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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창가에서> 애벌레 무덤

“선생님, 드디어 번데기가 됐어요!”교실 창턱 밑 케일화분 애벌레를 며칠 간 관찰하던 다영이의 말에 누구 할 것 없이 동시에 창가로 몰려들었다.

‘번데기 변신’ 구경에 들썩인 교실

3학년에 배추흰나비 키우기 단원이 나온다. 배추흰나비인데 배추대신 케일 잎을 먹고도 성충이 되는지 반 전체가 흥미롭게 지켜봤다. 애벌레는 햇볕에 약하다 해서 교실 창턱 밑 그늘 진 곳에 화분을 뒀다. 엷은 투명 플라스틱 방어벽이 케일 키만큼 울타리가 높았다.

알에서 짧은 초록색 실처럼 가는 애벌레로 깨어났을 때도 난리였다. 가는 실이 점점 변해서 오동통하게 잘 자랐다.꿈틀 거리 던 여러 마리 중 한 마리가 밤사이에 번데기가 됐으니 밀고 밀쳐서 사고라도 날 판, 동시다발로 발생한 호기심천국은 아수라장 같은 지옥의 무질서를 방불케 했다.

“차례대로 줄서!”우렁찬 목소리로 줄 세워 놓고 선생님이란 이유로 가장 먼저 번데기 위치를 확인하는 권력남용(?)을 누렸다. ‘초록’ 번데기가 ‘초록’ 잎에 예쁘게 붙어 있었다. 꼬물꼬물 기어 다니던 애벌레가 번데기가 된 것을 나조차 처음 보니 무척 신기했는데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한 명씩 번데기 구경을 했다. 뒤에 몇 사람이 남지 않자 아이들 서넛이 함께 보고 있는데, 들어가라는 경고에도 붙박이 된 시선은 말을 듣지 않았다. 또 한 번의 경고에 놀란 아이들이 후다닥 들어가면서 ‘대형사고’가 벌어졌다. 부산한 발걸음 속에 애벌레 한 마리가 떨어졌나보다. 들어가는 누군가에게 살짝 부딪혔는지, 애벌레가 반쯤 상해를 입었다.

“선생님, 애벌레가 죽었어요.” 소윤이의 소스라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또 한 번 아이들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흥분한 군중의 움직임은 더 큰 소란을 예고한다.

“꼼짝하지 말고 앉아있어.” 혼자 가서 살폈는데 애벌레가 죽었다. “조금 전까지 살아 있었는데 우연찮은 실수로 애벌레가 죽었어. 나비가 되지 못해서 슬프고 애벌레에게 미안하네. 항상 조심하고 남아 있는 것은 좀 더 잘 보살펴주자.”

애벌레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잠시 고심하던 차에 아이들이 모두 손을 번쩍 들더니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선생님, 애벌레 묻어 줘요. 학교 화단에.”

무생물처럼 이파리에 붙어 있던 깨알 크기의 노란 알이 깨어나서 성장해 가는 동안 아이들은 애벌레를 사랑했다. 그건 이해하지만 ‘애벌레 무덤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애벌레 장례’에 순간 속마음이 약간 웃었다.

행동으로 가르쳐준 ‘어린 선생님’

그렇지만 진지하게 잘못을 뉘우치는 아이들의 모습에 ‘됐어. 그냥 쓰레기통에 넣어’라고 말할 순 없었다. 장례식이 너무 거창해지면 곤란할 것 같아 애벌레 상조단 4명을 꾸렸다. 다영이가 종이에 애벌레를 옮기고 친구들과 함께 화단으로 내려가 애벌레를 묻어 줬다. “선생님, 친구들이 묻어 준 곳은 모르니까 가르쳐 줘도 되지요?” 진지하게 애도하는 모습에서 속으로 살짝 웃었던 내가 무척 미안했다. 나는 생명의 소중함을 입으로 가르쳤고 아이들은 내게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행동으로 가르쳐줬다. 오늘 나는 ‘어린 선생님’에게 배웠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은 그대로 지닐 순 없는지…

“선생님, 애벌레 무덤에 한 번 가 봐요”라고 말하면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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