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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 소년이 온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우리 역사에서 외면할 수 없는 ‘그 도시의 열흘’을 ‘어린 새’의 파닥거림으로 좇아가는 글을 읽으며 자꾸만 아려왔습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은 읽는 내내 저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5월의 광주’에서 벌어진 참혹한 현실을 마주한 작가는 그 날 파괴된 영혼들이 못 다한 말을 접신하듯 쏟아 냅니다. 그 아이, 그 소년은 연한 하늘색 체육복 바지에 교련복 윗도리를 입고 동그란 상고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는 평안이와 꿈이 같을 수 도 있고, 행정공무원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우등생 석현와 비슷한 성격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아이는 예은이처럼 친구를 좋아하고 성찬이처럼 형을 자랑스러워하며 건호처럼 동생을 잘 돌볼 수 있었겠지요. 또 재원이처럼 친구들이 믿음직하게 여기는 아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아이는 우리반 학생들과 같은 나이입니다. 그 아이는 지금쯤 시작하는 학기말고사 때문에 힘들어하고 시험이 끝난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영화관도 가야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소년의 삶입니다. 그러나 오월의 광주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진 그 무섭고 암울한 기억들 소환하여 이 소설은 소년의 눈으로 소년의 옆자리에 앉아 함께 이야기합니다.

 

저는 ‘부마 민주 항쟁’의 도시 마산에서 80년대 대학을 다녔습니다.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교정은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무성하였고, 정문 앞은 군데군데 화염병이 터졌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학생회에서 몰래 붙여둔 광주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들은 몰래 소리죽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큰소리를 내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저와 다르게 누군가는 독재 타도를 외치며 데모 행렬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긴 세월을 지나 다시 저는 신내림 같은 한강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몇 방울의 눈물이 흐릅니다. 다시 ‘소년’이라는 말은 제 가슴에 생채기를 냅니다. 천지에 흰 안개꽃이 피어 더 서러운 가을 아침입니다.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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