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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교사 에세이, 한 페이지] 요리쇼 ‘정선 가득한 아침’

“아 지겨워 진짜. 니들은 왜 다 그걸 묻냐? 난 이래도 아무 일이 없고 넌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 지금도 봐. 네가 경찰서 가서 그 지랄까지 떨었는데. 넌 또 여기 와 있고. 뭐가 달라졌니? 아무도 널 보호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동은아. 그걸 다섯 글자로 말하면 뭐다? 사. 회. 적. 약. 자.”

 

학교 폭력의 아픔을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리쇼 ‘정선 가득한 아침’의 진행자, 정선고등학교 이원재 선생입니다. 오늘은 학교폭력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배 속에 든든함과 따스함을 함께 채울 수 있는 핫도그 레시피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함께 요리해주실 두 분을 모셨습니다. 어느 학교에 가시든 학생부에 계실 확률이 무척 높은 ‘체육’ 김윤성 선생님 나와주셨고요. 교생실습 때 교생과 지도교사로 인연을 맺었는데 신규 발령도 이곳으로 받으신 국어 임다정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핫도그 만드는 교사들

 

먼저 재료를 소개해 드릴게요. 저희는 거의 이 지역 식자재 마트에서 재료를 구입해요. 학교와 지역이 함께 살아야 하니까요. 저희 전교생이 260여 명 되는데 굵은 소시지와 길쭉하고 양쪽으로 갈라지는 아메리칸 핫도그 빵을 학생 수만큼 주문합니다. 달콤한 데리야끼 소스와 풍미를 더해 줄 아일랜드 드레싱, 그걸 뿌려줄 구멍 세 개 달린 소스통도 필요합니다. 위생상 키친타올과 비닐장갑, 마스크를 준비하는 건 기본인 거 아시죠?

 

여기서, 우리 ‘정선 가득한 아침’ 시청자 여러분께만 살짝 귀띔해드릴 준비물이 몇 가지 더 있어요. 교직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들이 될 거라고 후배 선생님들을 꾈 수 있는 당의정 2알.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도 먼저 웃으며 인사말을 건넬 수 있는 뻔뻔함 100그램. 규정을 잘 지키면서도 그럴듯하게 지출 품의를 올릴 수 있는 필력 세 스푼입니다. 교장, 교감 선생님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넉살까지 갖추셨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자! 이제 조리를 시작해 볼까요? 우선 세 사람이 학생들이 등교하는 현관 앞에 2인용 긴 책상 두 개를 놓고 나란히 섭니다. 임다정 선생님이 교무부와 학생부에서 가져온 전자레인지에 빵을 데우고, 김윤성 선생님이 집에서 가져온 캠핑용 그릴에 소시지를 굽습니다. 그러면 제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빵 속에 육즙 터지고 탱글탱글한 소시지를 끼운 뒤 소스를 골고루 뿌려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건넵니다.

 

아차! 중요한 걸 빼먹을 뻔했네요. 이 핫도그를 먹으려면 마법의 주문을 자기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야만 합니다. 제 옆에 서 있는 배너에 쓰인 주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SNS에는 고운 말 좋은 글만. 다툴 것 같으면 선생님께 중재를. 너도 나도 모두 귀중한 사람.”

 

여기서 잠시, 그날의 풍경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네! 여기는 3월 16일 아침, 정선고등학교의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 현장입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100여 미터 가까이 늘어선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주문을 외는 소리가 함께 뒤섞여 활기찬 아침을 만들고 있습니다. 캠페인에 참여한 정선고 2학년 김도연 학생을 만나보겠습니다. 핫도그 맛이 어떤가요?”

 

“너무 맛있어요! 정선에서 처음 이런 거 먹어 봐요!!!!”

“이런 캠페인 참여하는 느낌이 어떤가요?”

“사실 처음엔 그냥 맛있다, 즐겁다 이런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선생님들이 매일 등교할 때마다 이름 불러 주시고, 머리 자르면 그것도 알아봐 주시고, 기분도 살펴 주시고 하니까 내가 정말 귀한 사람,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다시 정의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면서 우리 학교 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울타리로 묶이는 느낌도 들었고요.”

 

교실로 올라가면 핫도그 맛을 놓고 미식회가 열립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교실 안에서도 멀찍이 떨어져 앉아 말 한마디 없이 각자 핸드폰 게임만 하던 아이들이었습니다. 2022년, 이러한 캠페인이 시작된 후로, 정선고에서는 다툼과 학교폭력이 드라마틱하게 사라…….”

 

화해·공존·어울림을 꿈꾸다

 

여기까지 보겠습니다. 영상 어떻게 보셨나요? 영상 끝에 취재 기자가 큰 실수를 할 뻔했네요. 대한민국에 3대 금기가 있다고 하죠. 응급실에서 환자가 없다고 말하기, 소방서에서 긴급 출동이 없다고 말하기, 그리고 학교 학생부에서 학폭 사안 없다고 말하기. 농담입니다! 하하하.

 

시청자 여러분 오늘 소개해 드린 레시피 어떠셨나요. 2006년에 개봉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기억하십니까. 한국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르던 깊은 산골에 우연히 국군, 인민군, 연합군 병사들이 흘러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서로를 죽이려고만 들던 병사들을 자연스레 화해하도록 만든 신선 같은 촌장님은 위대한 지도력의 비결을 다음과 같이 밝히시죠.

 

“뭘 좀 마이 멕이야지 뭐.”

 

어깨띠와 피켓, 딱딱한 표어를 인쇄한 볼펜과 기념품으로 진행하는 캠페인 대신, 한입 가득 베어 물 수 있는 핫도그 레시피로 그 자리를 대신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레시피대로 요리해 보신 후기를 한국교육신문 독자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추첨을 통해 이 글쓴이의 연락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배제와 파국 대신, 화해와 공존, 어울림의 문화를 함께 꿈꾸실 시청자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지금까지 ‘정선 가득한 아침’ 진행자 정선고등학교 학생안전부장 이원재 선생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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