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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왜 역사를 읽는가,

어떻게 역사를 쓰는가

역사로 남은 역사가와 역사서를 탐사한 지식 르포르타주

 

▲ 역사의 역사/ 유시민/돌베개/16,000원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조금 더 위대한 것이 있다면, (위대하다는 전제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오만함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한계를 인식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더 많음을 인정하는 것,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유한한 삶임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마저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직 풀지 못한 물질인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가 96퍼센트라고 합니다. 겨우 4퍼센트만이 내가 존재하는 행성과 별들의 합일 뿐입니다. 어쩌면 나의 일생도 4퍼센트를 채우다 가는 것은 아닌지 일반화시켜 보고 싶습니다. 아득한 내 존재의 시원도, 죽음 뒤의 존재마저도 알 수 없는, 정체 모를 96퍼센트의 무지를 뒤로 한 채 스러지는 존재인 까닭입니다.

 

그마저도 지혜롭게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서 몸부림치듯 책을 드는 계절 앞에서 종종 걸음으로 가는 시간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중입니다. 겨울 앞에서 서면 늘 이렇게 다급해지는 연유는 나도 자연의 일부임을 몸이 먼저 아는 탓입니다. 계절은 내게 이릅니다. 지금은 비울 땔고. 그리고 잘 비우기 위해서는 먼저 잘 채우라고. 이 책은 채우기 위해서 읽은 책입니다.

 

지식은 채움에 있고 지혜는 비움에서 시작됨을 가을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인생의 겨울을 향해 가는 이 가을에, 육십둘을 살았으니 무엇을 더 배우고 무엇을 덜어내며 빈 가지로 서야 하는지 잎사귀를 털어낸 교정의 은행나무들이 내게 묻습니다. 마지막 제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 때보다 무겁습니다. 천방지축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아이가 고집을 부리고 오기까지 부리며 흡사 중2병 증세처럼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며 가르치노라면, 이건 가르침이 아니라 도를 닦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지요.

 

역사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도를 닦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제겐 그렇습니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지만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숙제이기 때문입니다. 숙제하듯 유시민 , 그의 책을 다시 샀습니다. 다소 무거운, 재미없는 책이지만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름방학에 샀지만 읽어내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역사 서술에 가까운 책이면서도 작가의 감정과 서술방식은 역사철학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감히 역사학자도 아니고 역사학도도 아니며 역사를 좋아하지도 않는 독자로서 그의 책을 선뜻 구입한 이유는 '공부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을 달고 싶습니다.

 

그만큼 역사책을 제대로 읽어낸 기억이 드뭅니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나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문명의 충돌>,<서구의 몰락><사기> 등은 이미 갖고는 있지만 끝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사피엔스>는 1독을 마쳤지만 아직도 다시 읽어야 할 목록에 들어 있으니 제대로 읽은 게 아닙니다. 선생이라면 마땅히 역사에 대흔 개괄적 상식 정도는 담고 있어야 함을 알기에 사들여 놓고 산지기집에 거문고처럼 주인을 원망할 책들을 읽어 보기 위해서 용기를 냈습니다.

 

1독을 마치고 2독을 하다보니 여타의 역사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추천합니다. 겨우 일독을 마치고 재독을 진행하는 중에 이 글을 씁니다. 일독에서는 보이지 않던 고구마 줄기같은 알맹이를 건지는 기쁨을 누리는 중이라서 나누고 싶은 충동이 더 컸습니다. 검증된 작가, 공부하는 지식인, 시대의 흐름을 읽고 선도하는 사회학자, 그의 고민과 인생 철학 때문에 다시 찾는 인간 유시민... 제가 그의 책을 즐겨 찾는 이유입니다.

 

역사를 안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은 곧 나를 아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어디쯤에 있는지 그 좌표를 어렴풋하게나마 잡을 수 있게 합니다. 137억 년 전 탄생한 우주에서, 45억 년 전에 생겨난 지구라는 집은 하루 한 번  시속 1600킬로미터로 자전하면서 1년에 한 번 시속 10만 7천 킬로미터의 속도로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과학적 역사를 지닌 별입니다. 태양계 또한 하루에 190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거대한 은하계를 돕니다.

 

이쯤에서 나의 존재가 별의 먼지에서 비롯된 지극히 작은 생명체라는 과학의 달팽이 뿔에 붙은 한 점에도 미치지 못함을 생각하면 공허와 허무감이 덮칩니다. 그러니 기적이 아닐 수 없고 신비 그 자체임을 과학은 가르쳐 줍니다. 그 물리적 배경을 안고 출발한 인류의 역시를 인문학적 통찰로 접근힌 이 책은 위대한 역사가들과 역사학자들이 남긴 위대한 기록물을 집대성하여 한 상 가득 차려 놓았습니다.  먹기 힘든 요리는 현란한 설명과 감성적인 필치로 자르기 쉽게 갈무리한 유시민 이라는 검증된 작가의 노련한 칼질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현존하는 역사책을 두루 섭렵하여 소화시킨 후, 받아 먹기 좋게, 목에 걸리지 않게 제대로 된 접시 위에 차려 놓은 작가의 손 끝에서 다시 태어난 역사책들은 꼭 사서 보아야만 할 것 같은 성취욕구를 자극합니다. 역사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지구에 발을 들여 놓은 인간이라면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 될 통과의례 같은 책이라서 숙제하는 마음으로 억지로라도 지식을 채운다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다시 읽을 때는 일독과는 다른 숨겨진 보석들을 캘 수 잇으리라는 희망을 안고서.

 

더 솔직하게 말하면 원재료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식재료인데 유시민이라는 요리사가 개발한 소스 (양념) 덕분에 최고급 음식을 먹은 느낌이 드는 책입니다. 그러니 작가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의 학문적 소양이 얼마나 넓은지 감탄을 자아내게 한 책입니다. 소개된 역사책의 진국만 골라 내놓은 핵심 문장만 읽어도 인류사의 고갱이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가 앞서 펴낸 전작에 비추어 묵직한 주제와 학문의 깊이는 작가가 살아낸 시간의 거름망이 촘촘한 덕분이라고 감히 짐작해 봅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안겨 준 책이라서 감사함도 큽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소개한 역사책이 다양하고 많으면서도 독립적인 구성으로 편집해여 접근성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의 어느 한 대목에서 한 단락을 따로 소개하기 어렵습니다. 모두 욕심나는 문장들이 가득하니 역사 공부를 하고 싶은 분에게는 개괄서로 매우 좋은 책입니다. 그러니 이 책은 역사책의 메뉴얼로 삼거나 길잡이 책으로 삼기 좋은 친절한 책입니다. 저는 겨우 물줄기만 짐작한 역사 공부의 초보자라서 깊이 있는 독후감은 다시 쓸 생각입니다. 그저 함께 읽고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소개해 올립니다.

 

장구한 우주 역사와 기적 같은 지구 별에서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간으로 태어난 나의 역사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석양에 서서 다시 공부할 화두 하나 잡으니 그 기쁨으로 인생의 마지막 계단을 오를 설계로 바빠졌습니다. 인간은 '공부하는 존재'일 때 가장 행복하다는 공자님의 말씀이 번개치듯 뇌리를 스치는 행복한 깨달음을 안겨준 책은, 역시 최고의 멘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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