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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경험은 자기가 저 자신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몽테뉴

▲ 그리움으로 남은 풍경, 운동장에서 썰매 타던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인생의 소중한 동반자

 

제2차 세계대전 때 어느 유대인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나치군 장교는 잔인하게도 매일 가스실로 보낸 사람들을 골라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청년이 우연히 유리 조각 하나를 줍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자신의 삶을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하던 그는 유리 조각으로 제멋대로 자란 수염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면도를 끝낸 그는 말쑥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또다시 가스실로 갈 사람을 뽑을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나치 장교는 유대인들을 살펴보다 청년에게 눈길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깔끔한 얼굴에 삶에 대한 의지로 반짝거리는 두 눈을 보자, 도저히 그를 끌고 갈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깔끔하게 면도한 청년은 제외되었습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남으로써 청년은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외수의 『마음의 열쇠, 뼈』중에서

 

자기 자신을 소중한 동반자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을 줍니다. 극한 상황에서 선택지가 없을 때 보여주는 모습이 진정한 자기 모습입니다.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절망감, 그 누구의 도움도 구할 수 없는 상황, 세상에 나 혼자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극한 고독감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놓아버리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온힘을 다해 자신을 끌어올려 최대치의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거나 보고 들으면 힘이 생기고 살아가는 힘을 얻곤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런 일화들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이제 겨우 여덟 살인 1학년 아이들도 이야기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은 어른과 다르지 않음에 놀라곤 했지요. 오히려 어리고 순수하기에 더 잘 받아들이고 눈빛을 반짝이며 감동하던 아이들. 학교에 와서 선생님을 만나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교과서를 공부하는 것은 일부일 뿐이고 선생님이 가진 지식과 지혜를 교과서라는 길을 통해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하며, 삶의 지혜를 만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주곤 했습니다.

 

어릴수록 감동하고 달라지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저학년을 가르치는 일이 좋았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 튀는 탁구공 같은 아이들이지만 좋은 이야기, 감동적인 일화를 받아들이는 흡입력은 스펀지 같았습니다. 그래서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명심보감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곤 했지요. 어떤 아이는 명심보감을 읽어줄 때마다 복사해달라고,  집에 가서도 읽고 싶다며 앎의 기쁨으로 상기된 표정을 보는 즐거움은 가르침의 행복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인생의 소중한 동반자를 깨닫게 하는 선생님

 

위의 이야기는 우리 반 1학년 아이들이 듣고 좋아한 일화입니다. 아이들은 뭐든 좋은 이야기는 진짜 이야기냐고 묻습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실화가 주는 감동을 아이들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될 수 있으면 실화를 많이 들려주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선배들이 자기 자신을 소중한 동반자로 여기며 살다간 감동적인 실화들을 만나면 늘 적어둡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제가 더 감동하여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합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석양이 다가올수록 가르치는 일은 배우는 일이 되는 교직의 아름다움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해지던 교실. 어린 영혼들은 만나 고뇌하고 감동하고 설레며 보낸 오랜 교직 생활을 감사하며 사랑했지요.

 

가르친다는 것, 배운다는 것은 인생의 소중한 동반자를 찾아나서는 일입니다. 그 동반자를 외부에서 찾다가 실망하고 절망하면 헤어나오기 힘듭니다. 종교에서 찾는 사람, 부모에게서 찾는 사람, 배우자나 연인에게서 찾는 사람, 물질에서 찾는 사람, 스승에게서 찾는 사람, 예술에서 찾는 사람. 등. 어쩌면 인생은 그 소중한 동반자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책을 읽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어쩌면 소중한 동반자를 찾기 위한 기나긴 여정입니다. 저는 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학생 자신이라고.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출발한다고. 그러니 자신을 소중히 하라고. 자신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나 아닌 부모나 친구도 소중히 하고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게 되는 거라고. 그것을 찾는 눈이 외부로 향할수록 불행해질 수 있다고 나 자신과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스승은 너무나 무겁고 높은 단어이니 다만 선생으로 인생을 보낸 학교에서 제자들을 생각하며  산 탓인지 퇴직을 한 뒤에는 수업하는 꿈을 생생하게, 자주 꿉니다. 오랜 시간 뇌리에 각인된 교단의 삶은 제 무의식마저 지배하고 있음에 놀랍니다.  이틀이 멀다하고 꿈 속에서도 아이들을 만나니 제 영혼의 절반쯤은 교실에 두고온 모양입니다.

 

이제는 더할 것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가을 단풍처럼 지는 모습 추하지 않게,

겨울나무처럼 마지막 한 잎 지상에 내려놓는 순간까지 부끄러움 없기를,

제 자신을 소중한 동반자로 삼아 나를 보고 따라온 천 명이 넘는 내 제자들에게

뒷모습이 초라하지 않은 한 인간으로 남고 싶습니다.

내 인생의 소중한 동반자인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이 어디서나

모두 이름값을 다하는 2020년이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