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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저자 명의도용해 수정이라니…”

초등사회 교과서 집필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

핵심은 이념 논쟁이 아닌 불법 수정
이전 정권 수정에도 동의한 적 없어

문제는 매번 정권 눈치보는 교육당국
정권 입맛대로 수정했으면 책임 져야

[한국교육신문 정은수 기자] “교육부가 자체적으로 수정할 권한이 있는데 집필자가 수정을 요청한 것처럼 명의를 도용해 수정했다는 게 핵심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 불법 수정 의혹을 제기한 박용조(58·사진) 진주교대 교수는 문제 제기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좌우 이념의 정치적 문제의식이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교육부가 2017년 9월에는 ‘정부 수립’ 수정 요구 하나만 했고, 이에 대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를 바꿀 수 없다는 입장에서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교육부는 한 차례 연말에 논의를 하자는 연락 외에는 아무런 말이 없다가 이제 알려진 대로 다른 교수를 내세워 교과서를 대표집필자와 상의도 없이 임의로 수정했다.

 

박 교수는 “2018년 1학기가 시작되고 교과서 배포가 다 이뤄진 후에야 집필자 요구로 수정한 것으로 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집필자를 패싱하고 협약서 도장도 마음대로 찍은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교육부가 박 교수는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박 교수가 요청해서 고친 것처럼 교과서를 수정했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전혀 개입한 바 없다”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1일 대정부 질문에서 했던 답변과 상충하는 주장이다. 수정·보완 대조표 상에는 유 부총리의 말대로 213개의 수정 사항 중 대다수의 정정요구자가 편찬기관으로 돼 있다. 단 한 가지도 교육부가 나서서 수정을 요구한 적이 없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대조표 문서 상단에 명시된 편찬기관인 박 교수가 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박 교수는 문서의 내용 자체가 허위라고 했다. 박 교수는 “마치 집필자가 수정을 요구해서 승인한 모양새로 만든 것”이라며 “그 이유는 이미 검찰 수사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진술한 대로 정권에 따라 수정한다는 비판을 피하고자 한 것 아니겠냐”고 했다. 박 교수는 이 때문에 수차례 정정요구자를 교육부로 고쳐달라고 요구했다. 이전 교과서 수정·보완 대조표에는 정정요구자가 교육부나 통계청 등 정부기관으로 돼 있는 사례가 종종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 교수는 “바로잡는 것은 교육부의 입장대로 교육부의 판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면 자체 수정 보완하면 될 일이지 대표집필자의 이름을 도용할 필요는 없다”며 “고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정정요구자를 교육부로 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례와 다른 것은 이뿐이 아니다. 최근 수년간 수정·보완 사항이 213개에 육박하는 사례는 없다. 적을 때는 대여섯 차례, 많아도 스무 번 내외였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교육부는 ‘대한민국 수립’을 ‘정부 수립’으로 고치겠다고만 알려왔을 뿐 213가지 중 나머지 내용을 통보조차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교육과정과 다른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았다”는 그간의 교육부 해명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수정한 213가지에는 사소한 표현의 차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교체한 경우도 있다. 결국 정권에 따라 가장 민감한 근현대사 부분에 대해 전체를 바꾼다는 명분으로 소위 ‘물타기’를 하면서 정권의 색깔을 입히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박 교수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달 26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답변한 내용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당시 유 부총리는 박 교수에 대해 박근혜정부 당시 ‘대한민국 수립’으로 교과서를 수정하는 데 동의한 사람이라고 답변하며 넌지시 박 교수의 정치편향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이전에 ‘정부 수립’에서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칠 당시에도 교육과정과 다른 교육부의 수정 요구에 분개하며 반대했다”면서 “집필계약서에 교육부가 수정을 요구할 시 수용해야 한다는 강행조항 때문에 계약에 따라 수용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당시 수정에 대해 “교과서는 반드시 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야 하므로 교육과정에 충실하게 집필했다”면서 “당시 2015년에 인쇄된 심의용 교과서에만 해도 ‘정부 수립’으로 돼 있었는데 최종 결재본에서 교육부의 뜻대로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뀐 것”이라고 했다.

 

 

지난 정부에는 정치적 입장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내용이 바르지 않아 당시에도 분개하고 수정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계약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거쳤기에 어쩔 수 없이 수용했을 뿐”이라며 “당시에는 절차상이라도 적법하게 수정을 했는데 이번에는 위조라는 불법적인 방법을 거쳐 문제가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교육부가 충분히 자기 이름을 걸고 고칠 수 있는 권한이 집필약관에 명시돼 있으므로 문서를 위조하지 않고 정정요구자를 교육부로 해 수정했으면 될 일이었다”고 재차 주장했다.

 

‘대한민국 수립’과 ‘정부 수립’이라는 용어 논란에 대해서는 오히려 선을 긋고 싶어했다. 그는 어떤 용어가 맞는지 묻는 질문에 “그 의미나 어느 용어를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정부 수립이냐 대한민국 수립이냐 하는 부분은 부차적인 문제이며 역사학자들의 몫이고 교육학자는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집필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교육부가 정치적으로 휘둘리면 안 된다는 얘기를 오히려 좌우편향의 문제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면서 “지난 정권에서 교육부가 무리하게 2009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에 2015개정 교육과정을 적용한 것이 잘못이라고 판단하면 그 때도 교육부가 정권 입맛대로 일방적으로 수정해놓고 이번에도 그러면 될 일인데 왜 나한테 바꿔달라고 하냐는 것이었다”고 했다.

 

최근 자유한국당 주최 토론회에서 ‘위안부’ 용어를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교육부의 태도 때문에 지적한 것이지 핵심은 아니”라며 “그래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그는 “위안부라는 용어를 아이들에게 성 노예라고 설명하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귀향이라는 영화도 그런 관점에서 고등학생 연령에 해당하는 15세 관람인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이어 “위안부에 대해 수정 이전에 기술이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데 기존에도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했다’로 초등학생 수준에 맞춰 완화해 썼었다”면서 “누가 뭘 위안한다고 설명할 건지 생각해보면 해당 용어 자체가 일본군 관점의 용어인데 이를 그대로 쓰면 어린 학생들에게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것”고 지적했다.

 

휴전협정 일정을 연표에서 뺀 것에 대해서도 일관된 입장을 보였다. 박 교수는 “세부적인 수정 사항 하나하나가 핵심이 아니다”라며 “국정교과서인데 교육부가 고치겠다면 고칠 권한이 있고 그렇게 하겠다고 요구했으면 됐는데 집필자의 이름을 팔아 불법으로 수정한 것이 핵심”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그는 “정치권에서 이번 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데 교육부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정권에 따라 정치적으로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라면서 “이번 사안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그간 정권의 눈치를 보며 교과서를 일방적으로 수정해온 교육부에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