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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귀부인들이 모여서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석들을 한참 자랑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검소한 차림의 부인이 안방에서 자고 있던 아이를 안고 나오며 나의 보석은 "이 아이예요"했다는 일화가 생각이 난다.
 

특수교사인 나에게도 이런 보석 같은 일화가 있다. 첫 발령 학교에서의 일이다. 구강 구조 이상으로 턱받이를 하고 있는 효성이(가명)와 6명이 나의 첫 제자들이었다. 그 해 수업 공개 시간 때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내 수업을 여러 선생님과 장학사님이 참관하자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효성이가 갑자기 의자 밑으로 기어와 내 치마 밑으로 숨는 것이 아닌가? 낯선 광경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안아 주며 긴장감을 풀어 주었다.
 

그렇게 당황스럽게 만들던 아이는 졸업 후 사업하던 아버지가 감옥에 가게 되자 화장품 포장 일을 하면서 그 가정의 가장 역할을 한다고 했다. 우연히 만난 효성이의 어머니는 울먹이며 효성이를 자랑했다. 지금도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고 있는 것이 뿌듯하기만 하다. 
 

나의 청년 시절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고만 고만한 가정에, 서로 끌어주고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하는, 지금보다는 많은 형제나 자매가  있었다. 그 중에는 맏딸과 장남의 역할을 하느라 책임감을 과묵으로 포장하며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청년의 시기를 지나 왔다. ‘우리 때’라는  말은 이미 다 지난 ‘옛날 얘기’가 되어 버려 꺼내기도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다. 
 

이렇게 세대가 다르지만 아프다는 청춘들을 먼저 겪은 선생님들은 지금의 학생들과 졸업 후 사회에 나간 학생들을 걱정하고, 때로는 사회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회가 나아지기를 기원한다. 선생님들은 한 해 한 해 가르쳤던 학생이 졸업하고 상급 학교로 진학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나 소식을 전해들을 때 무르익는 선생님이 된다. 해마다 썰물처럼 떠나 버린 졸업생의 빈 자리 앞에서 허전한 마음을 가지고, 그 자리에 새 학년의 학생이 채워질 때 선생님은 빈 자리를 잠깐 잊는다. 
 

특수 교사라 하면 으레 힘들겠다 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데 그것은 때로 부담이며 대화하고자 하는 내용을 곁가지로 흐르게 한다. 인사치레가 길어져 해야 할 말을 못할 때가 있다. 학교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아 힘든 것은 일반 교사나 특수교사나 매한가지다.

 

특수교사는 힘든 일도 많지만 또 그만큼 소소한 사연과 감동을 넘어 마음을 울리는 보물 같은 사연들도 많이 접한다. 힘든 문제와  사건도 많지만 그 속에서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무궁무진한 인간미와  원형에 가까운 자연미를 발견하곤 한다. 때 묻지 않고 유행을 따르지 않는 특수학급에서의 일들은 글감, 시의 소재로 삼지 않을 수 없다. 매일 소소하게 일어나는 일들과 웃음짓게 하는 사연들은 나만 알고 있기엔 아깝고 소중하여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그 소질을 갖지 못한 나의 재능을 한탄하기도 한다.
 

기억 너머 떠오르는 학생이 있다.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학생 이야기다. 아버지의 희귀병을 장애가 있는 두 자녀 중 큰 아이가 물려받은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학교에서의 촬영은 어려워 집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촬영하기로 한 날, 하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추웠다. 촬영 목적이었지만,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사는 환경이 궁금했다. 가정 방문은 학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곤 한다.
 

버스에서 내려 주소지를 들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한참 지나도 그 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덩그러니 인삼밭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그 비닐하우스 중 한 동이 내가 찾고 있는 집이었다. 검은 차광막이 쳐져 있는 비닐하우스 안의 방으로 들어갔다, 편치 않아 보였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반가이 맞아 주셨다. 어느새 저녁. 싱크대 위 전기밥솥의 추가 요란하게 흔들리면서 저녁밥이 끓고 있다는 걸 알렸다. 학생의 환경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이 절박했다.

 

방송에 나온 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성금이 모였다. 큰 도움을 받았다며 아버지는 내 책상 위에 새끼 손가락만 한 장뇌삼 두 뿌리를 올려놓고 가셨다. 이 일 이후 나에겐 소망이 하나 더 늘었다. 능력이 된다면 사회공헌활동에 동참하는 교사가 되는 것. 이 소망은 아쉽게도 요원하다. 
 

이런 에피소드도 생각난다.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한 친구가 아버지가 엄마와 큰소리로 싸운다고 불만을 말하자  다른 학생이 갑자기 큰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이야기를 꺼내며 울고, 또 다른 곳에서 그게 뭐 대수야? 나는 아버지가 가출해서 집에 안 들어와, 라며 사연을 털어 놓는 바람에 울컥했던 일이다. 그 눈물 바람에 수업이 상담 치료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 외에도 요리사가 된 학생, 의류 판매원이 된 제자,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달리기 1.2.3등을 우리 학급이 차지한 일 등 학생들과 동행 하면서 얻은 보물 같은 사연들이 많다. 특히 장애로 인해 파양 당한 아이를 입양하여 가슴으로 기른 어머니의 사랑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 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선생님도 성장한다.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고 이웃에게 따뜻한 의자 하나쯤 내미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키운다. 언제나 그랬듯 ‘지금은’ 힘든 시기라 한다. 누구나 모두가 신체적, 환경적으로 하나쯤 부족함을 가지고 산다.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자.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아직은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