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제자에게 안부 문자가 한 통 왔다. 초임교사 시절 가르쳤던 제자인데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단다. 이제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한다고 하는 데 그 착하고 애교 많았던 제자가 어떻게 변했는 지 참 궁금했다. "OO아,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나중에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선생님이랑 꼭 한 번 만나자!" "선생님! 저도 선생님 보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아직 조금 부족해요. 꼭 1등한 다음에 선생님 찾아갈게요!" 제자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워낙 어린 시절 함께한 아이라 공부보다는 일상 생활에서의 교육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우리반에서 함께 선생님과 공기놀이를 하고 피구를 하며 밝게 웃던 제자가 나랑 만나기 위해 공부 1등을 해야 한다니... 씁쓸하다. 아마 중간고사 기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과 고등학교에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시기가 주는 압박감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물론, 1등을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왜 꼭 1등이여야만 하는 걸까?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만 하는 슬픈 현실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생각이 들었
"선생님, 반 아이들이 너무 소극적이라 활동을 제대로 안 해요. 이제는 스티커 주고, 사탕 주고, 모둠 점수 올려주는 것도 통하질 않아요. 어쩌죠?" "음. 원래 주다 안 주면 아이들이 잘 안 하려고 해요. 또 먹는 거나 선물은 질리잖아요. 제가 하는 것처럼 주는 대신 빼주는 걸 해 봐요. 우리 예전에 대학에서 교육심리학 시간에 배운 거 있잖아요. 활동 잘 하면 숙제나 청소를 빼주거나, 그 애가 싫어하는 활동 하나를 안 해도 되는 쿠폰 같은 거 쓰면 바로 통할 걸요." 몇 년 전 근무했던 학교에서 학년 부장 교사를 하면서 젊은 후배 선생님들과 아이들 수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 학령기 아이들의 특성상 활동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고 담임교사 1명이 거의 모든 과목을 진행하다 보니 똑같은 수업 방식에 있어서 지루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때문에 아이들의 수업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는문제는 언제나 교사들의 고민거리였다. 학습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한 방법 지난해부터 잠시 현장에서 떠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나의 교직 생활에 대한 다양한 반성을 하게 된다. 특히, 이번 학기에 수강한 교육심리학 강의에서는 아이들과 교사의 미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승의 날’을 폐지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 글을 쓴 사람은 다름 아닌 현직 초등학교 교사였다. ‘스승’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기념일을 ‘스승’이 원치 않으니 없애 달라는 것이다. 서글픈 일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교사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다. 4월 26일 기준으로 7천 5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으며 그 중에 교사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5월 8일 ‘어버이날’과 더불어 5월 15일‘스승의 날’은 나를 돌봐주고 가르쳐주시는 어른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뜻깊은 기념일로 여겨져 왔다. 이 날이 되면 학생을 거쳐 성인이 된 제자들이 학창시절의 스승을 만나기도 하고, 현재의 학생들도 자신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위해 편지를 쓰고,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뜻깊고 따뜻하기만 해야 하는 ‘스승의 날’이 왜 주인공인 ‘스승’들에게 부담스럽고 차라리 없어져야 하는 날이 되기 시작한 것일까? 2011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기자가 직접 겪은 스승의 날 교실 풍경을 되돌아보고, 참다운 ‘스승의 날’이 되기 위해 생각해보아야 할 점에 대
미투(Me, too)운동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상처 입은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가해자의 행동을 다양한 경로로 고발하고, 한 명이 가해자를 폭로하면 그에 대한 추가 폭로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 안에 우후죽순 터져 나오기도 한다. 또한, 위드유(With you)운동으로 용기 낸 피해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그 분야 또한 다양해서 법조계, 문화예술계, 방송연예계, 스포츠계 등 사회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최근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을 때 유명인이 실시간 검색어로 오르는 순간 ‘설마 저 사람도 미투 가해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은 단순히 나의 예민한 성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미투운동은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를 성적으로 억압하는 가장 추악하고 부끄러운 범죄를 자의든 타의든 간에 줄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고, 만약 범죄가 일어나더라도 이제는 범죄 사실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힘이 강하기에 편히 발 뻗고 자고, 피해를 입은 사람은 약자여서 피폐한 인생을 살아가는 모순된 사회부정의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실천되어 훗
"선생님! 어제 종민이가 또 일 쳤어요! 결국은 재호네 집까지 쫓아가서 소리 지르고 욕하고 난리 났었대요." 12월 어느 날 아침, 출근해서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쪼르륵 달려 나와 어제 생긴 일을 이실직고한다. 들을 때마다 아찔한 초등학교 5학년 우리 반 남학생들의 다툰 이야기다. 학교에서 다투면 내가 어떻게든 말리고 혼쭐을 내주지만 방과 후 시간에 집까지 쫓아가서 싸우고 오니, 야밤에 우리 학교 동네 순찰을 돌 수도 없는 일이고 참 난감하다. '화'가 많은 아이 종민이 우리 반 종민이(가명)는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다. 잘 웃고 놀다가도 뭔가 본인 기분에 거슬리면 격한 분노를 표출한다. 어제도 그랬다. 체육 시간에 한 피구가 화근이었다. 홀수 팀과 짝수 팀을 나눠 3전 2선승제 게임으로 피구를 했다. 스코어 1:1에서 맞이한 최종 3라운드. 홀수 팀과 짝수 팀의 내야에는 단 한 명씩 남았는데, 그게 하필 종민이와 재호였다. 우리 반 대표 장난꾸러기 재호(가명)의 피구게임 주특기는 '메롱 하면서 공 피하기'다. 그 주특기는 어김없이 이번 피구게임에서도 등장했다. 종민이가 던진 공을 재호가 '메롱' 하면서 피했고 결국 종민이가 아웃 당하면서 게임이 끝났다.
"여러분, 현대 문학에 대해 이해할 수 있지요?" "있지요? 있지요? 하하하" 2000년 12월 중학교 3학년 교실. 졸업을 앞둔 시점이라 그랬을까? 수업 자체가 힘들 정도로 소란스러운 국어시간이었다. 유난히 끝부분을 강조해서 높여 말하는 선생님의 말끝을 장난스럽게 따라하는 게 그 때는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수업시간 45분 동안 쉼 없이 열정적으로 현대 문학을 가르치는 김미은(가명) 국어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릴 정도로 나는 끊임없이 선생님의 말투를 따라하고 웃으면서 수업을 방해했다. 철없는 남학생의 장난에도 묵묵히 인내하면서 수업에 최선을 다했던 선생님이 그날만큼은 참을 수 없으셨나 보다. "야, 박현진! 너 그만 안 해!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 "네, 가면 되잖아요!" 반 친구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하게 대답은 했지만, 선생님의 무서운 눈빛과 날카로운 음성에 나의 속마음은 긴장되고 무서웠다. 그 순간부터 남은 수업의 약 10분 정도는 교실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졌고, 나는 그 수업이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어김없이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시고 교무실로 향하셨다. 나를 울린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