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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2020.자유인의 서재 ⑮>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자유인'을 향한 마지막 질문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

 

"천지간에 꽃이지만 꽃구경만 하지 말고 나 자신은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 -법정스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어떤 이름을 남길 것인가? 나의 가족에게, 나의 제자들에게,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 물음은 바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가 걸어온 길이 어떤 길이었는가를 묻는 질문과 같다.

 

 어떤 이는 죽어서 더 이름을 남기고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가하면, 어떤 이는 죽은 뒤에 더 추락하는 이도 있다. 심하면 수백 년이 지나 회복이 되기도 하고 영영 못된 사람으로 추락하는 이도 있다.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는 말도 있다. 이때 오래 산다는 의미는 생물학적 시간의 길이를 말함이 아니다. 얼마나 오래 역사적으로 기억되는가를 말함이다.

 

예수나 공자, 노자처럼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영원불멸의 이름으로 남는 그들은 바로 어진 사람이었고 세상을 구원하고 싶어 하며 마지막 한 걸음까지 생명의 불꽃을 태운 사람들이다.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라는 질문은 대단한 위인이 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무엇으로 기억될지 고민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특히 내 아내, 내 아들, 내 딸에게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28쪽

 

아프리카 스와힐리족은 사람이 죽으면 일단 '사사(sasa)'의 시간으로 들어간다고 봤다. 사사의 시간에는 육체적으로 죽은 이마저도 '기억되는 한 아직 살아 있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진정한 죽음은 '자마니(zamani'의 시간에 들어간 이후이다. 다시 말해 아무도 그 혹은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은 자마니, 즉 영원한 침묵과 망각의 시간으로 들어간다고 봤다. 그때 비로소 진짜 죽는 것이 된다. -28쪽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유대 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시』의 '다윗 왕의 반지'에서 나왔다고 한다.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의 세공인을 불러 명했다.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라고! 이에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정작 거기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때 솔로몬이 일러준 글귀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66쪽

 

  같은 책을 읽어도 읽는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감동과 느낌을 안겨준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2012년 학습연구년을 할 때 사서 읽으며 감동의 물결에 휩싸여 눈물을 짓게 했던 책이었기에 늘 다시 읽고 싶은 책으로 따로 보관 중이던 책이다. 그럼에도 그 당시와 같은 감동 대신 작은 한숨을 지으며 두 번째 읽기를 마쳤다. 이제 나의 걸음이 마지막 한 걸음에 와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교직 생활 42년을 마감하고 인생의 새로운 언덕을 향해 가는 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시간마저도 느낌이 다르다. 상대적이리라. 다시는 설 수 없는 교단, 더는 걸을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에 날마다 마지막 걸음이었음을 느끼는 탓이다. 생각해보면 날마다 사는 시간이 마지막 걸음이다.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내일도 같은 길을 가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살아온 걸 부인하기 어렵다. 반복된 일상이지만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음에도 그날이 그날처럼 살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나는 어떤 꽃인가?

 

  바꾸어 생각하면, 교단을 내려서는 그날이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날이었다. 규격화된 교사의 삶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오히려 반겨야 함이 옳다. 마지막 한 걸음이 남은 셈이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도 나를 일터로 내 몰지 않는 날이 왔으니. 인생은 시작도 여정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좋아야 한다. 그 끝을 향해 가는 길에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을 읽으며 코로나19에 묻힌 봄을 지나는 중이다.

 

   우리는 늘 함께 살아가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각자의 길을 가는 나그네이거나 여행자일 뿐이다. 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부모나 스승, 배우자나 자식, 친구들, 직장 동료에 이르기까지 잠시 몇 걸음을 함께 할 뿐, 결국은 늘 혼자 가는 길이다. 같이 가는 순간에도 기쁨보다 슬픔이 행복보다 어려움이 더 많은 게 삶이다. 혼자 가기 싫어서 어떻게든 인연을 만들고 곁에 두고 싶어 한다. 때로는 그것이 집착이 되어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어찌 보면 생명체 중에서 가장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인간은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길고 긴 성장 시기를 보내고도 독립적으로 삶을 꾸려 일어서는 데 너무나 긴 시간을 보내는 존재인 인간. 강아지나 고양이가 어미로부터 떨어지면서 분리불안을 겪지 않지만 인간은 그 증세가 너무 심하다. 학교를 마치고도, 직장을 갖고도, 심지어 결혼을 하고서도 어버이의 그늘을 찾는 게 인간이다. 물질에 의존하고 지식에 기대며 촘촘한 인간관계의 망을 놓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불안해한다.

 

  저자에겐 죄송하지만 책 제목 중 '마지막 한 걸음' 대신 '인간은 언제나'로 바꾸고 싶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언제나 혼자 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돈키호테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돈키호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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