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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김민수의 세상 읽기 ⑮] 세한도(歲寒圖)

겨울이 다가오면 때때로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세한도(歲寒圖)’.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년)의 작품이다. 국보 180호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추사의 ‘세한도’는 1844년 제주도 귀양살이를 할 때 그의 제자였던 우선 이상적이 당시 청나라 수도인 연경에서 책을 구해 보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글과 함께 그림을 그린 선비의 문인화다.


세한도에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지성인의 ‘불멸의 정신’이 있다. 추위와 고통은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을 하게 만든다. 올해의 달력도 이제 한 장만 더 남은 시점에서 추사가 담고자 한 ‘세한의 정신’을 살펴보자. 소나무와 잣나무 각 두 그루 그리고 작은 집의 그림만이 아니라 추사의 발문(跋文) 속에는 인생의 혹한기에도 살아 있는 인문의 정신이 있다.


우선 추사가 발문에서 인용한 공자와 태사공 사마천 그리고 그의 작품을 보고 찬시를 적어주었던 청나라의 완원(阮元), 옹방강(翁方網) 등 16명 학자들의 정신이 있다. 또한 서예가 소전(素筌) 손재형의 안목과 의지, 태평양전쟁 때 공습으로 소실될 직전에 “선비가 아끼던 것을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잘 보존만 해달라”며 소전에게 작품을 대가 없이 건네준 일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의 정신도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작품을 볼 수 있도록 개인 소장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부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결코 알리지 않았던 손세기의 아들 손창근 옹(翁)의 정신…. 이런 정신이 작품 외적으로도 오늘날까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세한(歲寒)’이란 날이 추워진 때를 뜻하며 인생의 혹한기를 의미한다. 우리가 작품을 볼 때 채색이나 기법 혹은 구성 등의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보이지 않는 정신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 세한도다.


최고의 벼슬자리에 있다가 하루아침에 제주도로 귀양을 가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게 된 추사. 그에게 세상 사람들이 등을 돌릴 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제자 이상적이 머나먼 길을 걸어 책을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이때 추사가 떠올린 생각이 공자가 말한 ‘세한연후(歲寒然後)’의 소나무와 잣나무였다. 


공자의 《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철 초록이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런데 모든 나무가 초록으로 무성한 여름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가을에 낙엽수들이 시들고 겨울에 잎이 모두 떨어졌을 때, 즉 날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비로소 초록임을 잘 알게 된다.


이런 공자의 말을 《사기(史記)》의 저자 태사공은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온 세상이 어지러워진 뒤에야 비로소 깨끗한 선비가 드러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추사는 발문에서 ‘권세와 이익으로 만난 관계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고 나면 사귐 또한 끝난다(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流)’는 태사공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추사는 썼다. “그대 또한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상의 한 사람인데 초연히 스스로 도도히 흐르는 권세와 이익의 밖에 있으니 그렇다면 그대는 권세와 이익으로 나를 보지 않는 것인가? 태사공의 말이 틀렸단 말인가?” 추사가 제자 이상적에게 묻는 물음이지만 이 물음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추운 겨울, 세한의 계절을 앞둔 우리의 시대에 희망으로 다가올 봄의 기약은 저 물음에 대한 우리의 답을 기다린다. 인문의 정신은 세한의 계절에 더욱 빛을 발한다.


추사는 단지 글씨만 잘 쓰는 제자보다는 먹이 스며들 듯 정신이 깃든 문자의 ‘향(香)’을 잘 드러낸 제자를 사랑하였다고 한다. 그의 제자 이상적은 글씨를 잘 썼던 제자는 아니었지만 문자의 향을 몸소 지녔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대에 교육하는 우리는 먹을 갈 때부터 ‘문자의 향’을 머금고, 이를 제자들에게 전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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