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북부에 자리한 마르케. 부드러운 곡선의 언덕과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는 아드리아해를 만날 수 있는 곳.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와인을 즐기며 라파엘로와 로시니를 탐했다. 마르케(Marche)는 이탈리아 중·북부 동해안에 자리한 주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쯤 된다. 아드리아해와 마주하고 있는 이곳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길고 긴 여름휴가를 즐기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르케에 별장을 두고 있는 이탈리아인들도 많다. 몇 시간을 달려도 끝없이 이어지는 온화한 곡선의 구릉지대. 그 위를 느릿느릿 흘러가는 구름그림자. 이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절로 순해지고 느긋해진다. 맛있는 음식과 향긋한 와인 푸른 하늘에 양떼모양의 흰 구름이 느릿하게 흘러간다. 어디선가 바람은 불어와 깃털처럼 생긴 미루나무를 흔들어 댄다. 이런 날씨에 ‘완벽하다’는 찬사를 붙여주지 않는 것은 불경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완벽한 날씨를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짙은 그늘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 일 역시 최선의 방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탈리아 여느 지역이 자랑할 만한 와인을 가지고 있듯 마르케 역시 마찬가지다. 우르비노(Urbino)·안코나(Ancona)·페르모(Ferm…
2023-09-05 10:30학교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린 덕에 어깨와 허리가 점점 아파질 때쯤, 한창 유행하던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무거운 몸으로 기구 위에 나를 얹어 이리저리 비틀거리다보면 강사가 ‘코어에 힘을 주세요’라고 말한다. 신기하게도 배꼽 언저리에 힘을 주고 호흡을 가다듬으니, 조금씩 내 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흔히 운동할 때 말하는 ‘코어(CORE) 힘’이란 인체 중심부를 지탱하는 근육의 힘을 일컫는다. 코어 힘이 부족하면 신체 균형이 무너지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이를 영어학습에 빗대어 보자. 학생들이 영어로 의사소통하기 위해 바로 세워야 하는 코어 힘은 무엇일까? 교사가 제대로 코어 힘을 세워 준다면 영어시간 내내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아이들도 신나게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의사소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영어로 의사소통한다는 것은 학생의 삶과 연계한 실생활 맥락에서 영어로 표현된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습득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표현하며, 영어 사용 공동체 참여자들과 협력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과서는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한정적인 표현 범위를 벗어날…
2023-09-05 10:30뾰루지가 어느 날 종기가 되었습니다. 엉덩이에 조그맣게 뾰루지가 생긴 적이 있습니다. 무언가 손끝에 좁쌀 같은 게 도톨도톨 걸리더라고요. 그때 잠깐 연고를 발라야 하나,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겠지, 뭐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곧 잊어버렸어요. 바쁘기도 바빴고, 워낙 크기가 작아서 무시한 것도 있고요. 어영부영 시간만 흘렀습니다. 어느 순간 의자에 앉다가 ‘욱신’하는데 놀라 비로소 제법 딴딴하고 큼직한 종기가 자리 잡은 걸 알았습니다. 누를 때마다 욱신거리는 게 제대로 된 종기가 분명했습니다. 겁이 나서 달려간 병원, 종기를 진찰한 의사 선생님이 혀를 끌끌 찼습니다. “평소에 미련하다는 소리, 많이 듣고 살지요?”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일부러 키운 거냐고 마구 혼을 냅니다. 결국 남들 보기에는 우습게 보일 수도 있는 종기 때문에 마취주사까지 맞았습니다. 칼이 살을 찢으며 깊숙하게 들어와 박혔고, 종기를 째고, 꽤 많은 고름을 빼내고, 거기에 붕대를 붙이고, 한동안 술과 기름진 음식과 기타 등등을 금지당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칼을 댄 곳에는 한눈에 봐도 눈에 띄는 흉터가 남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종기가 툭 하고 떨어진…
2023-09-05 10:30챗GPT는 세상의 모든 전문가에게 질문하고 있다.‘내가 당신들만큼 답해줄 수 있는데 굳이 당신들이 필요한가요?’ 얼마 전 KBS 뉴스에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보도되었다. 챗GPT를 통해 수집한 판례를 소송자료로 제출한 변호사들이 법원으로부터 제재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있었던 일인데, 법원에 제출한 자료 중 판례가 가짜였다는 것이다. 이 판례는 챗GPT가 만들어 준 것으로 변호사들이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해당 판사는 판례의 진위를 물었는데, 변호사들은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고, 챗GPT가 찾아준 판례가 진짜 있다고 믿었다. 소송을 맡긴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변호사를 고용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제 전문가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챗GPT의 열풍은 2023년 상반기에 휘몰아쳤는데, 필자가 강의한 대상은 주로 교사그룹이었다. 교육청 단위의 연수는 물론 일선 학교에서도 강의 요청이 쇄도했고, 대상도 교장·교감자격연수를 비롯해서 1급 정교사와 신규교사까지 두루 포함되었으며, 학교급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양했다. 최근에는 대학 교수와 학습지원센터에서의 요청도 많아지고 있다. 교…
2023-09-05 10:30최근에 상상을 초월한 충격적인 일들이 교육계에 줄지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학교폭력과 입시지옥 등 고질적인 문제 위에 교사 자살, 학생 마약, 교사 데모와 명퇴, 폐교 급증 문제가 덮치고 있습니다. 수년간 계속해서 청소년 자살률 세계 최고, 행복도 세계 최하위라는 섬찟한 성적표가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빈도수가 저학년으로 갈수록 더 많다는 사실에 미래가 참으로 절망스럽게 느껴집니다. 더 암울한 문제는 학생과 교사 관계가 대립으로 치닫는다는 사실입니다. 교권과 학생인권이 부딪히면서 둘 사이가 아름다운 사제관계가 아니라 불신과 두려움이 지배하는 적대관계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학생인권을 너무 내세우면 교권 강화가 요구될 것이며, 두 인권의 대립이 제로섬 게임이 되는 순간 학교현장은 황폐화될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교육전문가가 아니라 스승으로 다가가는 길만이 학생인권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럴 때만 교사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힘을 합쳐도 어려운 판에 서로 단절되고 적이 되어서는 문제만 더 커지고 함께 불행해질 뿐이지요. 갈등 봉합을 외부 조직에 의존할수록 자
2023-09-05 10:30“아, 안 맞아 안 맞아. 쟤랑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안 맞아.” 도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 만큼 치가 떨리는 사이가 ‘성격차이’이다. 개개인의 독특한 행동양식인 성격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고,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하다. 같은 상황이더라도 각자의 성격에 따라 생각·가치·판단·인식하는 것이 다르다보니 드러나는 태도·말·행동도 천차만별이다. 성격에 대한 궁금증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별자리·혈액형을 묻던 것이 MBTI 성격유형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MBTI 유형과 특징을 잘 알고 있다. “○○아, 너 T지?”라며 이야기의 물꼬를 트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재잘거린다. MBTI를 잘 활용하면 아이들이 왜 저렇게 행동하고, 저 둘은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이며, 나와 사사건건 의견이 엇갈리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저 아이가 저런 행동을 하는 건 ○○○○유형이라서일까?’라는 생각은 학생의 행동·말·표현 때문에 생길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오해 대신 이해가 자리 잡고, 그 자리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면 그 학생을 위한 효과적인 지도 방법도 만들어질 것이다. MBTI의 기본개념 MBTI는 E-I, S-
2023-09-05 10:30“요즘 우리 과에 선생님들 왜 이렇게 많이 와?” 최근 세상을 떠난 초등교사 자살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우리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안타까운 자살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공립 초·중·고 교원 100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초등학교 교사가 57명으로 가장 많았다. 고등학교 교사 28명, 중학교 교사는 15명이었다. 작년 기준 전체 교사 44만여 명 가운데 초등교사는 44%다. 그런데 극단 선택을 한 교사 가운데 초등교사 비율은 57%에 달했다. 교육 당국이 ‘원인 불명’으로 분류한 70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30명 중 절반이 넘는 16명이 우울증·공황장애로 숨졌다. 그다음은 가족 갈등(4명), 신변·질병 비관(각각 3명), 병역 의무(2명), 결혼 준비·투자 실패(각각 1명)로 분석됐다.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는 2018년 14명에서 2019년 16명, 2020년 18명, 2021년 22명으로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학생과 교사 수가 가장 많은 경기도가 6년간 2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13명),
2023-09-05 10:30최근 초등교사가 겪은 교권침해 경향을 보면,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정당한 생활지도 불응·반항 등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처럼 교사들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 무력화된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교육현장에서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생활지도와 학부모와의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리 교육현실에 적합한 사례는 교육현장에 접목해 적용하거나 이로부터 교육현실 개선을 위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교사에 신체적 위협 땐 학생 형사처벌 우선 미국에서는 교사의 생활지도가 가능하도록 효과적인 학생 징계 방안을 구축하는 등 제도적으로 이를 보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기 초에 학교는 행동강령 및 상세한 학교규칙을 포함한 학생의 권리와 의무 매뉴얼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달하고, 학생과 학부모는 확인했다는 서명을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이와 같은 철저한 매뉴얼은 학생 생활지도의 명확한 근거가 돼 학교와 학생·학부모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한다. 생활지도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교사의 지시…
2023-09-05 10:30아동학대 ‘의심’만으로도 교원은 큰 불이익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약칭 ‘아동학대처벌법’)은 법률 제12341호로 2014년 1월 28일 제정되고, 그해 9월 28일 시행됐다. 아동에 대한 학대행위는 성장단계에 있는 아동의 정서 및 건강에 영구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으므로 그 대상이 성인인 경우보다 엄격한 처벌과 교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아동학대범죄가 발생한 경우 긴급한 조치 및 보호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아동학대에 대한 강력한 대처와 예방을 통해 아동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하려는 것이 제정이유에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제정 배경에서 누구든지 아동학대범죄에 대해 아동보호전문기관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에 대해서는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신고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명문화하였다(「아동학대 처벌법」 제10조). 또한 아동학대범죄 신고를 접수한 사법경찰관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직원은 지체 없이 아동학대범죄 현장에 출동하도록 하였다(위 법 제11조). 나아가 사법경찰관은 아동학대범죄를 신속히 수사하여 검사에게 송치하고, 검사는 아동학대범죄에
2023-09-05 10:30“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소위 ‘킬러 문항’은 학생과 학부모의 눈높이에서 철저히 배제하겠다.” 지난 8월 7일 취임한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어느 때보다 수능시험에 대해 우려와 걱정이 큰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다가오는 2024학년도 수능이 공정하고 엄정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출제 및 시행 관리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소위 킬러문항이 출제돼 전임 이규민 원장이 중도 사퇴하면서 평가원은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세간의 시선은 킬러문항 또는 준킬러문항도 출제하지 않으면서 수능의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모아진다. 평가원장 자리는 ‘독이 든 성배’로 불린다. 그만큼 힘들고 위험하다는 의미다. 역대 원장 중 3년 임기를 제대로 마친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오 신임원장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현장교사들을 중심으로 공정수능 평가자문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교육부가 추천하는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가 출제단계에서부터 문항을 집중점검하면 수능 시험문제가 공교육 밖에서 출제되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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