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나에게 수학은 큰 성취감과 자신감을 주는 과목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바라본 교실의 풍경은 나와 사뭇 달랐다. 평소 활기차던 친구들은 수학 교과서만 펼치면 약속이라도 한 듯 기가 죽었다. 수학교육을 전공하며 교육학에서 '낙인효과'를 배웠을 때, 나는 학창 시절 곁에서 수학 때문에 남몰래 좌절했던 친구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낙인효과란 타인이 부여한 부정적인 편견이 개인의 정체성으로 고착화되어 결국 그 낙인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심리적 기제다. 오늘날 교실에서의 낙인은 과거와 달리 훨씬 정교하고 은밀하게 작동한다. 정답과 오답의 경계가 명확하고 위계성이 강한 수학의 특성상, 학생들은 일상적인 수업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수포자’라는 라벨을 붙여버리곤 한다. 학창 시절 내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는 매사 유쾌해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유독 수학 모둠 활동 시간이 되면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다른 조원들이 어려운 기하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때 친구는 대화에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다. 친구가 계산 과정을 헷갈려 할 때면 모둠원들 사이에 악의 없는 미묘한 침묵이나 한숨이 지나갔다. 누구도 대놓고 무안을 주지 않았지만, 그 은
2500년 전 동양의 스승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편’에서 아주 완곡한 표현으로 교육의 정석을 밝혔다. “법률과 형벌로 백성을 인도하면 형벌만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과 예로써 인도해야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바르게 된다(導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導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이 고결한 도덕 교과서적 말씀에 2026년 글로벌 시청자들이 돌연 환호하는 대반전이 일어났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전 세계에 공개되어 2주 연속 글로벌 TV쇼 1위를 차지하고 美포브스가 “올해 최고 드라마중 하나”라고 극찬을 한 참교육 열풍 때문이다.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넷플릭스 시리즈는 무너질 대로 무너진 교권을 회복하기 위해 교육부가 신설한 가상의 기관, ‘교권보호국’의 활약을 담아낸 판타지 액션물이다. 극 중에서 특전사 출신의 베테랑 감독관과 현직 교육부 장관은 무법지대가 된 교실을 바로잡기 위해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빌런들을 처벌한다. 촉법소년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교사를 폭행하고 친구를 괴롭히는 불량 학생들에게 법보다 빠른 ‘매운맛의 물리력’과 물리적인 정의 구현을 펼치는 것이다. “어른이 애들을 무서워하면
우려하던 교육 현장의 붕괴 징후가 결국 차가운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최근 종로학원이 발표한 학교알리미 공시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2025년) 전국 일반고에서 학업을 중단한 고교생 1만8661명 중 고교 1학년생이 무려 1만450명(5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고1 자퇴생 수가 1만 명을 돌파한 것은 우리 교육 역사상 최초이자, 대단히 충격적인 신호탄이다. 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교복을 입은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수많은 아이가학교 울타리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가고 있다. 더 절망적인 것은 이들의 자퇴가 학업을 포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과연 이대로 우리 교육은 괜찮은 것인가? 이러한 기현상의 중심에는 교육부가 내신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전면 도입했던 ‘내신 5등급제’가 자리 잡고 있다. 제도의 취지와 달리 입시 현장에서는 상위 10%인 ‘1등급’을 확보하지 못하면 서울 주요 상위권 대학이나 의대 진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공포 마케팅이 작동했다. 첫 중간고사에서 삐끗해 2등급(상위 34%)으로 밀려난 아이들은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 검정고시와 수능 올인이라는 각
전국 초·중·고 학생 수가 사상 처음 500만 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학교 통폐합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고 있다. 교육부가 11년 만에 학교 통폐합 관련 권고기준을 폐지하고 지역 주도의 학교 구조개편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한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학령인구 감소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학교 규모, 통학 여건, 교육과정 운영 방식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작은학교를 경제적 논리로만 바라보는 것은 학령인구 감소 시대의 적절한 해법이 될 수 없다. 학생 수가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의 존립 가치를 비용과 효율의 문제로 판단한다면 농산어촌 학교가 지닌 교육적 가능성과 지역공동체의 의미는 쉽게 지워질 수밖에 없다. 학교는 단순한 행정시설이 아니라 아이들의 배움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지역의 삶과 문화를 이어가는 핵심 기반이다. 이번 정책 변화는 통폐합을 쉽게 하기 위한 신호로만 읽혀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역이 학교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아야 한다. 교육부 관계자가 밝힌 것처럼 핵심은 학생 수만 보고 일률적으로 학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다른 교육 여건에 맞춰 학교 운영 방식을 새롭게
학창 시절 우리는 주변에서 “수학 머리는 타고나는 거야”, “나는 문과 체질이라 수학은 안 맞아”와 같은 말을 쉽게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그것이 학생을 규정하는 표현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못했다. 특히 ‘수포자’라는 단어는 학생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익숙한 표현이 되었다. 그러나 교육사회학에서 낙인효과를 배우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수포자는 정말 수학을 못하는 학생일까, 아니면 수학을 못한다고 규정된 학생일까? 사람들은 수포자가 되는 이유를 개인의 능력과 끈기 부족에서 찾는다. 하지만 학교 현장을 돌아보면 학생이 수학을 포기하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 교사의 낮아진 기대, 부모의 실망, 친구들과의 비교가 반복되면서 학생은 점차 자신을 ‘수학 못하는 학생’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 수학 능력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이다. 학생은 “나는 원래 수학을 못한다”는 생각을 내면화하고 도전을 꺼리게 된다. 이는 학습량의 저하로 이어지고 성적이 하락하면서 낙인이 현실이 된다. 나 역시 학창 시절 수학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많이
어느 날 한 아이가 쉬는 시간 내내 말이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친구들과 웃으며 어울리던 아이였습니다.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자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냥요.”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전날 단톡방에서 친구들이 주고받은 몇 마디 말이 아이의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고학년 교실의 갈등은 더 이상 단순한 몸싸움이나 원초적인 다툼에 머물지 않습니다. 저학년 시절처럼 눈에 보이는 충돌은 오히려 드뭅니다.대신 무리를 지어 은근히 소외시키거나, 단톡방에서 뼈 있는 말 한마디를 툭 던지는 식의 훨씬 더 정교하고 예리한 심리전이 펼쳐집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아이는 쉬는 시간마다 자리를 옮겨 앉고, 어떤 아이는 점점 말을 줄이며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이 장면을 목격한 어른들은 종종 당혹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어떻게 저 어린아이가 저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까.” 교실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다 보면 가끔 놀랄 때가 있습니다.평소에는 친구를 잘 챙기던 아이가 어느 날 가장 아픈 말을 내뱉기도 하고, 누군가를 도와주던 아이가 집단 속에서는 차갑게 돌아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어른
선거철마다 찾아오는 ‘거리의 유세 음악’의 소음이 걷히고 마침내 성적표가 나왔다. 지난 6·3 지방선거를 통해 향후 4년간 우리 아이들의 교실을 책임질 대한민국 교육 수장들의 면면이 확정된 것이다. 선거 결과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강한 귀환, 그리고 곳곳에 심어진 중도·보수의 견제구”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언론은 이를 10:6의 구도로분석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인천 등 수도권을 비롯한 대다수 지역에서 민주·진보 성향의 후보들이 깃발을 꽂으며 이른바 ‘진보 교육감 시대의 부활’을 알렸지만, 대구·경북·충북 등 보수의 텃밭은 건재했고 세종과 제주에서는 역사상 첫 여성 교육감이 탄생하는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특히 여성 교육감 출신이 이전의 1명에서 이제 3명으로 늘어난 것은 여성 특유의 더욱 섬세한 교육행정을 예측하기에 이른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거리와 교문 앞에 서서 “내가 적임자”라며 손을 흔들던 당선자들은 이제 교육청 집무실에 앉아 날카로운 예산서와 산적한 현안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 묵직하고도 치열한 교육 전쟁의 서막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감시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주요 언론의 관점을 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