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을 볼 때면 예나 지금이나 항상 마음이 무겁다.
작은 힘이지만 도움을 전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한 끝에 신문배달을 시작하게 됐고 벌써 5년이 흘렀다.
새벽에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150여 가구에 신문을 배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숙련된 신문배달 전문가가 됐다. 장마비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도 새벽 4시 반쯤 집을 나섰다. 비오는 날에는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자체가 위험한 일인데 중학교때부터 써온 안경은 더없이 불편했다. '조심하자'며 마음을 가다듬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배달을 시작한지 10여분, 한 사무실 1층 현관을 힘차게 뛰어들어가는 순간, "꽝!"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나는 두손으로 얼굴을 움켜쥔 채 쓰러지고 말았다. 다른 날에는 그렇게도 잘 보이던 현관 유리문이 그날따라 전혀 보이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뛰어들어가다 현관문과 키스를 했으니 충격은 엄청났다. 안경이 산산조각나면서 눈 주위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시간 내에 배달을 마쳐야했고 출근도 해야했다. 안경을 벗으면 1미터 앞도 식별 못하는 시력이었지만 살금살금 운전하며 배달을 다시 시작한지 10여분. 이번에는 그만 공사 중인 커다란 웅덩이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그 상황에서도 신문을 적셔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문들은 이미 물 위에 둥둥 떠있었다.
이마가 찢어진 얼굴로 출근을 했더니 아이들이 "야, 선생님 어제 집에서 얻어맞았나봐. 눈이 시퍼래" 한다. 웃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낮이나 밤이나 현관을 들어설 때 먼저 왼손을 쭉 뻗어 현관 유리문이 닫혀있는지 열려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일 새벽에도 변함없이 밝게 웃는 제자들을 생각하며 신문배달을 나갈 것이며 또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왼손으로 현관문을 확인하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