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토)

  • 맑음동두천 19.0℃
  • 맑음강릉 25.3℃
  • 맑음서울 19.9℃
  • 맑음대전 21.1℃
  • 맑음대구 22.2℃
  • 맑음울산 21.8℃
  • 맑음광주 22.4℃
  • 구름조금부산 18.3℃
  • 맑음고창 ℃
  • 구름조금제주 19.7℃
  • 맑음강화 17.1℃
  • 맑음보은 18.6℃
  • 맑음금산 19.7℃
  • 맑음강진군 17.3℃
  • 맑음경주시 21.0℃
  • 구름많음거제 16.8℃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시론> 아이들에게 친구와 날밤 새우는 추억을…

청소년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 38개국 중 35위
더불어 사는 ‘지식’이 아니라 ‘능력’ 길러줘야

최근 좀 독특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한국 청소년들이 시민의식 관련 ‘지식’은 38개국 중 3위인데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관계를 맺는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 즉 더불어 살기 능력은 35위라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0 한국 청소년 핵심역량 진단조사’ 보고서가 그것이다. 더불어 살기와 관련된 지식은 많이 가지고 있는데 실행 능력은 최하위라는 것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는 그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핵심 이유 중의 하나는 더불어 살기라는 것이 체험을 통해 몸으로 익히고, 그 역량을 기름으로써 몸에 배야 하는 능력이지 지식을 배운다고 해서 저절로 발휘되는 능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가 바로 더불어 사는 능력임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학교나 학부모 모두 아이들에게 이러한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과거 아이들에 비해 어울리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뭔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혹시 길러준다고 하면서 그러한 능력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대부분은 5세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기 기억상실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와 부모가 자녀를 교육시키는 모습을 바라보면 성인들이 청소년기 기억상실증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한 번 떠올려보자. 40대 이후의 선생님들이라면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해가 뉘엿뉘엿할 때까지 친구들과 놀다가 어머니가 큰 소리로 부르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갔던 아련한 추억, 특히 시골에서 자랐다면 옆집에 살던 친구네 집에서 혹은 친구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 날밤을 새우던 때의 행복한 추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부모의 각별한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만 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뇌 속에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길을 따라 친구들과 어울리며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이다.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에 보면 아이들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환경이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아이들은 친구와 함께 있을 때 가정환경에 무관하게 모두다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하며 지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들의 과거 기억마저 상실한 청소년기 기억상실증환자가 된 것처럼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다. 자기들끼리 놓아두어도 잘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을 어른들이 만든 프로그램에 집어넣어 억지로 만들어가다 보니 생각지 않은 부작용들이 생겨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아이들을 방치하자는 것은 아니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친구 집에 자러 가기(sleep over)를 종종 허락한다. 아이의 친한 친구가 바로 옆집에 살면서 늘 오간다면 쉽게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 부모와 함께 식사하면서 어느 정도 신뢰를 쌓은 후 서로 돌려가며 아이 친구들이 와서 하룻밤을 함께 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부모에 따라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만 허락해도 마냥 행복해한다.

아이들의 더불어 사는 능력 부족은 학생들 사이의 왕따 문제로 끝나지 않고 선생님을 감정근로자로 몰아간다. 감정노동이란 일을 할 때에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조직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감정을 보여야 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감정노동으로 생긴 문제가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경우엔 심한 스트레스를 보이게 되며, 심한 경우엔 정신질환 및 자살까지 갈 수도 있다고 한다. 교사들이 갈수록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기감정을 여과시키지 않은 채 심하게 표출하는 학생이 갈수록 늘고 있고, 이에 따라 교사는 자기감정을 억누르며 교육에 임하는 감정노동 빈도수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일본 사회의 화두가 되었던 신규교사들의 이직률 급증 원인에는 갈수록 거칠어지는 학부모 및 학생과의 관계에서 오는 과도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포함되어 있다.

감정노동을 강요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스트레스를 표출함으로써 사회적인 스트레스가 급증하는 빈곤의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서로를 배려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그러한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청소년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성인들이 만든 설익은 프로그램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길러주려고 하는 대신 이미 수만 년간의 시행착오로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함께 하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도록 하자. 교육계가 나서서 어린 시절 친구 집에서 날밤을 새우던 날의 행복한 추억을 이젠 우리 아이들에게 돌려주자는 캠페인이라도 벌려보았으면 싶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