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 식품업체가 유명 연예인을 섭외해 독특한 시선으로 제작한 즉석식품 광고가 눈길을 끈다. 히어로로 등장한 워킹맘이 갑작스레 괴물 퇴치 명령을 받자, 유치원생 아이를 급히 맡길 곳이 없어 아이와 함께 출동한다. 괴물을 본 아이는 신이 나고, 괴물은 아이가 위험하니 “다음 주 목요일에 다시 싸우자”고 말하며 돌아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괴물 또한 워킹맘. 잠시 후 괴물은 자신의 아이와 함께 나타나 히어로 여성에게 즉석식품을 건네며 “워킹맘끼리 돕고 사는 것 아니겠냐”며 돌아간다. 웃음을 자아내는 광고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가 담겨있다. 바로 초등 저학년 아이들의 방과후 돌봄 문제다.
정규수업 이후 돌봄 공백은 맞벌이 가정에게 생존의 문제로 여겨질 만큼 심각한 고민거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교육청·지자체는 오랜 시간 다양한 돌봄정책을 추진해 왔다. 학교는 교육 프로그램 중심의 방과후학교1와 돌봄 서비스 중심의 초등돌봄교실2, 그리고 이 둘을 통합한 늘봄학교3를 운영 중이다. 지역사회에서도 다함께돌봄센터·지역아동센터·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마을학교 등 각종 기관이 교육·돌봄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돌봄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기관 간 연계 부족, 산발적 운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존재한다.
지자체와 함께 만드는 온동네 초등돌봄, 핵심은 ‘연결’
그동안 학교와 지자체는 각자의 방식으로 방과후 교육·돌봄 서비스를 꾸준히 확장해 왔다. ‘교육·돌봄의 주체가 학교인가, 아니면 지자체인가’에 대한 논란, 과대·과밀 지역의 돌봄 공백 완전 해소, 프로그램의 질 관리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긴 하지만 학교와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교육·돌봄 서비스는 학부모의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여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발전해 왔다.
이제 새 정부에서 추진하는 온동네 초등돌봄 정책의 성패는 ‘누가, 더 많이 제공하는가?’가 아니라 ‘학교와 지자체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함께 제공하는가?’에 달려 있다. 학교와 지자체가 연결되어 지역기관·대학 등의 우수한 교육자원(공간·프로그램·인력 등)을 함께 활용할 때 돌봄 초과 수요를 해소하고 프로그램 질도 높일 수 있다. 이를 통해 모든 아이가 안전하고 따뜻한 돌봄 속에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연결할까?
필자는 교육부의 늘봄학교 시범운영 단계부터 기획에 참여했으며, 대구광역시교육청 파견근무를 통해 지자체 협력형 늘봄학교 사업을 실제로 추진할 기회를 얻었다. 대구는 교육열이 높고 광역·기초지자체 모두 청소년 교육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지역 특성과 주민의 요구를 반영하여 교육시설 구축(도서관, 어린이 특화 SOC, 평생학습관 등), 마을강사 양성, 대학연계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고 있다.
공동주택(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와 주민센터·경로당·학교복합시설 등 지역 공간을 돌봄 자원으로 확장하며, 지역아동센터와 대학생 멘토링 사업을 연계하여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도심과 농촌이 공존하는 대구의 특성상 학습·학력 향상 중심의 프로그램부터 심리·정서 지원 프로그램, 인공지능(AI)·코딩·로봇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학교밖청소년·다문화가정 대상 프로그램, 대학(DGIST)과 연계한 고등학교 공동캠퍼스 수업을 개설하는 등 폭넓게 청소년의 교육·돌봄을 지원한다.
지자체와 연계한 교육·돌봄 모델은 교육(지원)청·학교-지자체-지역기관이 하나로 연결되어 협력할 때 가능하다. 연결의 시작은 바로 지자체·지역기관과 교육청·학교 담당자가 만나 대화하는 것이다. 필자는 대구교육청이 기존에 지자체와 연계하여 추진하는 사업인 미래교육지구사업·교육발전특구사업과 연계하여 모든 구·군(9개)의 교육·돌봄 프로그램을 참관하고 그 자리에서 함께 협력하고 지원해야 하는 사항을 논의했다.
‘우리 아이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하자’는 열정으로 지역공동체가 협력하는 감동적인 사례를 맞이하며 서로를 눈물로 격려하기도 했고, 필자가 지금까지 참관해 보지 못했던 수준 높은 AI를 활용한 스마트팜(Smart Farm) 만들기 수업을 함께 하기도 했다. 또한 지자체가 보유하고 있는 우수한 교육시설을 보고, 또 직접 발로 뛰며, 대학 프로그램을 발굴해 관내 학교의 창의적체험활동시간과 연계·제공하는 지자체 담당자의 열정에 감탄하기도 했다. 반면 지자체에서 왜 청소년 대상 교육사업을 확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인식과 마주하기도 하고, 열심히 교육사업을 추진 중이나 학교의 벽이 너무 높아 협력에 어려움이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일부 교육지원청 담당자는 지자체 프로그램 운영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협력 의지가 중요함을 느끼기도 했다.
일단 만나야 한다. 서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지 어떤 시설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공유하고 이해할 때 협력의 방향이 보인다. 저출생 시대 우리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학교와 지역이 지혜를 모아야 함을 공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자체·학교·교육청이 서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실제적인 속내를 꺼내 놓아야 한다. 그래야 협력이 가능한 세부 과제가 보이고, 연결 방법이 보이기 시작한다.
연결의 중심, 학교장과 늘봄지원실장
학부모들은 학교가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고 인식한다. 정규수업 후에도 이동 없이 안전한 학교에서 양질의 교육과 돌봄을 제공받기를 원한다. 학교장은 학생들이 이동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해 막중한 부담감을 느낀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과대·과밀학교는 초과 수요를 학교 밖으로 분산시키기 어렵다. 학생 성장을 중심으로 학교장은 지자체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시설을 활용하는 데 마음을 열어야 한다.
올해부터 전국 초등학교에 배치되고 있는 늘봄지원실장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늘봄지원실장은 학교 내 교육·돌봄 수요와 공급 현황을 분석하고, 학교와 연결할 수 있는 인근 지역의 교육·돌봄 서비스가 무엇인지 만남을 통해 파악해야 한다. 또한 학교 내외 자원을 종합적으로 조정하며, 학생과 학부모 수요에 따른 서비스가 적절히 배분되도록 설계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초등 저학년은 학교 내 공간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고학년은 지역의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를 활용해서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돌봄이 필요한 오후 시간대별로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를 분석하여 초1~2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학교와 마을의 공간을 활용한 교육·돌봄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저출생 시대, 함께 키워야 하는 시대
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더 집중적으로 풍성한 교육과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동안 학교가 혼자 감당하던 교육·돌봄을 이제는 지역과 나누고, 지자체가 운영하던 프로그램을 학교와 연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방과후에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배움을 이어갈 수 있다.
온동네 초등돌봄은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중심으로 학부모들의 양육 부담 경감, 초저출생 위기 극복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교육·돌봄정책이다.
학교 혼자만의 힘으로는 버겁다. 학교 안팎의 우수한 교육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제는 ‘누가 돌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돌보는가’를 고민해야 할 시대다. 학교와 교육청은 물론 지자체·대학·기업·기관 등 우리 사회의 모든 주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하는 모든 아이가 언제 어디서나 따뜻한 교육과 돌봄을 누리고, 마음껏 뛰놀며 배우는 온동네 초등돌봄이 현장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