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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읽는 책] 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다산책방 펴냄

 

흔히 <조선왕조실록>을 거론하며 한민족을 기록에 미친 민족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민족 말고 기록에 미친 민족이 또 하나 있다. 앵글로·색슨족이다. 정복자 월리엄이 영국을 정복한 후 세금 징수를 위해서 작성한 수천 쪽 분량의 토지 조사 기록 <둠스데이 북>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앵글로·색슨족의 기록에 대한 열정은 전기 문학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오죽하면 영미인들은 문학적 소양이 부족해 작가 평전을 집필할 때 쓸데없는 사소한 것까지 넣는다는 비판까지 있을 정도겠는가. 앵글로·색슨족이 남긴 작가 평전을 살펴보면 조선왕조의 사관이나 스토커처럼 평생 쫓아다니며 작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기록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록에 진심인 민족들

 

앵글로·색슨족의 작가 평전에 대한 열정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하다. 영미 문화권에서 도스토옙스키 연구 권위자로 인정받는 조셉 프랑크의 도스토옙스키 전기는 5권 전집으로 무려 2500쪽에 달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분량이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또 존스 홉킨스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한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의 전기는 2000쪽이다. 기록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도 한 작가에 대한 평전이 이토록 방대한 사례를 찾기 어렵지 않는가.

 

어쨌든 영미인들의 평전에 대한 집요함에 물꼬를 튼 작품이 있다. 1600쪽 분량을 자랑하는 영어 사전을 편찬한 <새뮤얼 존슨 전>이다. 새뮤얼 존슨의 추종자인 제임스 보즈웰이 쓴 <새뮤얼 존슨 전>은 그 방대한 분량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가치도 뛰어나서 문학사상 가장 우수한 평전이라는 찬사와 함께 ‘보즈웰’이라는 이름 자체가 ‘다른 사람의 일생을 헌신적으로 숭배하며 열정적으로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보통명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새뮤얼 존슨 보다 30살 연하인 제임스 보즈웰은 1763년에 창립된 ‘더 클럽(The club)’에서 함께 활동하고 담론을 주고받으면서 새뮤얼 존슨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품었고 이것이 <새뮤얼 존슨 전>이라는 대작을 남긴 원동력과 동기가 됐다.

 

직관·통찰로 재현한 백석의 생애

 

<새뮤얼 존슨 전>처럼 대작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빛나는 작가 평전이 있다. 안도현 시인이 쓴 <백석 평전>이다. 안도현 시인은 1961년생이며 백석은 1902년생으로서 동시대에 활동한 문인이 아니지만, 안도현 시인은 보즈웰이 품었던 새뮤얼 존슨에 대한 존경과 애정 못지않게 백석을 사랑했다. 스무 살에 처음 백석의 시를 접한 시인은 30년 동안 그를 짝사랑해왔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대단했다.

 

더구나 보즈웰처럼 해당 작가를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남긴 기록이 아니라 자료와 증언자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마치 신들린 듯한 직관과 통찰을 통해서 백석의 생애를 재현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저작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백석의 생애를 흥미롭게 펼쳐나갔다는 점에서 이 책은 문학 애호가뿐만 아니라 백석의 시를 한 줄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지게 된다.

 

물론 안도현 시인 본인이 시인이며 애초에 백석의 시에 반한 만큼 <백석 평전>에는 백석이 남긴 시와 안도현 시인의 감상이 자주 등장하지만, 백석을 곁에서 지켜본 것처럼 느껴지는 생생한 일화 또한 흥미롭다. 조선일보에 일했던 백석이 두세 달 치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야 살 수 있는 양복을 입고 일반 양말보다 몇 배나 비싼 양말을 신으면서 ‘양말이 남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며 남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완벽하게 꾸미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

 

또 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를 가진 백석이 워낙 깔끔해서 사무실 전화 수화기를 들 때 손수건을 싸서 들었다거나 문을 여닫을 때도 손잡이에 손을 대지 않고 손등이나 팔꿈치를 이용해서 문을 여닫았다는 일화도 흥미롭다. 그토록 갈매나무처럼 정갈했던 백석이 말년에 북한에서 농사일을 제대로 못 해 비웃음을 사고 남몰래 달빛 아래에서 김매기 연습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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