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사회에서 인재양성을 이야기할 때 ‘AI’라는 단어 없이는 곤란하다. 정부 부처는 AI 인재 수만 명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대학은 앞다투어 AI 학과와 전공 트랙을 신설한다. 기업은 AI 역량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생존이 어렵다고 말하고, 언론은 ‘AI 인재 전쟁’이라는 표현을 되풀이한다. 이러한 흐름만 놓고 보면, 한국이 직면한 인재 문제는 결국 AI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이 길러내느냐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 AI 인재양성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AI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인재양성 전략은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인재 문제의 본질을 가릴 위험이 있다. 현재의 위기는 특정 기술 인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역량이 성장하고 축적되며 활용되는 사회적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위기이기 때문이다.
AI 중심 인재양성의 한계
AI 중심 인재양성의 한계는 기술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기술은 본질적으로 빠르게 변화한다. 오늘의 핵심 기술은 가까운 미래에 자동화되거나 대체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코딩 인력의 양성만이 살길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코딩 업무의 상당 부분이 AI로 자동화되며 역할이 재편되고 있다. 특정 기술에 대한 숙련을 목표로 인재를 대규모 양성하는 전략은, 기술 변화의 속도를 조금만 잘못 예측해도 미래가 오기 전에 이미 효용이 급격히 떨어지는 인재를 양산할 위험을 안고 있다.
반면 인간의 핵심역량은 다르다. 문제를 정의하고, 복잡한 맥락을 이해하며, 타인과 협력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은 기술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AI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판단·책임·윤리·소통이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영역이 남는다. 하지만 현재의 인재양성 담론은 이러한 인간 역량의 중요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인재정책의 구조적 문제는 AI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인재를 키우는 정책은 교육부·고용노동부·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으며, 이를 종합하고 조정할 국가 차원의 인재 전략 기능이 사실상 부재했다. 교육부를 부총리로 격상한 것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끝났다.
교육부가 예산 배분권 등 조정을 위한 힘을 갖지 못했고, 여전히 전통적인 교육 이슈에 매몰되어 조정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며, 부처들의 비협조도 문제였다. 각 부처는 나름의 목표와 논리로 인재양성 사업을 설계하지만, 이들이 하나의 생애 경로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 결과 인재정책은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이 아니라 부처별 단기 사업의 집합으로 작동해 왔다.
AI 중심 인재양성이 특히 취약한 이유는 한국 사회의 학위 중심 구조와 결합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한국에서 학위는 여전히 강력한 사회적 신호다. 이 구조 속에서 학습은 청년기에 집중되고, 성인기 이후의 학습은 부차적인 선택으로 밀려난다. AI 관련 학위나 수료증 역시 이 신호체계 안에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기술 변화의 속도와 학위체계의 속도가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년에 걸쳐 취득한 학위나 자격이 짧은 시간 안에 낡아질 수 있는 상황에서 학위 중심 인재양성은 오히려 개인의 위험을 키울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인재 미스매치로 이어진다. 전공과 직무가 일치하지 않는 비율은 49%로 OECD 평균 수준(31%)보다 크게 높고, 숙련 수준이 직무 요구와 어긋나는 경우도 흔하다. 한쪽에서는 청년들이 ‘갈 곳이 없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업이 ‘쓸 사람이 없다’고 호소한다. AI 인재양성 역시 이러한 미스매치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중요한 점은 이 문제가 인재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역량을 쌓아도, 노동시장이 이를 제대로 읽고 보상하지 않는다면 학습은 지속될 수 없다. 인재정책이 노동시장정책과 분리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많은 AI 인재를 길러도 구조적 미스매치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 인재양성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이제 인재양성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첫째, 인재양성의 중심을 기술이 아니라 역량으로 옮겨야 한다.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창의성(Creativity), 소통(Communication), 협업력(Collaboration)으로 대표되는 4C 핵심역량은 AI시대에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이는 특정 전공이나 특정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직업과 모든 생애 단계에서 요구되는 기초능력이다.
AI시대에 4C가 더 중요해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계산하고 패턴을 예측하지만,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정의하고 복잡한 인간관계를 조율하며 창의적 해법을 제시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 고유영역인 것이다. 핵심은 ‘AI 교육을 줄이자’가 아니라, ‘AI 교육이 4C 역량과 결합하도록 설계하자’는 것이다.
둘째, 학습기회를 생애 전반에 걸쳐 재배치해야 한다. 학습을 청년기에 몰아넣는 구조에서 벗어나, 전환기·중장년기·고령기에도 학습과 이동이 가능해야 한다. 이는 개인의 자기계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위험을 분산하는 정책 문제다. 인생 초반 20여 년에 학습이 과도하게 집중되고, 이후의 삶에서는 배움이 개인의 책임으로 급격히 방치된 구조, 한 번의 진로 선택과 한 시기의 성취가 평생을 규정하도록 만드는 구조는 기술 변화가 느렸던 시대에는 큰 무리 없이 작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직무와 산업이 빠르게 재편되는 오늘날에는 이러한 구조가 오히려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큰 위험이 된다. 생애주기에 걸친 학습기회의 재배치는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사회 전체의 위험 관리 전략이다. 언제든 다시 배우고 전환할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될 때, 개인은 변화에 도전할 수 있고 사회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셋째, 인재정책은 노동시장정책과 정합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직무 중심 채용, 역량 기반 보상, 이동 가능한 경력 경로가 마련되지 않는 한, 어떤 인재양성도 지속될 수 없다. AI 인재양성 역시 이러한 구조적 토대 위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아무리 AI 교육과 핵심역량 교육을 강조해도, 채용·보상·승진 기준이 여전히 학벌·연차·출신기관에 머물러 있다면 인재양성의 방향은 현실에서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무엇이 인정받느냐’를 보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의지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어떤 기준에 보상을 주는지에 따라 학습과 경력이 결정되는 구조의 문제다. 그래서 인재양성 정책은 교육현장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넘어서, 채용·평가·보상 기준 자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끝으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AI 중심 인재양성 전략이 사회 내부의 격차를 확대할 가능성이다. AI와 첨단 기술 학습은 높은 사전 학습 능력, 정보 접근성, 경제적 여건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AI 인재양성이 확대될수록, 이미 교육 자본과 문화 자본을 보유한 집단이 그 혜택을 선점하고, 그렇지 못한 다수는 더욱 주변부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 인재정책이 의도와 달리 사회적 양극화를 강화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의 인재양성 전략은 시장과 개인의 선택에만 맡겨질 수 없다. 특히 전환기·중장년기·저숙련 노동자에게는 새로운 기술과 역량을 다시 축적할 수 있는 공공 안전망으로서의 학습기회가 필요하다. AI시대의 인재정책은 경쟁에서 앞서는 소수를 선별하는 정책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도록 다수를 지탱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AI 인재는 시작일 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사람의 역량이 생애 전반에 걸쳐 성장하고 이동하며 활용될 수 있도록 인재의 양성과 활용을 하나의 국가적 시스템으로 설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