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시대는 갔습니다. 이제는 스승을 돌처럼 대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교사가 보호받지 못하면 교육의 미래도 없습니다.”
제34대 한국중등교장협의회 회장으로 취임한 남경민 교장(전남 여수화양고)은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교권 붕괴의 현실을 고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교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악성민원은 더 이상 개인의 인내로 감당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무고성 악성민원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회장은 35년간의 교직생활을 거쳐 전국 중등교장협의회를 이끄는 자리까지 올랐다. 그가 보는 오늘의 교육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자리가 교장입니다. 정당한 지시조차 ‘갑질’이라 매도당하는 세상이에요. 교육부도 교사단체의 목소리는 경청하면서 교장단과의 소통은 형식에 그치고 있죠.”
그는 최근 초등교장협의회와의 간담회에서도 “교장의 힘이 너무 약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학생 인권과 교사 교권이 강조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교장이 학교를 통할할 권한은 상대적으로 약화됐습니다. 이제는 교장의 리더십이 학교를 지탱하는 동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고교학점제, 시기상조 … 우리 정서와도 맞지 않아”
최근 교육계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고교학점제’에 대해서도 남 회장은 단호했다. “지금은 시기상조입니다. 학교 현장은 준비가 전혀 안 됐어요. 과목 선택권 확대라는 취지는 좋지만, 교사 인력이나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어촌과 소규모학교는 교사 수 부족으로 개설할 수 있는 과목이 턱없이 적어요. 온라인 공동교육도 시스템이 미비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죠.”
그는 “학점제는 학생이 정해진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는 제도인데, 실제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까지 어떻게 이수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없다”며 “출석률과 성취 기준을 병행하는 지금의 구조로는 현실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소 성취기준인 40% 또는 출석률 중 하나만 충족해도 졸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교육부에 제안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입시제도 개편에 대해서도 냉정한 진단을 내놨다. “수능과 내신 절대평가 전환은 제도적 변화일 뿐, 근본적인 해법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학벌 중심 구조’와 ‘수도권 대학 집중 현상’이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경쟁은 계속될 겁니다. 절대평가가 오히려 변별력을 약화시켜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어요.”
남 회장은 대학 입시 개혁의 초점을 ‘학생 성장 중심 교육’으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학생이 SKY나 의대를 지향하는 사회 구조부터 바뀌어야 하고 교육의 목표가 성적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진짜 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 … 너무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 문제에 대해서는 “만시지탄”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교사도 시민입니다.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의사 표현을 막는 건 구시대적 억압이에요. 유럽에는 교사 출신 국회의원이 많습니다. 교사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교육정책이 현실을 반영하게 됩니다.”
그는 “다만 수업 중에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면서도 “근무 외 시간에는 일반 시민처럼 정당활동과 정치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업 중 편향된 발언은 강력히 제재해야 합니다. 그건 교육자의 윤리 문제니까요.”
내년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교육경력 요건을 완화하거나 삭제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지금은 교육경력 3년이면 교육감선거에 출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아예 그 제한을 없애려 한다더군요. 교육경력 3년이면 교육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소 10년은 있어야 교육의 복잡한 구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육은 정치가 아니라 전문 영역입니다.”
그는 “예산을 어디에 배분해야 학생 성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교육감이 돼야 한다”며 “전시성 사업보다 학생 발달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현장형 교육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회장은 인터뷰 내내 교사들의 고통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예전엔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스승을 하대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교사의 처우가 낮고, 학부모의 생활 수준이 높다 보니 교사를 무시해도 된다는 인식이 퍼진 겁니다.”
그는 “초임 교사 월급이 200만 원 수준인데, 1년에 오르는 금액이 3~5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 “명예와 존경이 사라진 시대에 그 급여로 누가 교단에 남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한 달 근무하고 퇴직하는 교사도 있다”며 “열정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구조”라고 했다.
교사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로는 ‘악성민원’을 꼽았다. “교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악성민원은 반드시 근절돼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처벌은 너무 약합니다.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악성민원이 늘고 있어요. 무고한 교사를 괴롭히는 민원에는 고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실질적인 제재가 필요합니다.”
다만 그는 “모든 민원이 악성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학교 대응이 미흡할 때 학부모가 문제를 제기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악성민원이란 교사를 해칠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괴롭히는 행위이기에 정당한 문제 제기와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교권침해를 당해도 참고 넘어가는 현실도 안타깝다고 했다. 많은 선생님들은 제자가 순간의 실수로 잘못했을 뿐이라 생각하며 용서하지만, 그 상처는 평생 남는다. 그런 교사들의 헌신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무고성 악성민원에 대해서는 반드시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장은 학교의 리더이자 방패 … 책임만 있는 구조 바꾸겠다”
남 회장은 교장으로서의 역할과 사명감에 대해서도 분명한 소신을 밝혔다. “교장은 학교의 최고 경영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습니다. 이제는 ‘힘 있는 교장회’를 만들어 교장이 교육의 중심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는 “학교 내 민원 대응팀이 운영되고 있지만, 여전히 교장에게 직접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1차적으로 대응팀이 정리한 후 교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더니, 감정이 격화되지 않고 합리적 해결이 가능했다”고 소개했다.
향후 한국중등교장협의회의 운영 방향에 대해서는 “학교의 안정적 운영과 학생 중심 교육 실현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고교학점제, 대학입시 개편, AI 시대의 디지털 전환 등 변화의 물결 속에서 교장이 현장을 지키는 중심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교장들의 역량 강화 연수, 현장 중심 정책 개발, 교육 ODA 확대, 혁신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교장회의 위상을 높이겠다”며 “학교가 흔들리면 교육도 흔들린다. 교장이 바로 서야 학교가 바로 선다”고 강조했다.
1950년대 말 42명의 교장이 모여 설립한 한국중등교장협의회는 현재 전국 17개 시·도협의회를 아우르는 최대 규모의 교장단체다. 남 회장은 이 조직을 통해 교장의 자긍심을 되살리고, 학교 현장을 안정시켜 궁극적으로는 ‘교사가 존중받고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