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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2020.자유인의 서재 ⑬>거의 모든 것의 역사

존재의 시작을 찾아서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사람의 일생은 평균 65만 시간(약 72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적당한 순간이 지나가거나 아니면 그에 가까운 순간에 당신의 원자들은 당신의 존재를 마감하고 조용히 떨어져나와서 다른 곳으로 달아나버릴 것이다. 그것으로 원자와 당신과의 관계도 끝나버린다. (12쪽)

 

  이 책은 2003년에 번역된 책으로 그 무렵 과학 책 중의 베스트셀러였다. 그 당시 기준으로 세계인의 평균 수명을 72년으로 보았을 때 지금 내게 남은 기대수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갑자기 아득해졌다.

 

10년을 더 얹은다 해도 82년이니 길게 보면 20년이 기대수명인 셈이다. 그 중에서도 생존에 필요한 시간을 빼고 나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은 겨우 7년 정도다!

 

  이 책을 처음 사서 읽을 때도 충격적인 대목이 많았지만 10년 뒤 다시 읽으니 서문부터 절박함을 안긴다. 내 존재가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실은 원자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그렇다! 내 존재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약간의 칼슘, 소량의 황, 그리고 다른 평범한 원소들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다. 내가 산다는 것은 내 안의 원자들이 사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그 원자들이 흩어지는 것일 뿐이라는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사실.

 

  그럼에도 내가 사는 것이 기적임을 잊지 않도록 자극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과학 책은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 앞에 설 때, 일상이 그저그런 허무할 때 마음을 다잡게 하기에 좋은  책이다. 폭염중에 태양을 피해 한 밤중에 읽으면 더욱 서늘함을 안긴다. 요즈음처럼 코로나19로 팍팍하고 무력해진 인간의 한계 앞에 큰 숨 몰아쉬며 다시 읽어도 좋다. 책은 마음을 비우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

 

 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가두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독서가 아닌가 한다. 책마저 읽을 수 없다면 어디서 힘을 얻을까? 사람을 만나는 게 민폐가 되어버린 세상, 믿었던 종교의 배신, 생각 없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무책임함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 중에 독서만큼 위로를 주는 것이 또 있을까?

 

  이 책은 서문부터 소름이 끼치도록 직선적이고 명쾌하다. 과학 책이니 더욱 그러할 테지만. 어느 곳을 펼쳐도 신기함과 놀라움을 안겨준다. 우주의 역사를 시작으로 지구, 생명체, 우리의 미래 등을 다루며 신비한 과학의 세계를 이끌고 다니며 지식의 지평을 넓혀온 과학자와 수학자, 건축가, 모험가들의 노고가 가득하다.

 

  몇 해 전 폭염으로 지치고 무료해졌을 때  포만감을 안겨주었던 책이다. 내 존재의 신비함과 우주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채워주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전문적인 용어들이 넘치지만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애쓴 빌 브라이슨과 이덕환의 친절한 번역도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도록 용기를 준다.

 

 558쪽의 방대한 책이지만 과학적 호기심과 우주와 생명에 대한 탐구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이다. 이 책이 나오도록 오래 전부터 연구를 즐겨온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존재의 시작을 숫자로 표현해놓은 다음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어서 소개해 올린다. 얼굴도 모르는 셀 수 없이 많은 나의 선조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 세포가 둘로 분할되고, 둘이 넷이 되는 일이 계속된다. 그런 분할이 47회만 계속되면 1경 京,1016 (1만조 개)의 세포가 생기게 되면서 인간으로 태어날 준비가 끝난다. 그리고 각각의 세포들은 모두 탄생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당신을 보존하고 키워주기 위해서 각자 해야 할 일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390쪽)

 

인간의 세포들은 1경 명의 국민을 가진 국가를 구성하고 있으며, 각 세포들은 전체의 복지를 위해서 놀라울 정도로 전문적인 일을 수행해야 한다. 세포가 하지 않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즐거움을 느끼고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세포의 일이다. (391쪽)

 

당신의 부모님이 초(秒)와 심지어 나노(10 -9) 초까지 정확한 바로 그 수간에 결합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지금 이곳에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들의 부모님들이 정확하게 시각을 맞추어 결합하지 않았더라면, 역시 당신은 지금 이곳에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에 대한 빚은 빠르게 쌓여가게 된다. 8대 정도를 거슬러 올라가서 찰스 다윈과 에이브러햄 링컨이 태어난 시절로 돌아가면, 당신의 존재를 결정한 사람들의 결합에 참여한 선조의 수는 250명이 넘게 된다.

 

셰익스피어와 메이플라워호에 오른 청교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신의 몸속에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를 전해준 선조의 수는 16,384명에 이르게 된다. 20대를 올라가면, 당신의 출생에 기여한 사람의 수는 1,048, 576명이 된다. 그보다 5세대를 올라가면 무려 33,554, 432명의 남자와 여자가 헌신적으로 결합한 덕분에 당신이 존재하게 되었다.

 

30대 전으로 올라가면, 당신의 선조의 총 수는 10억 명을 넘는, 1,073,741, 824명이나 된다. 이들은 모두 사촌이나 삼촌이 아니라 별 수 없이 당신의 직계 선조들이다. 로마인이 살던 64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신의 존재를 결정하는 데에 참여했던 사람의 수는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사람들의 수를 합친 것보다 몇 천 배가 넘는 1018명이나 된다. (417쪽)

 

  생명이 어디서 왔는지, 존재의 시작이 언제인지, 무엇으로부터인지 아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의 시작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평생 동안 흔들리며 살아간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존재에 대한 의심이나 탐구심이 없이 타인에 의해, 아니면 종교적 신념에 따라 관습적으로 또는 맹목적으로 생각함을 박탈당한 채 피동적으로 사는 사람이 오히려 편안할 수도 있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현상은 극단적으로 현재의 삶에만 충실하게 행복을 추구하는 욜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LO 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로,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생활양식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삶인데 고민하지 말고 단순하게 현재를 즐기자는 심리 현상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삶,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삶에 인류의 미래가 있을까?

 

  제자들의 밥상을 채우는 독서를

 

  교육은 미래지향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며 긍정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매우 다의적이고 합목적적인 행위의 집합체이다. 단순히 현재에 만족하는 삶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도록 가르치는 행위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 어울려 사는 지혜를 전수해줘야 한다. 그 길은 무지를 극복하도록 부단히 공부하고 학습해야 걸을 수 있다.

 

  그러기에 교육은 인문학적 성찰을 중시한다. 교사는 바른 길을 안내하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 전진하도록 돕는 위대한 조력자다. 그러니 제자들에게 먹일 인생의 지식 창고가 늘 풍부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식 창고를 채우기에 적합한 책이다. 교사의 배경지식은 자신 있게 배움의 씨앗을 뿌려줄 수 있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검색의 시대에는 지식의 수명도 매우 짧다. 그러니 틈나는대로 부지런히 채우고 연수하지 않으면 초스피드로 달려오는 정보 시대를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도 없으니 최소한 인문학적 배경지식의 지평을 넓혀줄 책은 꼭 읽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주과학, 생명과학, 지리, 환경과 생존을 다루어서 교사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다. 특히 과학자들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가 풍부하여 지루함을 이기게 한다.

 

  내 존재의 시작, 생명의 기원을 파헤친 책을 만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정체성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내 존재가 창조의 산물인지, 진화의 결과인지 추론해 볼 수 있어서 좋은 책이다.

 

  오랜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나는 창조론에 늘 회의적이었다. 인간의 정체성을 알고 싶어서 종교와 종교 서적에 기웃거린 시간이 길었다. 이제는 확신에 가까운 단계에 이르렀다. 아인슈타인처럼 보편적 종교관으로 기울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존엄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으니.

 

  이 행성에서 인간만이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모든 생명체는 공생과 상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책 덕분이다. 특히 과학 책은 명쾌하고 숫자로 증명하는 논리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서 좋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양 날개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선생님의 지식 창고는 채울수록 좋다. 언제든 꺼내서 요리할 재료가 풍부하고 다양할수록 교사로서 자신감과 전문적 지식으로 제자들에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줄 수 있으니. 코로나19로 4월 개학이라는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오히려 풍성한 밥상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 선생님들이 많아지면 참 좋겠다. 선생님의 지식 창고는 풍성할수록 좋으니! 한 달 넘게 배고픔과 설렘의 숟가락을 들고 달려올 사랑스런 제자들에게 골라 먹는 재미를 선물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