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의 종이컵에는 빨간 물감을 풀고, 나머지 스물세 개의 컵에는 맑은 물을 담았다. 중학교 3학년 남녀공학 학급에서 진행한 성매개감염병 예방교육의 도입 부분이었다. 한 개씩 들고 서로 물을 조금씩 주고받았다. 한 사람이 다섯 명과 섞도록 하자, 음악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컵이 빨강빛을 띠었다. 처음에는 단 한 컵에만 있던 색이 여러 사람의 연결을 따라 퍼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을 상기시키는 동기부여로 진행한 것이었다. 활동의 핵심은 겉모습만으로 감염 여부를 알 수 없으며, 신뢰할 수 없는 사람과의 관계는 빠르게 성매개 감염병이 옮겨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부여한 것이다. 성매개감염병 가운데는 감염되어도 증상이 없거나 뚜렷하지 않아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따라서 ‘멀쩡해 보이니까 괜찮다’는 생각만으로 안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걱정되는 상황에서는 증상이 없어도 의료기관으로 이어지는 'Do Test'의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중학교 시기는 신체적·정서적 변화와 함께 관계의 폭이 넓어지는 때다. 이 시기의 예방교육은 앞으로 마주할 상황에서 자신과 상대의 건강을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제공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누구나 부담 없
4년 전 장애인의 날에 열린 음악회에서 3명의연주자와 함께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한 장애우단체에 소속된 피아니스트와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자였다. 그날 무대 뒤에서 피아노 연주모습을바라보다가 잠시 놀랐다. 악보가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피아니스트는 그 많은 곡을 모두 외워 연주하고 있었다. 건반 위로 흐르는 선율을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아 오래기억되고 있었다. 최근 그들이한 도시의 지역방송교향악단과 협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관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음악을 기다리는 설렘이 공연장 입구부터 가득했다.막이 오르고, 방송으로만 보던 지휘자를 눈앞에서 만났다. 지휘자의 곡 해설은 음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주었다. 소프라노의 노래와 색소폰의 음색, 피아노의 선율이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질 때마다 객석의 감동도 깊어졌다. 피아니스트는 약 27분 동안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1번 다장조」를 암보로 연주했다. 수많은 음과 쉼,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는 순간들이 그의 손끝에서 이어졌다. 관객들은 그 선율에 깊이 빠져들었다.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시각장애를 안고 그 긴 곡을 연주
“건네주신 감, 잘 먹겠습니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도 감 몇 알에 담긴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누군가에게는 가을이면 흔히 만나는 과일이겠지만, 내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한 사람의 정성을 함께 건네받은 선물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도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에서 열리는 감을 우리는 ‘고동시’라고 불렀다. 나무에 매달린 감이 붉게 익어 홍시가 되면, 그 달고 부드러운 맛으로 가을이 왔음을 느꼈다. 감이 익기 한참 전부터 감나무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내주었다. ‘감똘개’라 부르던 감꽃을 지푸라기 끈에 엮어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녔으며하나씩 따 먹으며 나무 아래를 맴돌았다. 꽃은 놀이가 되고 열매는 먹거리가 되었다. 감나무는 그렇게 어린 날의 몸과 마음을 함께 키워 주었다. 큰 나무에서 거둔 감은 곶감으로 말리고 홍시로 익혀 겨우내 먹을 간식으로 갈무리했다. 집안에 특별한 날이 있으면 어머니는 직접 팥시루떡을 만드셨다. 방앗간에서 빻아 온 쌀가루와 삶아 으깬 팥을 켜켜이 시루에 안치고 김을 올리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시루떡 위에 장독에 보관해 둔 살얼음 낀 홍시를 얹어 먹던 따뜻한 떡과 차가운 홍시가 입안에서 어우러지던 맛은 어머
대학 강의실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사회생활을 하다가 다시 배움의 길로 들어선 성인 학생과 외국인 학생들이 대학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고 있다. 내가 맡았던 강의실도 절반가량은 사회생활을 경험한 학생들이었다. 자녀가 결혼할 나이가 된 학생도 여럿 있었다. 자녀의 결혼을 축하하는 떡을 가져와 함께 나누는 날이면, 강의실에는 수업 이야기와 더불어 살아온 날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을 다시 책상 앞에 앉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가정과 일터에서 이미 많은 역할을 감당해 온 이들이 낯선 전공 용어를 익히고, 과제를 준비하고, 시험을 치르는 수고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은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과 소속 욕구, 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로 설명한다. 그 가운데 자아실현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펼쳐 가려는 욕구이다. 배움으로 하나를 이루면 다음 가능성이 보이고, 어제보다 성장한 자신을 만나면 또 다른 도전을 꿈꾸게 된다. 내게 성인 학생들의 학구열은 이러한 성장의 욕구가 삶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해가 일찍 저무는 겨울날의 수업이었다. 창밖에는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는 개방형 직위 채용에 응시했다.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우리 사회의 원칙이 실제 채용 현장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나이보다 전문성과 경험, 직무수행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시간 현장을 지켜 온 사람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문을 열어 주는 의미 있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면접장에 들어섰다. 1명을 선발하는 자리에 8명이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류전형에서도 탈락자가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최종 후보로 면접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학교에 있을 때 나는 학생을 평가하며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다면 나의 면접 역시 결과보다 그 과정에 얼마나 충실했는가가 중요했다. 합격을 향한 조급함보다는 주어진 기회 앞에서 준비한 것을 후회 없이 보여 주고 싶었다. 5명의 면접위원이 전문성과 조직 운영, 리더십, 지역사회 건강증진사업 등에 관해 차례로 질문했다. 나는 간호학 박사이자 간호사로서 쌓은 보건의료 전문성, 학교장으로 조직을 운영한 행정 경험, 대학 강의와 지역사회 건강교육을 통해 이어 온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답했다. “신종감염병이 발생하면
사진은 눈앞의 한순간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거와 그 뒤에 이어질 미래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사진 속에 스며 있는 사람들의 사연과 시간의 깊이도 온전히 보여 주지 못한다. 하나의 거대하고 평평한 화강암 바위가 품어 온 세월과 가치를 어찌 사진 한 장에 모두 담을 수 있을까. 수천 년 동안 흐르는 물을 받아 내며 몸을 깎고,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과 이애기를 기억해 온 바위의 이야기는 사진만 남아 있다. 금강산을 갈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정부의 햇볕정책과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등으로 남북 화해의 물꼬가 트이면서 1998년 11월 18일, 동해항에서 금강산 관광선이 처음 출항했다. 처음에는 배를 타고 북한의 장전항으로 들어갔고, 2003년부터는 버스를 타고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육로도 열렸다. 나는 금강산을 두 번 찾았다. 한번을 바닷길로, 또 한 번은 통일교육으로 육로로 다녀왔다. 첫 번째 방문을 앞둔 전날, 우연히 금강산 사진전을 보았다. 전시장 벽을 가득 채운 금강산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사진이니까 저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튿날 실제 금강
밤중에 도착한 메시지를 늦게 확인했다. 아침에야 쓰게 되는 답장이 늦은 까닭은 한국어교원 양성과정의 온라인 강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100시간의 이론과정을 이수하고, 이어 20시간의 실습을 마쳐야 국가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내년부터는 실습이 현장 중심으로 바뀐다는 정보를 접하고 서둘러 올해 과정에 등록했다. 국민내일배움카드로 교육비 일부를 지원받아 시작했지만, 추석을 지내느라 이틀간 강의를 듣지 못한 대가는 컸다. 밀린 강의가 산처럼 쌓여 며칠 동안 밤을 온전히 내어주어야 했다. 평생 한글을 읽고 쓰고 가르쳐 왔으니 한국어 공부쯤은 익숙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어를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문법과 발음 원리를 이론으로 풀어가는 공부는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모국어로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말을 ‘왜 그렇게 쓰는가’ 설명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배움이었다. 누군가는 이 나이에 왜 다시 자격증 공부를 하느냐고 묻는다. 공부할수록 자격증은 마지막을 장식하는 증서가 아니라, 새로운 봉사를 시작하기 위한 작은 열쇠라는 생각이 든다. 퇴임 후 간호대 초빙교수로 근무하면서 다문화간호과목을 강의한 적이 있다. 결혼이주여성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무료로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