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처 퍼스트’, 교육의 출발점은 교사
8월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만난 이일권 서울양원숲초등학교 교장이 인터뷰 내내 가장 자주 꺼낸 말은 ‘티처 퍼스트(Teacher First)’였다. 학생을 위한 교육도, 학교를 위한 개혁도 결국 교사가 버텨낼 수 있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수업과 생활지도·행정업무·악성민원 대응까지 떠안은 현장 교사들이 한계에 내몰린 현실에서, 교육의 기본을 다시 세우려면 무엇보다 교사를 중심에 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36년 6개월 동안 교사·교감·교장으로 학교 현장을 지켜온 그는 긴 교직생활을 돌아보며 무엇보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년을 앞둔 심경을 묻자,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젊은 날 방황과 고비 속에서도 자신을 붙들어준 것은 아이들의 맑은 눈빛과 동료·선후배 교사들이었다고 했다.

‘본립도생’과 ‘~답게의 교육’이 말하는 기본
그가 교직생활을 관통하는 말로 꼽은 것은 논어 학이편의 ‘본립도생(本立道生)’이다. 기본이 바로 서야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 교장이 말하는 교육의 기본은 거창한 제도나 구호가 아니다. 그는 이를 ‘~답게의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교사는 교사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보호자는 보호자답게 각자의 본분을 다할 때 학교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사는 말과 행동에서 품격을 지녀야 하고, 학생은 배우는 사람으로서 스승을 공경해야 하며, 보호자는 내 자녀만 앞세우는 시각을 넘어 학교와 교사를 신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태도를 배우지 못한 학생이 학교에서 교사를 존중하기는 어렵고, 보호자가 먼저 스승을 신뢰하지 않으면 학교교육도 바로 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학교가 겪는 많은 어려움도 결국 이런 기본 질서와 관계의 흔들림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봤다.
“교사가 무너지면 결국 교실이 무너진다”
그래서 그가 지금 학교 현장에서 가장 시급하다고 보는 것은 ‘교사 존중’의 회복이다. 그는 교육의 최전선에서 학생들과 부딪히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현장 교사들이 누구보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업만으로도 벅찬데 행정업무와 각종 민원까지 떠안으면서 심리적·정서적 압박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정책이든 학교 운영이든 판단의 기준은 ‘교사가 먼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실에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사랑으로 바라보며 배움과 성장을 이끄는 교사들에게 사회가 더 큰 존경을 보내야 한다”며 “교사가 무너지면 결국 교실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교사의 웰빙 역시 교육의 핵심 조건으로 꼽았다.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보장돼야 하고, 그 위에서 자율성과 책무성이 함께 살아나야 하며, 나아가 협력적 전문성이 학교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교사를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 교장
특히 그는 교장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교장은 교사들의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돼야 합니다.” 외부의 부당한 압력과 악성민원으로부터 교사를 지켜내고, 안심하고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방패막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이초 사건처럼 더는 교사 개인이 홀로 고통을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교육활동의 어려움을 개인의 인내와 희생에 맡겨선 안 되며, 교원학습공동체를 통한 전문성 신장과 관리자·교육청의 실질적 지원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그는 서이초 사건 당시 교장 신분으로 8차례 집회에 참석했다.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 문제도 오랜 관심사다. 그는 「헌법」이 말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정당 정치에 대한 중립이지, 교원의 기본권 전체를 과도하게 억제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교육 본질에 반하는 정치 행위는 배제해야 하지만, 교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는 시대 변화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학교 현안의 해법은 ‘교육의 논리’에서
최근 학교가 맞닥뜨린 여러 현안에 대해서도 그는 분명한 입장을 보였다. 현장체험학습·늘봄학교·학생안전·악성민원·교권보호 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지만, 해법의 출발점은 언제나 교육의 논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아동학대처벌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사들이 훈육 과정에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해 수사기관에 불려가거나 범죄자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놓여 있는 현실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했다.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축소가 거론되는 데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학생 수가 줄었다고 해서 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학생 한 명 한 명을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시대인 만큼, 기초학력 보장과 AI·디지털 교육, 특수교육, 이주배경 학생 지원 등 맞춤형 교육을 위해 더 정교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직경력 36년 6개월, 정년 이후에도 이어질 ‘교사 먼저’의 교육
그의 출발은 1990년 3월 서울선곡초등학교였다. 육군사관학교 입학 뒤 부상으로 퇴교한 그는 다시 입시를 준비해 서울교대에 진학했고, 이후 고려대에서 교육학 박사를 취득했다. 고려대·한국외대·가톨릭대 등에서 강의를 이어가며 현장성과 이론을 함께 쌓았다. 아내를 비롯해 아들·딸·며느리까지 모두 교사인 교육가족이기도 하다.
교직 일선에서는 물러나지만, 그의 교육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그는 지난 3월 ‘온고지신 교육연구소’를 설립·등록했다. 앞으로도 학교장의 지속가능한 리더십, 교육계 현안에 대한 숙의,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 교사를 먼저 지지하는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집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꺼낸 이 문장은 퇴장이 아니라 예고처럼 들렸다. 정년 이후에도 그가 붙들고 있는 교육의 방향은 분명했다. 교육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일, 그리고 그 시작을 교사에게서 찾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