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cafe.daum.net/parque) 근대로 가는 역사 구분의 전환점 우선 개념정리부터 필요하다. ‘소생’ 또는 ‘재생’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르네상스(Renaissance)’는 역사상 어느 특정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구분을 뜻하는 말이다. 즉, 중세를 졸업하고 근대로 가는 역사 구분의 전환점에서 바로 르네상스가 동행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특히 북부지역에서 시작된 배경은 옛 로마제국 시대로부터의 유산을 직접적으로 물려받고 일찍부터 다른 유럽 국가보다도 도시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십자군 운동기간에 이탈리아 상인들은 동방의 여러 나라와 접촉하여 고도로 발달되고, 아라비아의 과학이 접목된 그리스 자연과학 및 철학사상과 접할 수 있었으며 이때 그리스-로마신화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적극적 후원자였던 교황들과 제후들은 미술과 문학 분야에 있어서 인문주의자의 활동을 마치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였는데, 특히 교황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 피렌체의 메디치가(家), 밀라노의 비스콘티가(家)가 대표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쟁쟁
근자에 들어 공무원 장외투쟁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을 꼽는다면 1998년 11월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린 ‘교원정년단축 반대 전국교육자 총궐기대회’가 아닌가 싶다. 7만여 명도 더 되는 교원들이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 초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쿠데타적 정년단축 철회’를 외쳤다. 교원들의 처연하기까지 한 공분(公憤)이 표출됐지만 언론은 짐짓 이를 외면했다. 조선일보에 사진 한 장 달랑 실린 것이 전부인 것으로 기억된다. 신문․방송은 연일 ‘노령교사 1명을 퇴출하면 젊은 교사 2.5명을 채용할 수 있다’는 앵무새 같은 보도를 내보냈다. IMF사태로 경제는 파탄 나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때에 이보다 더 확실한 여론몰이는 없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심리를 부추긴 행태는 교육계의 어떠한 논리와 주장도 먹혀들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 당시 이해찬 장관과 교육부 고위관료들의 언론플레이가 무용담처럼 넘쳐나기도 했다. 교육계는 대패(大敗)했고 정년은 3년이나 싹둑 잘려나갔다. 물론 교단을 뒤로한 교원들 대신 젊은 교사가 2.5배로 충원되지도 않았다. 정년단축의 결과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우리 교단을 황폐화시켰으며 지금까
한상철 | 대구한의대 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없는 사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단지 한 세대 이전의 청소년들이 겪었던 것보다 더 많은 모험과 위기 그리고 요구 및 기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이동하는 경로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있다. 몇 가지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10년이나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더 훌륭한 것 같다. 청소년의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청소년 문제와 살인사건은 약물남용이나 청소년 비행 그리고 청소년 임신과 함께 다소 줄어들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성인들과 대중매체가 묘사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청소년들은 그들이 유능한 성인이 되는데 필요한 적절한 기회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10년 또는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덜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높은 이혼율, 청소년층의 높은 임신율, 그리고 가족의 잦은 이사는 청소년들의 삶
마산 청소년 문화의 집 새롭게 태어나다 마산공설운동장 내의 올림픽국민생활관 3층에 자리한 ‘마산 청소년 문화의 집’은 2002년에 들어선 청소년의 문화공간이다. 이번에 '이미지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미술 연구소 프로젝트 쏠' 소속의 작가들과 문화의 집 참여 학생 41명, 문화의 집 교사 등 60여 명이 함께 참여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태어났다. 지난해 10월 29일부터 현장조사와 작가편성, 아이디어 회의 등을 수차례 진행하였다. 올해 1월21일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 새로운 모습으로 청소년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 청소년 문화의 집은 학원이나 학교 교실과 별반 다를바 없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느낌의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공간이었다.이곳을 지역작가와 지역대학 미술학과 학생, 실제 공간을 사용하는 청소년과 담당 선생님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만들어갔다. 학생들이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핸드프린팅 등을 작가들과 함께 진행하면서 미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공간을 함께 가꾸어 나갔다. 생전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옷에 페인트가 묻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에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