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제언·칼럼

카르페 디엠으로 아픈 마음을

기다림의 심정은 고3 수험생이나 그 자녀를 둔 부모나 마찬가지이다. 지난 15일 고등학교 생활의 마침표라 할 수 있는 수능이 치러졌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긴 어둠의 터널에 갇혀 있다 수험장을 나서는 아이들의 표정은 자유 그 자체였다. 다양한 표정을 보면서 한창 즐겁게 보낼 고교 시절을 내신 경쟁에 생활기록부에 내몰린 우리의 교육 현실을 보며 정말 이 나라가 행복한 나라인지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이나 숨을 돌렸다고 이제부터는 수시에 응시한 고3 수험생들의 면접고사가 숨을 조르기 시작한다.

 

토요일 새벽이었다. 비를 예보하고 있는 하늘은 짙은 먹빛에 별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수시 면접일이지만 응시학교가 멀어 새벽 공기를 밀어내며 남해를 출발한다. 남해대교를 향하는 길. 도로확장 공사를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불편을 감수했는데 이날만은 장애물로 다가섬이 급한 마음이라며 지난다. 두어 시간 넘게 추월선을 넘나들기를 반복하며 달린 끝에 목적지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어둠 속 숨죽이며 졸고 있는 불빛은 일상의 새벽을 걸어 미명의 시간으로 옅어진다.

 

하지만 면접시간에 늦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은 시계만 쳐다보게 된다. 쫓기는 마음 그래도 아이에게만은 들키지 않으려고 하지만 벌써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아이는 면접 기출자료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 말이 없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어둠은 물러나고 이제 비가 내린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차창에 부딪혀 파편이 된다. 조마조마한 마음 휴게소도 들리지 못하고 입실 시간을 목전에 남기고 도착한다. 낯선 아침이다. 하지만 이미 면접장 주변을 가득 메운 차량과 사람들을 보니 긴장감은 더해진다. 아이 엄마는 빈속으로 가면 안 된다며 미리 준비한 국물과 밥을 차 안에게 먹게 한다. 하지만 아이는 먹고 싶지 않다고 국물만 몇 모금 마신다.

 

고사장 주변에 아이를 둘러싼 부모들의 표정은 비슷하다. 모두가 불안, 긴장, 염려, 우리 아이만이라도 하는 마음이 역력하다. 드디어 입실이 되고 보이지 않는 시간과 단절이 시작된다. 하지만 여전히 따라온 부모들은 주변을 서성이며 떠날 줄 모른다. 삼 십 여분이 흐르자 일찍 면접을 본 한 아이가 나온다. 아버지가 아이를 포옹하고 토닥여 준다. 눈물이 난다.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귀한 자식이다. 오전 면접을 일찍 끝낸 아이는 인근 식당을 찾아 점심 장소로 향한다. 하지만 순번이 말미인 아이는 아직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수험장 주변 바람결에 구르는 낙엽 소리조차 머리카락을 세우게 한다. 그렇게 오전 면접을 마치고 오후 면접을 향해 시간은 멈춤이 없다. 또다시 기다림이 시작된다. 동병상련이랄까? 기다림도 같이하면 나을까 싶어 수험생 보호자 대기 공간으로 간다. 대학교 체육관에는 많은 학부모가 여기저기 불안한 기다림으로 시간을 조르고 있다.

 

의자에 앉는가 하면 높이뛰기 매트를 침대 삼아 누운 아버지들도 보인다. 난방 열기로 한기는 가셨지만 애타는 기다림은 뜨겁기만 하다. 심호흡하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본다. 조는 듯 눈을 감고 계신 어떤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분의 손에는 엄지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염주 알이 하나씩 넘어가고 있다. 아이를 향한 마음이 알알이 맺혀진다.

 

기다림은 재회의 포화도를 진하게 한다. 오후면접을 먼저 끝낸 한 아이가 문을 나서는 순간 어디서 보았는지 아이의 부모가 뛰어가 부둥켜안는다. 수험생은 본인대로 힘들었을 것이고 기다리며 마음 졸인 부모의 마음은 촛농이 되었을 것이다. 사랑이 물처럼 불어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이런 광경을 외국인이 본다면 어떻게 표현할까? 행복하다고 감동적이라 할 수 있을까?

 

아이는 마침 시간 가까이 나온다.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다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거울에 비친 아이의 표정은 지침과 안도감이 함께 있다. 이번에는 눈을 들어 밖의 경치도 본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하루의 마침을 건넨다. “그동안 힘들었지, 아마 그 부담은 바윗덩어리보다 더했을 것이야. 하지만 힘들게만 받아들이지 말고 삶의 한 여정으로 생각하렴. 그리고 결과보다 이런 준비 과정에서 또 다른 자신을 볼 수 있음에 만족하자. 현실을 피하려 하지 말고 이 순간을 즐기자.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을 생각하자.” 아이에게 격려라 하기 에는 모자란 말이다.

 

저녁 뉴스 시간이다. 한국 국적 포기자 3만 명을 돌파한 내용이 씁쓸한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빗대고 있다. 오로지 성공을 위해, 돈을 위해 끝없이 경쟁을 조장하는 우리의 현실과 교육 현장. 그 변화의 물결은 언제 꽃을 피울까? 언제쯤이면 돌아오는 대한민국 행복이 넘치는 나라가 될까? 소실점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수능을 마친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현실을 무시할 수 없지만 카르페 디엠으로 아픈 마음을 다독이기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