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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의 세상 읽기 ⑦] 카메라

오늘날 우리는 카메라 기술에 의해 예술작품을 쉽게 감상할 수 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직접 가지 않아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Mona Lisa)를 보고 감상할 수 있다. 사진을 통해서 말이다. 영국 작가 매리 루이스 드 라 라메가 지은 동화(플랜더스의 개) 속 주인공 네로가 루벤스의 그림을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장면에 우리가 슬퍼할 일도 없을 것이다. 


카메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단면적으로 고정시키고, 그 이미지를 여러 번 재생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사진은 카메라에 의해 재생된 시각적 이미지이다. 이러한 사진의 기능은 예술작품의 가치를 획기적으로 전환시켰다. 종교회화에서 드러나는 전통적 예술작품들의 신적인 이미지는 우리에게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런 작품들은 종교적 제의(祭儀)에 사용되었다. 회화사에서 근대라는 시대의 정신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예술작품의 제의적 가치는 쇠퇴하였다. 그러던 중 사진이 등장하면서 제의 가치는 완전히 밀려난다. 대신에 예술작품의 전시(展示) 가치가 전면화된다. 즉, 사진에 의해 제의 가치에서 전시 가치로 예술작품의 가치가 획기적으로 전화된 것이다. 


이러한 예술작품의 시대적 변화를 예리한 지성을 통해 탐구한 사람이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책에서 예술작품의 제의 가치가 전시 가치에 의해 밀려나는 시대적 과정을 사진을 통해 설명한다. 아울러 이 책에서 그는 예술작품의 제의 가치의 조건이었던 ‘아우라(Aura)의 붕괴’를 말하였다. 아우라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원본을 ‘지금-여기’에서 볼 때 감상자가 느끼는 일회적인 특별한 분위기이다. 이런 아우라가 원본을 수없이 복제할 수 있는 사진에 의해서 붕괴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아우라의 붕괴는 예술작품을 대하는 감상자의 태도를 전면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루브르에 전시된 신적인 형상, 위대한 왕의 초상, 영웅의 모습을 보고 그 앞에 서서 숭배의 태도를 갖지 않는다. 산책하듯 지나가며 감상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작품과 감상자 사이에 놓인 시선의 주인이 바뀐다. 제의 가치를 지닌 작품에서 시선의 주인은 작품 속 대상이다. 반면 전시 가치로 전환된 작품에서 시선의 주인은 감상자의 눈이다. 작품이 우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눈으로 작품을 ‘본다’. ‘본다’의 주인이 바뀐다.


예술작품을 대하는 감상자의 태도 변화에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 및 행위 방식 그리고 태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들어 있다. ‘본다’는 행위의 주인이 됨으로서 우리는 세계에 대한 시각적 주체성을 확보한다. 보이는 것을 ‘나’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주체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이다. 사진은 우리에게 이러한 권리가 당연히 인정되게 만들어 줌으로써 ‘제2의 눈’으로 기능한다. 카메라가 우리의 시각 능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 시켰다는 점에서 얼굴에 붙어있는 눈이 선천적 시각기관이라면,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는 후천적 시각기관이다. 


오늘날 스마트폰에 고급 카메라 기술이 내장되면서 나타나게 된 사회적 현상인 소위 ‘인증 샷’은 ‘본다’의 권리를 지닌 주체의 사회적 소통의 한 방식이 된다. 아울러 이러한 사진 촬영이 역사적 사건 속에서 이루어지면 그 사건의 증거물이 된다. 벤야민은 이것을 두고 ‘사진의 드러나지 않는 정치적 의미’라고 하였다. 특히 대중의 정치적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이 가져온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 변화가 정치적인 진보를 이뤄낼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언제 어디서나 ‘셀카봉’을 즐기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사진이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개인적 체험의 회상에서 사회적 사건의 증거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사진을 재생하는 카메라에 의해서, 우리는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현상에 대한 ‘본다’의 주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무엇을 보고 찍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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