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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자사고 폐지에 집착할까

자사고 폐지를 놓고 한국사회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학교는 이념 전쟁터로 전락했다. 자사고를 폐지해야겠다는 좌파 진보진영의 밀어붙이기 행정이 빚은 결과다. 특권교육 · 귀족학교 · 입시중심학교라는 프레임을 씌워 몰아붙였다. '평등주의 교육'을 주창하는 이들은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사고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자사고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측은 교육을 이념 대결의 장으로 몰고 가 정권의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의도가 담긴 정치적 판단이라고 반박한다. 자사고 폐지는 학생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수월성·다양성 교육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 처사라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더 높다. "진보 교육감들은 자기 자녀는 자사고 · 특목고 보내면서 왜 남의 자식 앞길은 가로막느냐"며 ‘내로남불’이라고 쏘아붙인다.

 

이번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둘러싼 갈등에서 눈여겨볼 점은 대략 세 가지. 우선 지금처럼 행정적·인위적 폐지가 온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다. 또 좌파진보진영이 왜 이토록 무리하게 자사고 폐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 같은 결과가 한국의 수월성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 호에서는 자사고 폐지 정책의 교육적·사회적·법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 좌파진보진영이 자사고 폐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속내를 들여다본다. 아울러 자사고 폐지 정책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은 한국 수월성 교육의 현주소와 극복방안을 모색한다. 자사고 재학생 좌담을 통해 갈등과 혼란의 한 가운데 놓인 학생들의 진솔한 이야기도 담았다.

 

예측불허의 혼돈으로 빠져드는 한국교육, 교육이 정치와 이념에 매몰된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서울 지역 8개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와 경기도 안산 동산고가 각각 서울시교육감과 경기도교육감 상대로 자사고 지정 취소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최근 냈다. 전북 상산고를 자사고 지위에서 끌어내린 김승환 전북교육감도 자신의 결정을 ‘부동의(不同意, 동의하지 않음)’한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로 했다. 자사고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부활한 포퓰리즘…교육감은 표를 선택했다

김 교육감은 최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참석한 행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교육부의 자사고 재지정 여부에 대한 부동의 권한은) 박근혜 정부에서 자사고 취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만들어놨던 틀이었다. 그런데 현 정부가 전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 칼을 쓴 것이다. 그래서 저는 차도살인(借刀殺人,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임)이라고 본다.”

 

김 교육감에게 있어서 자사고 취소(일반고 전환)는 신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 교육감을 포함해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모두 자사고 폐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통된 신념 때문인가, 아니면 그들만의 철학 때문인가.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직선제 교육감은 여론의 동향, 지지 세력의 선호 등 지지기반에서 나오는 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북의 김 교육감은 3선 교육감이다. 전교조를 필두로 하는 진보진영의 일관된 지지를 받았다.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진영이 단일 후보를 내지 못해 연전연패해왔던 것과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자사고에 대한 여론의 동향은 어떤 것인가. 최근 자사고 폐지 여부를 묻는 리얼미터 여론조사(2018년 11월)에서 자사고 폐지 찬성 51%, 유지 27.4%라는 결과가 나왔다. 과거 여론조사에서도 자사고나 특목고 폐지에 과반수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2017년 12월에 나온 한국교육개발원 교육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찬성한 비율이 49%(찬성·매우 찬성), 보통 35.4%, 반대 15.7%(반대·매우 반대)였다. 초·중·고교 학부모의 경우 찬성 58.6%, 보통 30.3%, 반대 11.1%로 조사됐다. 특히 지역적으로는 수도권이나 호남지역에서 자사고 폐지 찬성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이러한 현상은 평준화체제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비평준화지역을 평준화지역으로 전환하기 위해 시·도교육청이 주민을 상대로 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결과는 찬반이 아슬아슬하게 엇갈리는 다른 교육정책 같은 사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입에서 정시 수능 확대냐, 수시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유지냐를 놓고 벌이는 여론조사와 다른 것이다. 다수는 자사고 폐지를, 평준화 유지를 바란다. 누구나 자사고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누구나 비평준화 명문고에 자녀를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감들의 자사고 폐지 집착 역시 다른 무엇보다 지지기반의 성향, 표의 특성에서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교육정책 결정권자들의 '내로남불' 정체성

진보진영은 자사고에 대해 일찌감치 교육불평등을 야기하는 ‘특권학교’로 규정했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5·31 교육개혁’에 포함된 자립형 사립고(현재 전국단위 자사고) 설립 방안에 대해 “평준화 정신에 위배되는 입시 위주의 명문 고교이자 과도한 등록금으로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귀족학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규정했다.

 

이와 관련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선거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이인규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대표(1999년 전교조 참교육실천위원장)는 “학생의 선택권 강화와 학교 간 경쟁은 교육에 시장 원리를 도입한다는 명목으로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를 재생산해 반대한다는 게 진보진영의 일관된 반대 논리였다”며 “반대는 전교조 내 PD(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 계열이 주도했으며, 교사들을 묶는 프레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교조 집행부의 PD 계열은 원영만(제10대) 위원장과 현 장혜옥(제12대) 위원장 등이다. 전교조 내에서도 강성으로 통하며, 계급 지향성을 띠고 노조로서의 활동을 우선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자사고는 아예 내놓고 불평등을 대물림하고 계급구조를 고착화하는 교육정책인데도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설계한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KDI 정책대학원 교수)은 그 수를 대폭 늘리는 방향의 정책(고교 다양화 300)을 밀어붙였다. 여기엔 재경부를 필두로 한 경제관련 부처와 산하 싱크탱크(KDI 등), 교육인적자원부와 산하 싱크탱크 KEDI 등), 교육관련 학회, 보수 언론, 한국경제연구원 등 대기업 집단 산하 연구소 등이 ‘네트워크’가 있어 자사고 정책의 생산과 유포를 담당했다. 진보진영을 코너로 몰아붙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8년부터 시행된 교육감 직선제는 진보진영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됐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을 시작으로,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교육감 6명이 당선됐는데, 이들 모두 무상급식 확대, 학생인권 존중, 자사고 등 특권학교 철폐·혁신학교 시행을 선거판의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후 직선제 교육감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대 80 법칙이란 노력·투입량·원인의 작은 부분(20%)이 대부분(80%)의 성과·산출량·결과를 이루어낸다는 파레토의 법칙을 말다. 파레토의 법칙은 특권을 가진 특정 소수가 부와 소득을 독점하는 승자독식의 불평등 구조를 설명하고 이를 비판하는 데 쓰이는 용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으로 소수의 20이 대대로 누리는 불평등 구조를 80이 비판하고 공격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특히 선거판에서 말이다. 자사고 이슈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지지자를 뭉치게 하고, 보수정권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지켜줬으며, 게다가 여론조사를 하면 다수가 선호하는 이슈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감이 이 카드를 굳이 버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들 교육감의 이중성 또는 ‘내로남불’에 대한 자기 합리화도 같은 이유에서 가능하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두 아들이 외고를 졸업하고, 전북의 김 교육감의 아들이 값비싼 영국의 B 컬리지를 거쳐 케임브리지대에 진학한 것을 두고 보수언론은 교육감의 이중성 또는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조 교육감은 “제 아이들이 외고를 나온 것이 비록 과거의 일이고, 부모로서 아이들 선택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었던 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또한 전북의 김 교육감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서 합격했다. 그럼 (귀족학교이니 가지 말라고) 말리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우리 집 아이들은 특목고 보냈으니까 다른 집 아이들은 특목고 못 가게 막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웃기는 거고, ‘우리 집 아이들은 특목고 보냈으니까 특목고 유지해야지’라는 말도 정말 웃기는 얘기”라며 “교육수요자라는 정체성과 정책결정자라는 정체성은 서로 다른 차원”이라며 진보교육감의 이중성을 옹호하기도 했다.

 

정체성의 차이로 이중성을 이해하기보다 지지와 표로써 설명하는 게 더 타당할 것 같다. 진보교육감의 이중성이 지지기반의 이탈이나 균열을 일으키는 데 기여를 했는가. 진보교육감들이 자녀의 특권학교 진학을 위해 적극 나서거나 탈법 행위를 했다면 지지층의 이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그들 스스로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은 데 대한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정도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