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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손오공이 돌아 왔다

어린이잡지의 부록 만화 손오공이 몇 십권이 사라지고 없었는데, 말썽꾸러기 반장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아이들을 꼬여 내어서 가져다 팔아던 책들을 모두 찾아다 놓았다는데????

우리 반에서 약간 부끄러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학교 도서관을 담당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학교도서관에 두어야할 월간잡지 [어깨동무]의 부록으로 나온 <손오공> 만화책을 우리 교실에 가져다 두고 우리 반만은 마음대로 볼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것이 한 권 두 권 조금씩 없어지더니 어느새 반도 넘게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이미 눈치를 채신 선생님은 가만히 지켜보았지만 쉽게 가져간 아이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보성군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라고 이름이 알려진 우리 학교를 관리하고 꾸미는 일을 맡아서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늘 화단에서 꽃을 심어 가꾸고 나무를 손질하고 하시니까 공부시간이 끝나면 거의 교실에 계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쫓기시면서도 우리 반을 위해서 특별히 만화책을 가져다 주신 것인데 이런 사고가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보다 못한 선생님은 드디어 우리들에게 양심을 가지고 생각해 보라고 말문을 여셨습니다.

“여기 좀 보아라, 여기에서 여기까지 이 만화책이 각권마다 20권씩을 가져다 꽂아 두고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가량이 없어지고, 요것만 남았으니 이걸 누구 다른 반이나 도둑이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반의 너희들 집에 보려고 가져다 둔 사람은 내일까지 모두 가져다 두도록 하여라.”
하고,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사흘이 지나도록 겨우 다섯 권이 돌아왔을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책을 잃어버린 것도 화가 났지만, 우리 반의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속이려고 한다는 것이 마음 상해 하셨습니다.

“너희들을 도둑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전번에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도 책이 안돌아오고 있으니, 누군가가 가져가고도 안 가져다 두고 ‘나는 안 그랬습니다.’하고 있으니 이것은 도둑이 되는 것이다. 이젠 너희들이 이 책을 모두 찾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 반 모두가 도둑으로 불리거나 한 가지를 해야 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겠니? 너희들을 도둑이라고 해도 괜찮겠니?”

선생님이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누군가는 마음속으로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야 ‘제가 가져갔습니다.’하고 나설 수는 없게 되어 버렸다.

선생님은 몹시 속이 상하시는 눈치이시고, 우리 반의 아이들은 무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김은 우물속처럼 조용하지만 무거운 기운이 머리를 잡아 누르는 듯하였습니다. 아마도 ‘이거 어쩌지? 이제야 제가 가져갔습니다.’ 할 수도 없고 정말 큰일이네....‘하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에이 나쁜 자식들, 누가 그걸 가져가 가지고 이렇게 나까지 도독이 되고 말았잖아!’ 하고 누군가 그런 짓을 한 사람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날 오후 공부가 끝나고 모두들 돌아가고 나자, 반장 정수는 선생님에게로 다가가서
“선생님, 제게다 교실 열쇠를 좀 빌려 주십시오.”
하고,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의아한 눈으로
“무엇하려고?”
하며, 정수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제가 만화책을 찾아 놓겠습니다.”
“어떻게 찾는단 말이냐?”
“죄송하지만 사흘만 시간을 주십시오.”
“글쎄,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다 찾아 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수는 한사코 말씀을 드리지 않고 열쇠만 달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하는 수 없이 열쇠를 정수에게 맡겼습니다.
그 날 오후에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 우리들 중에 몇 사람은 정수에게 불려갔습니다.
“야, 영춘아, 우리 선생님이 내게다 열쇠를 맡기셨다. 이 열쇠를 줄 테니까 너 교실에 들어가서 만화책 세 권만 가지고 나올래. 그럼 우리 오늘 저녁 내내 공짜로 만화를 볼 수 있잖니? 너도 해봤지? 난 딱 한권 가지고 갔는데 ,우리 선생님은 그런 것을 모르시더라.....”
하고 달래니까, 영춘이는
“나는 두 권을 가져다 팔아먹었어. 아까는 아실까봐 무섭더라야.”
“뭘 네가 두 권만 가져가, 유건이가 봤는데 다섯 권이나 가져갔다고 하던데....”
이때서야 영춘이는 ‘아차’하고 생각을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가져간 다섯 권을 가져다 놔. 만약에 안 가져다 놓으면 내가 친구들에게 모두 다 털어놔 버릴 테니까.”
“아냐, 난 정말 세 권 밖에 안 가져갔어...... ”
“또 거짓말, 아깐 두 권이라고 했는데 이제 왜 세 권이니?”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불려갔던 아이들은 모두다 몇 권씩을 가져다 두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단 하루만 시간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무소리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자기가 가져다 팔거나, 바꾸어 버린 책보다 한두 권을 더 가져오라고 하여도 이젠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반장 정수는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난 소문난 아이였습니다.

정수는 4학년 때부터 동네에서 너댓 살이나 위의 형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그 형들과 같이 온갖 나쁜 짓들을 하였습니다. 형들이 하는 대로 담배를 피우고, 구두 닦는 형들과 화투를 쳐서 돈내기 노름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 일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돈을 훔쳤습니다. 불쌍한 어머니가 생선을 팔아서 한 푼이라도 벌겠다고 온종일 헤매고 다니다가 지쳐서, 저녁 일찍 잠이 들면 돈주머니에서 돈을 빼어내는데 한두 번이 아니고, 처음에는 자기가 사먹을 만큼의 돈만 가지고 나오더니, 나중에는 그 돈주머니를 통째로 들고 도청소재지인 광주로 나가서 며칠이고 돌아다니며 돈을 다 써 버리고 거지꼴이 되어서야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4 학년 때에도 두 번씩이나 이런 짓을 해서 학교에서는 이미 소문이 나 있는 아이 입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이미 틀린 아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이 입니다. 5 학년에 올라와서 얼마 되지 않은 4월 초순에 정수는 6일째 결석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정수의 일을 자세히 알아보시더니 드디어 오늘은 정수가 집에 있다는 것을 아시고서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선생님은 정수가 꼼짝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신 것입니다. 무섭게 나무라거나 때리거나 벌을 세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선생님이 들고 가신 [피노키오의 편지]라는 책을 일부러 모른 척 두고 오신 것이었습니다.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하면 코가 쑥쑥 자라는 대목에 여기까지 읽었다는 표시로 담뱃갑에서 빼낸 은박지를 4겹으로 잘 접은 것을 꽂아 두기만 한 것입니다. 

정수는 선생님이 두고 가신 책을 돌려 드리려고 하다가 종이가 꽂아진 곳을 펼쳤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걸 다 읽으셨어?’ 그런데 책을 펼쳐본 정수는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정수 집에서 선생님 댁까지는 3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는데 정수는 책을 읽느라고 가져다 드리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 정수 왔구나. 아주 잘했다. 난 오늘 또 안나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지?”
하고,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정수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선생님 어제 이 책 제가 조금 덜 읽었는데, 다 읽고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선생님께 책을 내밀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래? 책이 재미있었니? 나도 재미있어서 읽다가 두었거든, 그럼 정수가 먼저 읽고 주려무나. 내가 나중에 읽지 뭐......”
하시면서 정수에게 다 읽고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책에 재미를 붙인 정수는 선생님께 다음 책을 골라 주라고 조르곤 하여서 책읽기에 빠지면서 나쁜 짓을 잊고 살게 되었고, 그런 정수를 6학년이 되자 교장 선생님께 ‘정수를 반장’을 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6학년 담임을 맡으셨고 드디어 정수를 반장을 시키신 것입니다. 정수의 지난 일을 아시는 다른 선생님들은 걱정들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생님은 틀림없이 정수를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 선생님들과 내기를 걸기도 하실 만큼 정수를 믿고 아끼셨습니다.
 
이런 정수에게 자신이 걸려들었으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영춘이,상수,종식이,춘식이,종갑이,윤숙이,상미 그럭저럭 열 명 가까이 된 아이들이 모두 정수에게 걸려들어서 할 수 없이 책을 사와야 했습니다. 물론 자기가 가져간 것보다 한두 권은 더 맡았을는지 몰라도 자신이 한 일이 있으니까, 아니라고 버틸 수도 없었습니다. 정수는 우리반 아이들이 만화책을 가져다 팔았던 책방의 단골이었으니, 만약 아니라고 했다가 아저씨하고 직접 대면을 해서라도 다짐을 받고 말 정수인데 그러면 자신이 더 곤란해 질 것이니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책방아저씨에게 물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하나 찾아서 꼼짝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사흘 만에 책장에는 만화책이 거의 다 돌아 왔습니다. 우리들도 놀랐지만 선생님도 깜짝 놀라신 눈치였습니다.

“야! 정수 어떻게 된 거냐? 언제 이렇게 책들이 다 돌아온 거야?”하고 반장인 정수에게 물으셨습니다.

책을 가져갔다가 다시 사와야 했던 아이들은 혹시라도 정수가 자기들의 이름을 말할까 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얼굴에는 화롯불을 뒤집어 쓴 것처럼 화끈 거렸습니다.

“예? 그냥 아이들이 자기가 가져간 것을 다시 가져온 것입니다. 다른 사람까지 도둑이 되게 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정수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가져 온 것이라고 하고 말았다.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와아. 정수! 정말 고마워! 네 은혜 잊지 않을 께....‘ 하는 마음으로 정수를 바라보았습니다. 금방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움직임으로 수십 개의 눈동자가 정수에게 모였다가 흩어졌습니다.

우리 교실은 또 이렇게 조용히 어려운 고비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