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생활 내내 교무실 문을 제일 먼저 여는 사람이었다.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복도를 지나열쇠를 돌리고, 어둑한 교무실에 첫 불을 켜는 일. 누가 시킨 것도,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고요한 아침의 몇 분이 좋았다. 오늘 만날 아이들의 얼굴을 미리 그려보는 시간이었고, 수업을 머릿속으로 한 번 더 굴려보는 시간이었다. 36년을 뒤로 한 마지막 출근 그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침, 제일 먼저 문을 열던 사람이 이제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왔다. 36년 6개월. 훈장 하나가 돌아온다지만, 그것이 이 세월을 다 대변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세월을 대변하는 것은 훈장이 아니라, 그 문 안쪽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얼굴들이다. 처음 부임하던 날의 초심은 ‘공부하는 교사가 되자’였다. 그 초심 때문에 멈추지 못하고 계속 배웠다. 현장 경험만으로는 아이들의 상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전문상담교사 자격을 얻었고, 교실에 늘어나는 이주배경 아이들을 보며 다문화 교육으로 두 번째 석사를 마쳤다. 그리고 퇴직을 앞둔 나이에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누군가는 이제 무슨 공부냐고 웃었지만,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첫날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었다. 교사는 학생
지난달 학교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코딩캠프를 운영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함께 숙박하며 생성형 AI와 바이브 코딩을 활용해 팀별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만들었다. 학생들은 밤늦도록 쉽게 노트북을 덮지 않았다. 원하는 기능이 구현되지 않으면 다시 질문을 고쳐 입력하고, 오류가 발생하면 원인을 찾으며, 팀원들과 해결 방법을 논의했다. 발표를 앞두고 끝까지 결과물을 다듬는 모습을 보며 학교 AI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경험 쌓은 1박 2일 코딩캠프 최근 학생들은 생성형 AI를 매우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궁금한 내용을 묻고, 글을 정리하고, 이미지를 만들며, 코드를 생성하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자주 사용한다고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AI가 제시한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곧바로 포기한다면 그것은 교육적 활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번 캠프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AI가 만들어주는 경험’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었다. 학생들은 먼저 학교생활에서 불편한 점을 찾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했다. 이후 필요한 기능을 작은 단위로 나누고, 생성형 AI에 요구사
최근 미국 대학가에서 구술시험이 되살아나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코넬대의 한 공학 수업은 과제 제출 후 교수와 20분간 소크라테스식 문답을 나누는 구술시험을 추가했고, 펜실베이니아대는 '대면 평가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학생들이 인공지능(AI)으로 과제를 완성해 오자, 대학들이 내놓은 답이 결국 "네가 직접 설명해 보라"였던 것이다. 이 장면은 교실에서도 낯설지 않다. AI로 완성한 매끄러운 과제를 내밀던 아이가 "가장 중요한 문장이 무엇이니?"라는 물음 앞에서는 자기 글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화면만 더듬는다. 답은 완성되었지만 이해는 시작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AI가 몇 초 만에 글을 써 주는 시대, 정작 위기에 놓인 것은 글을 읽어 내고 자기 말로 설명하는 힘이다. 도구가 역량 대신하지 않아 AI라는 도구 앞에서 아이들은 두 갈래로 나뉜다. 도구를 부릴 힘이 있는 아이는 도구를 만나 배움이 몇 배로 커진다, 하지만 그 힘이 없는 아이는 좋은 도구를 주어도 결과물을 받아 적는 데서 멈춘다. 이 갈림길은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선명해진다. 같은 도구를 활용하지만 오히려 배움의 격차를 키우는 역설이 벌어진다. 이것은 도구를 주어도 결과물은 결국 그
청소년 범죄가 갈수록 더욱 교묘해지고, 점점 진화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흉측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법은 시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청소년이 촉법소년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더 나아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아 피해자에게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 현 제도의 부작용 계속 커져 그러한 의미에서 최근 국회에서 열린 ‘교권과 촉법소년 제도 개선 토론회’는 교육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토론회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은 교사, 법조인, 학부모의 생각이 다들 비슷했다는 점이다. 지금의 보호처분과 보호관찰 제도는 부작용이 많고, 재범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무법천지로 전락한 촉법소년을 이제는 엄벌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일부 촉법소년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기에 한 번은 꼭 경험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한편으로는 청소년의 권리이자 특별 혜택이라고 말하는 몰지각한 학생도 있다. 학교폭력은 가벼운 사안이라도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록되면 대입에 아주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촉법소년은 살인, 강간, 방화 등 어떤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전
인공지능(AI)은 교육 현장에서 가장 강력한 엔진이 되고 있다. 수업 자료를 만들고, 학습 수준을 분석하며, 맞춤형 문제를 제시하고, 행정 업무까지 도와준다. 하지만 교육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AI가 아니다. 학생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어떤 경험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울 것인지는 여전히 교사의 몫이다. 갈수록 교사 역할 중요해져 뇌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전전두엽은 목표를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역할을 한다. 변연계는 감정을 이해하고, 해마는 경험을 의미 있는 기억으로 연결한다. 교육 역시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학생의 경험을 성장으로 연결하는 과정이다. 실제 AI는 ‘배려’라는 단어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친구를 위로하며 눈물을 닦아 준 경험, 실패한 학생에게 다시 용기를 북돋아 주는 순간의 따뜻함까지 가르칠 수는 없다. 이렇듯 AI가 발전할수록 교사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본질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가장 경쟁력 있는 교사는 어떤 사람일까? 바로 AI를 통해 질문을 잘하는 교사다. 좋은 질문은 좋은 수업을 만든다. 그리고 좋은 질문은 AI가 아니라 교사
“그 일 이후 학교 가는 게 두려워요.” 교권침해 상담 과정에서 교사들이 가장 자주 호소하는 말 중 하나다. 학부모의 거친 항의와 반복된 민원, 학생의 폭언과 위협. 사건은 끝났고 행정적으로도 마무리됐지만, 교사의 일상은 그 자리에서 멈춰 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 같은 불안이 밀려온다. 전화벨만 울려도 ‘또 민원 아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날도 많아진다. 그동안 우리는 교권침해를 ‘법적 문제’로 다루는 데 익숙했다. 가해 행위의 위법성을 따지고, 절차에 따라 조치하고, 제도적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데 집중해왔다. 물론 반드시 필요한 대응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지금 선생님의 마음은 어떤 상태인가.” 교권침해는 단순한 갈등이나 불쾌한 경험을 넘어 심리적 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지와는 달리 반복적으로 그날의 장면이 떠오르거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행동, 이유 없는 긴장과 불안이 나타난다면 이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을 가능성을 의심해봐야 한다. 외상 방치하면 소진으로 이어져 이는 개인의 나약함이
퇴근 이후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학부모가 보낸 문자입니다. "선생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내일 준비물이 원고지가 맞나요.” 짧고 정중한 문장 앞에서 교사는 잠깐 멈춥니다. 지금 답해야 할까, 아침에 답해야 할까, 그런데 아침이 되면 또 아침대로 바쁠 텐데. 이 짧은 문자 하나가 남긴 무게가 하루의 끝자락에서 오래 남습니다. 늦은 시각의 연락이 무거운 것은 응대 그 자체보다 응대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 때문입니다. 답하지 않으면 다음 날 학부모에게 또 연락이 올 것이 신경 쓰이고, 답하면 하루 종일 이어져 온 나의 시간이 문득 잘려 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교사도 퇴근하면 한 사람의 부모이고, 자식이고,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를 재우는 사람입니다. 그 시간을 지키는 일이 사실은 다음 날 교실에서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담을 근본에서 덜어주는 새로운 지침이 지난 3월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함께 발표한 ‘학교 민원 대응 및 교육활동 보호 강화 방안’에 따라, 이제 교사 개인 연락처나 개인 SNS를 통한 학부모 민원 접수는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학부모와의 소통은 학교 대표번호와 온라인 소통 시스템인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