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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부안 곰소, 개미지고 찬찬한 그 맛

 

맛, 풍경, 이야기. 세 가지 즐거움이 있어 풍요로운 변산을 두고 변산삼락(邊山三樂)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산과 바다,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져야 제맛인 곳. 해안절경을 품에 안고 외변산 바닷길 따라 한 바퀴 굽이돌면 그 길 끝에 곰소가 있다. 길들여지지 않은 선한 세월이 알맞게 곰삭아 입안을 감아 도는 모습으로. 알찬 바지락젓마냥 개미지고 찬찬한 맛으로. 그리고 이생을 살다 가면서 한 번쯤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귀한 것들이 씹혀드는 짭쪼롬한 이야기로.

 

‘곰소’라는 예쁜 이름의 유래

 

곰소에 들 때마다 자꾸만 그 이름을 곱씹어보게 된다. 지금껏 수많은 곳을 돌아다녔을 것인데, 그 돌아다닌 걸음들은 다 어디 있는 것일까 묻고 싶어질 만큼 깊고 간절한 마음이 담긴 것 같은 이름, 곰소. 
 

곰소라는 이 예쁜 이름은 과거에 심마니들이 ‘소금’을 뒤집어서 ‘곰소’라고 불렀다는 데서 유래했다. 곰소 일대 해안에 곰처럼 생긴 섬이 있어 ‘동국대지승감’에는 ‘웅연(熊淵)’이라고 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 앞에 소(沼)가 있어 곰소가 됐다는 설 또한 전해진다. 
 

이 소의 또 다른 이름은 ‘여울개’. 곰소 앞바다가 얼마나 깊었던지 서해를 지키는 개양 할머니가 여울개에 빠져서 치마에 물이 젖자 치마에 돌을 담아 메웠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곰소에 가면 ‘곰소 둠벙 속같이 깊은 사람’ 하나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 가슴부터 설렌다. 속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이야기가 딱 지금 시작될 것만 같아서. 

 

 

일제 수탈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곰소항

 

곰소항은 전라북도에서는 군산항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어항이었다. 항구 주변으로 큰 어장에나 형성되는 파시가 설 정도였으니, 그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으리라. 지금은 새만금간척사업으로 많이 작아진 모습이긴 하지만, 1986년 제2종 어항으로 지정돼 물량장 및 부대시설을 갖추어 150여 척의 배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하루에 130여 척의 어선들이 드나드는데다, 주변에 소규모 상가들이며 마을을 끼고 있어 항구로서의 위상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항구들이 그러하듯 곰소항도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칼과 창의 형상을 한, 이른 바 욕락(欲樂)이라고 부르는 결코 즐겁지 않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가 함께 하고 있다. 
 

인근의 줄포항이 토사로 인해 수심이 점점 낮아져 폐항되자, 그 대안으로 일제가 제방을 축조해 만들어진 것이 곰소항이다. 1938년 진서리 앞바다의 곰섬을 중심으로 동쪽의 범섬과 연동, 서쪽의 까치섬과 작도리를 잇는 제방을 쌓아 서해 어업의 전진기지항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이 지역에서 수탈한 각종 농산물과 군수물자 등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항구인 셈이다. 
 

그러기에 강화 석모도, 태안 안면도와 더불어 서해안 3대 낙조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곰소항 일몰 속에서는 문득 아릿한 역사의 흔적이 만져지기도 하는 것이다. 

 

고향 같고, 어머니 같은 곰소 젓갈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든 현재로서는 전국 최고의 젓갈 단지가 조성돼 있는 곰소항. 70년대 초반에는 서너 군데에 불과했던 젓갈 판매업소가 지금에 이르러는 60여 곳이 넘게 성업 중이다. 멸치액젓을 비롯해 새우젓, 바지락젓, 황석어젓, 갈치속젓, 조기젓, 멸치젓, 고노리젓, 밴댕이젓, 잡젓 등 200여 종의 젓갈을 사시사철 생산해낼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젓갈 공장들이 3000여 드럼의 멸치액젓을 숙성시킬 수 있는 규모의 지하 탱크를 갖추고 있다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0여 년 전만 해도 부업 형태에 지나지 않았던 이 젓갈 가공업은 지금에 이르러 연간 판매액이 수십억 원에 달할 만큼 이곳 주민들의 주 소득원이 돼온 것이다.
 

그래서 진서면 곰소는 젓갈의 천국으로도 불린다. 된장과 고추장, 간장 등의 장류는 물론이거니와 김치와 더불어 우리 민족 고유의 3대 맛 중의 하나인 젓갈. 무엇보다 곰소 젓갈은 짜지 않고 달다. 변산반도 근해에서 잡은 싱싱한 어패류를 곰소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으로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때문에 곰소 뿐만 아니라 부안 음식은 젓갈이 들어가지 않은 데가 없다. 양파김치나 파김치를 담을 때는 새우젓이, 배추김치에는 갈치액젓이, 장아찌와 각종 밑반찬에도 젓갈이 들어간다. 물론 찬밥에 물 말아 풋고추 썰어 넣은 젓갈을 올려 먹으면 입맛 없는 여름철 한 끼 정도는 거뜬하다. 그러면 고향 같고, 어머니 같고, 서해 낙조 같은 깊고도 깊은 젓갈 향이 한참 동안 입안에 남아 있곤 한다. 
 

전라도 음식이 개미가 있고 찬찬한 것은, 바로 이 젓갈 때문 아니겠는가. 겉 맛이 아니라 속 맛, 즉 한 번 좋았다가 마는 게 아니라 먹으면 먹을수록 자꾸 당기고 그리워지는 감칠맛 나는 그 맛. 다둑다둑 눌러 담은 정 같은 것 말이다. 혹은 사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앎의 경지를 등진 채 윤회하는 날들을 여읜 맛이라 해야 할까.

 

 

곰소 젓갈의 비결, 소금

 

곰소 젓갈의 비결은, ‘금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하는 소금에 있다. 곰소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물이 맑아 질 좋은 소금을 생산할 수 있었다. ‘평양감사보다 소금장수’라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로 소금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기분이 좋아 괜히 히죽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소금장수 사위 얻었냐’며 건네는 농담도 그때 생겨난 말일 것이다. 오죽하면 소금값이 쌀값보다 비싸 곰소염전을 일러 ‘생금밭’이라 했을까. 
 

일제가 곰소항을 만들면서 함께 추진한 사업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곰소항 앞으로 8헥타르(ha)에 달하는 드넓은 염전이다. 곰소항에서 얻은 수산물을 일본까지 변질되지 않게 운반하기 위해서는 소금이 필요했으리라.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태양열로 바닷물을 증발시켜 생산하는 천일염이 아니라 장작불을 때어 얻을 수 있는 자염이었다. 
 

곰소 염전이 생기기 전에는 갯벌에 도랑을 파 간조 때 미처 빠지지 못한 바닷물을 가두고, 이 물이 마르면서 생긴 소금을 긁어모은 전오염을 천일염으로 썼다. 일제강점기에 곰소와 육지를 잇는 길이 놓이고 작은 만이 생기면서 당시에는 꽤 값어치가 있던 소금을 좀 더 많이 얻을 요량으로 염전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자염전이 천일염전으로 바뀐 것은 해방 직후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소금창고는 1946년에 지어졌는데,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남선염업’이 그것이다. 남선염업이 50년째 꾸려오고 있는 곰소염전의 소금은 순도 99%의 천일염이다. 바닷물을 가두어 햇볕에 말리는 염판은 전체 넓이만 15만 평에 이른다. 수로를 따라 5평 단위로 반듯하게 나뉘어 있는 염판이 마치 바둑판처럼도 보인다. 수로를 통해 들어온 바닷물이 제1증발지를 거쳐 제2증발지, 결정지를 차례로 지나며 잘 마르면 순도 높은 천일염이 된다. 이곳에서 연간 2000톤 가량의 소금이 생산된다. 눈꽃보다 희고 예쁜 이른 바 ‘생금’이 얻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곰소의 천일염이 다른 지역 소금보다 높은 대접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닷물을 저수지에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물을 끌어 올려 쓰는 이곳 염전은 소금 결정을 한 번 빼낸 간수를 재활용하지 않고 바로 버린다. 결정지에서 밀대로 밀어 소금을 걷어내고 남은 물에는 약간의 소금이 남는 법인데, 간수에 남은 소금을 얻으려고 새 물을 가둘 때 섞어 넣으면 쓴맛이 생겨 질 낮은 소금이 된다고 한다. 
 

혀끝에 단맛이 도는 곰소 천일염의 비결은 또 있다. 만으로 이루어진 곰소염전에 미네랄 성분이 많은 육지의 물이 흘러들어온다는 점이다. 다른 곳에서 나는 소금보다 미네랄이 무려 10배가량 높은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니 바닷물로만 만들어진 천일염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 날 수밖에.
 

제염비결의 빼놓을 수 없는 천혜의 조건 중 또 한 가지는 송화 가루에 있다. 소금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건 5월 중순께다. 곰소만의 안쪽에 자리한 지리적 특성 때문이라는데, 이때 주변 변산의 소나무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온 송화 가루가 소금 결정에 소복이 내려 앉는다. 염전에 끌어올린 바닷물이 노랗게 변할 정도로 송화 가루가 내려앉아 있던 모습을 어느 때 한번 본 적이 있는 것도 같다. 송화 가루가 혈액순환을 돕고 노화방지와 뇌졸중 예방에 좋다 해서 차나 다식으로도 애용되어온 걸 보면, 곰소 천일염이 생금이기 이전에 명약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성 싶다. 
 

그 명약으로 숙성시킨 젓갈이니만큼 곰소 젓갈 또한 명약이라 칭해도 되지 않을까. 자고로 자던 사람에게 숟가락도 쥐게 만드는 것이 곰소 곰삭은 젓갈 맛이지 않던가.

 

 

둥범 속 마냥 깊디 깊은 곰소항 일몰

 

곰소를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는 일몰을 봐둘 일이다. 곰소만 저편으로 지는 해 속에서는 운저리며 쇠빙어, 꼴뚜기, 갈치, 숭어랑 밴댕이가 논다. 그 노는 모양새가 곰소-, 하고 불렀을 때처럼 살갑고 다정하다. 개미지고 찬찬하다. 곰소를 닮아 짭쪼롬히 씹혀드는 것이 둠벙 속 마냥 깊디 깊다. 지는 일이 저리 찬란할 수만 있다면, 또 한 생 건너가는 일이 너끈할 것도 같다. 김형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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