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단일기

19세기와 21세기 학생들

-<엄마 인문학>과 <학교에 배움이 있습니까?>를 읽고

며칠 전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엄마 인문학>이란 책을 탐독했다. 필자는 이 책을 읽는 동안 ‘학교에 배움이 있습니까?’란 책도 함께 읽었다. 두 책을 번갈아 읽으면서 ‘학교에 배움이 있습니까?’란 질문을 <엄마 인문학>에서 찾아보았다.


최근 들어 필자의 눈에 평소 관심이 없던 심리학과 인문학 책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책들을 살펴보다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자가 가장 깊게 생각한 것은 과연 ‘학교에 배움은 있느냐’였다. 학교가 단순히 지식만을 가르치는 곳이라면 사실 학교는 그다지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인터넷과 각종 정보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단순 지식 정도는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학교에는 배움이 없는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엄마 인문학>이란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책 제목이 <엄마 인문학>이기 때문에 주로 엄마들이 읽는 책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필자 역시 남자이지만 제1강에서부터 흠뻑 빠져들었다. 후반부는 필자의 관심분야가 아니라서 생각나는 게 없지만 제1강만은 흥미진진했다. 필자가 그동안 고민해왔던 학교 교육의 단점과 학생들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제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평소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혹시 필자가 모르는 사이에 크게 실수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말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보다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인간이 이성을 통제하지 못하고 본능대로만 행동하고 생각한다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필자의 이런 생활이 흐트러지고 있다. 빡빡한 학교생활과 매사 여유를 찾을 수 없는 스케줄 때문이다. 따라서 실수도 잦다. 그래서 요즘에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 이런 필자의 생각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는다면 아마도 <엄마 인문학>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할 것이다. 즉 작가의 말처럼 학교는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물건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요즘은 흔히 말하는 명문대를 나와도 취직이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변에선 무조건 명문대학만 강요한다. ‘학교에 배움이 있습니까?’에서는 학교 교육을 다음과 같이 혹평한다. 19세기 내용을 가지고 20세기 교실에서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 시대의 흐름을 학교가 신속하게 따라잡지 못한다는 뜻이다.


작가의 말처럼 지금의 교육은 융통성도 없고 혁신적이지도 않다.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은 점점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을 받는 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생들의 사고는 고정된 틀에 갇혀버렸고 창의성은 점점 메말라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우리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찬찬히 살펴보면 모두 다 영재들이고 머리가 비상한 녀석들이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이 수업이 시작되면 전부 바보가 되어버린다.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동태눈깔로 만들고 아이들의 총명한 뇌를 둔하게 만드는 것이다.


학교에 배움이 있습니까? 필자는 아직도 작가의 이런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험 점수를 잘 맞고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잡아 출세를 시키기 위해 교육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부수적인 것이다. 그보다는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작가의 이 같은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할 수 있으리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