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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교실 안 괴물은 과연 누구인가

십여 년 전이다. 어떤 선생님이 좋은지를 자유롭게 말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교사상’을 말하면서 반은 장난처럼 이야기를 이어갔다. 차별하지 않는 선생님 등의 답변을 기대했지만 순간 치마가 짧은 선생님이요, 생머리가 긴 선생님이요,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치마는 왜 이렇게 긴가요 등의 답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충 수위를 조절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짜식들이! 니들이 필요한 게 지금 선생님이냐, 여자냐? 여자가 필요하단 비명은 거기까지!"

 

열여덟 살 아이들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농담이 섞인 이야기를 했었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수위조절(?)’을 놓친다면 학생들은 간혹 자신들의 대화를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하는지 놓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약자를 향하는 교실 안 폭력

 

몇 년 전 교실에서 체육복으로 아랫도리를 덮은 채, 앞에서 교사가 수업을 하는데도 집단으로 수음을 한 학생들의 이야기가 신문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리고 이번엔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교사의 머리 뒷부분을 두 차례 때린 폭행 사건이 터졌다.

 

피해를 본 교사는 올해 임용된 20대 여교사였다고 한다. 동급생과 게임을 하다 ‘담임 뒤통수를 때리고 오면 2만 원을 준다’는 내기를 해 벌어진 사건이었다. 처음엔 담임교사를 때리려 했지만 무서워 못 했고, 대신 신임 여교사를 때린 것이었다.

 

세 경우 모두 공교롭게 ‘여교사의 수업 시간’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성희롱에 가까운 대화를 종료한 첫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여교사라기보다 ‘약자를 노린 폭력’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자신보다 약해보이고, 공격해도 돌아올 물리적 반격이 커 보이지 않는 대상을 골라 쾌감을 누릴 수 있는 짓을 과감히 저지른 경우다.

 

아이들은 학습의 공간인 교실에서 폭력을 저질렀고 그 상황에 ‘상대적 약자’가 곤혹스러워하며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잔인하고 가학적인 장면이다.

 

이런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교실에서는 어떤 종류의 폭력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선언이 천명된 바 있다.

 

하지만 교실은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인권이 한 종류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당연히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 학생의 인권도 따지고 보면 교실 장면에서 교사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채택한 보호막이다.

 

누구나 지켜야 할 인권 있다 

 

그러나 교직경력이 많지 않고 물리적 힘이 약한 교사의 시간에 그 교사를 상대로 한 폭력이 가해진 장면에 노출된 약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 경우 보호해야 할 인권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교실에서 가해지는 폭력은 항상 교사와 학생 간의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힘이 약한 교사와 학생 간에도, 또 학생과 학생 간에도, 그 학생도 상급생과 동급생으로, 동급생끼리도 힘이 센 학생과 아닌 학생 등 다양한 역학관계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교실 안의 폭력에 대한 우린 선입견에 사로잡혀 어느 한쪽만 두둔하는 일방적 편견만 들이대고 있는 건 아니까.

 

교실 안의 괴물, 리바이어던이 노리는 것은 학생이라는 이름의 존재만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실 안에서 폭력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약자를 지키는 정의이며, 이 정의는 어떻게 해야 실현될 수 있는지 제대로 학습하게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