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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문처리 하루 70건, “이게 교육이냐?”

공문이라는 괴물
공문이란 회사나 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내부나 대내외적으로 업무상 작성해 발송하고 수신하는 공식 대외 문서를 총칭해 이르는 말이다. 업무 추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문서이지만 공문의 양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학교에서 처리하는 공문서의 양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를 알아보기 위해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공문 양을 조사해 봤다. 업무포털을 통해 조회가 가능한 2011년부터 2018년 1~10월까지 학교의 문서관리 시스템인 업무포털을 통해 생산, 접수되는 문서의 양을 조사하고, 이를 다시 하위시스템인 업무관리 시스템과 자료집계 시스템으로 분류했다.(<표> 참조)

 

<표> 업무포털을 통해 살펴본 연도별 학교 공문 현황

                                                                                                                           (2018년 10월 기준)

연도 생산문서 접수문서 합계
업무관리 자료집계 업무관리 자료집계
2011 7,246 79 7,325 4,778 79 4,857 12,182
2012 7,401 341 7,742 5,146 341 5,487 13,229
2013 7,308 300 7,608 5,437 300 5,737 13,345
2014 7,458 309 7,767 5,584 309 5,893 13,660
2015 6,581 315 6,896 5,493 315 5,808 12,704
2016 7,969 368 8,337 5,127 368 5,495 13,832
2017 7,526 390 7,916 5,217 390 5,607 13,523
2018 5,717 270 5,987 4,466 270 4,736 10,723


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학교는 해마다 1만 3천 건 정도의 공문을 처리한다. 연간 수업일수가 190일 이상이니 총 공문량을 연간수업일수로 나누면 하루 평균 70건 정도의 공문을 학교에서 처리하는 셈이다. 이를 하루 근무시간인 8시간을 기준으로 평균을 내면 7분에 1건 꼴로 학교는 공문서를 처리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여기에 팩스, 우편 등을 통한 비전자문서 처리 건수까지 합치면 공문의 양은 훨씬 늘어난다.


이는 동사무소에서 처리하는 공문의 양과 큰 차이가 없다. 놀랍지 않은가? 이게 대한민국 학교의 현실이다. 참고로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혁신학교로 공문서를 줄이기 위해 구성원들이 부단히 노력하는 학교라는 점을 감안해서 이 통계를 봐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행정직원들만 이 공문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교육하는 교사들이 작성하는 공문의 양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교사가 공문 작성에 품을 많이 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학생을 마주할 시간에 컴퓨터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므로 교육력과 직결되기에 그 심각성은 더 크다.


공문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역대 모든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교원 업무 정상화를 내세우며 학교 현장의 공문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앞에서 제시한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의 공문은 줄어들지 않았다. 여기에 통계로 잡히는 공문의 양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메신저나 업무메일을 통해 더해지는 공문의 양까지 계산하면 실제 공문의 양은 더 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일부 교육청에서는 ‘공문 없는 날’, ‘공문총량제’ 등의 정책으로 공문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이를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 일례로 새 학년이 시작하는 3월에는 공문을 안 보낸다고 하더니 4월에 한꺼번에 보낸다. 올해는 4월 1일 출근하자마자 동시에 17건의 공문이 접수되는 경험을 한 적도 있다. 더구나 공문 숫자를 줄이려고 한 개의 공문에 여러 개의 파일을 끼워 넣은 공문이 늘어났다. 결국 공문은 한 건이지만 해당 건을 처리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노력은 첨부파일 숫자만큼 늘어났으니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듯 공문이 줄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를 다음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아본다.

 


첫째, 각종 교육 관련 법규에 따라 만들어지는 공문이다. 교육 관련 법규 하나가 만들어질 때마다 교육부에 담당 부서가 하나씩 생긴다. 일례로 ‘진흥’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교육 관련 법들을 찾아보니 현재 19개가 시행 중이다. 따라서 교육부와 교육청에는 이 일들을 처리하는 부서가 존재한다. 이 법규들은 교육 목적, 교육 내용, 교육 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추진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으로 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를 처리하는 세부적인 지침으로 매뉴얼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실행 결과를 보고하는 수순으로 마무리된다. 일련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공문의 양은 상당하지만 실제로 보고 내용처럼 관련 교육이 내실 있게 이뤄지는 학교는 드물다. 이러한 일(공문)을 내실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의 파행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결국 각종 교육을 ‘떨쳐 일어나게 한다’는 취지로 만든 교육 관련 법규들은 교육 대신에 공문을 떨쳐 일어나게 만든다.


둘째, 교육부와 교육청이 기획한 자체 사업으로 만들어지는 공문이다. 교육부와 교육청 사업계획서를 읽어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그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 상당한 예산이 배정되어 있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절차는 공모→선정→컨설팅→실적보고→정산으로 이어진다. 장학이 컨설팅으로, 우수사례보고가 실적보고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더구나 정부가 바뀌고 교육부장관이 바뀌고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사업은 자꾸 늘어나는데 기존에 진행되던 사업은 없어지지 않는다. 교육부와 교육청 사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자체를 비롯해 유관기관의 협조 요청에 의해 이뤄지는 사업들을 학교는 깔때기처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을 공문으로 처리해야 하니 공문을 줄이자는 말 자체가 무색할 정도이다.


셋째, 서류 위주의 감사에서 비롯되는 공문이다. 교육은 그 본질적인 특성상 단기간에 양적으로 측정하기가 곤란하다. 그런데 감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한다. 즉 교육 활동의 모든 결과를 문서를 통해 확인하다 보니 학교에서는 이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계획서와 관련 실적을 문서로 만들어 내부 결재를 거쳐 문서 등록한다. 오죽하면 교사들은 ‘적자생존(적는 자가 살아남는다)’이라는 말을 쓰고 있을까. 교육의 특성을 감안해 감사 방법을 바꾸지 않는 한 모든 교육을 문서로 포장해내는 ‘적자생존’의 기이한 관행을 학교 스스로 끊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넷째, 국회의원, 지방의원의 요구 자료에서 비롯되는 공문이다. 해마다 국정감사나 행정사무감사 등으로 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 제출 공문을 살펴보니 평균 80건 정도이다. 이 요구 자료들은 몇 년 간의 자료를 취합해서 보내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제출 기한마저도 촉박해서 이를 기한 내에 처리하느라 수업이 파행을 겪기도 한다. 그런데 의원들이 보내는 이 요구 자료들은 「국회법」 제128조와 「지방자치법」 제40조에서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고 요구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관련 법에서는 ‘본회의, 위원회 의결 또는 재적위원 1/3 이상의 요구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도록 하고 있지만 정작 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고 개별 의원이 무분별하게 자료 제출을 요구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올해 청와대 국민청원, 국회 민원, 교육부 민원 등이 제기됐지만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공문서는 여전히 학교로 날아온다.


공문을 줄이려면 교육을 키우는 수밖에
공문을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위에서 언급한 공문이 줄지 않는 이유를 제거하면 된다. 즉 교육적 의미가 없는 법규들을 폐지 또는 개정하고, 교육부와 교육청의 사업들을 폐지 또는 축소하고, 서류 확인 위주의 감사를 면대면 질적 감사로 바꾸고, 적법 절차에 따라 의원들이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암담하기까지 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 교육정책 결정 과정에서 현장 전문가인 교사의 의견을 배제하는 ‘교사 패싱’은 계속된다. 아동의 훈육으로 인해 아동학대 신고를 받는 교사가 늘어간다. 심지어 학부모와 학생에게 교사가 폭행을 당하는 일까지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이 교육의 공공성을 헤치는 행위는 늘어 가는데 이를 타계할 뚜렷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이게 교육이냐?’는 물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다시 나에게 묻는다. ‘왜 교사가 됐니?’, ‘교사가 돼서 무엇을 하려고 했니?’ 필자가 부모님을 모시고 공개수업을 한 뒤에 갖게 된 질문인데 이에 대해 하나 둘 대답을 하다 보면 그래도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힌다. 그동안 동료 교사들과 함께 100대 교육과정 폐지, 교장제도 개혁 청원, 스승의 날 폐지 청원, 국회의원 요구 자료 대응 청원, 학교생활기록부 간소화 방안 제시, 수능 감독 방식 개선 요구, 교권 침해 대응 등의 활동을 해왔다. 교육이라는 두 글자에 아직도 내 가슴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공문도 마찬가지다. 공문 한 장 한 장에 대고 ‘이게 교육이냐?’고 물어본다면 우리 스스로 덜어낼 공문도 상당할 것이다. 이 물음이 집단지성을 이룰 때 괴물이 된 공문도 차츰 학교에서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