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이 확 달라진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여문 벼들은 수확의 시기를 알리는 듯 노르스름한 빛깔을 하고. 그 위로 메뚜기며 여치가 뛰노는 가을 초입입니다. 어느새 벌레들은 옥타브 높은 맑은 소리를 냅니다. 긴 우기를 보낸 탓에 까슬하고 맑은 바람과 청량한 햇살이 더 기분 좋게 느껴집니다. 옷걸이에 걸린 옷에 거의 하얀 곰팡이가 조금씩 피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탁기에 돌려 옷들을 베란다에 널어 가을 햇살에 말렸습니다. 빨래가 말라가는 동안 베란다에 앉아 저를 위해 한 권의 기분 좋은 책을 읽습니다. 김소연 작가의 『한 글자 사전』입니다. 작가는 읽는 이가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쓴 글이라고 합니다. 어떤 말에 대해 작가는 누구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제가 책에서 찾은 한 글자로 가늠하는 생의 감촉을 표현한 멋진 말들입니다. 귀/ 토론할 때는 닫혀 있다가 칭찬할 때는 잘 열리는 우리들의 신체 기관. 밤/ 노동자가 비로소 온전히 오금을 펴고 눕는 시간. 창가의 식물들이 면적을 오므리는 시간. 농구공을 받아내는 텅 빈 운동장처럼 누군가의 성정을 울리는 시간. 그렇기 때문에 시인에겐 밥물을 재는 시간 싹/ 마음속에 낙담밖에 남
2020-09-16 14:50
덕질을 해 봤나요? 덕질을 왜 하나요? 덕질을 하면 나는 행복할까요? 내 경우는 본격적인 덕질은 30대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에 했던 덕질은 잡지나 신문에 나오는 사진 오려서 스크랩하는 정도였고, 20대 덕질은 좋아하는 가수 공연 겨우 보러 가는 정도. 공연 보러 간다고 그게 모두 덕질인 것은 아니기는 하죠. 덕질이라 함은 오롯이 그 대상만 보이고, 모든 것이 그쪽으로만 연결되는, 소위 주변에서 보면 살짝 미친 사람 같기도 합니다. 저 덕질은 30대 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었습니다. 30대 되어 내돈내산으로 공연 가기, 덕질 시작 제가 어릴 때는 이용과 조용필이 쌍두마차로 팬심 대결을 할 때였고, 그때도 가끔은 지방에서 그 공연 보러 가겠다고 학교나 부모님 엄청나게 설득하던 친구들 있었지요. 그때는 정말 그거 이해 못 했어요. 그거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30대에 경제적 자립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내돈내산으로 공연 다니면서 덕질은 시작되었지요. 뮤지션 공연을 가 보면 왜 덕질을 하는지, 아니 왜 덕질을 해야 하는지 바로 이해됩니다. 특히나 락밴드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거의 '늪'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드럼은 미친 듯이 심장을 두드리죠.
2020-09-10 10:37요즘은 거짓말과 가짜 뉴스가 온통 우리 사회를 뒤덮어 혼돈의 연속이다. 시중의 말 한 마디도 어느 것이 진실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모든 것의 판단을 유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세상사를 신중한 언행으로 대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또 다른 부담이 버겁게 느껴진다. 그뿐인가? 하 루하루 편견과 불신으로 뭉친 이념과 사상의 집단이 쏟아내는 거짓 뉴스는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사람들의 이성의 작동을 마비시키거나 심지어 이성과 등을 지고 살아가게 유혹한다. 그러니 세상을 올바로 살려는 선남선녀는 이래저래 세상살이를 신중하게 지탱하고 버텨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구든 이런 삶 속에서는 몸과 마음이 고달프고 피곤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른바 ‘피로사회’와 ‘위험사회’라는 이중적인 굴레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실을 알아보고 삶을 보다 평화롭고 안정되게 영위할 수 있을까? 먼저 진실을 말한다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다음의 예화를 들어보자. 페르시아의 황제 코스로스는 사람들의 기대를 뒤엎고 병에서 회복되었다. 그는 고문관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여러분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시오. 내가 좋은 황제라고 생각하시오? 만일 여러분이 거짓…
2020-09-10 10:36최근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주고 간 태풍을 맞이하여 학교는 코로나19 감염병 발생 이후 또 한 번의 학교 자율화의 명분 아래 학교급별 자율결정을 권고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물론 시·도 교육청별로 권고의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었을 것이다. 지방교육자치및 학교(교육) 자율화의 최종적인 목적은 학교(급)별 학교장(이하 학교장)에게로 자율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러한 논의는 향후 지방교육자치 및 학교 자율화 조치이행에 고무적일 것이다. 최근 제9호 태풍‘마이삭’과 제10호 태풍‘하이선’의 영향권 하에 놓인 지역의 학교장은 교직원 회의 등을 통하여 재난 상황에 따른 결정을 하여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마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기상청 예보를 참고하여 나름대로 태풍의 진로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학생의 등하교 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였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연 재난급에 따르는 태풍을 맞아 학생의 안전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학교 구성원의 회의를 바탕으로 학교장 자율로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는가를 검토하여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판단(결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
2020-09-10 10:36최근 대법원이 7년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적법하다는 1‧2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서울고법으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이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을 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교조가 법외노조 통보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즉 대법원이 본안 소송 1·2심에서는 모두 패소한 전교조 손을 들어주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2013년 법외노조 통보 처분을 받은 지 7년 만에 합법화 길이 열리게 됐다. 물론 법외노조 위법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업자·해고자를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는 없다는 법조계의 지적이다. 관련 법률의 개정이 선결 요소이다. 다만 현재 국회의 여야 의석수를 감안하면 절차상 과정은 남았지만, 이제 법외노조 철회, 합법화는 기정사실화됐다. 이번 파기 환송에서 대법원은 다수 의견으로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인 시행령은 헌법상 보장된 노동 3권을 본질적으로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무효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재판의 핵심 쟁점인 노동조합법 시행령…
2020-09-07 09:37코로나 사피엔스를 읽고, 코로나 이후를 생각한다 코로나가 다시 확산세가 되니 우리는 그냥 '위드 코로나(with CORONA)'로 살아야 하는 모양이라고 다들 자조해요. 분명한 것은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가기 힘들겠다,라고 다들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그까짓 바이러스 하나에 전 세계 인간이 이리도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동안 참 허세 떨면서 살았어요. 인간 위에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어떤 신이, 어쩌면 우리 인간을 아주 호되게 혼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발 빠르게 관련 책들도 참 많이 쏟아졌어요. 저는 여기에서 코로나 사피엔스를 소개하려고 해요. 시중에 나온 코로나 관련 책을 대부분 읽었으나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평소 많이 고민했던 자기 분야에 대한 담론이라 두루 읽으면 좋겠다는 사심을 담았어요. 코로나 사피엔스 CBS 정관용의 시사자키 기획 방송물 책으로 엮어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 석학 6인들이 신인류의 미래를 말한다 코로나 사피엔스는 애초 책보다 방송으로 먼저 나온 기획물이었어요. CBS 정관용의 시사자키에서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 석학 6인들이 신인류의…
2020-09-03 01:53최근 각 시·도교육청별로 올해 9월 1일자 교장·교육전문직 인사가 단행됐다. 그런데 각 지역에서 인사 비리 의문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특히 진보 교육감 전성시대를 풍미하는 교장 공모제 비리에 대한 논란과 비난이 많다. 차제에 교장 공모제 특히 내부형 교장 공모제는 과감히 폐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다. 무자격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교육청판 음서제’라고 비난하는 여론이 주류인 실정이다. 이번 인사 비리 의혹은 인천, 세종, 충남을 비롯한 전국 각 시·도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했다. 특정노조 출신 인사 편향성, 원직 복귀를 무시하고 교육청 간부로 발탁했고, 교사 경력 15년 평교사가 교육전문성을 인정받는 현직 교장을 따돌렸다. 인사 내정설이 공공연히 떠돌던 인사도 교장으로 임용됐다. 근본 문제는 대부분의 시·도에서 내부형 공모제에 의한 교장 임용자들이 특정노조 경력자들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다른 교육적 전문성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공통성이다. 진보 교육감 전성시대를 맞아 이른바 무자격 교장 공모제가 특정노조 출신의 교장 진입로로 전락한 것이다. 오죽하면 일선 학교 교원들은 내부형 교장에 임용되려면 특정 노조부터 가입해야 한다는 개탄스런 자조를 보
2020-09-03 01:49지구촌의 심각한 기후변화로 인해 기대하지 못한 폭우가 전국을 강타하고 지났다. 그 후 잠시 폭염이 찾아와서 진짜 여름인가 싶었는데 벌써 절기상으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처서(處暑)가 지난 지 꽤 됐다. 짧은 기간 동안 종(種)에 따라서는 땅속에서 4~7년 기간을 유충으로 지난 뒤 지상에서 10일 정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하는 매미가 우렁차게 합창하며 여름의 상징이 되어 생동감을 주었다. 그런 매미가 오늘은 저녁 무렵에 유리창에 달라붙어 소리 없이 꿈쩍 않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동안은 살짝 접근이라면 하면 어느새 알아차리고 훌쩍 날아가던 그 민첩성이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울음소리조차 없이 찰싹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여름의 늦더위에 지친 탓일까? 하기야 대지의 온갖 생명체들이 요즘은 더위에 지쳐 맥이 풀릴 법도 하니 매미도 예외가 아니리라. 하지만 일상적인 모습이 아닌 것을 보자니 솔직히 측은지심이 발동하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살아있다는 것이 측은하다면 그것은 생명의 끝자락에 와 있다는 것이지 아닐까? 이를 계기로 필자는 겸허한 마음으로 삶을 성찰하게 되었다.…
2020-09-01 10:58생명체는 끊임없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의 신경계 구조를 변화시키는 활동을 해나간다. 이를 구조 접속(structural coupling)이라 부른다. 인간은 환경과의 구조 접속이 이루어지면서 자기 생성을 위한 에너지원을 얻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에너지원의 유입을 통해서 생명체로서의 고유한 특성을 생성하게 되고 결국 전반적인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구조 변화는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며 고통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살아 있는 한 계속되는 미완성의 작업이기도 하다. 구조 접속을 통해 자기를 생성하는 과정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는 마치 산 꼭대기에서 한 양동이의 물을 쏟는다고 가정할 때, 쏟아진 물이 어느 방향으로 어떤 흔적을 내며 흘러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면 물은 장애물이나 땅의 굴곡 상태에 따라 예측 불허의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자취를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그가 만나는 인간과 시간과 공간이 남긴 얼룩과 흔적의 합작품이다. 누구와 어디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이 만들어지고, 그에 상응하는 개념적 사유가 생기면서 놀라운…
2020-09-01 10:58
이용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학여울 풍경》.푸른 잉크가 번지는만년필로 서명을 하는 모습에는 삶의 연륜이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시집을 받아들고 첫 만남을 생각하였습니다. 오래전, 소년 같은 시인은 막걸릿집에 혼자 앉아 카메라를 만지며 긴 침묵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날 경주는 추웠고, 작가 모임이 끝나고 겨울 서라벌의 밤이 아쉬운 저와 벗은 숙소 가까운 보문호로 처용가를 부르며 산책을 하였습니다. 찬바람에도 천년 고도의 향기를 품어 행복하기만 하여, 막걸리나 한잔하자며 들어선 곳에는 모임에서 인사를 나눈 시인이 앉아 파전을 펼치고 막걸리를 붓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람 같은 문우 한 명을 만났습니다. 오랜 시간, 시인의 시가 더 여물어가고 열매를 맺고 다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의 카메라가 포착하는 삶의 편린(片鱗)과 시대의 풍경이 보여주는 따뜻한 마음들이 SNS를 타고 흘러들곤 하였습니다. 가족을 지키는 외로운 늑대이며, 문안 인사를 드리러 새벽이슬에 옷자락을 적시는 아들이며, 아직도 청년 장교의 마음으로 검을 사랑하는 바람 같은 영혼입니다. 강에 비추어진 설산의 얼굴이 제게 온 시집의 첫모습이었습니다. 산비탈에 내린…
2020-08-27 0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