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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교사 에세이, 한 페이지] 모두가 진짜 행복한 학교는

이른 아침, 방학이지만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는 여름꽃들은 방학도 없나 보다. 연일 계속되던 장맛비를 용케 잘 이겨내고 오늘은 유난히 수국이 환하게 웃고 화단에는 토끼풀도 하얀 꽃을 내밀며 학교 담장에는 붉은 장미가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얼마 전이었다. 여름 방학임에도 학교에 나와 바쁜 하루를 보내고 늦은 퇴근을 준비하고 있다가 무심코 건네받은 한 통의 전화. 그리고 다음 날 졸업생인 K는 거의 8년 만에 학교를 찾아왔다.

 

K는 그간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단 한 번도 안부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군입대 후에 얼굴을 보고는 처음이라 몹시 반갑고 놀랐다. 내심 직장에서 여름휴가를 받아 시간이 나서 안부 인사 겸해서 모교를 방문한 줄 알았다. 근데 K가 예상치 못한 결혼주례를 부탁했다. 미리 전화로 자세히 말씀드려야 하는 데 전화로 말씀드리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직접 찾아왔노라고 했다. 어느새 나이 서른다섯 살,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서두르게 됐다는 이야기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항상 다정다감하게 제 이름을 불러준 유일한 분이었어요. 피부색 탓에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다들 놀림감으로 삼아 참 힘들었는데……. 학교 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놀림과 따돌림의 대상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삐뚤어진 마음에 연일 사고도 많이 쳤어요. 고2 때 담임으로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여전히 사고뭉치 문제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선생님은 아예 관심도 안 주는데, 그때 선생님께 야단맞고 엉덩이도 맞는 그 시간도 저는 좋았어요. 선생님의 국어 시간이 제가 유일하게 위안받는 시간이었어요. 항상 제 이름을 불러주시고 친구들 앞에서 시도 낭송하게 했습니다. 그때 아무 내용도 모르고 했던 시 낭송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맑고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지금껏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선생님 가르침 덕분입니다.”

 

올해로 교직 33년. 15여 년 전, 그해 담임은 2학년 문과반을 맡았다. 이른바 순둥이들이 모인 이과반에 비하면 당시 문과반은 참 힘들었다. 흔히 말하는 잘 나가는 물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경찰서에 드나들지 않고 그해를 마치면 당시 문과반 담임들은 학년말에 모여 행운과 축복의 한 해라고 자축했다.

 

그런데 그해는 학년 첫날부터 일이 터졌다. 교실 흡연자가 적발되었다는 생활지도 담당 선생님 연락이었다. 교실 흡연은 장소가 장소인 만큼 학교가 온통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내려진 학교의 가중징계, 아~, 그날부터 K와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올해 고2, 지금껏 살아오면서 부모님과 대화는커녕 담을 쌓고 살았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도 아무리 둘러봐도 도무지 내 말을 들어줄 내 편은 없다. 친구도 없다. 손에 잡고 있는 이 펜 속에 정말 하고픈 말들이 많이 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글로 쓰지 못한, 단 한 번도 누구에게 터놓고 하지 못한, 가슴 속 말들이 이 캄캄한 이 방안에서, 어둠 속에서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맴돌고 있다. 나는 나중에 커서 무얼 하려고 이렇게 사는가. 올해도 또 담임 선생님께 죄송합니다.’

 

학년 초에 K가 썼던, 좀 특이한 자기소개서를 지금도 거의 기억하고 있다. 비록 다른 아이들처럼 긴 글의 거창한 자기소개서는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써서 낸 K가 한편 무척 고마웠다. 그래서 희망이 있었다. 교실에서 흡연한 자신 때문에 교장실로, 생활지도부로 동분서주하는 담임을 보면서 자신도 무언가 느꼈는지 마지막에는, 그래도 죄송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K. 간절했던 내게 그 아이는 희망 고문이 되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일들이, 사건 사고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당시 자기소개서를 읽고 사랑과 관심만이 그 아이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 관심과 정성에 달라지고 대부분 평범한 아이로 돌아온 경험을 자랑으로 훈장처럼 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아니었다. 아예 달랐다. 너무나도 달랐다. 내 앞에서는 당장 달라질 것 같았지만 그것은 착각이고 오산이었다.

 

3월부터 시작돼 4월까지 돌아서고 나면 일이 터졌다. 옆 반 아이의 놀림으로 코뼈를 부러뜨린 일, 수업 시간 잔다고 지도하는 선생님께 거친 행동을 하며 대든 지금의 교권 침해, 학교 인근 아파트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마치 자신의 자전거처럼 타고 가다가 절도범으로 몰려 관할 경찰서에 가는 일 등. 평생 겪을 일을 그해에 모두 겪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다행히 K의 부모가 집에서 안 되는 교육을 학교와 선생님을 믿고 맡겨준 덕분에 나는 끝까지 K를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는 ‘사람’을 배우는 곳

 

여름 방학 전에 교권보호위원회를 열고 주관하면서 과거와 너무 달라져 버린 학생과 학부모의 모습을 봤다. 최근 초등학교 젊은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은 무너진 학교 교육을 웅변한다. 교권 침해를 당하고도 그저 참아 넘기거나 혼자 해결하려고 애쓴 사실이 확인돼 마음이 무겁다. 동료 교사와 시민들의 근조 화환, 추모 메모로 가득한 학교 정문의 모습은 교사에게 권위가 아닌 존중을, 권력이 아닌 인권을 보장해 달라는 외침이다. 모두 나서서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 교육은 또다시 제자리에서 헛돌 수밖에 없다.

 

교단이 무너지면 ‘사람’을 배우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 질서를 지키는 것, 싫은 것도 해내는 것 등을 배울 수 없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경, 존중하고 학부모가 선생님을 신뢰하는, 우리 모두가 진짜 행복한 학교를 그리워하며 이 여름 편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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