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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시선으로부터,

남쪽엔 매화가 벙글어지고 있습니다. 무학산을 오르며 납월(臘月) 청매 몇 송이 핀 모습에 감동하였는데, 설을 지나고 나니 여기저기에 하얀 매화꽃이 함박눈처럼 쏟아집니다. 아, 봄은 우리의 실핏줄을 지나 심장을 향해 직진하고 있나 봅니다.

 

코로나로 인해 독서 모임은 온라인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2월에 함께 읽을 책이 올라왔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입니다. 설 연휴를 지나 택배로 배달된 책 표지는 푸른 소금 알갱이나 사파이어 원석 조각 같기도 한 것이 중앙에 비스듬하게 넘어질 듯 배치되어 있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책은 『보건교사 안은영』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 때문에 기분 좋은 느낌으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린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낼 거야.”

이 한 문장으로 소설의 이야기는 압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미술가이자 작가이며 멋진 어른인 그녀, 심시선을 제사 지내기 위해 10주기를 맞이하여 가족들이 하와이로 떠난다는 황당한 상황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녀가 두 번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독특한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할머니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만든 이벤트를 통해 성장하고 이해합니다.

 

“기일 저녁 여덟 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p. 83

 

책을 읽으니 매화꽃이 피었는데도 매화차를 함께 마실 독서 모임을 열지 못하는 안타까운 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집니다. 이맘때면 찻잔 속에 벙글벙글 피어나는 매화꽃에 눈을 맞추고 향기에 취하며 이런 일을 함께 즐기는 벗들과 봄을 맞이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니 매화 꽃에게 괜히 눈을 흘기는 속 좁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주변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올곧은 마음으로 견디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남녘의 봄소식을 전합니다. 곧 우리 곁에 꽃과 풀과 나비가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달라져 있지 않을까요? 이성부 시인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라고 하였습니다. 코로나로 지친 마음에도 봄이 올 것입니다. 함께 기다려볼까요.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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