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점 일은 영 점 영일의 10배다." 수학 시간에 아이가 교과서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다. 입으로는 '영 점 일'이라고 말하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0.1'이라는 숫자가 그림처럼 새겨진다. 소리와 문자와 이미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글자만 읽는 일이 아니다. 문자를 읽고, 수식을 읽고, 그 너머의 이미지를 읽어 내는 종합적인 사고 활동이다. 문학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장면을 떠올린다. 주인공의 얼굴, 골목의 냄새, 바람 부는 들판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그 상상의 나래는 때로 세상의 어떤 기술로도 구현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진다.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실망하곤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스크린 속 장면이 내가 그려 낸 장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책을 읽은 독자가 백 명이라면, 그 머릿속에는 백 개의 서로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그 차이는 저마다 살아온 경험과 기억이 글과 만나 빚어낸 것이기에, 어느 하나도 틀린 장면이 아니다. 영상은 이미 완성된 이미지를 건네지만, 글은 재료만 건넨다. 그 재료로 장면을 짓는 일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심리학자 파이비오(A. Paivio)의 이중부호화
2026-10-08 14:07학교폭력 대응이 갈수록 법과 절차에 의존하고 있다. 학생 사이의 갈등을 대화와 교육으로 풀어낼 여지는 좁아지고 심의와 처분 절차로 향하는 경향은 강해졌다. 학교의 교육적 해결 공간이 줄어드는 현실을 더는 가볍게 볼 수 없다. 최근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폭력 사안의 51.7%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심의로 넘어가 학교장 자체해결 비율 48.3%를 처음 웃돌았다. 학폭위 심의도 2021학년도 1만5653건에서 지난해 2만9405건으로 87.9% 증가했다. 전체 접수 건수는 최근 2년 연속 감소했는데도 학폭위 심의는 계속 늘었다. 이를 학교폭력이 심각해진 결과로만 볼 수는 없다. 교총은 그동안 학교폭력 대응이 대화와 관계 회복보다 법적 판단과 처분에 치우쳐 ‘교육의 사법화’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교사에게 사안 조사와 분리 조치, 학부모 민원과 법적 분쟁 가능성까지 떠안긴 결과 정작 갈등을 조정하고 학생 관계를 회복시키는 교육적 역할은 위축되고 있다. 물론 중대한 학교폭력은 엄정하게 다루고 피해 학생을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학생 사이의 모든 갈등이 신고와 조사, 심의와 처분으로 이어지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초기…
2026-10-05 09:10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2026 교육지표 결과를 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 비율은 OECD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 청년층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 권의 국가답게 높은 교육열과 인적자원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작 초·중등 교실을 들여다보면 암울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학급당 학생 수와 교사 여건은 여전히 선진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학급당 학생 수가 OECD 평균을 크게 웃돌고, 전국 교실 3곳 중 1곳(31.1%)은 학생 수 26명 이상인 과밀학급이다. 초임교사에 대한 대우도 개선이 필요하다. 2025년 기준 우리나라 초임교사의 법정 급여는 초·중·고 모두 OECD 평균 대비 84~89% 수준에 불과하다. 무너진 교권과 과도한 행정업무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정당한 보상마저 외면당하다 보니 저연차 교사들의 중도 퇴직도 계속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에 교육계는 교육재정의 안정성을 해친다며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또 같은 이유로 교원 정원도 줄이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2026-10-05 09:10
올해는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다. 한글날은 1926년 ‘가갸날’로 시작됐다. 당시 조선어연구회가 주축이 돼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해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했다. 1928년부터는 ‘한글날’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이후 1945년부터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게 됐다. ‘기역’ ‘기윽’ 둘러싼 논쟁의 의미 최근 ‘기역을 기윽으로 바꾸는 세계운동본부’에서는 ‘기윽·디읃·시읏’을 기존의 ‘기역·디귿·시옷’과 함께 복수 표준어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16세기 학습서 ‘훈몽자회’ 편찬 당시 자음자의 이름을 한자로 나타내는 과정에서 ‘윽·읃·읏’ 소리를 낼 한자가 없어 ‘니은·리을·미음·비읍’ 등과 다르게 부득이 ‘기역·디귿·시옷’으로 표기했는데 그것이 그대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한자 표기로 제약받던 시대의 관습을 한글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오늘날까지 고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다. 이 논쟁의 핵심은 “우리는 왜 그렇게 부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생겨난 배경을 찾아보며 적절성을 되묻는 태도다. 교육의 본질은 정답 전달을 넘어 이미 주어진 답에 의문을 품고 스스로 질문을
2026-10-05 09:10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참아 왔다. 학생과 학교, 교육을 위해서라면 조금 손해 보는 것쯤은 당연한 미덕이라 여겼다. 교사의 처우나 권리를 이야기하면 혹시 아이들보다 자기 이익을 먼저 앞세우는 교사로 비칠까 두려워 스스로 말을 삼키기도 했다. 묵묵히 교실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교사의 숭고한 도리라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하게 말해야 할 때다.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는 교육의 주체로서 바로 서기 위한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한 권리 행사다. 침묵하면 권리 지킬 수 없어 우리는 침묵한다고 해서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뼈아프게 경험했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당시 기여율은 7%에서 9%로 올랐고 연금 지급률은 1.9%에서 1.7%까지 단계적으로 낮아졌다. 지급 개시 연령 또한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늦춰졌다. 지금 교단에 첫발을 내딛는 후배들은 선배 세대보다 더 오래 내고 더 늦게 받는 조건 속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다. 방관했던 침묵의 무게는 고스란히 후배 교사들의 몫으로 남았다. 그렇기에 교사들이 모여 외치는 목소리는 단지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비 교사
2026-10-05 09:10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유난히 마음이 가는 아이가 있습니다. 준비물이 자꾸 없는 아이, 알림장이 늘 확인되지 않는 아이, 전화를 걸어도 며칠씩 연락이 닿지 않는 집. 학부모 상담 주간이 돼도 오지 않고, 학기 초 교육과정 설명회에서도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몇 주, 몇 달 이어지면 교사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학교 밖에서는 이 아이에게 누가 손을 내밀고 있을까, 걱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학교 조직내 자원 활용하기 이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무심한 학부모라는 말을 한 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하다고 보는 자리에 실은 여러 사정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아이가 잠든 뒤에야 집에 들어오는 부모, 자기 몸도 겨우 돌보는 조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가정, 아이 셋을 혼자 키우는 한 부모, 한국어가 서툴러 알림장을 읽기 어려운 이주 배경의 가정이 있습니다. 관심이 없어서 닿지 않는 것과 관심을 표현할 여력이 없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교사나 학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할 일의 방향을 조금 바꿔 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학부모를 바꾸려 애
2026-10-01 18:35
“누군가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어른이 돼주고 싶다.” 교직을 꿈꾸기 시작했을 때 한 번쯤은 이런 마음을 품어봤을 것이다. 한 사람의 성장과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마음. 어쩌면 이런 선의가 교직을 택한 이유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의 학교는 교사의 순수한 동기, 학생을 향한 관심과 책임을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바꿔놓기 쉬운 것 같다. 소명감은 교사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러나 때로는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여기는 교직 문화와 만나 왜곡되기도 한다. 학생을 위해 더 참고, 내색하지 않는 것이 좋은 교사의 모습처럼 여겨질 때 소명감은 자부심이 아니라 자기를 몰아붙이는 칼날이 된다. 헌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와 강박으로 바뀌고, 자신도 모르게 소진된다. 소명감이 자기희생으로 왜곡돼 특히 교권침해를 경험한 교사에게는 이 과정이 더욱 힘들 수 있다. 그동안 쏟은 노력과 믿음이 한순간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온 것이 폭언과 악성 민원이었다면 ‘나 때문인가?’하고 자신에게로 잘못을 돌리기 쉽다. 학생을 향한 사랑과 책임이 어느새 자기…
2026-10-01 18:35
인공지능(AI)은 어느새 우리 삶 전반에 스며들며 친숙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글과 그림, 영상을 만들거나 여러 정보를 정리하는 데까지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은 앞으로 청소년에게 필요한 중요한 역량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능숙한 사용과 판단·활용 달라 그러나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과 ‘기술이 제공하는 정보를 제대로 판단하고 활용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AI가 생성한 답변이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며, 온라인에는 사실에 근거한 정보와 허위 정보가 뒤섞여 있다. 이제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 못지않게 정보를 스스로 확인하고 판단해 책임 있게 활용하는 힘이 필요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한국아동·청소년패널조사’는 2025년부터 AI 네이티브인 알파(α) 세대와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을 반영해 ‘디지털 시민성’을 새롭게 조사하고 있다. 디지털 시민성은 온라인 정보의 안전한 이용과 판단, 개인정보 보호, 타인의 자료를 올바르게 이용하는 태도 등을 살펴본다. 여기에는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능력뿐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 필요한 책임과 윤리의식도 포함된다. 이 가
2026-09-21 09:10교권 침해사건은 현장에서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월 교총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장 교원들의 교권 침해 직·간접 경험률은 86.0%에 달한다. 그렇다면 피해 교원을 위한 지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한국교총은 교권 침해사건으로 고통받는 교원을 지원하기 위해 1975년 전액을 부담해 교권옹호기금을 조성했다. 교권 보호를 목적으로 기금을 마련하고 피해 교원을 지원하는 제도는 거의 유일하다. 매년 증가하는 교권 침해사건으로 사법적 공방을 벌이는 교원들을 위한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에만 2억 2000여만 원 지원을 결정했으며, 지난 50여 년간 총금액만 약 27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정작 국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교원은 국가 백년대계를 현장에서 실천하는 공적 주체다. 정당한 교육활동에도 불구하고 직위해제의 공포에 떨고, 거액의 선임료를 걱정하며 외롭게 법정 다툼을 이어가는 현실을 지금처럼 방기한다면 공교육 회복은 불가능하다. 또공무를 수행하던 교원이 소송을 당했을 때 국가가 아닌 민간 기금에 매달려 각자도생해야 하는 시스템은 정상이라 할 수 없다.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총은 악성민원 맞고소제 의무화 등을 강하
2026-09-21 09:10
교육공무원은 일반직 공무원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독특한 인사 체계를 적용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일호봉제’다. 교사는 입직과 동시에 호봉에 따라 일반직 6~7급 상당의 대우를 받으며 교단에 선다. 교육이라는 막중한 과업을 수행하는 교원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승진 체계 또한 단순해, 수석교사를 제외하면 교사, 교감, 교장이라는 3단계의 구조다. 행정 편의주의적 낡은 관행 존재 그러나 학교 현장의 조직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적인 모순과 마주한다. 전체 교원 중 평교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94.9%인 반면, 교감은 2.6%, 교장은 2.5%에 불과하다. 경기교육청 소속 일반직 공무원의 3~5급 선발 비율이 약 6.5%인 것과 비교해도, 교육공무원 내 관리자 직위의 비율은 극소수다. 그만큼 도달하기 어렵고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자리다. 하지만 좁은 문을 통과해 책임을 맡은 관리자와 단위 학교의 위상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단위 학교는 철저히 교육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독립된 행정 기관이다. 아울러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학교의 전반적인 업무인 교무(校務)를 관리하는 교감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특히 경기도립학교 설치조례 등에…
2026-09-21 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