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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통일교육의 현실과 과제

평화와 통일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국민의식은 지난 시기과 비교해 상당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흔히 말하는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응답은 세대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불필요성에 대한 응답이 늘어나고 있다.

 

반면 평화에 대해서는 대체로 모든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고 평화를 당면의 현안으로 더 시급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를 근거로 평화를 앞세우고 통일을 먼 훗날의 일로 돌려놓는 것이 바람직하고 합리적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평화와 통일의 관계, 이를 풀어나가는 방법과 내용, 교육을 고민하게 된다. 특히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날 평화와 통일의 교육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풀어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평화와 통일 사이에서 혼돈을 겪고있는 학교 통일교육의 현주소와 함께 평화통일 교육의 쟁점과 과제를 살펴본다. 특히 빠르게 변해가는 학생들의 통일에 대한 시각과 대북관을 학교교육과정에 어떻게 접목 시켜 나가야 할지를 모색해 본다. 통일안보교육에서 평화통일교육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지금, 학교 통일교육은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학교 평화·통일교육이 직면한 현실

지금 학교 통일교육은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사회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천명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이어진 남북정상의 만남으로 적대적인 남북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려는 노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러나 남북한 관계 발전과 비핵화를 위한 북미회담 진전의 선순환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구체적 합의 없이 힘겹게 이어지던 북미회담이 하노이에서 합의 없이 끝남에 따라 한반도 평화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국내외 변화는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한 채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시민의 역량’이란 과제를 학교 통일교육에 던져 주었다고 볼 수 있다. 2018년부터 통일부와 교육부도 통일교육의 명칭을 ‘평화·통일교육’으로 바꾸고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교육적 관점과 논리로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통일부에서는 현재의 통일교육지원법의 틀 안에서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평화·통일교육으로 다양한 층위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하여 ‘평화·통일교육의 방향과 관점’을 과거보다 유연하고 평화 지향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도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방법으로 새로운 평화·통일교육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작업 자체만으로 학교 현장에는 큰 힘이 되지만, 통일교육지원법과 교육과정의 개정 없이는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요청하는 시대에 적합한 내적 일관성을 갖춘 학교 평화·통일교육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가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물론 과거 반공교육이나 안보교육을 강조할 때처럼 정부가 엄격하게 지침과 방향을 학교에 제공할 때와는 달리 지금은 많은 통일교육 관련 학자·교사·활동가 등이 결합하여 다양한 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학교 평화·통일교육의 프레임을 제대로 짜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는 정권의 변화, 대북정책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정치적 관점’의 통일교육의 전환이 아니라, ‘교육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평화·통일교육의 정립이 필요해졌다.

 

학교 평화·통일교육의 어려움과 새로운 과제

통일교육원에서 2018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학교 통일교육이 원활하게 운영되지 않는 이유’로 통일교육 시간 확보의 어려움(58.1%), 통일교육이 이념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40.4%), 통일교육수업 활용자료의 부족(36.2%), 교사의 통일 관련 전문성 부족(30.5%), 교사의 통일교육 의지 부족(14.9%) 등의 순으로 들었다.

 

통일교육 시간 확보는 통일과목을 선택과목으로 채택하거나 추가적으로 시수를 확보하는 것으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다양한 교과에서 자연스럽게 통일교육을 할 수 있도록 평화·통일교육과 연관된 성취기준을 확대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리되면 교과 특유의 개념이나 지식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평화와 통일을 생각하고 표현하는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설문조사에 나타난 나머지 이유는 어느 정도 서로 연관되어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어떤 가치나 당위성을 설득하는데 주력한 통일교육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감수성·상상력·문제해결을 위한 행동 등을 포함하는 시민역량중심의 통일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면 통일의 필요성(통일이 필요한 이유)을 설득할 것이 아니라, 분단 현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나 통일이 실현되면 지금의 어떤 불편이나 고통이 사라질 것인지) 자유롭게 상상하고 토론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되면 분단의 문제에 대한 접근은 이념적 논쟁의 차원이 아니라 삶의 문제해결 차원이 된다. 답이나 방향을 정해놓고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은 오히려 통일과 평화를 학생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유리시킨다. 그리고 평화·통일수업 활용자료는 우선적으로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 친구들과 함께 채울 수 있는 활동 중심이어야 한다. 또 평화·통일에 대한 충분한 사전 지식을 갖지 않은 학생과 전문성을 갖지 않은 교사라 할지라도 쉽게 활동하고, 그 활동을 이끌고 싶은 매력을 가진 활동자료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분단국가의 시민역량은 무엇이며, 어떻게 활동 중심의 활동자료로 시민역량을 함양할 수 있을까?

 

평화적 시민성 함양을 위한 상상과 교섭

교실 수업·동아리활동·체험학습 등 학교 교육과정에서 평화·통일교육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학습자중심’, ‘협동학습’, ‘토론수업’ 등으로 만족할 수 없는 더 구체적인 명제들을 필요로 한다. 교사와 학생은 그동안 통일교육시간에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을 위축받아 왔다. 반공교육·안보교육이 각인시킨 적개심과 상상력의 두려움, 우리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구조적 폭력이나 문화적 폭력의 존속이 그 이유이다. 학교 평화·통일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학생뿐 아니라 교사가 문화적 폭력을 성찰하며, 자유롭게 상상하고 말하는 평화적인 학습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적인 학습공간 속에서 한반도의 분단과 그에 따른 반(反)평화적인 상황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 행동하는 ‘평화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평화적 시민성 교육이 요구되고 있다. ‘평화적 시민성을 함양하는 통일교육’은 여전히 분단 상황의 극복과 통일의 진전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교육을 통해 평화를 실천하는 경험 학습과 평화로운 관계 회복 학습을 통해서 성장을 돕는 참여 학습이 필요하다.

 

평화적 시민성을 함양하기 적합한 교육자료의 사례로 경기도교육청이 개발한 <평화 시대를 여는 통일시민(창비, 2017)>(이하 ‘통일시민’이라고 함) 집필 경험을 중심으로 기술해 보고자 한다. 통일시민 교과서는 지식을 전달하는 바탕글이 없는 네러티브 워크북이다. 이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활동에는 정답이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태도이다. 그 과정에서 저마다 평화와 통일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예를 들면 단원의 이름도 ‘통일의 필요성’이 아니라 ‘한반도와 우리의 삶’이다. 이 단원에서는 통일의 필요에 관한 객관적 지식이 아니라 축구선수 정대세의 삶을 제시한다.

 

삶의 이야기를 포함하는 문화에 대한 명시적인 지식은 우리가 교섭하고 주고받을 때만 창조되고 성장한다. 혹은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James Geertz)의 은유로 표현하자면 문화는 타자와 그것의 의미의 공동적 교섭을 통해 항상 명백해질 필요가 있는 하나의 애매한 텍스트와 같다. 사회적 구성주의자인 브루너(J. Bruner)는 우리가 마주치는 것에 당황할 때, 그것의 의미를 주위 사람들이 믿는 바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혹은 여하튼 우리가 언어를 통하여 획득한 상징적 세계의 한계 내에서 재교섭(renegotiation)한다고 했다. 정대세의 이야기는 학습자가 정대세의 삶을 상상하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토론 등과 같은 명시적 교섭 뿐 아니라 쪽지 열람과 같은 활동을 통해 자신의 분단의 이야기를 만들도록 하는 애매한 텍스트이다.

 

또한 통일시민 교과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상상하고 다른 사람과 교섭하여 그들의 힘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자 했다. ‘남북한이 함께 만드는 세상’ 단원에서 남북한이 함께 할 수 있는 협력사업을 설계하는 과제를 수행하기 전에 그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기르는 활동들이 앞에 배치된다. 각자 남북한 협력사업을 찾아서 서로에게 소개하여 다양한 협력사업을 섭렵한 후에, 협력할 때 남한이 유리한 점과 북한이 유리한 점들을 찾아보고, 남한의 유리한 점과 북한의 유리한 점을 결합하여 남북한이 협력할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해보는 활동이 그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거쳐서 마지막에 남북한 협력 사업을 모둠별로 설계한다.

 

통일시민 교과서는 활동과 활동 사이에 논리적·기능적 연계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분단이라는 비평화적 상황을 극복하여 적극적인 평화 만들기로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자 하였다. 활동자료의 구성을 탄탄히 하여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활동의 단계들을 건너가다 보면 최종적으로 학습목표를 스스로 달성하는 구조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