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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창고 정리는 마음 비우기

아들이 재택근무다. 나에게 베란다 창고 정리 허락을 받는다. 이사 온 지 15년 만에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직장 생활하면서 옷이 늘어나 창고를 옷장으로 쓰겠다는 것. 창고에서 나온 짐, 거실에 놓으니 걱정이다. 저것 치울 곳이 마땅치 않다. 덩치가 큰 것이 클래식 레코드판, 카세트테이프, 앨범, 아내 연구보고서다.

 

이 중 재활용 가치가 있는 것이 클래식 LP레코드판이다. 초등교사 시절,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내가 모은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기에 가다로그를 준비해 한 장 한 장 모았다. 월급 타면 용돈을 아껴 애지중지 모은 것이다. 바흐,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파가니니, 베버, 로시니, 슈베르트, 베를리오즈, 스트라우스, 멘델스존, 쇼팽, 슈만, 리스트, 바그너, 베르디, 주페, 스메타나, 브람스, 무소르그스키, 생상, 비제, 브루흐, 차이코프스키 등 우리 귀에 익은 음악 대부분 소장하였다.

이것 처분하기로 하였다. 가능하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넘기고 싶었다. 아들이 인터넷에 올리니 장사하는 분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가격은 단돈 몇 만원이다. 본전 생각이 난다. 당시 구입가가 3천 원인데 이건 아니다 싶다. 차라리 지인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 낫겠다. 페북에 올리니 댓글이 달린다. 부산 분인데 교육자 출신이다. 통화하니 거리 예술가이고 동요작곡가이다. 다행이다.

 

그런대 가격은? 나에게 묻는다. 중고품이라 구입가의 1/3을 제시했다. 거래가 성사되었다. 170장이면…. 그 날 시흥 사시는 형님에게 물건을 인계하였다. 15만원 받았다. 30년 이상 소장한 물건이다 보니 내 분신 같다. 서운하지만 이별을 고했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다. 어차피 작별할 것인데 먼저 이별한 것이다. 정년 5년 남기고 제2인생 시작하고 보니 새로운 출발을 빨리할 수 있어 좋다.

 

귀가한 아내. 레코드판 팔았다 하니 난리다. 총각 시절 한 장 한 장 구입하면서 애정과 추억이 담긴 애틋한 것을 왜 헐값(?)에 팔았냐고 다그친다. 팔기 전에 사전에 왜 의논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아내는 퇴직 후 그것을 활용해 음악감상 계획이 있었나 보다. 아내는 3천원에 샀으면 40년이 지난 지금 5천원을 받든가 1만원 정도는 받아야 하지 1천원이 뭐냐는 것이다. 마치 보물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이다.

내 답변이다. 레코드판, 15년 동안 쓰지 않고 창고에서 먼지만 쌓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 이것 활용하려면 앰프, 턴테이블, 스피커 새로 구입해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 몇 백 만원은 들어간다. 지금 영상시대인데 귀로만 듣는 세상은 지나갔다. 아내도 지지 않는다. 왜 소중했던 추억을 파느냐? 활용은 하지 않고 갖고만 있어도 소중한 자산이다. 아꼈던 물건은 함께 있는 것만으도 마음이 든든한 것이다.

 

냉랭한 기류가 한 시간 이상 흘렀다. 옆에서 지켜 본 아들은 시장가가 있다고 한다. 중고품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소비자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럼 수 백 개의 카세트테이프 어떻게 할까? 재활용으로 폐기 처분이다. 주요 녹음된 것이 FM 라디오에서 녹음한 유럽의 유행음악, 우리 가곡, 민속음악 등이다. 포크댄스 음악 등 앞으로 활용할 것만 남기고 플라스틱 재활용에 버리고자 한다.

 

교직 1년 후인 1978년, 용돈을 모아 당시 별표전축을 샀다. 대학 때 방송실에 있었기에 음악을 좋아했다. 대학 방송실보다 더 완비된 음반을 갖추고 싶었다. 중등 국어교사로 전직하기 전까지 대략 8년을 모았던 것이 음반 170장이다. 어머니로부터 잔소리도 들었다. 용돈만 생기면 음반을 구입해 들고 오는 아들이 철부지처럼 보였었나 보다. 그러나 음악이 좋았다. 음악은 나의 친구였다. 명곡 해설서를 읽고 같은 곡을 몇 차례 씩이나 듣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좋았다. 혼자서 음악을 흥얼흥얼거리는 것이 좋았다.

 

정 들었던 물건과의 이별 연습을 나는 마음 비우기라고 보았다.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한편으론 추억을 먹고도 살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싶은 것이다. 다만 아내와 사전에 의논하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총각 시절 내 돈으로 내가 모았지만 30년을 같이 보관한 아내도 어엿한 물건 주인이다. 아내의 퇴직 후 생활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지 않는가? 창고 정리도 마음 비우기도 함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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