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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나타내는 글자는 한자로 ‘사(史)’다. 이 뜻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설 중 청나라 고증학자들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첫째, 사람이 붓을 들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요, 둘째로 치우침이 없는 중정(中正)을 의미한다. 중(中)을 받들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균형된 시각의 역사관 가져야

 

첫째의 ‘붓을 들고 있다’는 것은 ‘기록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고대사회는 농업 중심이다 보니 하늘(天)의 움직임이 중요했다. 즉, 사(史)는 천(天)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천(天)은 천명(天命)을 뜻하며, 하늘의 움직임을 해석해 인간들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사(史)의 역할이다.
 

그런데 한나라 때에 사(史)의 역할이 확대돼 천명을 받은 천자(天子) 즉 ‘군주’의 언행을 기록했다. 이들은 당대의 군주뿐만 아니라 과거 군주의 언행까지도 기록했다. 한나라에서는 사(史)를 벼슬로 ‘태사령(太史令)’이라 불렀다. 대표적인 사람이 동양 역사학의 아버지 사마천이다.
 

둘째의 중정은 ‘균형’을 뜻한다.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직필(直筆)을 말한다. 고려왕조실록이나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기록정신의 바탕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공부하거나 기록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이 근현대사다. 살아있는 역사를 다루기 때문이다.
 

역사학과 역사는 다르다. 역사학은 과학으로 사실의 엄밀성과 해석의 합리성을 따져야 한다. 그런데 역사는 이념으로 주관이 개입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남북분단으로 인해 역사학도 강한 이념성을 띠었다. 역사를 보는 눈이 좌파와 우파의 사관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놓고 해석이 다르다 보니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상대를 비판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등 자신의 목적에 역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제주도 김만덕 할망의 ‘은광연세(恩光衍世·은혜의 빛이 세상에 퍼지다)’를 떠올릴 때인 것 같다. 제주도민들은 아픔이 많았다. 세금 부담과 탐관오리의 수탈에 못 이겨 양수가 일으킨 봉기(1168), 몽골의 침입에 끝까지 항거한 삼별초 항쟁(1273), 대한제국의 수탈로 일어난 이재수의 봉기(1901)까지 제주도민들은 끊임없는 항쟁의 역사 그 자체였다. 최근 가장 제주도민들에게 아픔을 준 것은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4.3 사건’이다.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에 일어난 전쟁은 수많은 제주도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자신을 천대한 사람까지 구휼

 

김만덕 할망도 아픔을 갖고 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관기가 되어 어려움과 아픔을 겪은 김만덕 할망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관기에서 해방돼 본격 사업의 길에 들어섰다. 정조 18년(1794)에 제주도는 극심한 흉년이 들었다. 제주도는 화산지형이라 벼농사를 지을 땅이 없어 식량이 부족해 육지에서 쌀을 구입해야 했다. 전라도지방에서 300석의 쌀을 마련한 김만덕 할망은 일반 백성은 물론 부모를 여의었거나 관기로 있을 때 자신을 천대했던 사람들까지 구휼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제주도민을 비롯해 대한민국 국민들이 김만덕 할망의 ‘은광연세’로 서로를 위로하며 통합의 길로 들어섰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