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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 교육 목표는 제자들 월급 300만원 이상 받게 해주는 것"

[사람이 꽃] 윤정현 전남 정남진산업고 교사

가난한 시골 아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기술'
밤10시까지 자격증 지도…평균 10개 이상 취득

교사는 5번째 직장, 기업체 다니다 32살에 입직
아이들 인생 흐름 바꾸는 데 큰 보람 느껴 정착

지역·환경 따라 특성화고 교육 여건 천차만별
현장실습·도제교육 등 획일적으로 요구 말아야


'부릉, 부아앙' 힘찬 자동차 엔진 소리가 연속해 교정에 울려 퍼진다. 엔진이 한 번 울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에 잠깐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목이 컥컥해지지만, 실습에 참여한 학생들의 표정은 흔들림 없이 진지하다.
 
이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미래 사회에 이바지하는 산업 역군 같은 거창한 꿈이 아니다. 자신과 가족이 영위할 삶의 터전을 스스로 만들고 지켜나갈 수 있는 당당한 사회인이 되고 싶다는 현실적 바람이다.  
 
윤정현(58·사진) 전남 정남진산업고 교사는 이런 학생들에게 있어 삶의 이정표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다. 윤 교사는 1992년 섬마을 중학교 기술 교사로 입직, 1995년 농산어촌 특성화고로 자리를 옮겨 23년째 자격증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10년 전부터는 매일 밤 10시까지 방과후 과정을 운영, 매년 졸업생들이 평균 10개 이상의 자격증을 갖고 교문을 나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는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가난한 시골 아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기술을 갖는 것"이라며 "자격증 취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꿔가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자격증 취득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있다면.
"처음엔 자격증 교육을 하면서도 이게 잘하는 건지 확신이 없었어요. 그러다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졸업한 제자들이 현대·기아자동차 등 대기업에 쉽게 입사하는 모습을 보고 내 방식이 괜찮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이렇다 할 연줄도 없는 시골 아이들이었는데 도시 학교와 비교해도 더 취직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며 실력이 인정받았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매일 밤 10시까지 실습실 문을 열고 공부하고 싶은 아이는 언제든 찾아와 공부하고 연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제자들이 평균 10개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는데, 실제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요.
"사회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취업할 때는 해당 직종과 관련된 자격증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그 산업이 없어지거나 할 경우엔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취직이 아닌 자영업을 할 때도 특정 분야만 아는 것보단 폭넓은 지식을 갖추는 게 훨씬 도움이 되지요. 그렇다고 전혀 연관성 없고 도움 안 되는 자격증을 마구잡이로 공부하게 하는 건 아닙니다. 연관된 자격증을 기초분야부터 연결해 공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 교사가 아무리 강조해도 결국 성취하는 건 학생 몫인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사회의 모든 일이 그렇듯 마음을 움직이는 게 중요합니다. 도시 지역과 달리 시골은 아직도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특성화고에 옵니다. 주로 중학교 성적 80~90% 정도 되는 아이들이지요. 이런 아이들에게 무조건 공부를 하란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왜 자격증을 따야 하는 지 스스로 깨우쳐야 하지요. 그래서 아이들의 가정형편이나 생각에 관심을 갖고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직업·진로와 관련한 신문 기사나 모집공고 등을 꾸준히 스크랩합니다. 특히, 종이신문은 빼놓지 않고 챙겨봅니다. 인터넷만으로도 정보는 충분하지만 편집이 돼있지 않아 중요 기사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축적된 정보를 토대로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면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지를 설명합니다." 

-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목표가 있다면.
"제 교육 목표가 제자들이 사회에 나가 월급 300만원 이상 받게 하는 것입니다. 300만원이면 우리나라 근로자 중 소득 상위 30%정도 됩니다. 학창시절 명석하지 못해 친구들 사이에서도 놀림을 많이 받던 제자가 있었는데 얼마 전 경기도에서 굴삭기 기사로 일하며 매월 300만원씩 번다는 연락이 왔었습니다. 기술만 제대로 갖춘다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이 정도 수입으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목표가 상당히 현실적입니다.
"교사가 되기 전 기업체에서 수년 간 일했던 경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기업이 근로자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그 안에서 살아가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를 직접 봤기 때문에 학생을 지도할 때도 그런 면을 더 강조하게 됩니다. 그래서 학생들도 더 쉽게 따르는 것 같아요. 공부는 물론 봉사활동을 할 때도 막연히 도덕적으로 옳다거나 남에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하지 않고, 활동을 통해 길러진 끈기나 인간관계 같은 것들이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더 잘 받아들입니다."   



- 교직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저에게 학교는 5번째 직장입니다. 건설사, 증권사에 다니다 퇴사하고 다른 일을 준비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교사가 됐죠. 그때 나이가 32살이었습니다. 처음엔 교사도 오래할 생각이 없었는데, 아이들의 인생 흐름을 바꿔 줄 수 있다는 데 큰 보람을 느껴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 매일 10시까지 지도하려면 힘드셨을 텐데 교직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진 않았는지.
"전혀 없었습니다. 일반 기업에 다닐 때는 출근하면서 숙인 고개를 퇴근할 때나 드는 각박한 생활의 연속이었죠. 교사가 된 후로도 바쁘긴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유와 보람을 찾았습니다. 다만 나이가 드니 체력이 떨어져 모든 학생을 챙기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게 아쉽습니다." 

- 늘 늦게까지 계시면 주변에서 부담스러워 할 법도 한데.
"가급적 동료 선생님들께는 손을 벌리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늦게까지 라도 해서 학생들이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분들 생각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교육엔 답이 없지 않습니까. 어쩌면 학생들이 5시까지만 공부하고 이후에는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하는 게 맞을 수 있다는 생각도 간혹 합니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습니까. 
"어려운 생활환경 탓에 늘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학교에서는 잠만 자는 아이가 있었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공부는 꼭 해야 한다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 국가기술자격증을 13개나 취득하고 부사관에 합격했지요. 또 한 번은 어떤 제자가 이틀만 방과후교실을 빼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줬더니 이틀 뒤에 스승의 날 선물로 꽃다발과 향수를 주더라고요. 이틀 간 알바를 해 샀다면서. 지금 같으면 김영란 법 때문에 돌려보냈겠지만, 그땐 정말 고마웠습니다."

- 요즘 특성화고 현장실습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지금처럼 모든 특성화고들이 현장실습을 나가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물론 도시지역에는 잘되는 학교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3년 간 기술을 차근차근 배워서 사회에 나가야 하는데 중간에 나가다보니 준비가 부족합니다. 좋은 실습처가 부족해 억지로 찾다보니 주로 위험한 업종 위주로 연결되고, 월급도 적습니다. 더욱이 전남은 인근에 공장이 없어 경기도까지 실습을 나가는 현실입니다. 거기까지 가서 단순 부품조립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무슨 실효성이 있을까요. 그나마 취업이라도 되면 다행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 의무가 없기 때문에 세금 지원만 받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할 여건이 되는 학교만 하도록 해야 합니다." 

- 특성화고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가 있을까요
"교육은 결국 교사가 어떻게 해주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제도나 정책으로는 별로 바뀔게 없어요. 지금까지도 여러 정책이 나왔지만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을 말로 포장하거나 표준화를 시도한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이 학교에서의 임기가 2년 남았는데 적어도 그 기간 동안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지금 학생들 중에는 타 지역에서 저와 상담한 후 우리 학교로 진학한 사례도 꽤 있습니다. 이 아이들까지는 어떻게든 책임지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는 아직 구체적인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부차적인 목표가 있다면 언론에 1000번 소개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신문에 나왔을 때 가진 목표예요. 지금까지 보도된 게 950건이니 몇 년 안에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잘 해야 신문이나 방송에도 보도되는 것이니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강중민 기자 jmkang@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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