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이 높고,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면 한민족의 가장 큰 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한가위, 가배, 중추절 등으로 불리는 이 날은 단순한 연휴가 아닌, 조상과 자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이 날의 의미를 대변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그 의미는 점차 흐려지고 있다. 이제 교육은 묻고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왜 추석을 지내는가?”, “그 안에 어떤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가?” 추석, 전통을 통해 배우는 삶의 가치 추석은 단지 조상을 기리는 의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본질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 공동체의 연대, 그리고 감사의 정신에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명기해 본다. 첫째, 자연과의 공존이다. 추석은 한 해의 수확에 감사하는 절기다. 농경사회의 뿌리 깊은 삶의 방식 속에서 인간은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왔다. 오늘날 기후 위기 시대를 사는 학생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체험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소중한 교육적 기회가 될 수 있다. 둘째, 공동체 정신이다.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이웃과 정을 나누는 추석은 분열과 경쟁이 만
필자는 해방 후 6.25 전쟁 중에 태어났다. 우리 세대는 어려서부터 가난이 일상이었으며, 생필품 결핍 시대를 살았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공을 차고 싶었지만 공이 없었다. 그래도 방법을 찾았다. 명절이 되면 마을에서 돼지를 잡고 난 후 방광에 바람을 넣고 고무줄로 묶어 동네 빈 터에서 차고 놀았다.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용품으로 만년필은 미국 제품이 인기가 높았고, 중·고 학창시절에 일본에서 온 수입품이 보였고, 가정에서는 일본 제품인 코끼리 밥통을 선호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90년대 이후 한국의 위상은 세계 무대에서 엄청나게 상승했다. 한국 상품의 경쟁력은 꾸준히 강화되어 가전과 자동차는 세계적으로 품질을 보증받고 있다. 미국에서 현대차는 토요타와 경쟁할 만큼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연결 선상에서한국 근로자들이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우리 국민이 잊지 못할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TV를 비롯한 가전 제품은 국산이 대부분이지만 로봇 청소기는 중국산에게 국산이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도로에는 전에 상상도 못 했던 BYD 중국산 버스가 달리고 있다. 이렇게 일상 전반
보고할 교무 행정업무가 많아서 작업을 마친 어느 늦은 밤, 학교 복도를 홀로 지나가던 A교사는 걸음을 멈추었다. 학년 교무실에 불이 아직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자, 같은 학년의 동료 교사가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있었다. 피곤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 책상 한쪽에 놓인 식지 않은 커피, 그리고 그가 꾹꾹 자판을 눌러 쓴 학생에 대한 진심 어린 기록들이 컴퓨터 화면이 눈에 띄었다. 그 순간, 그는 문득 깨달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요즘 교사의 길은 외롭고 고된 길임을 우리는 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 반복되는 생활지도, 그리고 점점 교사에게만 기대어지는 아이들의 정서적 책임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일과 후에 교실 문이 닫히면, 학교는 교사에게 모든 것이 돌아오는 작은 우주가 각자에게 펼쳐진다. 그런 공간에서 교사는 때로 무력감을 느끼고, 벽에 부딪힌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그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어느 선생님은 말했다. “학생 앞에선 항상 밝고 단단한 어른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수업 도중 목소리가
영재키움 프로젝트는 2018년부터 교육부가 추진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국가 지원 사업이다. 가정 형편이나 지역적 여건 등으로 충분한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멘토 교사가 1:1 맞춤형 지원을 제공해 출발선을 맞추는 것이 핵심 취지다. 이를 통해 교육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고, 소외계층 학생들의 잠재력을 발굴·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초기에는 KAIST 과학영재교육원이 주관 대학으로 전국을 총괄했으며(센터장 류지영), 2023년부터는 권역별 체계로 전환되었다. 서울·강원권은 서울대(이선영 교수), 인천·경기권은 인천대(한기순 교수), 충청·전라권은 대전대(박성옥 교수), 경상권은 부산대(김정섭 교수)가 중심이 되어 운영하고 있다. 이로써 지역별 특화 프로그램과 행사가 늘어나 학생들의 만족도도 크게 향상되었다.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1:1 멘토링을 중심으로 하되, 방학 집중 캠프, 대학·연구소 탐방, 문화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풍부한 과학문화 경험을 제공한다. 작년 도입된 AIDT에는 많은 예산이 투입되면서, 불과 1~2년 만에 수백 명의 교사들이 미국·유럽 등 해외 선진 문화 탐방의 기회를 누리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초연결사회라 칭하는 통신기술의 연결망만큼이나 국경을 넘는 경제활동, 자유무역, 글로벌 가치사슬로 촘촘히 얽혀 있다. 그런데 그 흐름을 거스르듯 미국은 지난 몇 년간 적극적인 관세정책을 펼쳐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는 세계 경제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조 바이든 행정부 역시 ‘중국 견제’라는 명분 아래 관세 정책을 유지해 왔고, 뒤를 잇는 트럼트의 제2기 행정부는 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자유무역을 외쳐온 나라, 세계화를 주도해온 미국이 왜 이렇게까지 보호무역으로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무역정책을 고수하고 있을까? 우리는 여기서 단순한 경제 논리 그 너머의 정치, 산업, 사회적 맥락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경제교육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숙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본고에서는 이에 대한 내면적 고찰과 함께 경제교육의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미국이 관세를 택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 표면적으로는 ‘무역 적자’와 ‘산업 보호’가 주된 이유다. 하지만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중국 등에서 값싼 제품을 수입하며 제조업이 쇠퇴하고, 자국 노동시장이 약화되는 문제를 겪었다. 특히
“선생님, 제 꿈은 선생님이에요.” 몇 년 전, 한 학생의 이 말 앞에서 필자는 그 학생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며 말없이 서 있었다. 틈만 나면 학교 도서관의 구석에 앉아 늘 조용히 책을 읽던 그 아이가, 무언가를 느낀 듯 건넨 이 한마디는 지난 세월 교사로 살아 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 아이의 말에는 이 시대를 사는 교사들에 대한 묵시적인 존중이 담겨 있었고, 동시에 무거운 책임과 의무감을 서려있었다. 오늘날 교육자로 산다는 것은 지식 전달자를 넘어, 삶의 모델이자 존재 자체로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육자에게 쉽지 않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교권 추락은 끝이 없고, 신뢰는 무너지고, 교사는 고립되어 가며, 교실은 더 이상 ‘성장’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생존’의 전선이 되었다. 한국 교육 현실: 교사들이 사라지는 교실 최근 5~6년 사이에 100여 명에 달하는 교사들이 전국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충격적인 통계가 보도 되었다. 그중 상당수는 학부모 악성 민원과 무분별한 고소⋅고발에 따른 몸과 마음의 소진, 그리고 보호받지 못한 교권 속에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던 이들이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기후위기가 삶의 방식을 바꾸며, 인간관계마저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따뜻함과 다정함, 그리고 그로 인해 세상을 살기 좋게 바꾸는 힘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묻고 고민해야 할 것은 “교육은 어떤 사람을 길러내야 하는가?”이다. 성적이 높은 사람? 명문대에 진학하는 사람? 대기업에 입사하는 사람? 아니다. 교육이 궁극적으로 길러내야 할 사람은 단 하나,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개인주의와 내 새끼 지상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을 길러낼 수 있을까? 지식이 아니라 공감을 가르쳐야 한다 지식은 정보의 조각이다. 그러나 공감은 사람을 움직이는 진심이다.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어느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과제를 주었다. “이웃 중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보세요.” 아이 중 한 명은 이웃집 노부부에게 갔다. 그들은 오랫동안 외롭게 살고 있었고, 아이는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