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를 외치는 사회 ‘앞으로 앞으로’(윤석중 작사, 이수인 작곡)라는 동요가 있다. 지구는 둥그니까 앞으로 계속 걸어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세계화 시대를 이미 내다보기라고 한 듯, 맹랑하지만 밝고 명랑하고 진취적인 기상이 엿보인다. 시간과 공간, 개인과 사회, 물질과 정신을 막론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고방식이 오늘날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는 데 토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어느새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중요한 가치관이라는 것이 사회적 신념이 되어버린 듯하다. 확실히 우리가 몸담고 있는 21세기는 진보를 지향한다. 진보는 사물이 점차 발달하는 것, 또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인간의 역사를 중심으로 그 뜻을 새겨보면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일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진보라는 관념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역사의 발전을 추진해왔고 그렇게 해나갈 것이라는 인간주의(휴머니즘)적인 사고에 의거한다. ‘앞으로!’를 외치는 진보의 가치관은 신이 주관하는 역사에서 합리적 이성을 갖춘 인간 주체의 역사로 이행한 시대, 즉 근대세계의 탄
학교 교정의 명자꽃, 더욱 탐스러워진 그 자태에 마음 설레고, 대책 없는 봄비마저 내리니 곧이어 다투어 필 온갖 꽃들의 모습에 잠긴다. 또한 촉촉해진 들과 투명한 개울, 바람의 골짜기마다 봄꽃들의 수런댐으로 하루 종일 시끄러워질 날들 생각에 가슴 벅차다. 이 비 그치면 /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 푸르른 보리밭길 / 맑은 하늘에 /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 이 비 그치면 /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 처녀애들 짝하여 외로이 서고 // 임 앞에 타오르는 / 향연(香煙)과 같이 /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 이수복‘봄비’ 얼마 전, 신입생 입학식과 교직원 연수에서 낭송했던 이수복 시인의 ‘봄비’이다. 예술적 감성을 학교발전의 원동력으로 하겠다는, 그래서 학교가 가진 문화의 힘으로 학생들을 ‘문화적 인간’으로 키우자는 노력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정규 교육과정을 탄생시켰고 행사활동 등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나 또한 그러한 흐름의 중심에 서서 학교를 변화시키는 일에 앞장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말하기에 앞서서 내 삶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년 동안 학
현 실정에 공 · 사립 구분은 의미 없어 공립학교에서 대안교육을 한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공립에서 대안교육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대안교육하면 많은 사람들이 사립, 그것도 미인가 사립학교에서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체계를 놓고 봤을 때, 공 · 사립 간 큰 차이가 있을까요? 어차피 공 · 사립을 막론하고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거의 구분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더구나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인가받은 대안학교(대안교육 특성화학교 포함)만 이미 30여 개라는 것은 정부에서도 대안교육을 인정했다는 것인데, 공립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대안교육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정부 측에서 먼저 있었습니다. 1995년경 대안교육의 법제화를 위한 시도가 있었는데, 1997년 실사를 하던 중 영산 성지고와 간디학교 등이 미인가 상태에서 대안교육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립학교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 1998년 간디학교 등 6개 사립학교에 인가를 한 것입니다.” 공립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아무래도 경직성 때문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