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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눈> 수업, 업무보다 더 중요한 것

교실 복도를 지나다가 수업 중에 휴대폰을 갖고 노는 아이가 창 너머로 눈에 띄기에 주의를 줄 겸 교장실로 불렀다. 아침에 담임이 휴대폰을 수거하게 돼있는데 그날은 학생이 지각을 해 제때 걷지 못한 것이다.

학생의 선생님 무시 빈번한 현장

일단 자리에 앉게 한 뒤, 소속 학년과 반을 확인할 요량으로 담임선생님이 누구시냐 물었더니 아무 대답이 없다. 왜 대답을 못하냐고 재차 물었더니 기어가는 목소리로 담임 이름을 모른단다. 이럴 수가!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학교 도서관에서 생긴 어느 날의 일이다. 자기가 빌려 갈 책을 다 고른 학생이 사서선생님 앞에 와서 하는 말, “여기요~!” 때마침 컴퓨터 작업을 하던 선생님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지칭하는 말인 줄 알고 처음엔 응대를 하지 않았는데, 다시 이어지는 학생의 말, “저기요~! 이 책들 대출해 가려고요” “응? 나 불렀어?…미안~!”하며 일처리를 해주긴 했지만 못내 기분이 언짢다. 어찌된 세상이 학생이 선생님을 “여기요, 저기요”로 부른단 말인가.

어느 날, 한 학생이 복도를 지나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먹던 과자봉지를 그대로 버리는 모습을 봤다. 그 아이를 불러 세웠다. 남이 버린 쓰레기를 스스로 주워서 휴지통에 버리지는 못할망정 과자봉지를 함부로 버리면 되겠느냐며 꾸짖었다. 그런데 훈계를 받는 학생의 태도가 전혀 공손치 않았다.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 안 그러겠습니다’ 하면 될 것을, 재수 없이 걸렸다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이런 아이를 붙잡고 잘잘못을 지적해주면 나는 교육자로서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요즘 아이들 특성도 모른 채 괜한 시빗거리만 만든 것일까.

수업이 시작되면 선생님들은 일제히 교실에 들어가 자기가 맡은 교과의 공부를 가르친다. 아침 조회시간과 오후 종례시간에는 담임선생님이 학급경영과 관련해 여러 가지 전달사항을 말하고 학생들과 개인적으로 상담하며 소통을 한다. 하루 여덟 시간 정해진 근무시간 속에서 자신이 배당받은 교육과정과 분장 사무를 다 수행했으니 교사로서 할 일은 일차적으로 다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이 이렇듯 공식화된 활동만을 수행하는 것으로 끝나버린다면 아이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삶의 덕목은 어디서 누구에게서 배운단 말인가.

바른 인성 씨앗 뿌려주는 교육 절실

대학입시에 직접 도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성의 바탕이 되는 삶의 기본 태도나 규범을 익히는 일을 가벼이 여기고, 학교가 아이들에게 윤리적 성찰능력이나 자율적 도덕성을 길러주는 일에 소홀한 것이 우리 교육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입시에 얽매인 학교나 선생님의 고충을 잘 알지만 이런 교육이 아이들에게 미칠 폐해는 너무도 크다. 심성이 비뚤어지고 거칠어짐으로써 개개인이 겪어야할 불행, 사회가 치러야할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람으로 태어났다 해서 누구나 절로 사람다움, 인간다움의 품성을 갖출 수는 없다. 그것은 오로지 교육을 통해서만 길러진다. 교육이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어릴 때부터 바른 인성의 씨앗을 뿌려주고 성장과정에서 그것이 곧고 튼튼하게 키워지도록 도와야 한다. 국영수를 잘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 된 그릇을 갖추지 못했다면 거기에 담긴 지식이 무슨 소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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