고 황제는 포로가 되었다. 1450년 포로로 잡힌 황제가 풀려나 돌아와 보니 이미 동생이 제위에 올라 있었다. 그가 바로 경태제(景泰帝)다. 영종은 동생이 쿠데타로 자신을 몰아내고 제위를 찬탈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 수 없이 태상황제로 물러났지만 유폐된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는 1457년 석형(石亨) 등에 의해서 복위되어 제8대 천순제(天順帝)가 되었지만 이미 실추된 황제의 권위는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아무튼 명나라는 역대 어느 왕조보다 환관이 날뛰던 시대였다. 태조 홍무제가 그토록 환관을 경계하여 각종 조치를 취해 놓았지만 그의 후손들은 할아버지의 유훈을 무시하고 그들을 중용함으로써 일찍부터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 시대를 다룬 중국영화를 보면 악명 높은 실권자는 거의 모두가 환관들이다. 실패한 경제 제도로 약해지는 국력 산업이 발전하면 자연적으로 상업이 발달되고 따라서 화폐의 유통이 증가되기 마련이다. 당시 유통되고 있었던 화폐로는 '대명통보'라는 동전과 '대명보초'라는 지폐였다. 그런데 민간에서 비공식적으로 사용하던 은(銀)의 유통을 법으로 막아버리고 지폐만 찍어댔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화폐 사용량이 증가하자 더욱 지폐 발행량은 늘어났다. 그러나 지폐가 화폐로서의 기능을 하려면 유통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였다. 이에 조정은 별 수 없이 은의 유통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이러한 통화정책의 실패는 경제전반에 나쁜 영향을 가져다주어 조세정책의 실패로 이어지게 되었다. 은의 사용량이 급증하자 너도 나도 은을 요구하게 되었고 관리들조차 녹봉을 곡식이 아니라 은으로 줄 것을 요구하였다. 국가에서는 공무원들의 녹봉을 은으로 주기 위해서 많은 양의 은이 필요하게 되었고 세금을 은으로 낼 것을 명하였는데, 이것이 악명 높은 은납제(銀納制)였다(단, 토지세는 현물로 받았음). 도시에서는 그래도 은이 많이 유통되기 때문에 은을 구하기 쉽지만, 농민들은 은을 구하기 위한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종전에는 곡식만 바치면 되었으나, 이제는 곡식을 은으로 바꾸어야 했으므로 결과적으로 세금이 더 무거워진 결과를 낳았다(나중에 밀무역으로 멕시코의 은이 유입되어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김). 한족 왕조 명나라는 개국 초부터 중화적 세계관을 주변국에게 강요하였고 정화의 남해 원정도 일종의 무력시위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활발한 대외무역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한반도와 중국 해상에는 왜구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는데, 그 왜구들의 성격이 참 애매모호했다. 해안에 도착해서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그냥 무역을 하고, 상대방이 허술하거나 먹을 것이 많다고 생각되면 칼을 들고 일어나 노략질과 약탈을 일삼았다. 이에 명 태조 홍무제는 해안 주민들에게 일체의 사무역(私貿易)과 해외출항을 금하는 칙령을 내렸다(1437년). 중화사상에 사로잡힌 명나라와 교역을 하려면 국가 간의 공식무역, 즉 조공무역 밖에 없었다. 조공무역이란 천자의 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천자는 그냥 받기만 하면 천자의 위엄에 누가 되니까 신하에게 인심이나 쓰듯 하사품을 보내는 식이었다(당시 조선은 '말로 주고 되로 받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명나라의 국력이 강할 때에는 그나마 조공무역이 유지되었으나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 중기 이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따라서 조공무역이 유명무실해지자 밀무역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으며 이러한 밀무역은 명나라뿐만 아니라 조선에도 악영향을 주었다.
얼마 전 한 지인의 홈페이지에 이렇게 적혀있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말하고 싶을 때는 메신저 목록에 있는 안 친한 누구에게라도 말을 걸고 싶다. 정말 말하고 싶다.”라고 말이죠. MSN. 그러니까 다들 ‘엠에센’이라고 부르는 걸 제대로 하기 시작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메일보다 실시간으로 용건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더 편하고 빠른 걸 찾는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 MSN 사용을 최대한 미루어 온 이유에는 녀석에 대한 초창기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로그인을 하는 순간, “뭐야, 지금 출근한 거야?”(취재를 다녀오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괜히 찔리는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라는 메시지를 읽어야 했고, 점심시간인 12시가 넘어도 로그인이 되어있으면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는 모양이지?”라는 친구의 재미없는 농담도 날라 오기 일쑤였으니까요. 나름 소심한 제가 녀석을 컴퓨터에서 파내 버린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오랫동안’ 메신저와는 담을 높게 쌓고 지냈다고 해야 할까요. 요즘엔 웹 카메라를 달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친구도 있지만 거기까진 아직, 좀 더 참아보려고 한답니다. 어찌어찌 이제 제 메신저 대화상대 목록에 10여 명이 들어차 있습니다. 심심할 때 이 녀석, 꽤 좋은 동무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나 불러내 “뭐하니?”하고 말을 꺼내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내가 심심할 때 상대방도 똑같이 심심하지는 않다는 것, 이것입니다. 컴퓨터를 켜놓았다는 것이 대화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은 아닌데, 이쪽에서 볼 때는 그가 로그인을 했는지 아닌지만 관심이 있을 뿐이니까요. 물론 이쪽에서 말을 걸었을 때 저쪽이 바쁘다면(혹은 말하기 싫다면) “지금 좀 바빠서”라든가 하는 말로 점잖게 대화를 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메신저가 이제 생활이 되다 보니 그렇게 꼼꼼하게 대응이 잘 안 되는 것, 그것이 문제인 거죠. 언제부터인가 내 ‘대화상대’ 중에는 온라인에 들어오는 즉시 ‘자리 비움’이나 ‘다른 용무 중’을 선택하는 이가 늘고 있더라는 겁니다. 인터넷에 얽혀있으나 그렇지 않은 척함으로써 불필요한 대화나 접촉을 줄이려는, 소극적 무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려면 차라리 로그인을 하지 말든지, 자동 로그인 설정을 바꾸던지, 뭐 그러면 더 좋을 텐데 말입니다. 가끔 ‘온라인’으로 분류돼 있는 친구에게 “바쁘니?”하고 말을 건넸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30초쯤 기다리다, 답이 없으면 창을 닫고 대화를 포기하게 되지요. 그럴 때 무척 쓸쓸합니다. 제가 던진 말 한마디는 초고속 인터넷 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북미대륙 뉴욕에까지 도달했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을 때. 그때 말입니다. 제 지인처럼 아무나 붙잡고 말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도, 말을 걸기가 두려워지는 건 아마도 이 쓸쓸함 때문이 아닐까요. 테크놀로지가 좋아진 만큼, 쓸쓸함도 비례해 무거워진 모양입니다. | 한국교육신문 기자
박준용 | 한양대 강사, 영화평론가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은 강원도 탄광촌의 도계중학교에 임시 음악교사로 부임하게 된 한 트럼펫 연주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배우 최민식이 연기하는 주인공 현우는 교향악단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류에서 밀려난 트럼펫 연주자. 재능은 없어도 자존심은 있어 자괴감에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처지도 못되면서 음악 학원에서 용돈이나 벌라는 친구의 말에는 자존심 상해한다. 돈을 위해 음악을 하면 안 된다고 믿는 그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밤무대에 서는 일만은 끝내 피하려고 한다. 그런 주인공 현우에게 겨울은 길기만 했다. 교향악단 연주자를 꿈꾸었던 미래는 암담할 뿐, 현실의 벽에 부딪쳐 보내야만 했던 연인은 주위를 맴돌며 맘을 아프게 하고 나이든 홀어머니에게 효도도 못하고 걱정만 끼쳐드리는 형편이다. 그에게 인생은 늘 그렇게 캄캄한 겨울일 것만 같았다. 탄광촌에서 만난 순수한 열정 하지만 꽁꽁 언 땅 밑에서도 자연은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듯이 겨울은 고요히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떠나보낸 옛 연인 연희(김호정)가 결혼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던 날, 현우는 강원도 탄광촌에 있는 중학교 관악부 교사 자리에 지원한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부임한 첫 날. 낡은 악기, 너덜너덜한 악보, 까까머리에 얼굴은 새까만 아이들이 모여 있는 초라한 관악부를 보는 순간 한숨만 나올 뿐이다. 게다가 올해 전국경연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강제 해산해야만 하고, 현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망 없는 레이스에 돌입해야 한다. 우승은 턱도 없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담겨 있는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그는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잊고 있었던 자신의 옛 모습을 떠올렸기에 아이들의 음악에 대한 사랑까지 포기하게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선생님이 굳은 신념과 이상을 품고 교직을 시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요즘 세상에는 현우처럼 어쩔 수 없는 생활의 한 방편이나 일종의 안정된 직업으로 교직을 선택하는 이들이 더 많을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교사가 일상적인 직업들과 달리 사람, 곧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변화무쌍한 존재인 아이들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 특수한 성격의 일이라는 데 있다. 이런 까닭에 교육이란 언제나 학생은 물론 교사 본인도 이런 살아있는 만남을 통해 보다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고 성숙되어 갈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결국 교직이란 어떻게 시작하느냐 못지않게, 영화 속 현우의 변화처럼 그 열린 가능성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느냐에 그 궁극적인 성패의 여부가 달려있다. 비현실적 공간에서 현실 깨달아 아이들과 대회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그래도 여전히 옛 사랑의 그림자에 가슴이 저리는 현우. 그런 현우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맑은 심성을 가진 마을약사 수연(장신영)의 배려로 현우는 언 땅을 녹이는 따뜻한 봄기운을 느낀다. 현우를 이해하고 바라봐 주는 순박한 사람들도 그의 곁을 지켜 준다. 잘하든 못하든 좋아하는 거 계속 하자는 친구의 술주정, 기나긴 겨울을 보내야만 봄이 오는 거라는 수연의 넋두리,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자신의 울부짖음에 "넌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무뚝뚝하게 내뱉는 엄마의 한 마디를 가슴깊이 되새기며 말이다. 현우는 그제야 알게 된다.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얼어붙었던 마음에 사랑의 싹이 움트고 있음을. 희망은 아직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겨울을 보낸 현우에게 어느덧 꽃피는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화 속의 도계는 탄광촌이면서도 잿빛 가루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마을이다. 자잘한 상처들로 가슴 속 깊이 할퀸 현우는 도계에 오자마자 "잘 데는 있으세요?"라고 묻는 속 깊고 착한 아이를 만난다. 동네 사람들도 대부분 착하고 순박한 심성을 갖고 있다. 마치 현우를 위해 준비된 듯한 이 공간은 도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상적인 시골 이미지로 채색된 듯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곳의 실제 일상일 것 같은 탄광촌의 고단한 인생이나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의 고민은 살짝 스치고만 지나간다. 하지만 감독이 현우의 구부정한 뒷모습에 카메라를 집중하며 쌓아 올려가는 일상의 모습들은 잔잔하고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한계를 통해 희망과 가능성 찾아 드라마틱한 삶과는 거리가 먼 남자 현우. 그가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믿으면서 열심히 연습하는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주지도 못하고, 하다못해 단 한 번의 우승마저도 주지 못한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에게 "내가 너희한테 우승할 수 있다고 하면 그건 사기치는 거야"라고 말하며 김을 빼 버리는 현우는 어찌 보면 자격미달의 교사다. 하지만 아이들의 현실적 한계와 이후 발전 가능한 꿈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주는 선생의 길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꿈이 지나치면 곧 직면하게 될 차가운 현실에서의 고통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 반대로 현실의 한계만을 강조한다면 아이들의 가능성을 그 싹부터 밟아버리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 이상의 꿈을 품으려는 아이들에게 현우는 먼저 지극히 당연한 '현실'을 말한다. 그런데 실은 그게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인 것이다. 삶의 사소한 장애물들에 무수히 발이 걸려 넘어지고 눈물은 가슴 속으로 뚝뚝 떨어지는 그런 현실 말이다. 엄청나게 화려하고 잘난 삶을 꿈꾼 것도 아닌데 인생은 그렇게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냥 주저앉아 있으라는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현우는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를 품게 하지 않으면서 바로 그 지점, 그 현실로부터 시작한다. 희망과 가능성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오늘의 수고에 의해 내일의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패배감을 녹이는 인내와 용기 제대로 소리도 나지 않는 악기를 들고도 최선을 다해 연습에 열중하는 관악부 아이들. 어머니가 집을 나가서 할머니와 살고 있는 재일은 할머니에게 트럼펫을 들려주겠다며 어려운 곡을 연습하고, 용석이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닥쳐도 '케니 G'처럼 유명해지고 싶다며 의지를 다진다. 이렇게 가난한 형편에도 꿈을 품고 사는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들이 이윽고 현우의 마음속으로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광부인 용석의 아버지는 용석이 그토록 되고 싶어 하는 연주가의 꿈이 그들의 형편에선 감히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것을 알기에 용석의 손에서 트럼펫을 뺏는다. 그런 사정을 알게 된 현우는 관악부 학생들을 데리고 탄광촌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는 아버지들 앞에서 엘가의 'Pomp And Circumstances(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한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너무도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연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들은 시커먼 탄가루가 묻은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친다. 용석의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이 장면은 두고두고 가슴을 찡하게 한다. 영화 은 제목 그대로 꽃이 피어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정직한 영화이다. 아무리 겨울이 매서울지라도 결국 그것이 지나가면 봄이 온다는, 이를 악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그저 잠잠히 기다릴 수 있는 인내와 용기만 있다면 봄은 오고 꽃이 피어난다는 자연의 순리를 영화는 담담하게 말해준다. 또한 이 영화는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못했던 한 어른이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로 인해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기존의 교육현장을 다룬 영화들이 주로 열정을 가진 교사에 의해 학생들이 변모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준데 비해 이 영화는 순수한 학생들의 열정이 패배감에 젖어 있던 한 선생을 변화시킨다는 설정으로 신선한 자극과 감동을 준다. 실제로 이 영화는 퇴직 후 폐광촌으로 내려가 도계중학교 관악부를 지도한 어느 교사가 아이들과 지낸 1년을 기록한 TV 다큐멘터리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제작되었다는 전언이다.
신태식 | 본사 교육전문직 특강 교수 문제 ① 교사가 학생을 망친다는 말이 있다. 개성이 강하고 다양한 사고를 지닌 요즘 학생들은 교사의 지시나 학교교칙에 대해 대체로 순응적이지 않다. 이에 학생들과 교사 간에는 대립과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이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과 같이 체벌을 통해 학생을 지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해 교사와 학생 간에는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학생은 학교와 교사가 싫어서 등교를 거부하거나 탈선을 하게 된다. 얼마 전 D지역에서 지각한 학생에 대해 200대의 체벌을 행함으로써 매스컴에 보도된 사건 등이 이 같은 사례에 해당된다. 학생지도와 관련하여 교사의 체벌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논하고, 교사의 지시에 반항적인 학생들에 대한 효과적인 지도방안을 논술하시오. Ⅰ. 序論 우리 속담에 '귀여운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라는 말이 있다. 영국의 속담에도 '매를 아끼면 자식을 버린다'는 말이 있다. 이는 모두 자녀를 올바르게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채찍을 가해야 한다는 자녀교육관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체벌과 관련하여 최근에는 체벌 당한 학생의 학부모들이 체벌한 교사를 고소하는가 하면 폭행까지 하는 등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이에 교육적 견지에서 체벌은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사랑으로 학생을 지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Ⅱ. 本論 (1) 체벌 찬성론 비판 교육에 있어 체벌은 행동수정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 체벌을 긍정하는 견해는 분명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행동수정의 효과는 지속적이지 못하고 일시적이며 오히려 악영향만을 초래할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또한 현실적인 입장에서 살펴봤을 때 다인수 학급이라는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학생들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체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다수 아동에 대한 교사의 지도능력에 관한 문제로 결국 지도교사의 전문성과 자질에 직결된다. 교사가 교수·학습 및 지도 방법에 있어 탁월한 전문성을 갖고 있다면 체벌이 아닌 다른 인간적이며 교육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체벌 반대론 옹호 교육이란 전인적 인간의 육성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체벌을 사용하는 교육은 학생들의 정신적·정서적인 영역에 깊은 상처를 주게 되어 결국 인격의 성숙을 가져올 수 없게 하는 큰 결함과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쿠닌과 겜프도 벌을 많이 사용하는 학급에서는 벌이 오히려 비행을 증가시키며 문제를 더욱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또한 체벌은 인간 그 자체가 목적인 교육에서 학생들을 수단시 할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으로 한 학생을 본보기로 체벌하거나 수업 진행의 편리함을 위해서 체벌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결국 한 인격을 수단시하는 것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형성이라는 교육적 의의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체벌을 받고 자란 학생들은 부정적인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어 사물의 부정적인 면만을 바라보게 되며 주체성과 창의성, 적극성 등을 잃게 되어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없게 된다. (3) 체벌 대체 방안 그러므로 교육의 목적이 인간행동의 바람직한 변화에 있다면 그 방법은 가장 교육적인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교사는 우선, 학생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 교사는 학생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행동변화를 위해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학부모와의 상담이나 전임교사나 친구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반항적 행동을 보인 학생의 원인을 분석하여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끝으로 학생의 장점을 찾아 지속적으로 칭찬해 줌으로써 자아 정체성 확립과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해야 한다. Ⅲ. 結論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는 말과 같이 학생에 대한 교사의 사랑과 기대는 학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체벌을 통해 학생을 변화시키려는 교사도 있지만, 체벌은 정서적·정신적으로 성숙된 인격형성에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주게 되고 나아가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생에 대한 믿음과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체벌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학생의 인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교육적 목적으로 행해지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 위 문제의 논술유형은 옹호논박형과 대안제시형이 결합된 형태로서, 논점을 제시하면 체벌반대에 대한 나름대로의 논리를 옹호논박형 형식(상대방의 견해, 주장과 비판, 나의 주장과 논거제시)에 따라 서술한 후 효과적인 지도방안을 제시한다면 설득력 있는 답안이 될 것이다. 문제 ② 교사평가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Ⅰ. 序論 학생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교육부는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위해 2005년 5월부터 교원평가제를 시험적으로 운용하고, 이르면 2007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전교조 등 교직단체는 평가기준의 객관성 부족 등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교사들이 합의가 없는 교원평가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Ⅱ. 本論 교사평가제를 찬성하는 입장은 우선, 교사들 간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교육의 질 향상으로 공교육의 신뢰회복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평가기준이 명확하지 못할 때는 측정이 가능한 영역인 실적에 맞춰짐으로써 평가의 목적이 변질될 수 있고, 교사 간 과열 경쟁으로 상호불신을 유발할 수도 있다. 또 우수교사에 대한 사기부여를 통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 교사들의 사기저하는 물론 무력감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교사평가 결과의 악용으로 교사의 불안과 학교의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 교원평가의 목적이 교사의 전문성 신장에 있다면 다수 교사가 희망하는 수석교사제 도입이나 획기적인 보상체제를 도입하여 현장의 교사의 사기를 높여주어야 한다. 또 법정 교원 확보를 비롯한 교육여건 개선과 교내 자율장학 활성화를 통해 교사들이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밖에 윈윈전략 차원에서 수석교사제와 교사평가제의 동시 도입 등도 고려해 볼 만 한다. Ⅲ. 結論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권위를 부여받는 유교적 윤리는 새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가치관이다. 하지만 교사들이 합의가 전제된 평가기준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교사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은 학교현장의 불만과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는 만큼 합의된 평가기준 마련과 수석교사제 도입 등 획기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협력해야 할 것이다. 교사들 또한 권위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제자들과 학부모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위 문제의 논술유형은 옹호논박형인데, 논점에 따라 제시하면 옹호논박형 형식에 따라 서술하면 될 것이다. 주의할 점은 논술자가 반대 입장을 취할 때는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다. 건전한 대안이 없는 반대는 찬성자를 설득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 ③ 과외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학교에서의 과외해소 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 Ⅰ. 序論 과외는 학생들의 특기나 적성 계발은 물론 교과의 보충·심화학습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획일화된 공교육을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과외교습 금지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과외가 전면적으로 허용되고, 학벌주의에 편승한 학부모들의 교육열로 과외는 교육 불평등은 물론 양극화 심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입시제도의 변화에 따라 교육병리현상의 주범으로 자리 잡은 과외문제가 다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Ⅱ. 本論 1) 문제점 과외 문제는 우선, 실질적인 교육기회의 균등한 보장이 어렵다는 점이다. 농·산·어촌과 대도시, 계층 간 과외 접근의 격차로 인해 학생 간의 서열화를 심화시킨다. 또 시험위주의 전달식 교육으로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과 자율적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가로막음은 물론 지식기반사회에 필요로 하는 창의력이나 자기 주도적 학습력 신장이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어렵게 하고, 가정에는 과외비 부담을 가중시키며, 사회적으로는 계층 간의 위화감 조성이나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2) 과외의 발생원인 과외가 과열되는 원인은 지필시험 위주의 평가 및 대학선발제도, 경쟁력이 약한 학교수업의 질, 열악한 교육여건, 다양한 교육수요에 대한 학교의 대응력 부족 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을 졸업해야만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고 출세할 수 있다는 학벌사회의 만연에 있다. 3) 해결방안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학교에서는 첫째, 학교교육의 내실화화가 필요하다. 학교는 학생의 전인적 발달 위해 N세대에 맞는 즐겁고 재미있는 수업,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이나 특별활동 등을 활성화하여 학생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건전한 학교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방과 후 학교의 활성화를 통해 교과의 보충·심화는 물론 특기·적성 계발 프로그램의 지속적 운영으로 과외 수요를 학교가 수용해서 경쟁력 있고 신뢰 받는 학교로 거듭나야 한다. 셋째, 전문성 신장을 위한 교사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미나나 교과연구회 활동, 전문서적 탐독, 대학원 진학 등을 통해 교사의 자질함양을 위해 노력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사랑과 열정으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한다. 끝으로 e-learning의 교육적 활용이 필요하다. 유비쿼터스 시대를 맞아 EBS 강의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교육 콘텐츠(서울 : 꿀맛닷컴)를 활용하여 교육격차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 그밖에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와 지원(mentor)제도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Ⅲ. 結論 과외는 학교 이외의 사회구조에서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이긴 하나 학교와 교사의 노력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 과외는 학생은 물론 가정, 학교, 사회에 많은 문제를 유발하는 만큼 누구에게나 균등한 교육기회 제공을 위해서라도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 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교사는 전문가로서 사명감과 열정으로 학생을 지도하며, EBS 등 인터넷 등을 최대로 활용하게 함으로써 과외의 역기능을 해소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위 문제는 대안을 제시할 때 일반적인 대책이 아닌 학교에서의 대책이란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대책은 원인분석에서 간단히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대책을 제시해야 하겠지만, 본 문제의 경우 학교에서의 대책이므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해서 논해야 할 것이다.
선생님, 지금은 2006년 마지막을 보내는 이른 아침입니다. 선생님 모두가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를 하고 계시리란 생각을 하게 되네요. 2006년 한 해는 우리에게는 너무 바쁜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교육을 향해 뒤로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힘들어도 그러했습니다. 몸이 아파도 그러했습니다. 가정에 여러 문제가 있어도 그러했습니다. 한 해 동안 여러 선생님들의 교육활동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주신 선생님들을 일일이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서는 우리 모두가 새해에는 건강관리에 신경을 좀 많이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품습니다. 그리고 가정마다 문제가 풀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주신 선생님들이 정말 고맙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어제 기간제 선생님으로 수고하시다가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중도에 그만두신 선생님으로부터 대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동안 우울증세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해 왔는데 이제 다 나았다고 하면서 1월 중에 학교에 한번 들르겠다고 하더군요. 병이 다 나아 회복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목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가니 목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면서 쉬도록 권유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목에 통증이 오고 목소리를 낼 수 없어 수업을 제대로 못해도 학교에 와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면서 동행하는 모습을 보고서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갑상선에다 감기가 들어 병원에 갔지만 임신으로 인해 약을 먹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소홀히 않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감동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또 어떤 젊은 처녀 선생님은 3학년 담임으로 1년 내내 학생들과 밤낮으로 동행교육을 하며 최선을 다해 왔는데 무릎에 이상이 생겨 마지막 학생들의 대입상담을 못한 채 서울에 가서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선생님도 계십니다. 어제도 격려 겸 전화를 했더니 아직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하더군요. 또 이번에 명퇴신청을 하신 선생님께서는 갑상선에다가 허리통증, 가슴통증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시는 가운데서도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는 수업을 하시는가 하면 아침 일찍 출근하셔서 청소지도를 물론 손수 계단을 쓸고 하시는 감동을 남긴 선생님도 계십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허리가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밤낮으로 동행교육을 해 오시며 방학 중에서 보충수업이 없지만 학교에 나와 학생지도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엊그제 요즘 허리가 어떠냐고 물으니 겨울이 되니 상태가 더 좋지 않아진다고 하더군요. 학생들도 그렇습니다. 코피가 나서 지혈이 되지 않는데도 중간고사를 놓칠 수가 없어 보건실에서 응급조치를 한 상태에서 시험을 치는, 그야말로 투혼을 불태우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학생은 다리를 다쳐 기부스를 하고서도 목발을 짚고 학교에 나와 공부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또 한 원로선생님께서는 사모님께서 수술 후 휴유증으로 인해 뒷바라지를 해야 하고, 늦둥이는 코피가 한번 나면 병원에 가지 않고는 지혈이 되지 않아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고, 또 어머니, 아버지께서 질병으로 인해 보살펴야 하는 3중고에 시달려 왔지만 학교의 맡은 일에는 어느 누구 못지않은 성실함을 보여주신 선생님도 계십니다. 이렇게 한결같이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우리 모두는 나는 몸이 약하다, 나는 체력이 딸린다, 나는 힘이 없다, 나는 무슨 일도 제대로 못할 것 같다 하면서 비관하거나 체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는 회복할 수 있다, 나는 체력을 단련시킬 수 있다, 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늘 체력을 보강하도록 해야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편안하게 해야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음식을 잘 조절해야죠. 건강관리를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투자해야죠. 선생님도, 학생들도, 딸린 식구들도 모두 건강한 한 해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병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낙심하지 말고 자기가 안고 있는 병을 잘 다스려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건강하다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건강하다고 자신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건강하다고 무절제해서도 안 됩니다. 건강할수록 절제해야 합니다. 건강할수도록 자신을 더욱 관리해야 합니다. 건강할수록 건강을 지녀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딸린 식구들을 잘 돌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은 건강관리입니다.
오늘은 방학 넷째 날입니다. 3학년 선생님 중 한 분은 정시원서도 끝나 편히 쉴 수 있는 방학이지만 1,2학년 보충수업을 돕기 위해 학교에 나오십니다. 그것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가장 일찍 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방학이라 부산에서 출퇴근하시는데도 말입니다. 몇 시에 집에서 나오느냐고 물으니 아침 6시면 나온다고 하네요. 이와 같은 선생님이 계시기에 학교는 더욱 빛이 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이제 방학이 되어 조금 마음의 여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가져보지 못한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교육공무원승진규정 개정안입니다. 교육부에서 입법예고한 개정안을 보았습니다. 개정이유, 개정내용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선생님의 인사개정안에 대한 의견도 읽어보았습니다. 교육공무원승진규정 개정안을 보고서 교육부가 현재의 승진안이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여론수렴을 나름대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서 나름대로 문제점에 대한 대책으로 개정안을 만들어 놓은 흔적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의 경력, 근평, 연수점수, 가산점으로 구성되는 승진규정 골격은 지금과 다름없이 유지한다는 것은 아주 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역별 가중치를 바꾸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승진규정 개정안이 무엇보다 공정한 기회가 밑바탕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개정이유를 읽어보니 현행 연공서열중심 승진 구조를 능력중심으로 개선하기 위해 경력평정 반영기간 및 비중을 축소한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의 경력에 대한 승진안이 어떻게 바뀌어왔습니까? 20년에서 25년으로 바뀌었다가 또 30년으로 연장이 되었다가 지금은 25년으로 앞으로는 20년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25년, 30년으로 경력을 늘였을 때에는 뭐라 했습니까? 그 때도 능력중심으로 개선하되 경력자를 우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능력중심으로 개선을 한다고 하면서 경력자를 홀대하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을 보면서 50대 중반을 달리는 저로서도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것도 경과규정을 둔 것도 아니고 1년씩, 1년씩 줄여가는 연차적도 아닙니다. 교육은 경륜인데 경력자를 홀대하다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교육의 질서를 세워가는 분도 연장자이고, 학교의 갈등을 잠재우는 분도 50, 60대이고, 20대에서 60대까지 분포되어 있는 학교에서 그나마 학교를 안정되게 이끌어가는 데 주역을 하시는 분이 50, 60대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선생님들을 홀대하는 승진개정안은 학교를 세우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면서 승진규정은 왜 이렇게 자주 바뀝니까? 신중을 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안 그래도 위, 아래도 모르는 학교현실인데 그렇게 하면 30대, 40대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하겠습니까? 선배선생님으로 보이겠습니까?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우습게보지 않겠습니까? 50, 60대를 가볍게 제쳐야 자기들이 살 길이라고 할 것 아닙니까? 50,60대 선생님들을 뒷방 늙은이 취급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어서야 어떻게 학생들에게 사람됨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겠습니까? 학교를 어디 대기업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젊고 유능한 사람 과장, 부장 않히고 얼마 안 있어 퇴출시키고. 이런 방식을 학교에까지 적용하려는 발상은 아닌지? 다음은 근무성적 평정방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근무성적 평정방식에 다면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평정점수 상향 조정, 반영기간 확대 및 평정결과의 공개 등을 통해 평정의 객관성, 신뢰성,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많은 무리가 따른다고 봅니다.현실적으로 볼 때 많은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평정점수를 100점으로 높여 놓고, 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해 놓으면 선생님들은 학교생활에 재미를 잃게 됩니다. 언제나 ‘근평’이라는 족쇄에 채여 항상 긴장 속에 학교생활을 할 것 아닙니까? 교장, 교감 눈치보고, 동료교사 눈치보고 해서야 제대로 근무가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자진함이 없어집니다. 소신이 없어집니다. 비굴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면 안 됩니다. 10년은 말도 안 됩니다. 지금 2년을 해도 승진을 앞두고 있는 선생님들끼리 서로 피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근평으로 인해 돌아가신 분도 있지 않습니까? 10년 전 10년 선배의 한 선생님께서 근평문제로 교장실에서 나온 이후로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그분께서 살아계실 때 저에게 하소연한 말씀이 지금도 쟁쟁합니다. ‘수’면 다같은 ‘수’를 주어야지 ‘1수, 2수’하면서 점수차를 주어 사람을 힘들게 만드냐고 하시더군요. 근평으로 인해 승진의 꿈을 꾸고 계시는 선생님들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들에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5년 정도의 근평 가운데 2년 내지 3년의 근평을 본인이 선택해서 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수의 폭도 줄여야 합니다. 1수와 2수의 간격이 0.5점은 너무 큽니다. 소수셋째자리에서 결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렇게 큰 차이를 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으뜸과 버금이 정말 구분이 안 되는 데 점수 폭을 크게 한다든지 근평을 공개한다든지 하는 것은 교장, 교감을 죽이는 길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쉽게 수긍하겠습니까? 싸움만 부추기고 갈등만 초래할 것 아닙니까? 연수성적 높이기를 위한 지나친 점수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연수성적 평정방식을 변경하고 연구실적 요소별 점수를 상향조정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연수성적이 승진에 필수조항이고 실제 선생님들의 현장연구를 중심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연수성적은 향상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연구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활발해집니다. 그리고 자격연수 한 번으로 승진의 영향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들마다 자격연수를 받는 년도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고 대상도 다르며 가르치는 교수도 다릅니다. 그런데 공정성이 떨어지는 자격연수 그것 하나 가지고 승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처음부터 승진의 꿈을 꾸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포기할 수는 없고 상담자격연수라도 받으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까? 그런 부작용을 없애줘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격연수 성적도 일반연수와 똑같은 수준으로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차라리 자격연수는 연도에 관계없이, 일반연수는 10년 이내에 받은 것 중 둘이나 셋을 반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직무와 관련된 연수는 더욱 강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연수를 많이 받는 선생님들에게 학점을 인정해주는 폭을 넓혀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선생님들께서 지속적인 연찬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연구점수도 그렇습니다. 연구점수를 딴다고 수업에 지장이 있고 경쟁이 치열해진다고 해서 연구점수 3점은 그대로 둔 채 연구실적 요소별 점수를 높인 것은 연구점수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박사학위 받으면 3점 만점도 문제가 많습니다. 선생님들이 학교에 연구하는 것은 학문 연구가 아닙니다. 학생들의 실제 수업에 도움이 되는 현장연구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의 교수학습방법 문제. 교수학습자료개발문제, 학생들의 생활지도문제 등 현장에서 필요한 문제들을 고심하고 그것을 붙잡고 연구해서 사례중심으로 발표하고 수업에 도움이 되는 자료 만들고 하는 실제적인 연구가 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것을 한두 번 연구하고 끝내고 하면 연구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박사학위를 부추기는 듯한 점수 상향은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박사학위를 3점으로 인정해 주려면 적어도 연구점수 상한선을 3점에서 10점으로 높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형식적인 연구보다 실제적으로 교육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각종 연구대회의 방향을 바꿔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봅니다. 가산점 항목 및 점수 기준을 명부작성권자가 시․도 실정에 따라 정하도록 하였더군요. 그것도 가산점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 동안 벽지점수와 연구학교점수, 농어촌 점수 등이 사실상 승진을 좌우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심지어 벽지 교장, 벽지 교감으로 부르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벽지점수, 연구학교점수, 농어촌점수 등은 모든 선생님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볼 때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승진하고 싶은 선생님 치고 누가 벽지 가고 싶지 않은 분이 있습니까? 연구학교에서 근무하고 싶지 않은 선생님이 어디 있으며 농어촌에 가고 싶지 않은 선생님이 어디 있습니까? 거기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 이와 같이 기회가 주어진 자만이 혜택을 입는 그런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느 선생님이든 누구든지 승진의 꿈을 가지신 분은 똑같은 기회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산점을 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연구학교를 해서 가산점을 보태고 싶어도 울산의 경우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의 과반수의 동의를 얻고 학운위를 심의를 거쳐야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동료선생님을 잘못 만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뜻있는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교육에 관한 어떤 연구들을 하게 해서 그에 대한 평가로 점수를 부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역가산점은 사실상 더 확대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역마다 특색이 있지 않습니까? 16개 시도마다 특색 있게 부가점을 인정해 주되 그 점수 폭은 더 넓히는 방향으로 나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야 16개 시도마다 지역가산점의 활용으로 교육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번에 입법 예고된 승진개정안을 실적 위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좀더 신중을 기해서 여러 의견들을 겸허히 수용해 개악이 아니라 개선이 되었으면 합니다. 100%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수긍을 할 수 있는 승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일선 학교의 논술교육을 돕기 위해 고등학교 교사들과 대학 입학처 관계자들이 함께 만든 논술 안내서가 나왔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권영건 안동대 총장)는 29일 고교-대학 입학관계자협의회에서 만든 논술교재인 '논술 길라잡이'를 발간, 무료로 배포한다고 밝혔다. 고교-대학 입학관계자협의회는 대입전형 등 교육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고교 교사와 대학 입학처장들이 모여 지난달 출범시킨 단체다. 이번 책자는 일선 학교에서 논술을 지도하는데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 대학들로부터 직접 논술관련 자료를 수집해 펴냈다. 통합교과형 논술의 개념이해, 논술문제 분석, 글쓰기 방법, 첨삭지도 방법, 2008 대입 논술반영 현황 등이 정리돼 있다. 특히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12개 주요 대학의 기출문제 및 예시문항도 수록돼 있다. 대교협 대학진학정보센터 홈페이지(http://univ.kcue.or.kr)에 들어가면 전문을 볼 수 있으며 교사, 학부모, 수험생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내년 초에는 전국의 각 고등학교에도 배포될 예정이다. 고교-대학 입학관계자협의회는 논술교재 발간 외에 논술관련 웹진 개발, 논술 설명회 개최 등 논술관련 협력사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는 청소년과 학생을 대상으로 '행복한 디자인, 미래의 교육'이라는 주제로 한국의 미래교육을 설계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공모한다고 29일 밝혔다. 공모내용은 ▲미래교육에 대한 비전과 실현 방법 ▲20년 후 새로 생겨날 중대한 교육문제와 대처 방안 ▲입시위주 교육 등과 같은 교육문제들에 대한 20년 후 전망과 해결방법 ▲미래사회에서 학생과 교사, 학교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에 대한 상상 등이다. 공모기간은 30일부터 내년 2월15일까지이며 청소년부와 대학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청소년부에는 만9세 이상 23세 이하 청소년이, 대학부에는 고등교육기관에 재학중인 학생(복학예정자, 대학원생 포함)이 응모할 수 있다. 최우수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만원이 지급된다. 자세한 내용은 교육혁신위 인터넷 홈페이지(www.cein.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립학교법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개신교계 종교인과 여야 정치인들이 자리를 함께 하며 사학법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양측은 현저한 괴리만 확인한 채 2시간여 만에 만남을 끝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이하 목정평)는 28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개신교 목회자와 여야 정치인이 참여한 '사학법 해결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사학법 재개정을 주장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육부 총무 김치성 목사와 그에 반대하는 사립학교개혁국민운동본부(사학국본) 대표 박경량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 권오성 목사를 비롯해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인 열린우리당 유기홍, 그리고 한나라당 임해규 의원 등이 참석했다. 첫 발제자인 김치성 목사는 "현행 사학법의 '개방형 이사제' 조항은 교육부가 자의적으로 임기가 정해지지 않은 이사를 파송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비민주적 법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부는 개방형 이사제가 기업들의 사외이사제도와 비슷한 것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개방형 이사를 선임하는 주체가 학교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외이사제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면서 사학법 재개정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박경량 목사는 "많은 사학이 엄청난 액수의 학생 등록금, 정부 보조금을 가로채 온 것이 사실"이라면서 "단지 선교라는 미명 하에 사학의 비리를 방치해 둘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박 목사는 사학법이 선교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종교의 자유는 신앙을 가질 자유와 갖지 않을 자유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면서 "개신교계가 사학법 재개정을 주장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찬자로 참석한 유기홍 의원은 "사학의 비리를 감사직원의 수를 늘리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으며 교육계가 처벌을 능사로 삼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사학법은 사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사학의 비리를 막고자 마련한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또 "개방형 이사는 명망있는 사람들 가운데 선임될 것이며 학교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일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 "개정된 지 6개월밖에 안된 법률을 조금만 더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반면, 임해규 의원은 "현행 사학법은 평생 사학에 몸바쳐온 사람들의 사기를 꺾는 법안"이라면서 김치성 목사 의견에 동감을 표했다. 임 의원은 "임시이사들도 옛 고위 공무원들이나 정치계에 있던 사람들이 선임될 가능성이 많다"면서 "사학의 불법 가능성을 미리 상정하고 법적 장치를 두는 것은 법의 과잉금지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KNCC 권오성 총무는 "개방형 이사제보다는 공인회계법인 등을 통해 사학의 재정 상황을 매년 관리ㆍ감시하는 방안도 있다"고 했으나, 양측의 첨예한 대립 속에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한편, 토론회가 끝날 무렵 객석에서는 "말도 안 되는 법률", "머리를 깎는 것이 목회자냐"는 등의 고성이 오가며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사람에게 있어 하나의 대상을 보는 관점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진리라고 믿어왔던 지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거울에 비친 유럽’에서 필자는 자신의 속한 세계를 보는 관점에 대해서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그 성찰은 흔히 ‘우월하다’ 고 인식되는 세계에 대해서,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이 던지는 질문이기에 더욱 값지고 의미가 있는 듯하다.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인류는 거울을 통해서 세계를 보아왔음을 말하고 있다. ‘거울’은 자아와 타인과의 인식이며 구별이며, 왜곡이다. 자신과 다른 세계를 접할 때, 그 ‘차이’는 곧 ‘차별’로 바뀌며 스스로의 우월함을 입증하기 위해 차이를 열등함으로 왜곡하고 만다. 그것이 현 유럽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기간이 되었으며 필자는 그러한 시각에서 벗어나 진실로 세계를 보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책은 유럽 문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근간이 되는 몇 가지 논제를 다른 부분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야만, 기독교, 봉건제, 악마, 촌뜨기, 궁정, 미개와 진보, 그리고 대중이다. 그것들은 유럽이라는 이름 하에 숨겨진 사실들을 좀더 진실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그 왜곡된 생각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책은 분명 유럽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비유럽인인 우리들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유럽의 거울로서 보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짧게 논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있는 그곳을 말해주고 또 우리가 나아갈 곳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 유럽은 무엇을 연상시키는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럽은 자유와 평등, 문명, 그리고 높은 삶의 수준 등의 이미지로 다가올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인으로서 우리들은 유럽을 닮기 위해서 노력해왔고, 그 것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우리는 그들과 같은 사회체계를 가지고 있고, 그들과 같은 이념을 중요시하며, 그들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그들이 보기에 어떤 모습인가. 유럽인들이 他로써 우리들 我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할 것인가. 그 대답은 ‘개발도상국’이라든가, ‘빠르게 문명화한 나라’ 정도로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모든 대답에 앞서서 우리를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마 작고, 노란 피부를 가진 아시아인일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인식하는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느끼는 스스로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 때문이다. 황인종이라는 이미지는 우리가 그들을 백인종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전자가 비문명화와 미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진보와 자유나 평등과 같은 수준 높은 가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생각이 분명 서구인들에게서 유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생각에 철저히 세뇌되어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점차 마치 유럽인들처럼 큰 키와 쌍꺼풀 있는 눈, 뚜렷한 코 등을 선호하고 있으며 그것은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외관상의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면, 더욱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생각의 방식이다. 아시아는 전제주의 국가의 잔재가 남아있는 곳이고, 유럽은 일찍부터 자유주의가 발달한 우수한 문명이라는 생각은 우리 모두에게 급속히 퍼져 나갔으며 그 결과 한 세기만에 우리 삶의 양식을 유럽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유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자신들이 이루어놓은 길을 따라오기 위해 애쓰는 불쌍한, 아니면 기특한 몸부림으로 보일까. 분명한 것은 유럽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은 하나의 선택일 뿐이며,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 그 길만이 옳은 것은 아니며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왔던 길도 그만큼의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유럽인들이 만들어놓은 길은, 그들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이니만큼, 우리에게 대해서는 철저한 타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 타자의식은 그들 스스로를 더 우월한 존재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가져다주었으며 그들은 그러한 의도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그 길이 그들의 의도 하에 만들어진 것임을 망각하고 그길을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 역시 유럽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완전히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우리가 생각하는 열등 민족에게 대하는 생각을 돌이켜 본다면 유럽인들이 우리에게 대하는 그것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것은 일종의 연민이며, 비웃음이며, 자만감이다. 우리가 이제껏 달려온 이 길은 우리가 선택한 길이기 보다는 선택을 강요당한 길이다. 우리가 한 사고라기보다는 강요당한 사고이다. 그 사고를 옳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는 유럽이라는 거울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은 갖지 못한 채 그들의 거울을 통해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며,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들처럼 되는 것이 발전의 길이라는 잘못된 목표를 설정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며 나아가서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우리 스스로의 거울 ‘우리 자신의 거울’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것은 우리가 설정한 기준이며 길이다. 이제 유럽적인, 서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의 기준으로 세계와 우리를 바라보는 일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그 시각을 정립하는 데 앞서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我와 他의 의식을 명확하게 정립하는 일이라 본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방법으로 말하자면, 일그러진 거울 대신에 곧은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본다거나, 아니면 편협한 거울 대신 창으로 건너편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 개념에 대해서 재정립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인종, 문화, 그리고 차이이다. 인종은 인류를 구분하는 큰 틀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잣대는 분명 일부의 시각을 반영한 것일 뿐 전 인류의 의지를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인류를 구분하는 기준은 어떠한 타당한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마도 생리학적인 근거가 가장 타당성을 갖는 것이겠지만, 그 역시 이렇다할 보편적 동의를 얻지는 못한다. 이른바 ‘종’이란, 이 책에 따르자면, 서로 교미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는 집단을 일컫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인종이라는 의미는 다분히 편파적이며 의도적인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 ‘인종’이라는 구분 안에는 외관상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근거 없는 성정의 차이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종을 구분하고자 하는 시도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임의로 결론짓는 위험한 발상이다. 하물며 누구의 동의도 없이 유럽인들이 스스로 만들어서 세계에 강압적으로 전파시킨 그 개념은 결코 타당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인종이 가시적인 차이를 언급한 것이라면, 문화는 내면적인 차이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을 들지 않더라도 문화는 인종을 넘어서는 비교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화는 환경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비교 혹 대조는 상당히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가치로 존재해야 할 문화는, 오늘날 상대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결과 우열과 열등 문화의 구분이 생겨나고 나아가 문화의 몰락마저 조장되고 있다. 인종과 문화. 현 세계에서 가장 큰 문제이자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이 문제는 ‘차이’라는 한 마디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차이는 인류를 사분오열 찢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인류가 서로 몰락의 길로 가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차이는 사라져야 하는가. 인류는 하나의 잣대 하에 일반화됨이 옳은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바뀌어야 할 것은 이러한 차이가 아니라 차이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차이는 우열과 열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경멸이나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다.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차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질서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질서와 똑같은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거울로서 나 스스로만을 바라보고 남과 비교해가기 보다는, 세계를 향해 난 창으로 밖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와 남을 비교하는 것은 결코 진리를 찾을 수 없지만, 남 속의 나로써 나를 판단하는 것은 진리로 한걸음 나아가는 일이다. ‘거울에 비친 유럽’은 세계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야만은 ‘타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었고, 이단과 악마는 그러한 인식이 증폭된 결과였다. 진보와 미개라는 개념은 서구의 산물이지 진리는 아니며, 촌뜨기 또한 타자의식의 결과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쉬운 책은 아니다. 이 책 안에는 수많은 학자들의 지식이 들어있으며, 유럽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반문과 자기 반성이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비유럽인인 우리에게 여러 교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비단 유럽인에게 국한되지 않은 전인류적인 과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타자에 대한 관용이며 열린 시각이며,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차이가 곧 위협이나, 스스로의 열등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물론 우월함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인종과 문화는 한 생활 방식일 뿐이지, 차별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유럽적인 사고를 받아들였고, 지금 그 사고는 우리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정체성 없는 수용이란 곧 스스로의 망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유럽적인 잣대에 빠져들어 우리의 정체를 잊어버리고 스스로 그들과 같은 외양과 사상을 자지려는 무의미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울은 나를 비춰주는 도구이고 동시에 남과 비교하게 하는 도구이다.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보며 바꿔 나가기 이전에, 다른 사람들을 두루 볼 수 있는 열린 시야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거울에 비친 유럽’은 유럽인의 진지한 자기 성찰이며 반성이다. 이제 비유럽인으로서 우리들도 올바른 성찰을 할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