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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고구려 유적 답사기> '잊혀진 시간을 찾아서'


광주교육청이 주관 하에 광주지역 일선 역사 교사들이 역사왜곡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교육에 나서 화제다. 광주시내 초·중·고 역사담당 교사 33명은 2개 팀으로 나뉘어 지난 여름방학 고구려의 터전이었던 중국 지안, 환인 지역 등을 탐방, 직접 역사의 현장을 둘러 본 후 이를 교육활동에
반영하기 위한 국외 테마 연수를 다녀왔다. 그 중 광주 어등초 김형수 교사의 눈을 통해 우리의 역사지만 볼 수 없었던 고구려의 흔적을 찾아보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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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생생한 삶 느껴 가슴 뭉클
'고구려는 중국 이민족' 표지판에 아찔

역사를 안다는 것은 과거를 정확하게 공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선조들이 지나왔던 그 시간의 발자취를 통하여, 현재의 우리 삶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지침을 얻는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교육청이 주관, 실시하는 초등 교사들의 해외 테마체험 연수 프로그램 중 ‘고구려 관련 유적 답사’ 팀원인 우리들은 그런 기회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대륙에까지 뻗혔던 고구려 선조들의 웅대한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해 팀원들은 인터넷에 카페를 개설했다. 우리가 체험하게 될 고구려 관련 유적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서 공유하고 토론하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하면서 우리 눈앞에 펼쳐질 고구려의 모습에 가슴 설레었다.

7월 22일 새벽 3시에 광주에서부터 출발한 우리들은 인천공항을 통해 중국 심양으로, 다시 미니버스로 5시간을 동쪽으로 달려서 목적지인 ‘환인’현에 도착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길을 떠난 주몽(동명성왕)이 바로 졸본(卒本)에 이르러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를 세웠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이곳에는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처음 세웠던 졸본성(홀본성, 오녀산성)이 있었다. 900여 개의 돌계단을 올라, 서문을 통해 산성에 올랐다.

성의 동쪽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차례로 나타나는 ‘천지’샘터, 넓은 들판과 궁궐터, 장수들을 점검했던 점장대, 커다란 식량창고, 온돌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형 주거지(주둔지)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성벽만을 생각했던 우리의 예상과 달리, 홀본성은 지상 800여 미터의 성에 경작지와 주둔지까지 갖춘 천혜의 요새였다는 사실에 우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환인에서 버스로 다섯 시간 정도의 거리에는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지안시 부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는 고구려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과 전쟁 때 사용되었던 환도산성이 있었다. 더군다나 환도 산성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목에는 수많은 고구려 귀족들의 무덤들이 무더기로 발굴되어 있었다. 시의 북서쪽에는 사신도(四神圖)로 유명한 고분을 비롯하여 고구려 5대 고분군이 쓸쓸히 방치된 듯하여 약간의 씁쓸함을 느꼈다.

광개토대왕릉과 광개토대왕릉비, 그리고 장수왕릉은 북동쪽으로 삼각형을 이루어 비교적 가깝게 위치하고 있었다. 광개토대왕릉은 1300평 넓이에, 높이만도 14.8미터나 되어 마치 작은 산 하나를 마주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광개토대왕릉 앞 제단에서 우리는 잠시 묵념을 하였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근처에 있었던 400여 호의 집을 헐어내는 과정에서 근래에 새롭게 발굴된 제단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가장 큰 돌비석인 광개토왕릉비는 2003년부터 방탄유리로 막아놓았다고 하는 데, 경주의 석굴암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궂은 비바람에도 굳건히 버티며 오늘날까지도 우리 민족의 위대함과 역사적 진실들을 웅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에 못지않게 우리를 압도한 것은 광개토대왕비에서 버스로 5분 정도 달려서 볼 수 있는 장수왕릉이었다. 엄청난 크기의 돌이 반듯반듯하게 사각형으로 층층이 쌓였고, 4개면에 걸쳐 2개씩의 축돌들이 받히고 있는 장수왕릉은 동양의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가 그 옛날 중국의 동북지역에서 있었던 이민족(오랑캐)의 하나였다는 지안시박물관의 안내표지판에 쓰여진 내용을 보면서는 아찔함을 느꼈다. 환인과 지안현에 있는 고구려 관련 세계문화유산은 중국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관광 상품 내지는 향후 국제정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지 모르지만, 졸본성과 국내성 곳곳에서 고구려인들의 생생한 삶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영락없는 고구려의 후손인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이 조상들의 삶의 모습이며, 삶의 터전으로 가슴에 와 닿는 것이다. 한적한 시골에 덩그러니 놓여진, 조상들의 문화유산은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움이기에 그 작은 세세함에도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중간의 역사전쟁이 한창인 요즘, 자꾸 홀본성의 ‘태양정’이라는 정자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이 땅의 주인이 과연 누구였는가를 웅변이라도 하듯, 전면의 산야와 혼강(비류수)이 휘감겨 만들어 내고 있는 신기한 ‘태극문양’의 지형 모습,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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