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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업무폭탄, 교사를 위한 학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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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교실 안에서 수업하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 독립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념이 업무에도 적용되어서인지 학교현장의 업무는 각자도생인 경우가 많다. 물론 전임자·담당부장·교감·교장과 의논하며 처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업무담당자가 맡아서 해야 할 일들이다.

 

내가 맡은 업무가 하나라고 가정할 경우, 담당부장은 부장의 고유한 업무와 담당부서의 계원들이 맡은 업무도 함께 처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장·교감은 24개 학급일 경우 교사 24명과 교과전담교사 3~4명의 업무까지 파악하고 처리해야 한다. 학교에서 하는 일을 보면 없는 게 없다.

 

공사·이사·청소·도색·소독·방역·보건·급식 등 다양한 업무에다 학부모 민원이 들어오면 안 되는 게 없을 정도로 처리해야 한다. 지금 학교에서 책임지고 있는 업무와 민원들이 과연 교원들이 담당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앞선다.

 

쏟아지는 업무, 각자도생의 교육현실
필자는 일반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영어학원 강사를 거쳐 수능을 치르고, 교대에 들어가 초등교사가 되었다. 학원에서 강사로 일할 때에는 영어 한 과목만 가르쳤고, 수업준비와 학부모상담(당연히 수업내용에 관한 것으로 생활지도는 하지 않음)이 업무의 전부였다. 그러나 초등교사가 된 이후 학교에는 수업과 관련 없는 업무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학교에서는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들이 한 반에 4~5명 정도 되는 탓에 영어교과전담교사가 기피업무였다. 따라서 영어교과전담교사가 되면 다른 업무는 맡지 않았다. 업무를 맡지 않아서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이것이 족쇄가 되었다. 원어민교사가 들어오고 관련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새로 생긴 업무라 전임자도 없어서 공문과 지침을 보면서 업무를 처리했다.

 

원어민교사 담당업무를 맡게 되면, 원어민교사 숙소 관련 업무(숙소 계약·이사·청소 등), 원어민 복무관리(근무계약, 나이스 복무처리 등), 방학 중 캠프(방학마다 2~3주) 관리자 업무를 하게 되어 방학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독립적인 원어민이 배정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원어민이 배정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와줘야 하는 일(인터넷 설치, 전자기기 고장, 관리실 연락, 병원 진료 등)이 생겨났다. 당시에는 근무시간 이후 원어민 지원 업무를 할 때 초과근무를 신청하거나 출장을 달고 가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원어민 업무를 한 해만 하고 다음 해에는 다른 분이 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선생님들이 모두 기피하는 바람에 하던 사람이 계속하거나 신규교사에게 넘기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9~10년간 영어교과전담교사를 울며 겨자 먹기로 했다. 푸른 꿈을 품고 초등교사가 되었는데 원어민 뒤치다꺼리하다 교직 인생을 마칠 것 같다고 괴로워하시는 분도 있었고, 업무 스트레스로 병을 얻어 의원면직하신 분도 있었다. 

 

두 번째 학교에서는 학년부장과 생활부장을 함께하는 겸임부장을 맡았다. 학생들도 온순하고 학부모들도 협조적인 학교였고, 그 당시에는 선생님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남아 있어서 학교폭력업무로 학부모들과의 갈등이 없었다. 그래도 학교폭력 담당자는 필자 혼자여서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항상 신경을 써야 했다.

 

학년부장도 맡고 있어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 2월에 교육과정을 짜야 한다. 막상 학년부장을 맡고 보니 교육과정을 작성할 때 지켜야 할 내용이 뭐 그리 많은지, 어떻게 지침을 적용해야 하는지 이해하기도 어려워서, 뭐라도 하나 빠뜨리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했다.

 

지금도 각 학교마다 학년교육과정 작성업무를 누가 하느냐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학년부장이 담당하는 학교도 있고, 연차가 낮은 젊은 선생님이 맡는 학교도 있다. 이후 학교교육과정을 총괄하는 연구부장이 되었을 때에는 더 큰 부담으로 밤늦게까지 일 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뿐 아니다. 체험활동을 할 때 버스 계약은 행정실에서 하지만, 사전답사·경비산정·참석자 파악·불참학생 지도계획 및 체험활동 계획수립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교사 몫이다. 또 체험활동 당일에는 버스안전 점검, 버스 운전사의 음주 측정, 학부모에게 안내문자 발송 및 학부모 전화 응대 업무를 해야 하고, 체험활동 후에는 불참학생 경비 환불 및 체험학습비 정산 등 관련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수학여행을 가게 될 경우에도 학부모를 포함한 위원회 구성과 회의 소집 및 회의록 작성, 학부모와 함께 가는 사전답사 등 더 복잡한 절차와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담임으로서는 학생 출결과 관련하여 학부모의 문자와 전화에 응대하고 개인체험학습신청서와 보고서 처리 및 관련 서류 수합(여러 번 전화해야 내주시는 분들이 많음)은 기본이다. 늦은 밤이나 주말에 학부모의 문자와 전화는 당연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학년 담임일 때는 하교지도를 하면서 누구는 방과후학교, 누구는 학원버스, 누구는 학부모 인계 등 학생 한 명 한 명 신경 써야 했고, 학부모의 동의를 받아야만 할 수 있는 부진아 지도는 참가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고마웠다. 참석하지 않아 수업 중 교육활동을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 그 학생을 지도하는 것도 담임의 몫이 되었다. 싫어하는 학생과 다른 반이 되게 해달라거나 담임을 바꿔 달라는 민원에도 응대해야 했다.


언어가 달라 소통이 안 되는 학생(러시아어·중국어 등)이나 탈북민 자녀들(학부모가 학교나 교사에게 기대하는 바가 우리와는 전혀 다름)을 지도하고 학부모에게 학교 교육활동을 안내하는 것도 오롯이 담임의 몫이다. 특수학생이 있으면 특수교사 및 학부모와 함께하는 개별화교육 회의에 참가하고 그에 맞게 통합수업의 교육활동을 운영하는 것도 당연히 담임의 일이다.  

 

겸임부장을 맡은 다음에는 업무지원팀 부장을 맡게 되었다. 이전에는 교사 모두 업무를 하나 이상 맡고 있었지만, 수업준비에 집중하라는 의도에서 몇몇 부장이 업무지원팀으로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나머지 교사들은 오롯이 담임으로서 교육활동에만 전념하는 제도이다.

 

그러다 보니 업무지원팀 3~4명이 30명 이상 되는 교사들의 업무를 모두 처리해야 했다. 처음 업무지원팀을 맡고 몇 달 동안 밤 9~10시까지 일을 하면서도 초과근무나 특근매식비를 신청하는 법을 몰라 내 돈으로 저녁을 사 먹고 일을 했다. 이제는 초과근무·특근매식비 신청을 잘 알지만, 초과근무는 신청해도 특근매식비는 사용하기가 불편하다. 특근매식비 8,000원으로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초과근무수당은 4시간만 주어지니 더 늦게 근무해도 수당은 없다. 

 

지난 12년간 업무지원팀으로 일을 하면서 필자의 교직생활은 수업연구와 교육활동보다 행정적인 일들로 가득 찼다. 교사로서의 정체성 대신 행정업무담당자에 더 가까웠다. 수업은 12~15시간 담당하였지만, 2~3월과 11~12월은 거의 밤 9시까지 근무를 했다.

 

코로나 시기에는 더 오래 근무해야 했다. 아마 모든 교사들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 왔기에 학교에서는 교사가 만능 해결사가 되었고, 그에 비례해 업무는 한없이 늘어만 갔다. 


업무지원팀으로서의 부장 명칭은 생활안전부장·창의인성안전부장·연구혁신부장·교무혁신부장·혁신정책부장 등이다. 명칭 뒤에 숨은 업무들이 무수히 많다. 교육부에서 고시한 교육과정 내용을 제외하고 처리한 기타 업무들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학교지원어르신 일자리 사업, 안심알리미 및 안심번호, 학교안전도우미, 방학 중 영어캠프 운영, 교내 민방위 훈련, 학교보안관 계약, 안전계획(CCTV 등 시설 내용 포함), 방과후학교 운영(정산업무 포함), 돌봄교실 운영(코로나의 경우 임시돌봄까지 운영) 등이 있다. 


또 학부모회 예산 처리(교육청·구청 등에서 학부모 관련 예산을 학부모회에 주지만 실질적인 처리는 담당자가 해야 함), 각종 공사(틈새 사업, 꿈꾸는 연구실, 꿈을 담은 놀이터, 꿈을 담은 교실 등) 예산 신청 및 공사 시 이전 계획 및 운영 등 이런 일을 처리하면서 심리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교사를 위한 학교는 없다
최근 들어 교사의 업무고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안타까운 희생이 계기가 돼 마음이 아프지만 차제에 교육현장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생각해 봤다.


첫째, 업무처리의 연계성 확보이다. 학교에서는 처음 업무를 맡으면 사실상 매뉴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년도 업무담당자가 학교에 있는 경우에는 간단히 물어보거나 처리한 공문을 공람하여 업무처리 상황을 볼 수 있지만, 그것도 2월 말 3월 초에나 가능한 일이다. 전년도 업무담당자도 새로운 업무를 맡아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시시콜콜 여러 번 물어 보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3년간 또는 5년간의 실적을 제출해달라는 국회의원·시의원·교육청의 자료요구 공문이 오면(그것도 오전에 공문을 받았는데 오후까지 또는 내일까지 제출) 자료를 찾기 정말 어렵다. 에듀파인 시스템 업무담당자에게도 전년도 자료열람 권한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공통적인 사항은 교육청 지침으로 정해야 한다. 예컨대 장기결석을 3일~10일 사이로 정하고 이를 학교에서 결정하게 하는 것이 개별 학교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다. 생활기록부 기록은 학교 상황과 관련 없이 교육청 지침에 따라 기재되어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학교 재량으로 넘기게 되면 업무담당자는 교장·교감·교사의 의견을 수합하고, 다른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살피면서 지침과 법령에 어긋나는 것은 없는지 알아보고 관련 회의를 주관해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셋째, 실질적인 업무경감 대책 마련이다. 교육청에서 업무경감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상 학교현장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업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수업시수 경감 관련한 강사 예산을 보내주지만, 강사를 뽑고 시간표를 새로 정하는 것도 교사의 일이다.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업무가 경감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넷째, 각종 위원회 통합 및 운영 간소화가 필요하다. 학교 재량으로 정하라고 한 여러 가지 사항들은 반드시 위원회의 회의를 거치거나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학교에 각종 위원회가 있고 그 위원회마다 각각 다른 위원 구성, 다른 절차를 수행해야 한다. 교사 한 명이 여러 개 위원회 위원이 되어야 할 만큼 위원회가 많다. 

 

다섯째,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영역은 행정실에서 담당할 수 있도록 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존 행정실 인원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이기에 교사들이 담당하여 처리하는 부분이 있다. 각종 공사, 소방안전, 가스안전, 상하수도 관리, 전기시설 관리 등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고 교육청 차원에서의 예산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일괄적으로 같은 예산을 배부하면 학교 규모에 따라 예산이 부족한 경우 부분 공사만 하게 되어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못하기도 하고, 공사업체에서는 학교회계의 맹점을 이용하여 엉터리 공사를 하고도 대금을 달라고 하거나 갑질 신고를 운운하기도 한다. 

 

필자는 일을 처리하면서 가끔 농담처럼 말한다. “뭔가 잘못하거나 빠진 건 없겠지? 잡혀가지는 않을 거야.”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업무 범위가 너무 넓고 업무 종류가 너무 다양하다. 또 매년 바뀌는 지침, 변경되고 추가되는 조항, 추가되는 위원회, 점점 복잡해지는 절차와 많아지는 제출 서류 등이 줄을 서 있어 부담스럽고 너무 버겁다. 


새 학년이 될 때마다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 겁내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필자 역시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마다 잘할 수 있을까, 마무리 지을 때마다는 잘못한 것 없이 잘 처리했는지 겁이 난다. 하지만 학교에서 해야 하는 일이니 누군가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년에도 누군가는 어려운 업무를 맡게 될 것이다.

 

어려운 업무를 맡은 선생님을 도와줄 교장·교감·전임자 모두 여력이 부족하니 각자도생이다. 교문 밖의 교통지도나, 학원, 학교 밖 놀이터에서 일어나는 학생들의 다툼, 급식실의 가스안전처럼 학교나 교사가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떠맡도록 하는 것은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방해한다.

 

학교와 교사는 만능 슈퍼맨이 아니다. 교사가 내실 있는 수업을 할 수 있고, 학생들이 행복한 교실을 만들 수 있도록 학교 업무 내용이 조정되고 개선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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