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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쉬는 시간]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

일본 교토의 시치조. 그곳에 가면 이총이 있어요.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들이 전공을 기리기 위해서 베어간 조선사람들의 귀와 코로 만들어진 무덤이지요. 무덤에서 몇 걸음을 더 가면 도요쿠니 신사가 있어요.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린 신사이지요. 우리에게는 원수, 그들에게는 명장. 그의 신사는 참 으리으리해요. 조선사람들의 귀무덤과는 참 대조적인 모습이에요. 동네 놀이터 옆에 휑하게 만들어진 몇천 명의 조그만 무덤과 한 사람을 위한 웅장한 신사. 눈 뜨고 코 베인 사람들은 죽어서까지 억울하지 않을까 싶어요.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은 조선 시대에나 있는 줄 알았어요. 역사 속에나 있는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생각했었지요. 교직은 그저 평화롭기만 한 줄 알았거든요. ‘학교에 있으면서 아이들만 제대로 가르치면 되지’하는 생각으로 다른 것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요. 설마,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처음 교직에 들어왔을 때와는 달리 우리는 이미 모르는 사이에 코를 베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요.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고생을 했으니 돌봄 전담사들에게 5일간 특별 휴가를 준다는 공문. 그럼 교사는 아무것도 안 한 걸까요? 오히려 긴급돌봄에 돌봄 전담사들은 투입할 수가 없어서 새로 인력을 뽑고, 늦게 가는 아이들을 위해서 야근까지 했던 선생님들은 상대적으로 허탈해져요.

 

부산시교육청에서 내려보낸 공문의 문구. 확진자가 발생하면 해당 학교를 엄중히 문책할 예정. 코로나 확진자가 생기는 것이 학교의 탓일까요? 아니면 교사의 탓일까요? 교사들은 그저 교육부와 교육청의 명령(!)을 따를 뿐인데도 개학하는 날부터 교사를 죄인 취급하는 행태를 보니 가슴이 답답하더군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다 교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 같아서요.

 

이 엄중한 시국에 코로나로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교육부는 입법 활동도 참 열심히 해요. 3월에는 교육공무직 처우 개선 관련 입법 예고를 했고, 5월 19일에는 초·중등교육법의 일부 개정을 입법 예고했어요. 초·중등교육법 개정의 골자는 돌봄교실을 방과후 학교에 포함해서 학교의 고유 사무로 규정하는 것이지요. 돌봄이 왜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업무가 되어야 하죠? 그동안 교사들이 하지 않아도 될 업무를 해서 고생했으면 이제는 복지부와 지자체에 넘겨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며칠 전에는 교육부에서 ‘학교 복합화’라는 이름으로 밤에는 학교를 동네 주민에게 개방한다는 내용을 발표했었어요. 그동안 학교가 폐쇄되었던 것은 성범죄와 폭력사건들을 비롯한 여러 사건·사고 때문이었는데, 앞으로 학교의 아이들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이총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어요.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써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 무덤은 전란 하에 입은 조선 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써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참 화나는 문구에요. 일본 사람들이 베어간 조선사람들의 귀와 코앞에 그런 문구가 있다는 것은요. 힘이 없던 민중의 수난이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요? 

 

교육부도 교육청도 교사와 함께 화합해야 하는 기관인데, 교사를 적으로 돌리고 군림하려는 태도를 보면 이총 앞에 새겨진 문구가 떠오르는 것 같아서요. 우리도 힘없던 예전의 선조들처럼 눈 뜨고 코도 베어주고 귀도 베어줘야 하는 걸까요? 그래서 그걸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걸까요? 

 

목소리 내지 않고 묵묵히 일하고 싶었어요. 교사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학교에서 보람을 느끼고 싶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코도 베어가고 귀도 베어가는 세상이에요.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복지에 해당하는 돌봄도, 보건에 해당하는 방역도 모두 교사가 책임져야 할거예요. 

 

이제는 교사들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요. 말을 해야 할 때는 큰 목소리로 주장을 해야 하는 시대지요. ‘그럴 수도 있지.’ 정신 승리를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앞으로 더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교육 현장에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숫자로만 봐도 55만. 정치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표심으로만 따져 봐도 우리는 결코 작은 집단은 아니에요. 자신을 낮추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목소리도 충분히 크게 들릴 거예요. 이제 우리도 목소리를 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