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화)

  • 구름많음동두천 10.1℃
  • 구름조금강릉 10.4℃
  • 연무서울 9.8℃
  • 구름많음대전 11.7℃
  • 구름많음대구 14.4℃
  • 흐림울산 14.8℃
  • 흐림광주 10.9℃
  • 구름조금부산 14.7℃
  • 구름조금고창 10.8℃
  • 맑음제주 15.4℃
  • 맑음강화 8.9℃
  • 구름많음보은 10.4℃
  • 구름많음금산 10.0℃
  • 구름많음강진군 12.5℃
  • 흐림경주시 14.7℃
  • 구름조금거제 14.1℃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문화·탐방

그리움과 삶의 길을 따라 흐르는 언어

김계식의 '영혼의 아침'

꽃대궐을 이룬 눈부신 봄날, 꽃소식 한 자락을 전해 오듯 한 권의 시집이 도착하였다. 김계식 작가의 신작 시집 『영혼의 아침』이다. 그는 이 시집을 통해 자신 속에 있는 그리움과 삶의 지혜를 찾아내고 영혼의 동반자로 길을 떠난다.

 

온 산야는

뭇사람들에게 대권 한 채씩을 안기고도

넉넉하고 고운 꽃으로

넘쳐났다

 

눈 가득

깊은 숨결 들이마셔

예쁜 모습 향 그득 채우고

행여 새어나올까 꼭 여민 침묵

 

통째 꽃이 된 너를 바라보는

기쁨이면

더 바랄 것 없는 꽃 나들이 아니랴 /「꽃 나들이」

 

꽃 나들이 가는 사람들이 시선이 꽃으로 향하듯, 사람들의 마음에 고운 꽃으로 가득한 대궐을 발견하는 시인의 눈이 아름답다. 영혼에 향기를 입힌 것이 꽃이듯 좋은 사람이 꽃으로 표현된다. “통째로 꽃이 된 너”를 통해 누군가를 황홀한 기쁨으로 바라보면 그것이 ‘꽃 나들이’인 것이다. 꽃을 대하듯 세상의 모든 것을 대하는 시인의 싱그러운 젊은 마음은 곱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지혜로 점철된 세월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막스 피카르트는 『인간과 말』에서 “언어는 인간을 그 자신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우리는 말을 하면서 더 높은 차원으로 다른 말을 향해서 말하게 된다. 선험성은 마치 높고 밝은 구름처럼 인간의 언어 위에 있으면서 마치 구름이 그러듯 어디나 인간을 앞서 간다.”라고 하면서 언어의 선험성에 대해 깊이 이야기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언어 속에는 무엇인가 인식을 감지되고 있다고 보았다. 언어 속에는 시인이 이야기하는 언어와 말하지 않는 언어 이상의 것이 함께 느껴진다.

 

인간이란 결국 선험성에 의해 말해지는 존재라고 한다. 그로 인해 수많은 말들이 인간을 위해 대기 중이며 인간이 말하지 않을 때 선험성의 침묵 속에서 인간을 위해 준비되어 지는 것이다. 김계식 시인의 시 속에 기본적 터전은 ‘그리움’, ‘길’로 나타난다. 「시를 쓰는 벌과 별」에서는 “나는 오늘도/ 태산준령을 넘고/거친 파도를 헤치고 있지만”을 통해 그리움으로 향해 가는 길이 때로는 태산준령을 넘어갈 수 있고, 거친 파도를 헤치고 가야하지만 결국 그 길로 나아간다.

 

그냥 좋은 것

물가에 가면 출렁이는 물비린내가 좋고

산과 들에 가면 나무와 풀의 자람이 좋고

바람 멈추는 것도 가는 것도

그냥 좋은 만남 /「환히 피는 꽃」

 

시인은 들과 산과 꽃으로 표현된 자연을 찾아가고 그 속에 그리움을 색칠하고 있다. 이것은 시인이 처음 언어를 만나기 전에 형성되어 내재되어 있던 기억들이 형성된 모습이 스스로 발현된 것이다. 그냥 좋은 것이 그냥 좋은 만남이 되고 있다. 그리움은 「은근함의 뿌리」에서 “빙그레 미소 짓는 입 꼬리에/ 먼산바라기 하는 흐림 속에/속마음 묻어두고” 라고 하여 은근하게 드러난다. 이런 시인의 모습에서 뜨거운 정열보다 은근하고 뭉근하며 조심스러운 마음이 엉거주춤 드러난다. 시인이 드러냄이 익숙하지 못한 세대여서인지 그의 핏속 흐르는 겸손과 점잖음의 유전자가 계속 그리움으로 점철되고 있다. 시인의 가슴에는 시들을 통해 사랑이 움트고, 풀과 꽃이 환하게 핀 곳으로 그리움을 따라 가는 길을 꾸준히 드러내고 있다.

 

짧은 대화마저 접고

묵묵히 눈빛만 마주치는 건

좋아하는 것

 

그 눈빛마저 꾹 참고

상대의 가슴팍에 가서 죽고 싶은 건

사랑한다는 것 / 「어느 묵언」

 

이 시 속에는 백목련의 모습을 하얀 묵언으로 치환시키며 그리움은 대화가 아닌 대화 이전의 마음을 담은 선험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대화는 두 사람에게 두 사람이 서로 말하는 의도 보다 더 많이 것이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처럼 묵언도 당사자의 의지를 넘어 그 이상의 언어를 표현될 수 있다.

 

바이더는 언어에 대해 “이 세계를 창조하고 그 살아 있는 말은 우리를 들어올린다. 우리의 심정에서 그리고 우리의 입에서”라고 하였다. 김계식의 시집 『영혼의 아침』을 통해 그의 생애를 타고 흐르던 언어들이 “그리움과 삶의 길을 따라 흐르는 언어”로 변환되어 봄꽃처럼 피어난다. 다시 오는 봄이 그의 핏속 숨어 있는 영혼을 불러내고 어둠을 밝혀 아침으로 인도한다. 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그리움의 영혼을 깨우는 일이다.

 

『영혼의 아침』, 김계식 지음, 신아출판사, 2019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