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완전 국가책임제’는 가능한 것인가? 이는 출생 및 영유아 돌봄 단계부터 시작해 초·중·고 공교육은 물론, 고등교육(대학)과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의 교육 권리와 재정적·행정적 부담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공교육 체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최근 ‘유보통합’의 정책 설계에서 보는 것처럼 영유아 교육·돌봄의 완전 공적 책임이 필수다. 끊어야 할 학벌 세습과 사교육비 실제로 전면 무상교육의 대표 격인 북유럽 국가와 일부 유럽 국가인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는 유보통합에서부터 국공립대학 등록금까지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체코 역시 국공립대학 정규과정까지 자국민에게 무상교육을 제공한다. 이밖에 사우디아라비아, 산마리노 등은 풍부한 재정을 바탕으로 등록금 면제는 물론 매월 생활비, 장학금까지 지급하고 있다. 남미 국가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역시 명문 국공립대학의 등록금이 무료다. 이들은 ‘교육은 공공재이자 기본 권리’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유·초·중·고 및 국공립대학의 등록금까지를 받지 않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국가가 교육의 완전 책임제를 실행하는 제도로 진전을 거듭해야 한다. 특히 시급한 것은 대학 등록금 지원
수학 시간이면 늘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교사가 공식을 설명하고, 학생은 그 공식에 숫자를 대입해 답을 낸다. 답이 맞으면 이해했다고 여기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문제가 조금만 변형되면 아이들은 이내 무너진다. 개념을 스스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절차만 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 수업에도 스스로 생각을 통과하는 구조의 질문수업이 필요하다. 수업에서 교사의 질문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생이 스스로 "이게 뭐지?", "왜 그렇지?"라고 묻는 것이다. 생각은 그냥 시작되지 않는다. 생각을 촉발하는 무언가가 필요하고, 그것이 질문이다. 질문은 정답을 구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여는 도구다. 그런데 계산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계산만 하려 할 뿐, 개념과 원리에 질문하기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수학 문제 앞에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패턴화된 구조를 제공할 때 사고의 근육은 자연스럽게 탄탄해진다. 수학질문수업의 ‘읽·설·그·계’가 바로 그것이다. 수학 문제를 읽고 해석하고, 개념을 설명하고, 그림으로 표현하고, 계산하는 흐름이다. 이 네 단계를 하나의 학습 구조로 엮은 ‘읽·설·그·계’를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강력한 도구로 추천한다. 1단계-
준비물을 준비하지 못한 아이가 수업에 들어오는 날이 있다. 아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본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하기보다 옆 친구의 물건을 바라보고, 때로는 빌려도 되는지 묻지 않은 채 손부터 뻗는다. 말없이 손부터 뻗는 이유 이 모습을 보면 준비물을 챙기지 않은 것부터 지적하기 쉽다. 그러나 잠시 살펴보면 준비하지 못한 사실보다 그것을 드러내는 일을 더 어려워하는 아이가 있다. 혼날까 봐 두렵거나, 친구들 앞에서 준비물을 잊었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거나, 부탁했다가 거절당할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말없이 친구의 물건을 가져다 쓰게 둘 수는 없다. 아이의 손을 멈추게 하고 먼저 물어보게 한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못했으면 빌려달라고 말할 수 있어. 하지만 빌려주고 말고는 그 친구가 선택하는 거야.” 도움은 당연히 받아낼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평소 자신이 친구를 어떻게 대했는지, 필요한 순간에 어떤 말로 요청하는지도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연필 한 자루만이 아니다. 준비하지 못한 사실을 숨기려는 마음, 부탁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행동, 친구가 건넨 도움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한꺼번에 드러난다. 아이가
학생이 줄면 교육재정도 줄여야 한다는 말은 언뜻 그럴듯하다. 그러나 교육은 학생 수에 단가를 곱해 운영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줄어도 학교와 학급은 같은 비율로 줄지 않는다. 작은 학교는 학생이 적다고 금방 문을 닫을 수 없고, 냉난방비와 급식비, 통학 안전, 시설 유지와 교직원 인건비도 그대로 필요하다. 자치 기반 무엇으로 보장하나 오히려 교육의 책임은 넓어지고 있다. 과밀학급 해소, 특수교육과 기초학력, 늘봄과 교육복지, 노후학교 개선에 투자해야 한다. 학생 마음건강도 시급하지만 모든 학교에 전문상담교사 한 명을 두는 체계조차 갖추지 못했다. 학생 수 감소는 교육의 책임을 줄일 이유가 아니라 한 아이 한 아이를 더 세심하게 돌릴 기회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20.79% 연동 방식을 폐지하고 경제성장률과 학령인구 변화를 반영한 새 산식을 도입하려 한다. 영유아부터 고등·평생교육까지 투자를 넓히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번 개편은 단순한 계산식 변경이 아니다.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지방교육에 배분하는 연동제는 지난 반세기 동안 교육재정을 매년 예산 판단과 정치적 상황으로부터 지켜온 안전판이다. 자체 과세권이 없는
학부모와의 관계만큼 교사에게 까다로운 것이 있을까요. 너무 가까우면 사적인 영역이 흔들리고, 너무 멀면 아이 이야기를 나눌 자리조차 마련되지 않습니다. 반갑게 인사만 나누고 지나치자니 왠지 아쉽고, 마음 편히 이야기를 주고받자니 어느새 경계가 흐릿해집니다. 이 어중간한 자리에서 매년 새로 만나는 학부모들과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갈지, 고민하지 않은 교사는 없을 겁니다. 아이 위해 나란히 걷는 관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되는 관계라는 뜻입니다. 너무 멀면 아이를 위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대할 때마다 서로 불편해집니다. 너무 가까우면 자칫 교사의 공적인 생활 이외의 것까지 침해받을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이 원칙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요즘처럼 소통 창구가 다양해지고 경계가 자꾸 흐려지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거리를 지킨다는 것은 관계를 오래 지키기 위한 리듬입니다.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처음에는 좋아 보여도 결국 어느 순간 사소한 오해 하나에 관계 전체가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반대로 처음부터 너무 멀면 정작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이
교사는 학생의 작은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아챈다. 아이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면 무슨 일이 있는지 묻고 살핀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변화에는 둔감하다. 피곤해도 ‘괜찮다’ 버티고, 힘들어도 ‘조금만 더’하며 다독인다. 그렇게 번아웃은 조용히 시작된다. 소진은 단순히 피곤해서 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버텼기 때문에 찾아온다. 교사들의 번아웃은 일반적인 직무 소진과는 조금 다르다. 교사는 온종일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는 감정노동자다. 아이들의 감정을 살피고 갈등을 중재하는 동시에 학습과 생활지도를 책임진다. 여기에 행정업무와 예측 불가능한 각종 민원, 학부모와의 관계까지 더해진다.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교직의 특성은 번아웃을 더욱 심화시킨다. 감정노동‧교권침해가 소진 키워 신체적 피로 못지않게 감정노동은 큰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나 교사들은 정작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나 돌보기 어렵다. 이러한 불균형 속에서 정서적 탈진이 커진다. 특히 교권침해를 경험했다면 소진은 더욱 빠르게 찾아올 수 있다. 폭언이나 폭행, 위협을 당한 경험은 교실을 더 이상 안전한 공간으로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몸은 늘 경계 상태에
드라마 ‘참교육’에 많은 사람이 이 작품에 관심을 보인 것은 단순히 강한 훈육이나 응징 장면에 대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이면에는 학교가 학생의 행동과 태도, 공동체 생활의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담겨 있다. 학교 교육을 둘러싼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육은 학생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고, 자신 행동에 책임을 지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태도를 익혀 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참교육’이라는 말이 주는 통쾌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교육을 통해 어떤 인간을 길러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묻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유아교육, 초·중등 의무교육, 고등학교 무상교육, 대학 재정지원, 청년층 취업 지원에 이르기까지 교육과 성장 과정 전반에 대한 국가책임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이는 개인의 배경과 여건에 따라 교육 기회가 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중요한 사회적 노력이다.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 다만 교육의 국가책임이 확대될수록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국가는 교육의 기회를 넓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분명히 세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